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 9 28 <주님의 위로와 자기 계시>
- 운영자 2025.9.29 조회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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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요한복음14 : 1 - 6 | 개역개정
-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 4.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 5.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 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25년 9월 28일 요 14:1-6 주님의 위로와 자기 계시
우리가 올해는 매 주일마다 요한복음의 말씀을 살펴봄으로 은혜를 나누기로 했습니다. 오늘은 14장의 말씀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오면서 성경은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다양한 표현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몇 가지 예를 보면 요한복음 1:29에서 ‘세상 죄를 짊어지고 가는 어린양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역을 시작하면서부터 주님은 세상의 죄를 짊어지시고 어린양으로써 희생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3장에서는 본격적으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라’(14)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좀 더 나아가서는 ‘자기는 땅에 떨어져 죽어야 하는 한 알의 밀알’로 표현하기도 하셨습니다(요 12:20-26 ).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이렇게 말함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라’(요 12:32-33)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마음이 괴롭다고 하시면서 이 때를 면하게 해 달라(십자가의 죽음)’고 하시기도 하셨습니다(요 12:27).
이처럼 예수님의 죽음을 지금까지 예고하여 왔는데, 이제 주님의 대속적 죽음이 눈앞에 다가온 것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목전에 둔 예수님이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마지막 강화를 하시는 것이 본문에 나타납니다. 이것을 흔히 예수님의 고별설교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을 1-3절과 4-6절로 나누어서 말씀을 살펴봄으로 은혜 받고자 합니다. 먼저 1-3절을 근거로 예수님이 근심 중에 있는 제자들을 위로하시는 장면을 보겠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1). 제자들은 근심하였습니다. 이유인즉 그들 동료 중 하나는 배반하였고, 예수님은 심령이 되로워 하셨고, 예수님이 잠간 동안 너희와 함께 있고 떠날 것이라고 하셨고, 베드로는 주님을 세 번 부인할 것이라고 경고를 들었으니 근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같은 일과 말씀으로 인하여 제자들은 동요하고 근심하고 낙담하였습니다.
이럴 때 주님이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근심 대신에 믿을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2중 명령으로 이해를 하면 ‘하나님을 믿으라 또 나를 믿으라’가 됩니다. 이중 권고인 것입니다. 제자들은 어쩌면 구약에 예언된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두려움과 근심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나에 대하여 예언하신 하나님의 모든 예언을 확실하게 믿으면 마음의 근심과 불안이 없어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나도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대제사장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리라고 몇 번이나 말한 바가 있었다. 그리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라고 부활에 관하여 말했다. 그 예고들은 틀림없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나를 믿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기의 ‘또’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명백하게 제시해 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는 자신이 전능하신 하나님과 동일시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도 믿어야만 합니다.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동등되다는 진술입니다. 그러니까 그가 참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이 믿음은 거짓이고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처럼 주님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처럼 주님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두려움과 근심 걱정을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습니다. 주님은 사람에 대한 두려움과 근심 걱정을 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하나님과 나를 믿으라는 믿음으로 위로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과거에도 그렇지만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이 모든 두려움과 삶에 대한 염려 근심 걱정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비록 죽음의 공포라할지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영광스러운 나라를 믿을 때 세상에서의 이별인 죽음을 초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 때문에 그렇게 염려하고 걱정하고 불안 해 하십니까? 자식들 때문입니까, 부모님들 때문입니까? 건강이나 재정 문제 때문입니까? 자녀들의 미래가 걱정되십니까? 여러분의 노후가 염려스럽습니까? 사업 때문인가요? 그럴 때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2). 여기의 집은 거처를 말합니다. 성경에 아버지의 집에 대한 표현이 세 번 나옵니다. 요한복음 2:16에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고, 탕자의 비유에서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아버지의)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라는 말씀이 있고 본문에서는 최후의 거처로 ‘내 아버지의 집’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집은 천국, 성, 왕국, 낙원 등등으로 사용이 되었습니다. 천국의 기쁨, 천국의 영원함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원래 집의 의미는 우리가 사랑받는 곳, 항상 환영을 받는 곳, 안식과 평화를 누리는 것,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집도 그런 곳이며 거기에는 거할 곳이 많다고 하셨습니다. 미래의 구속된 자들을 위한 충분한 방들이 있고 또한 천사들을 위한 방도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음의 말씀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간다.’ 한글 성경만 보면 천국에는 거처가 많고 충분하다고 하셨는데 이어서 그렇지 않다면 내가 거처를 예비하러 간다는 식으로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거처가 충분한데 거처를 더 마련하려 가신다고 들리기 때문입니다.
2절을 공동번역에서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 그리고 나는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간다. 만일 거기에 있을 곳이 없다면 내가 이렇게 말하겠느냐?” 이 번역본이 이해하기가 쉽게 되어 있음으로 이 역본을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아무튼 예수님은 그들을 위하여 하늘에 있을 곳을 예비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주님이 마련하실 천당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을 통하여 당신의 백성들을 위한 거처를 마련하기 위하여 천국에 입성하신 것입니다. 물론 이 천국은 죄가 없는 완전히 거룩한 곳이며 영광스러운 장소이지만, 주님에 의해서 좀 더 거룩함과 온전함에 이르는 천국을 예비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는 잘 알지 못하지만 그리스도가 하늘 보좌 우편에 앉으심으로 말미암아 세워지게 될 천국의 영광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영광스럽고 죄가 없는 온전히 거룩한 곳이 될 것입니다. 한마디로 거룩한 곳에서 거룩한 곳으로, 영광스러운 곳에서 영광스러운 곳으로 주님이 마련하실 것입니다. 주님이 이런 천국을 예비하사 우리를 그곳으로 영접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완벽한 예비하심이 없이 우리를 그곳으로 데리고 가시지 않습니다.
주님이 에덴동산을 사람이 살기에 가장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으시고 아담과 하와를 만들어 그곳에 살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준비해 두시고 그곳으로 당신의 백성들을 옮겨다 심어 놓으신 것입니다. “10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향하여 네게 주리라 맹세하신 땅으로 너를 들어가게 하시고 네가 건축하지 아니한 크고 아름다운 성읍을 얻게 하시며 11 네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하시며 네가 파지 아니한 우물을 차지하게 하시며 네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차지하게 하사 네게 배불리 먹게 하실 때에”(신 6:10-11). 네가 건축하지도 않고, 네가 채우지도 않고, 네가 파지도 않고 네가 심지도 않았지만 내가 너희들을 위하여 다 예비하여 두었으니 너희는 그리로 가라는 것입니다.
과거에 주님이 에덴동산과, 가나안을 예비해 두셨다가 주신 것처럼 이제 완전하고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특별한 거처를 예비하기 위하여 가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3). 거처가 예비되면 주님이 다시 이 땅에 오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성도들을 천국으로 데려가기 위하여 주님이 친히 다시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천사들을 보내지 아니하고 부활 승천하사 하나님 보좌에 앉아계신 그분이 직접 우리를 데리려오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백성, 성도들, 구속받은 사람들, 교회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를 알 수 있는 있습니다. 주님이 교회를 이렇게 귀하게 대우하시는 것입니다. 당신께서 친히 우리를 데리러 하늘로부터 강림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때에는 모든 사람들이 그의 재림을 보게 될 것입니다. 성도들뿐만아니라 그를 찌른 자들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신자들이 다 들림을 받아 주님의 영접을 받고 주님 계신 그곳에 우리도 있게 됩니다. 주님이 우리를 단순히 우리를 데리고 가시는 것이나 단순히 안내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친히 우리를 영접해 주시겠다고 하셨고 그때부터 영원토록 주님이 계시는 그곳에서 주와 함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게 되는 것입니다’(살전 4:17).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라”(요 12:26)고 하셨습니다.
지금 우리 입장에서 주님이 먼 훗날 우리를 영접하시기 위하여 다시 오신다는 것은 우리의 참된 소망이고, 우리가 그와 더불어 영원히 함께 있게 된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약속인 것입니다. 그래서 3절의 이 말씀은 복된 소망의 말씀이자 참으로 귀한 약속의 말씀인 것입니다.
1-3절까지의 말씀은 주님이 천국을 예비하러 간다는 말씀을 주로 하셨습니다. 이것이 걱정, 근심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소망과 위로가 되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의 어떤 일로 근심 걱정이 많아도 결국 주님이 예비하신 천국에 대한 소망이 확실하다면 세상의 근심걱정을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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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절부터 6절까지는 주님이 예비하신 그 천국에 가는 길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4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하여 이런 말씀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베드로가 주님에게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요 13:36)라고 물었습니다. 주님이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요 13:36)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주여 내가 지금은 어지하여 따를 수 았나이까?’(13:37). 베드로의 이 두 질문은 혼자의 질문이 아닌 모든 이들의 궁금증이었을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이 질문에 대하여 여기에서 대답하신 것입니다.
‘너희가 내가 어디로 가는지를 몰라서 근심하는 것 같다, 나는 아버지 집으로 간다, 또한 너희가 지금은 나를 따라올 수 없다’고 말하였기 때문에 너희가 근심하는 줄 안다, 그러나 나는 너희들이 나를 따라올 수 있는 길과 거처를 마련하기 위하여 하늘나라로 간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여기서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리고 가는 그 길에 대하여 너희가 알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도마가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5)라고 말합니다. 주님이 가시는 곳은 분명합니다. 아버지의 집이요, 있을 곳이 많은 곳입니다. 그럼에도 도마는 그것을 알지 못하고 어디로 가시며 그 길을 알지 못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가시는 곳과 그 방향도 모른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아버지 집으로 가는 그 길을 명확히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6). 도마에게 그 길을 말씀해 주시면서 예수님이 아주 유명한 자기 계시를 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죄인 사이를 연결시키는 다리 역할을 하십니다. 과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이 다리를 스스로 만들거나 찾으려고 노력했으나 그러지를 못하였습니다. 과학자들도, 건축가들도, 철학자들도 사업가들도 그 길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혹시 그 길을 찾았다 해도 그 길을 올바른 길이 아니라 필경에는 죽음에 이르는 길이라고 했습니다(잠 14:12). 하나님의 보냄을 받아 하늘에서 이 땅까지 내려오신 분이 그리스도만이 그 길이 되십니다. 인간이 천국에 이르는 길이고 아버지께 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런 의미로 오늘 주님이 ‘나는 그 길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는 진리이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과 천국에 대한 계시는 주로 선지자들이 많이 하였습니다. 선지자들과 특별히 선택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이 땅의 사람들에게 알려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하나님과 천국에 대한 계시를 하셨습니다. 이것은 완전한 계시이고 궁극적인 계시입니다.
그러나 무지한 인간들은 그 완전한 계시를 잘 알지 못하고 받아들이지도 않고 관심도 갖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엡 4:18). 빌라도도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었지만 결국 진리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스도가 진리입니다. 그 진리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하리라고 하셧습니다. 예수가 진리이심으로 예수를 알아야 죄에서 자유함을 얻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주님은 ‘나는 그 진리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생명이다.’ 그리스도는 영원한 생명의 원천이시자 수여자이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11:25-26). 요한일서 5:11-12에서는 “11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또한 주님께서는 자신의 죽음으로 생명을 사신분이고 자신의 가르침으로 생명을 보여주신 분이고 자신의 성령으로 생명을 시작하시고 결국 완성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으면 인간은 허물과 죄 속에서 죽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이신 그분을 믿는 자는 생명을 가진자입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자입니다. 주님이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하고 더 풍성히 얻게하려는 것이라’(요 10:10)고 하셨습니다.
이 구절에서 두 가지를 좀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는 원문 성경에는 길, 진리, 생명이라는 말 앞에 모두 다 ‘그’라는 관사가 붙어 있어서, ‘그 길’, ‘그 진리’, ‘그 생명’을 의미합니다. 그 길은 유일한 길이요(행 4:12), 그 진리도 유일한 진리요, 그 생명도 유일한 생명 근원을 가리킵니다. 초대교회 당시의 이단이었던 영지주의자는 영혼이 자기 힘으로 하늘에 올라간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내가 그 길이요, 그 진리요, 그 생명이라고 하심으로,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는 하늘에 올라갈 자가 없다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또 다른 한 가지는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천당 가는 길을 알려 달라는 도마의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은 천당 가는 길보다 아버지께로 가는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여러분, 천당과 하나님을 비교해 보면 어느 개념이 더 큰 것입니까? 하나님 손안에 천당이 있는 것입니다. 천당도 하나님이 중심이 된 곳입니다. 주님은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천당 갈 자가 없다고 하지 않으시고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물질적인 개념의 천당보다도 인격적인 개념의 아버지가 더 중요하고 가치있고 영광스럽고 본질적이라는 것입니다. 이 아버지께 이르는 유일한 길은 곧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다른 중보자가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아버지께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결론
주님이 근심 중에 있는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인, ‘하나님과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다’는 말씀으로 위로 삼으시고 하루 하루를 주님만 꼭 붙들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집-넓은 방들이 많은 저택, 더펜트하우스 청담 126-163억 2천...
주님만이 아버지께 갈 수 있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이 자기계시를 믿는 여러분들을 통하여, 이제 길 없는 세상에서 길이 만들어지고, 진리를 표현하고, 생명이 전파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찬송/ 난 에수가 좋다오.
기도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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