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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목사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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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1 부활을 믿는 자의 삶
운영자 2018.4.1 조회 1690

[성경본문] 고린도전서15 : 58 - 58 | 개역개정

  • 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고전 15:58, 부활을 믿는 자의 삶

우리가 부활을 믿는다면, 어떤 일에도 흔들림 없이, 주의 일에 항상 힘쓰며 살아가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부활신앙으로 승리하는 모든 교우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죽음은 어느 정도 인정을 하는데, 부활은 믿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인간의 이성과 과학적 사고로 이해할 수 없다며 믿지를 못합니다. 어느 할아버지를 전도해서 세례자 교육을 시키는데,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의 죽음을 믿느냐고 하니까, 믿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느냐고 했더니, ‘애이 젊은 양만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살아나냐’고 반문을 하였습니다. 그러니 젊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이성과 과학적인 사고로 판단해 볼 때, 부활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믿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 부활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사두개인들도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한 번 죽으면 그만이지,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는가? 그것은 거짓말이다.’ 또 어떤 사람은 부활을 합리적으로 생각해서,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기절하셨다가, 서늘한 무덤에 넣어두었더니, 다시 깨어났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혹자는 예수님을 흠모하던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다가 다른데 옮겨놓고, 빈 무덤을 보이면서 예수가 살아났다'는 소문을 퍼뜨렸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고린도교회 교인들 가운데도, ‘부활’을 부인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12).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부활 복음을 분명히 전하였는데도 불구하고, 교인들 중에 그리스도의 몸의 부활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무슨 말씀인가하면, 당시 사람들은 대부분 육체는 악하고 영은 선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영혼이 살아있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지만, 악한 육체가 죽었다가 다시 산다는 것은, 이해할 수도 없고 용납할 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리스도의 육체 부활을 부정했던 것입니다. 결국 ‘몸의 부활’을 부인하는 것은, 부활 자체를 부인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당시 고린도교인 중 상당수가, 주님이 죽은자 가운데 삼일 만에 육체적으로, 다시 살아난 사실을 부인했던 것입니다.
 
만약 이들의 주장처럼 부활이 없다면, 어떤 결과들이 초래될까요(13-19)? 바울은 이 점을, 몇 가지로 지적을 하셨습니다.
 
1)13절/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15하). 이것은 부정을 다시 부정하여, 긍정을 나타내는 표현법입니다.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조차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였으리라고 하시면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긍정적으로 강하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결국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도 있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2)14절/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17상)/ 그리스도께서 일으킴 받지 않았다면, 그 결과로 우리의 전파가 공허하고, 또한 너희의 믿음도 공허하다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전파한 복음의 핵심내용이 십자가와 부활이고, 그 중에서 부활을 더 강조하여 전파하였는데, 이 부활이 없다면 너희들의 전파는, 전부 꽝이라는 것입니다. 공허한 것이고, 열매 없는 빈손이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믿음도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의 진리는, 거짓되고 허한 말에 불과할 것입니다.
 
3)15절/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었다면,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은, 거짓 증인으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이고, 부활절 행사도 다 가짜가 되는 것입니다.
 
4)17하/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이 말은 죄 아래 있음의 상태가, 계속 지속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부활이 없으면, 인간은 결코 의롭다함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전히 죄의 상태로 지속되어 왔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이 없다고 가르치는 것은, 속죄도 없고 죄 사함도 없고, 칭의도 없다고 가르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5)18절/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이는 ‘그리스도를 믿고 죽은 자’를 말하는데, 만약 부활이 없다면, 그들조차도 영원한 생명의 복을 상실하였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부활이 없으면,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생명을 바친자들도 망하는 것입니다.
 
6)19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이 말씀은 만약 부활이 없다면, 하나님의 모든 약속이 물거품이 되고, 모든 소망이 사라지기 때문에, 우리가 피조물들 가운데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만약 내세의 소망이 없다면, 차라리 이 땅에서 먹고 마시고 쾌락을 누리고 사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고 봅니다. 부활이 없으면 신자들이 가장 불쌍한 자들이 됩니다.
 
이처럼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을 것이고, 우리의 전파와 믿음도 헛것이고, 우리가 거짓 증인이 되는 것이고,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고, 그리스도를 믿고 죽은 자들도 망하였을 것이고, 우리는 더욱 불쌍한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은 사실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입증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주님은 부활 후 40일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부활체를 보여 주셨습니다(막 16:9).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에게도 보여 주셨습니다(눅 24:36-49). 또한 안식 후 첫날 저녁에 제자들에게 보이셨고, 두 번째 주일에도 제자들에게 보이셨고, 디베랴 바다에서 제자들에게 자신을 나타내 보이기도 하셨습니다(요 20, 요 21:1-14). 그리고 500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일시에 보이셨고(고전 15:6), 마지막 감람산에서 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막 16:19).
 
뿐만 아니라, 결코 한 두 사람의 힘으로는 옮길 수 없는 무덤의 돌이 옮겨졌습니다. 연약한 여자들이 무덤에 도착했을 때, 이미 그 돌이 옮겨진 것입니다.
 
또한 빈 무덤이 부활을 증거 합니다. 아울러 세마포와 수건이 시신을 싼 그대로 있었다는 것입니다(요 20:6-7). 마치 누애가 고치에서 그대로 싹 빠져 나오듯이, 예수님의 몸을 쌓던 세마포와 두건이 그대로 폭 꺼져있고, 그 안의 시체가 빠져 나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의 증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인들이 무덤을 찾아갔을 때,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가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마 28:5-6). 천사들이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고 증언하였습니다.
 
그 이후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께서 육체적으로, 역사적으로 부활하셨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시카고 트리뷴’지의 기자 출신인 리 스트로벨이라는 사람은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다. 십자가 처형이 발생했던 바로 그 도시에서 교회가 기적적으로 출현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살아났음을 목격한 증인들을 떠나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부활을 목격한 증인들이 있기에, 교회가 있다는 말입니다. 교회가 있는 것을 볼 때에, 분명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세계 인구 70억 중에, 어떤 모습으로든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20억이 넘는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이 많은 사람들이 매 주일마다, ‘그는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라고 고백을 하고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 다시 살아나셨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되지 않겠습니까? 매주일 마다 20억 명의 신자들이, 주님의 부활을 입술로 고백한다는 것입니다. 부활이 믿지 못할 가짜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동일한 내용을 고백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은 분명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고, 죽음을 죽여서 이기신 분이십니다. 무덤을 박차고 나오심으로, 사망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바울은, 장차 주님의 재림 때에 있을 비밀에 대해 말하면서, 사망에 대한 승리를 선포합니다(51-57절). “26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이는 단 하나의 마지막 날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라는 것입니다. 마지막 날에 사망이 멸망하게 될 것은, 이미 이사야 선지자로 말미암아 예언된 말씀입니다. 이사야 25:8에,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55절 이하의 말씀을 보십시오. “55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56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바울은 마치 이미 이긴 전쟁에서, 승리의 개가를 부르듯, 호13:14절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사망은 어느 누구도 이기지 못하는, 최후의 원수였습니다. 그러나 부활을 통해, 사망에 대한 궁극적 승리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망의 쏘는 것’은, ‘독충의 침이 사람을 찌르는 것’을 말하고, 그 독침은 죄이고, 그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고 했습니다. 이 독침에 맞아 다 쓰러져 죽어야 마땅했지만, 그리스도께서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궁극적인 승리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사망을 영원한 불 못에 던지실 분이 예수님이라고 했습니다(계 20:14). 그래서 죽음의 독침을 쏘는, 사망까지도 정복하신 하나님께, 마땅히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에게 접붙임을 받은 사람들은,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을 것입니다. 바울은, 장차 신자가 입을 ‘부활의 몸’에 대해서,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이렇게 설명을 합니다.
 
42-44절/ ‘썩을 것, 욕된 것, 약한 것, 육의 몸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 영광스러운 것, 강한 것,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난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은데, 우리가 지금 입고 있는 땅에 속한 몸과, 부활의 몸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릅니다. 부활의 몸은 예수님의 부활체처럼, 신령한 몸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첫 아담이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의 회복일 뿐 아니라, 예수님을 믿어서 그분께 속한 모든 사람을, 자신의 형상으로 변모시키실 것입니다(롬 8:29, 고후 3:18). “48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첫 사람 아담)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마지막 아담 예수)와 같으니, 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결국 바울이 설명하고 있는 것은, 지금 모든 인간은 흙의 형상을 입고 있지만, 미래의 어느 한 시점에 부활이 있게 되면, 우리의 몸은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진실한 마음으로 부활을 믿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심을 믿으십니까? 그리고 우리가 죽는다 해도 다시 살줄을 믿습니까? 살아 있는 자는, 영원히 변화될 줄로 믿습니까?
 
진실로 주의 부활을 믿는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속한 자’가 된 우리, 그래서 장차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게 될 우리,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의 몸을 입을 소망을 가진 우리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것입니다.
 
58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저 세상과 이 세상 사이에 끼어 있는 우리, 하나님 나라의 미래와 현제 사이에 끼어 있는 성도들은, 이 땅에서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더 힘쓰며 살아야 합니다.
 
1)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바울은 부활에 관하여 말하면서, 때로는 열광주의자처럼 말하기도 하고, 때로는 사변가처럼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이제는 실제적이며 실천적인 입장에서 진술함으로, 결론을 맺습니다. 이제 고린도교인들은 바른 신앙과 교리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거짓된 교사들의 이단적 가르침에 미혹되지 말고, 오직 진리 위에 굳게 서서 흔들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바울은,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견실하다는 말은 스스로 확신을 굳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흔들리지 말라는 것은 유혹이나 핍박이 와도 그런 것에 좌우로 치우치지 말라는 뜻입니다. 유혹은 주로 거짓 교사들, 이단들, 사이비들로부터 오는 것인데, 주로 자기들의 주장이 옳다, 자기들에게만 구원이 있다, 다른 데는 전부 잘못되고 틀렸다고 주장을 함으로 자기편으로 끌고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미혹을 받아 그런 것에 끌려가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핍박은 주로 타 종교나 정치적인 집단이나 세속적인 권력자들로부터 옵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들이 가진 힘이나 돈으로 우리의 신앙을 회유하거나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떼어 놓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을 조이면서 신앙을 버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같은 내외적은 유혹과 핍박이 있어도, 부활 신앙을 가졌다면, 견고하고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우리보다 신앙생활 하기가 훨씬 더 어렵고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정치, 경제, 문화, 교육, 군사 모든 부분에서 우리와 같은 혜택을 누리지 못하였을 뿐만아니라, 그런 것들로 기독교인들의 숨통을 조이면서 신앙을 포기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각종 유혹과 모진 핍박과 고난을 받았지만, 그래도 그들은 목숨을 내어 놓고 신앙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카타콤의 순교자”라는 책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카타콤은 로마의 박해를 피해 크리스천들이 숨어 들어간 피난처요, 예배처인 동시에 묘지였던 지하 땅굴입니다. 로마의 박해를 피하여 이곳에 모여서 생활을 했는데, 하루는 로마의 군인들이 이곳을 습격했습니다. 워낙 미로여서 한거 번에 많은 사람들이 잡히지는 않았지만, 입구에 있었던 몇 사람이 붙잡혔습니다. 그 당시 예수님을 믿다가 붙잡히게 되면 곧장 카타콤 앞에 있는 광장에서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습니다. 십자가형은 순식간에 죽는 게 아니라, 몇 시간 동안 서서히 죽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상당한 고통을 느끼는 처형방법입니다. 몇 사람이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깊은 밤이 되었습니다. 로마 병정들도 다 숙소로 돌아갔습니다. 그 때 어둠 속을 해치면서 십자가에 다가오는 물체가 있었습니다. 누구였을까요? 십자가에 달린 사람들의 자녀들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작고 애절한 소리로 ‘엄마, 아빠’를 부르며 십자가에 다가갔습니다. 그때 그 부모들이 울고 있는 자녀들을 위해 무엇이라고 말했겠습니까? ‘얘들아 빨리 도망가라, 나처럼 예수를 믿다가 비참하게 죽으면 안 된다.’-이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얘들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참으로 영광스러운 일이란다. 너희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예수 믿는 것을 포기하지 말아라. 예수님이 사망 권세를 깨트리시고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부활할 거야. 얘들아 잠시 뒤에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자.” 

이들이 이렇게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죽어도 산다는 부활신앙을 소유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신앙을 지키다가 어려움과 환난과 핍박이 많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활을 믿는다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떤 시험이 와도, 환란과 핍박이 와도, 신앙생활에 어려움이 있어도, 흔들리거나 넘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2)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은 줄 알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부활이 없다면 먹고 마시고 쾌락을 즐기는 것이 현명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부활은 반드시 있으며, 따라서 주를 위해 수고한 모든 것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주의 일은, 항상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했다가 안했다가, 이랫다 저랫다 하지 말고, 변함없이 항상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흘러도, 상황이 바뀌어도 주의 일에 힘써야 합니다. 또한 이전보다 더욱더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작년보다 올해, 올해보다 내년에는 더욱더 애쓰고 힘써서, 주의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갓 믿었을 때보다 권찰 때, 권찰 때보다 집사 때, 집사 때보다 권사 안수집사 때, 안수집사 때보다 장로 때, 주의 일에 더욱더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연조가 깊어 가면 갈수록 어린아이의 일을 버리고, 성숙한 신앙인으로써, 교회에 봉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수고 한 것은 결코 헛된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예배당을 짓고 이곳으로 입당한지가 벌써 2년이 되어갑니다. 예배당 건축하기 이전부터 1년 동안 릴레이 기도를 하였고, 건축하던 1년 2개월 동안에도 많은 분들이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또한 귀한 물질을 드려 헌신했고, 궂은 일 마다하지 않고 봉사를 하셨습니다. 그 후로도 교회에 물심양면으로 수고하고 봉사하고 헌신하고 애쓰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1억 이상 건축헌금을 한 사람이 건축이 끝났는데도, 재정이 어려운 것 같다며 1000만원, 2000만원을 더 한 사람도 있습니다. 지금 교회사랑 1004 운동에 동참하고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주의 일에 힘쓰고 있는 것입니다. 물질 뿐만아니라 몸으로도 수고하고, 차량봉사로, 전도로, 새가족부에서, 찬양대에서, 교육기관의 교사로, 구역인도자와 구역장으로 힘을 다해 봉사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의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셨다가, 반드시 크게 복주시고 은혜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부활을 믿는다면, 어떤 일에도 흔들림 없이, 주의 일에 항상 힘쓰며 살아가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부활신앙으로 승리하는 모든 교우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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