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목사설교

  • 예배 · 설교 >
  • 이정현목사설교
2026 5 3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정현 목사 2026-05-03 추천 0 댓글 0 조회 5
[성경본문] 마태복음6:9 개역개정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제공: 대한성서공회

2653, 6:9,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지금까지는 사도신경에 관하여 한 부분씩 살펴보았습니다. 지금부터는 주기도문에 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주기도문은 예수님이 직접 가르쳐 주신 기도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주기도문의 중요성과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이것은 무엇을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후대의 많은 사람들이 이 주기도문에 대하여 여러 가지 말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마디의 말로 대양만한 진리를 표현 한다고 했고 주기도문에 관해 첫 번째 주석을 쓴 사람으로 알려진 터툴리안( Tertulian)은 이것은 전 복음의 요약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신학자는 주기도문을 복음의 대요이며 신학의 본체이고 생활 전반의 열쇠이다”(Packer)라고 했습니다. 칼빈은 성경에 주기도와 같은 기도도 찾아볼 수 없고 주기도를 초월하는 기도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쉘리(Shelly)라는 사람은 주기도는 기도의 극치이다라는 말로 극찬하였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니까 이것이 참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중요하고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기도문입니다. 앞으로 예수님이 친히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를 배움으로 큰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주기도문모델기도’, ‘모범기도라고 부르기도 하고 또는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 ‘제자들의 기도라고도 말합니다. 제가 1997년에 예가기도라는 책을 출판했는데 이 책이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예가기도가 뭐야라고 궁금해 했었습니다. 예가기도는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의 준말입니다. 제가 만들어 낸 용어이기는 하지만, 모델기도와 함께 사용될 수 있는 좋은 용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교회에서는 예가기도라는 말을 쓰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이 예가기도의 본문은 두 곳에 있는데 마태복음 6장과 누가복음 11장에 나옵니다. 그런데 이 두 본문은 똑같지 않고 서로 차이점이 있습니다. 첫 번째 차이점은, 마태는 제자들의 요청 없이 예수님이 스스로 그 기도를 가르치셨다고 기록하나, 누가는 제자들의 요청에 따라 그 기도를 가르치셨다고 기록합니다.

 

두번째 차이점은, 마태복음의 길이가 누가복음의 것보다 훨씬 더 깁니다. 세 번째 차이점은, 예가기도의 앞 뒤 문맥을 보면 마태복음에서는 예가기도 전 기도에 관한 교훈이 나오고 후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에서는 예가기도 전 기도에 관한 교훈이 없으나 예가기도 후 그 교훈이 있습니다.

 

이같은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주기도문을 두 번 말씀해 주신 것은 아니고 한 번 말씀하셨는데 이것을 각 기록자가 자기의 형편에 맞게 인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예가기도의 첫 번째 내용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말을 살펴봄으로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아버지라는 단어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최고특권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아무나 부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믿는 자여야만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를 수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들의 아버지에게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고 여러분이 저의 아버지에게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이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조건만 갖추면 제가 여러분들의 아버지에게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여러분의 아버지가 저를 양자로 받아 주시면 됩니다. 그러면 저도 여러분과 똑같이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아무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고 반드시 예수를 믿고 양자의 영이신 성령을 받아야, 그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4:6).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8:15).

 

그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예수 믿고 성령 받은 사람만이 외칠 수 있는 호칭입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안 됩니다. 그래서 서두에 이것은 신자들만의 기도라고 한 것입니다신자들만이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그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갈 수 있습니다. 신자들만이 성찬의 떡을 떼며, 잔을 나누며 이 기도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것은 우리가 구해야 할 대상은 하나님 한 분뿐이시라는 것이고 그리고 모든 은혜와 복은 아버지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로 구약에서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주는 우리 아버지시라 아브라함은 우리를 모르고 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하지 아니할지라도 여호와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라 옛날부터 주의 이름을 우리의 구속자라 하셨거늘”(63:16). 주는 우리 아버지시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이 호칭을 여러 번 사용하셨고 또 그렇게 하라고 가르쳐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아버지를 부르며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주여, 주여를 부르며 외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개인 기도를 할 때 특히 기도회를 할 때 주여, 3창하고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주여, 주여라고 합니다. 기도할 때 주님을 많이 부르는 게 좋습니다. 그러나 위선적으로, 입에 바른 소리로 부르거나 불법을 행하는 중에 주여, 주여한다면 이것은 예수님의 책망을 들을 일입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7:22-23).

 

주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은 주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여, 주여보다, ‘아버지, 아버지를 더 많이 불러야 한다고 봅니다. ‘주인이여, 주인이여이것보다는 아버지, 아버지가 더 정감이 가고 더 가까운 것 같고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종으로서 하나님을 부르는 것보다 아들로서 아버지를 부르는 것이 더 좋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많이 사용하셨고 또 가르쳐 주셨고 성령이 오셔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게 해 주셨으므로 앞으로는 기도할 때 아버지를 많이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어느 교회에 집회를 갔는데 그 교회의 목사님이 합심 기도를 인도하시는데 다같이 아버지라고 부르며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끝나고 나서 왜 주여라고 하지 않고 아버지라고 불렀냐고 물었습니다. “이정현 교수님께 배우고 나서부터는 아버지가 좋은 것 같아서 기도할 때마다 아버지라고 부르며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제자가 목사가 되어서 배운 바대로 실천하고 있는 것을 보니까 참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제가 대학의 부총장으로 있으면서 총장으로 모셨던 차영배 박사님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조직신학자이십니다. 이분이 교회를 섬길 때에 1년에 한두 차례 세례 문답을 했는데 그때마다 참 고민스러웠답니다. “예수를 주로 믿느냐?”고 물으면, ‘아멘이라고 대답은 하는데, 무엇인가 모르게 부족해 보이더랍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 사람이 정말 예수를 믿는 사람일까를 알아내는 방법을 생각했답니다. 그 목사님이 찾아낸 방법은 세례 문답을 다하고 난 이후에 기도를 시켜 보았답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쓰면 아직 더 교육을 받아야 할 사람이고 아버지라고 하는 사람은 합격을 시켜 세례를 주었답니다. 아직 구원 받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이라는 말은 하는데, ‘아버지라는 말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드릴 때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기도의 대상을 명확히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의 대상은 그 어떤 피조물이 아닙니다. 돌이나 나무나 사람이 깎아 만든 부처가 아닙니다. 하늘의 일월성신도 아닙니다. 성모도 아닙니다. 하늘의 성자들도 아닙니다. 그 어떤 인간도 아닙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기도의 대상은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내 아버지이십니다. 나를 낳으시고 기르시고 구원하시고 인도하시고 함께하시고 위로하시고 도우시는 나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먼저 그 아버지를 부르는 것입니다. 기도를 아버지라고 부르며 시작하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에게 슬픈 일, 막막한 일, 괴로운 일, 억울한 일, 안 되는 일, 깨지기 일보 직전의 일이 있습니까? 사방이 막혔습니까?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세요. 종으로서 주여가 아니라 자녀로서 아버지라고 부르세요. 많이 많이 부르세요. 자녀들의 간청을 외면하는 부모가 없듯이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간청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아버지가 계시는데도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르지 못하는 사람은 큰 문제가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것은 엄청난 특권이고 축복이고 영광입니다.

 

2. ‘하늘에 계신의 의미입니다.

아버지는 아버지인데, 어디 계신 분이십니까? 하늘에 계신 분이라는 얘기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하나님은 영이시며 어디든지 다 계시는 분으로 믿고 있습니다. 안 계신 곳이 없이 어디든지 다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늘에도, 땅에도, 땅 아래에도 계시는 분이라고 해서 그 하나님을 무소 부재하신 분이라고 합니다.

 

여기 하늘이라는 단어가 원문에는 복수로 쓰였습니다. 하늘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개라는 말인데, 이는 유대인들 개념으로 하늘을 복수로 쓴 것입니다. 그들은 하늘을 1층천 2층천 3층천으로 나눈 것 같습니다. 요샛말로 쉽게 말하면, 새가 날고 구름이 떠 있고 비행기가 날아다니는 ‘sky’가 있고, 해 달 별들이 있는 광활한 우주인 ‘space’가 있고, 그 위에 창조주 하나님이 계시는 ‘heaven’이 있습니다. 이곳이 3층천 천국입니다. 하나님의 왕국입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이 영광스러운 보좌를 펼치시고 온 세상과 우주 만물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

이처럼 예수님이, 우리 아버지가 하늘에 계시다고 하신 것은, sky도 계시고 space도 계시고 heaven에도 계시는, 어디에도 다 계시는 무소 부재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뿐만아니라 그 하나님은 인간을 초월하여 계시고 또한 우리 안에 내재하여 계시는 분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런 의미를 담아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며 기도할 것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디든지 다 계시지만 당신의 보좌는 3층천 천국에 있는 줄 믿습니다. 이곳을 갔다 오신 분이 있어요. 바로 바울 사도입니다. 사도 바울이 셋째 하늘을 다녀오고 나서, 그곳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휘황찬란하고 아름답고 거룩한지 인간의 언어로 표현을 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3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4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고후 12:2-4). 셋째 하늘, 낙원에 다녀왔는데 인간의 말로는 표현할 수 없다고 한 것입니다.

€€€

이 땅에 있는 우리는, 그 하늘나라 보좌에 앉아 계신 아버지에게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그렇게 먼 하늘에 계시다면 우리의 기도가 어떻게 그 하나님께 상달될 수 있습니까?’ 너무 멀어서 우리의 기도가 안들릴 것 같지만 아닙니다. 성령으로 우리와 친히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저 너머에만 계시는 분이 아니라, 이곳에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이십니다. 마치 야곱의 꿈에 사닥다리를 놓으시고 이 땅과 하늘이 연결이 되어 그 사다리를 타고 하늘의 천사가 오르락 내리락 하듯, 하늘은 분명히 땅 너머에 있지만 내가 사는 이 세상은 바로 하늘과 닿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부르면서 이 땅을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성도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땅에서 부르는 자들입니다. 그럴 때 내 마음에 계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보좌를 펼치고 계시지만 동시에 지금 우리와 같이 계시면서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3. ‘우리라는 말입니다.

 

왜 여기서 나의 아버지라고 하지 않으시고 우리라는 단어를 썼습니까? ‘우리라는 말은 1인칭 복수입니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에게 있어서 우리라는 말은 사실 단수 명사로 사용이 됩니다.

 

미국 사람들은 을 가리켜, ‘저것은 내 집이라고 학교를 가리켜, ‘내 학교라고 또는 아버지를 가리켜 내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영어로 말하면,€‘my house, my school, my dad’라고 합니다. 그래서 미국의 아이들은 내 집에 가면, 내 아빠가 있어, 내 학교는 좋아라는 식으로 표현을 합니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의 언어 습관은 다릅니다. 한국인들은 나보다 우리라는 말을 더 선호하는 언어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인은 우리 학교, 우리 아빠, 우리 집이라는 말을 잘 씁니다. ‘우리 집에 가면 우리 아빠가 있어, 우리학교 좋지?’라는 식입니다.

 

하지만, 미국 아이들의 말이나 한국 아이들의 말이 틀린 것이 아니고 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말하는 우리는 정말 많은 사람들의 아버지를 뜻합니다. 나의 아버지는 곧 우리 아버지이고 모든 교회의 아버지이시며 교회 공동체 전체의 아버지이십니다. 나는 그 공동체의 한 사람으로서 기도하지만 나의 아버지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아버지를 부르면서 기도하는 존재라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그래서 기도는 공동체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임과 동시에 우리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내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를 수 있다면 그 즉시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우리 아버지로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우리의 아버지께 우리 중의 하나인 내가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 속에는 약간의 선교적인 의미도 들어있다고 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내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게 되었듯이 불신자들도 예수를 구주로 믿고 그들도 우리와 같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불렀으면 좋겠다는 의도가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안 믿는 부모들도 하나님 앞에 나와서 다같이 우리 아버지로 부르며, 그 아버지께 기도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안 믿는 형제자매들이 예수를 믿고 교회에 나와서 다같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며 찬양하며 경배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지금 아프리카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처참한 환경 속에서 죽어 가는데 그들도 예수 믿고 성령 받아서 우리와 같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지금 아시아의 수많은 사람들이 각종 우상과 샤머니즘, 정령숭배에 빠져서 죄악 가운데 살아가는데 그들도 예수를 구주로 믿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부르짖으며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전쟁으로 인하여 수 천명의 사상자가 난, 이란과 우크라이나 레바논의 사람들과, 종교의 자유가 없이 억압과 착취와 가난 속에 허덕이는 북한 사람들, 무지한 타종교인들도 예수를 알고 하나님을 가리켜 마음껏 아바 아버지여라고 부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결론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실 때 제일 먼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할 때 주여 주여라고 부르는 것도 가능하지만 그것보다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그렇게 하라고 가르쳐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에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로 부릅시다. 내가 사는 세상 너머 하늘나라에 계신 아버지이시지만 동시에 우리 곁에,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의 간구에 언제나 귀 기울려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부릅시다. 나 하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온 세상 모든 사람의 아버지, 바로 우리의 아버지이신 그 하나님을 부르며 기도합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 기도는 아버지를 향한 자녀의 부름입니다. 이런 놀라운 특권과 은혜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기도를 많이 하시는 어느 목사님의 사모님이 계셨습니다. 이 분은 앉았다하면 보통 2-3시간입니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밥 때인 줄도 모르고 기도하실 때도 있습니다. 저를 위해서도 많이 기도해 주시는 사모님이십니다. 노량진에 살고 계셨었는데 이 분은 기도를 했다하면 마루바닥에 주저 앉아서 땅바닥을 치면서 눈물과 콧물을 흘리면서 기도를 하는데 옆에서 조용히 들어보면 기도의 내용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기도를 하는데도 무슨 내용으로 하는지를 모릅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아바지만 찾기 때문입니다. 몇 시간 동안, ‘아바지, 아바지이북 분이라서 아버지를 아바지라고 부릅니다. 하도 이상해서 하루는 제가 여쭤보았습니다. “사모님, 사모님은 왜 기도할 때 아버지만 찾습니까?” “이 선생, 이 선생은 몰라서 그래, 아바지라는 말 속에 내 모든 소원이 다 들어있어.” 내 모든 기도 제목이 이 아버지라는 단어 속에 다 포함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모님은 아버지, 아버지를 그렇게 애절하게 불렀던 것입니다.

 

우리도 감사하면서 그 아버지를 간절히, 부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송/ 아바 아버지

기도 제목/ 날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부르며,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게 하옵소서.

 

자유게시판 목록
구분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다음글 2026 4 26 <나는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운영자 2026.04.28 0 58

15010 경기 시흥시 배곧4로 42 (정왕동, 소망교회) 소망교회 TEL : 031-431-4817 지도보기

Copyright © 소망교회. All Rights reserved. MADE BY ONMAM.COM

  • Today0
  • Total412,287
  • rss
  • 모바일웹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