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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2 4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아! 이정현 목사 2022-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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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디모데전서6:11절 개역개정

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제공: 대한성서공회

2212월 첫째주 설교 딤전 6:11,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아!

 

본문에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직책을 부여하신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좀 더 확장해서 설명을 하면, ‘하나님께 속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직책을 맡아서, 하나님을 위하여 사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불렸던 인물들이 있습니다. 모세, 다윗, 엘리야, 엘리사, 그리고 선지자들입니다.

 

그런데 신약에서 이 용어는 디모데전후서에서만 나타납니다(11; 딤후 3:17). 오늘 본문에서는 디모데를 일컬어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불렀고, 디모데후서 3:17에서는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고 함으로, 일반 성도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용어의 사용처를 보면 구약에서는 모세, 다윗, 선지자들을 이렇게 불렀고, 신약에서는 디모데와 일반 성도들을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이 말은 좁은 의미로 본다면, 특별한 사역자들을 말하지만, 좀 더 확장해서 광의적으로 설명을 한다면, 초대교회 당시의 신실한 성도들을 가리킴으로, 결국 오늘날의 사역자들과 모든 성도들을 가리켜 하나님의 사람들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전적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고자 하는 저와 여러분들을 가리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본문에 두 개의 동사가 나오는데 하나는 피하고-피하라는 말이고, 다른 하나는 따르며-따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두 개의 동사를 근거할 때,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피해야 할 것과, 따라야 할 것이 있다고 봅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성숙한 사람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성숙한 성도들이고, 성숙한 신자들은 하나님의 사람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이것을 합하면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이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은 간단히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이 피해야 할 것은 무엇이고, 따라야 할 것은 무엇인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피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본문 앞에서 두 가지를 뽑을 수 있습니다.

 

1)여러분들은 변론과 언쟁을피해야 합니다. 4-5절 말씀입니다. “4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5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딤전 6:4-5). 여기의 변론은 자기의 지적인 능력을 전시하기 위해 질문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가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질문하는 것입니다. 답을 다 알고 있으면서 질문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변론이라고 합니다. 제가 약 20년 동안 대학에서 가르치고, 30년 넘게 목회를 했기 때문에, 웬만한 사람들의 질문을 들어보면 진짜 몰라는 물어보는지, 아니면 알면서 자기과시용, 아니면 교수를 골탕먹이려고 하는지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변론은 피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언쟁은 근거 없는 말을 가지고 다투기를 즐겨하는 논쟁을 가리킵니다. 싸우기 위해서 상대편의 말꼬투리를 잡는 것입니다. 이 언쟁은 변론보다 더 나쁜 것입니다. 근거 없는 말을 가지고 핏대를 새우며 싸우는 것입니다. 요사이 TV 뉴스에 보니까 이런 사람들 많이 나오더라구요. 이런 행위는 주로 이단들이 좋아하는 것들입니다. 거짓 선생들이 이런 짓을 하는 것입니다. 사이비들이 이런 짓을 많이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변론과 언쟁을 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같이 어울리지 마세요, 오히려 그런 사람들을 피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런 것을 피해야 합니다. 여기 피하라’(퓨케)는 말 속에는, ‘의도적으로 피하라(떠나라)’는 뜻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변론과 언쟁은 의도적으로 피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마음에 이런 생각이 들면 피하시고, 여러분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려고 하면 피하시고, 혹시 그런 사람이 있을 때는, 그런 사람과 장소를 의도적으로 피하시기 바랍니다. 교회에서 행해지는 모든 회의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일에 참여하거나 동조하지 마세요.

 

왜 피하여야 하는가 하며는, 변론과 언쟁은 결국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린다”(6:5)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을 피하지 않고 동참하거나 좋아하다 보면, 결국은 마음만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내 영혼이 죽는 것입니다.

 

여러분 나 자신의 건전한 신앙 인격을 만들어 가기 위해서, 변론과 언쟁을 피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아울러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라고 부름을 받은 우리들은 좋은 교회, 건강한 교회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도, 변론과 언쟁을 의도적으로 피하여야 합니다. 아름다운 신앙 인격과 건강한 교회를 만들어 가기 위하여 변론과 언쟁을 의도적으로 피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여러분들은 돈을 사랑하는 마음을 피하여야 합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두렵고 떨리는 말씀이 나옵니다. 바울 이전에 살았던 사람 중에, 비온(Bion)과 데모크리투스
(Democritus)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그들이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돈을 사랑함이 모든 악의 척도이다.” 오늘 본문의 말슴과 너무 유사하기 때문에 혹자는 바울이 이들의 말을 인용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렌스키라는 주석가는 이 구절은 바울의 독자적인 주장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기록한 것으로 믿어 의심하지 않습니다.

여기의 사랑함이라는 단어는 탐욕을 말함으로 돈을 사랑한다는 것은 돈에 대한 강한 탐욕을 말하는 것입니다. 돈 그 자체는 악하지 않으나, 그것에 탐욕을 품게 될 때 악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말한 것은, 돈을 사랑함이 모든 악의 근원임을 말함과 동시에, 재물을 지나치게 탐하게 되면, 거기에는 반드시 극단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죄악들이 재물에 대한 욕심에서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 결과도 비참하다는 것입니다.

 

탐욕의 결과에 대하여 본 구절에서도 분명히 밝혀주고 있습니다.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이러한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게 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떠나’(아페플라네데산)라는 단어는 하늘에 떠 있는 별이 자신의 일정한 궤도에서 이탈하여 유성처럼 떠돌아 다니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리에서 이탈하여, 교회에서 이탈하여, 믿음에서 이탈하여 정처 없이 외롭게 떠돌아 다닌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했는데, 이는 깊은 슬픔으로 고통을 당한다는 뜻입니다. 결국 돈에 지나친 탐욕을 품은 자들은 신앙보다 물질에 더 관심을 갖게 되어 신앙을 잃고 방황하게 될 뿐만 아니라 극심한 슬픔으로 고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돈은 중립적인 것입니다. 돈은 축복도 가져오고 저주도 가져옵니다. 돈은 우리의 삶에 꼭 필요한 것입니다. 문제는 물질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태도가 어떠하냐는 것입니다. ‘돈이 나를 살게 한다, 돈이면 다 된다, 돈이 내 인생에서 최고다’-이처럼 소위 황금만능주의나 황금숭배로 빠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네 보물이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6:21)고 가르치셨고,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6:24)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돈이 우리에게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를 가르쳐 준 것입니다. 돈은 사람의 심지를 흔들어 놓을 만큼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돈은 하나님 섬기는 것을 포기할 수 있을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돈이나 물질에 대한 욥의 믿음은, 오늘 우리에게 많은 도전을 줍니다. 그는 동방의 큰 부자였지만, 황금만능주의자도 아니었고 황금숭배자도 아니었습니다. 돈 때문에 하나님을 섬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것이 없어져도, 그는 오로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섬겼던 인물입니다. 자기의 좋은 환경 때문에 하나님을 섬긴 것이 아니라, 환경과 주위가 비참해져도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경배하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1:21). 그는 물질을 삶의 하나의 수단으로 생각했지 목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돈을 사랑하는 마음을 피하려면, ‘자족하는 마음을 가지면 됩니다.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4:12)를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의 기도는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30:8-9)로 특징지을 수 있습니다.

 

욥과 같은 마음과 자족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다음의 교훈을 인식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6:7-8).

 

이런 믿음으로 살되, 돈을 사랑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물질의 청지기 정신으로 살아야 합니다. 돈을 사랑하는 사람의 결과는,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에 빠지게 되고, 큰 고통을 당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11). 돈을 사랑하는 사람치고 결국 잘되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에 빠지게 되는 것이, 얼마나 처참한 결과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피해야 할 것은, 변론과 언쟁과 돈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피해야 할 것을 의도적으로 피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매일 매시마다, 의도적으로 변론과 언쟁, 돈을 사랑하는 마음을 피하는, 성숙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 이제는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이 좇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본문에서 6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11)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디모데후서 222절에서도,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는 비슷한 말씀을 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의와 경건에서 , 하나님의 율법과 조화를 이루는 마음의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를 좇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고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모두의 삶에 있어서,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사항입니다. 약속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고, 가감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마치 교통 신호등처럼 말씀이 가라면 가고, 멈추라면 멈추고, 조심하라면 조심하여 사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의를 좇는 삶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리고 경건은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을 가지고 사는 삶입니다. 경건은 바른 종교적 태도를 가리킵니다. 참된 경건은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으며,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들은 말씀과 기도로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위에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낮은 자리에서 주를 섬기듯 그들을 섬겨야 합니다. 이것이 참된 경건입니다. 결국 경건은 하나의 추상명사가 아니라, 역동적이며 생명력 있는 동사인 것입니다.

 

다음에 나오는 믿음과 사랑, 우리의 삶의 특성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서의 믿음은 동의(consent)하는 것이요, 신뢰(trust)하는 것이요, 헌신(commit)하는 것이요, 그리고 순종(obey)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동의하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명령에 그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다운 믿음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인내하는 것이요, 친절한 것이요, 관용을 베푸는 것이요, 겸손한 것이요, 예의범절을 잘 지키는 것이요, 사욕이 없는 것이요, 성내지 않는 것이요, 진실한 것이요, 진리를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우리들은, 적어도 이런 믿음과 사랑을 추구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인내와 온유에서 인내는 기다리는 것이고 시련을 참는 것입니다. ‘인내는 수확을 기다리는 농부의 태도에서 나타납니다(5:7-8). 가을의 풍성한 수확을 바라보고 봄에 땅을 갈아 엎어 파종을 하고, 무더운 여름에 김을 매고 벌레를 잡아주어야 합니다. 극한 수고와 오랜 시간의 인내함이 있어야 좋은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또한 인내는 장거리 경주하는 사람의 태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마라톤 선수들처럼 심한 고통과 인간의 한계에도 인내해야 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역자는 농부와 운동 경기자처럼 무슨 일이 있어도 욥처럼 인내하고, 또 어떤 어려운 일이 주어져도 인내하며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의 인내’(휘포모넨)는 불행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고 견디는 것을 말합니다(살전 1:3, 5:14). 그러니까 인내라는 말에는 이미 고난과 어려움이라는 의미가 전재되어 있는 것입니다. 주의 일을 하다보면, 정말 인내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장로님들, 안수집사님들, 권사님들 교회 일을 하다 보면, 억울한 일도 많고 섭섭한 일도 많고 자존심 상하는 일도 많으시지요? 그때 그때마다 인내해야,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결말을 맛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따라야 할 것이 온유인데, 이는 적개심이나 보복심 없이 잘못한 사람을 유순하게 용납하는 정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친히 온유하시다고 하신 것처럼, 우리도 온유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원수를 원수로 갚지 말고, 남의 잘못은 용서하고, 나에게도 그런 잘못이 없는지 살펴보고, 항상 유순한 마음으로 성도들을 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화를 내며 예의 없이 말하고 행동하는 교인들을 온유하게 대하여야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람들은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11)를 따라야 합니다. 여기 따르며라는 동사(디오코), 전심전력으로 추구하라는 의도가 있습니다. 위의 6가지 사항을 위하여 전력질주하라는 명령입니다. 마치 100m를 달리는 선수처럼 좌우를 기웃이웃하지 않고, 6가지 사항을 목표로 전심전력으로 달려가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특히 우리들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서,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라는 사명을 받은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마땅히 피해야 할 것을 피하고, 따를 것을 따르며 살아야 합니다. 피할 것들은 의도적으로 피하고, 따를 것은 전심전력으로 추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피하라는 것을 따르고, 따르라는 것을 피하면,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라, 청개구리와 같은 인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소망교회 성도 여러분은, 지금까지도 피할 것은 열심히 피하여 왔고, 따를 것은 열심히 따르며 살아왔을 것입니다. 이제 앞으로는 더 철저하게, 더 꼼꼼하게, 더 열정적으로, 피하고 따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피하고 따르라는 이 두 개의 동사(퓨게, 디오케), 전부 현재 명령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두 번 피하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피하고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난날처럼 앞으로도 계속적으로 피할 것은 계획적으로 피하시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는 필사적으로 따르는, 성숙한 사람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한글 성경에는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이렇게 되어 있지만, 원문에는 오직대신에 !’라는 감탄사()가 들어가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부르면서, 디모데가 너무 멋지고 아름답고 귀하고 충성스러우니까 감탄하며 감격스러워서 이렇게 부른 것입니다. ‘, 너 하나님의 사람아!’

 

먼 훗날 제가 여러분들을 부를 때, 너무 감격스러워서, ‘,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 누구야’-이렇게 불림을 받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보다 우리 주님이, 멋지고 아름답고 충성스러운 여러분을, ‘, 너 하나님의 사람 누구야!-이렇게 불러주시기를 간절히 고대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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