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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05 02 엘리 집안의 붕괴 이정현 목사 2021-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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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사무엘상2:27-36절 개역개정

27.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에게 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 조상의 집이 애굽에서 바로의 집에 속하였을 때에 내가 그들

28.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내가 그를 택하여 내 제사장으로 삼아 그가 내 제단에 올라 분향하며 내 앞에서 에봇을 입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이스라엘 자손이 드리는 모든 화제를 내가 네 조상의 집에 주지 아니하였느냐

29.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내 처소에서 명령한 내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이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너희들을 살지게 하느냐

30.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원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31. 보라 내가 네 팔과 네 조상의 집 팔을 끊어 네 집에 노인이 하나도 없게 하는 날이 이를지라

32. 이스라엘에게 모든 복을 내리는 중에 너는 내 처소의 환난을 볼 것이요 네 집에 영원토록 노인이 없을 것이며

33. 내 제단에서 내가 끊어 버리지 아니할 네 사람이 네 눈을 쇠잔하게 하고 네 마음을 슬프게 할 것이요 네 집에서 출산되는 모든 자가 젊어서 죽으리라

34. 네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 날에 죽으리니 그 둘이 당할 그 일이 네게 표징이 되리라

35. 내가 나를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리니 그 사람은 내 마음, 내 뜻대로 행할 것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리니 그가 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영구히 행하리라

36. 그리고 네 집에 남은 사람이 각기 와서 은 한 조각과 떡 한 덩이를 위하여 그에게 엎드려 이르되 청하노니 내게 제사장의 직분 하나를 맡겨 내게 떡 조각을 먹게 하소서 하리라 하셨다 하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삼상 2:27-36, 엘리 집안의 붕괴(20210502)

 

사무엘상 1장은 아이가 없었던 한나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아이 사무엘을 얻게 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무엘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나의 몸에서 아이가 태어나게 되었을 때, 한나가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과 감사를 드리는 장면이, 사무엘상 2장 전반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마디로 나에게 아들을 주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신앙 고백적으로 찬송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사무엘상 2장 후반부는, 사사시대의 마지막 때 제사장 역할을 했던, 엘리 집안에 대한 예언의 말씀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사무엘상 1장과 2장 전반부의 말씀이 배경이 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사무엘의 탄생과, 엘리 집안에 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이런 내용과 깊이 연관되어 있는 것이, 본문의 말씀입니다.

 

5월의 주제는 가정회복입니다. 5주 동안 이 주제에 대한 말씀을 듣게 될 것인데, 오늘은 엘리 집안의 붕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릴 때, 큰 은혜의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먼저 하나님의 사람을 통하여, 그동안 엘리 집안에 베풀어주셨던 은혜와 복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다시말해 그동안 내가 너와 네 집안에, 어떤 은혜를 베풀어주었는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27절에서는 하나님이, 너희 조상들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전달합니다. “너희 조상의 집이 애굽에서 바로의 집에 속하였을 때에 내가 그들에게 나타나지 아니하였느냐”(1). 이 말은 이스라엘이 애굽 바로의 집에서 종노릇 할 때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해방과 구원의 복을 베풀어주셨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엘리에게, 내가 너의 조상들에게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 주셨고, 그 덕분에 지금 너희들이, 가나안 땅에 살고 있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엘리의 조상들에게 구원의 은총을 주신 하나님이, 이제 엘리 집안에는 어떤 은혜를 주십니까? ‘이스라엘의 여러 지파들 가운데서, 내가 너를 택하여 제사장으로 삼아서, 나를 가까이서 섬기게 하였고, 이스라엘 자손이 드리는 모든 화제를, 내가 너의 집에 주었다고 하셨습니다. 요약해서 말하면, 내가 너를 제사장 집안으로 선택하였고, 너에게 먹고 입고 마실 것을 풍성히 주었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가장 큰 복은, 하나님을 가까이서 섬기는 일입니다. 그게 바로 제사장과 선지자의 일인데, 여기 엘리 집안을 하나님이 제사장 가문으로 삼으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서 섬기며, 경배하는 자리에 서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단에 오르고, 분향하고, 에봇을 입고 하나님을 섬길 때에, 그들이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이 풍성히 공급하여 주셨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 엘리 가문의 영광이요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28절 끝 동사가 주지 아니하였느냐라는 말인데, 이 말은 나는 너희에게 다 주었다는 말입니다. 그러시면서 이제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 집안이 붕괴될 것을 예언하시는 것입니다.

 

먼저 본문을 통하여, 엘리 집안에 내린 저주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은 복과 저주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말씀하시기 전에, 복과 저주의 기준이 무엇인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달리 말하면 어떤 사람이 복을 받고, 어떤 사람이 저주를 받는가, 그 기준과 원리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30절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원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내가 전에 너희와 약속한 것은,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25:13)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너희들이 그 언약을 어겼음으로,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원리원칙대로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특히 나를 가볍게 여기고 하찮게 여기는 자를, 나도 그를 가볍고 하찮게 여기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곧 복과 저주의 기준이며 원리인 것입니다. 이 기준을 말씀하시고, 이어서 엘리 집안에 대한 저주를 예언한 것입니다.

첫째로, 네 집에 노인이 하나도 없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앞으로 네 집안의 후손들 중에 어른이 없을 것이다, 오래오래 사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참으로 슬프고 참담한 예언입니다. 31절에, “보라 내가 네 팔과 네 조상의 집 팔을 끊어 네 집에 노인이 하나도 없게 하는 날이 이를지라.” 앞으로 네 집에 노인이 하나도 없는 날이 오는데, 어떻게 그런 날이 올까요? 하나님은 내가 네 팔과 네 조상의 집 팔을 끊음으로, 이런 날이 오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팔을 끊는다는 말은 후손을 끊겠다는 말이고, 노인은 나이 많은 어른을 가리키는 말임과 동시에, 권위자를 일컫는 말입니다.

이것뿐만아니라 계속 반복하여, 32절에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에게 모든 복을 내리는 중에 너는 내 처소의 환난을 볼 것이요 네 집에 영원토록 노인이 없을 것이며”(32). 네 집에 영원토록 노인이 없을 것을 말씀하셨는데, 그 이전에 너의 가문은 처소의 환란을 볼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처소의 환란은 이스라엘은 번영하여도, 엘리의 집은 비극적인 저주를 받아 번영하지 못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33절에서는, 여기에 가중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 제단에서 내가 끊어 버리지 아니할 네 사람이 네 눈을 쇠잔하게 하고 네 마음을 슬프게 할 것이요 네 집에서 출산 되는 모든 자가 젊어서 죽으리라”(33). 네 후손이 쇠잔하고 슬픔을 당하고, 결국 젊어서 죽게 될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이처럼 세 구절을 통하여 반복 강조하며, 엘리 집안은, 앞으로 노인이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둘째로, 엘리의 두 아들이 한 날에 죽게 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이것도 첫 번째 예언과 방불한 비참하고 슬픈 예언입니다. 34절의 말씀입니다. “네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 날에 죽으리니 그 둘이 당할 그 일이 네게 표징이 되리라”(34). 엘리가 제사장이었기 때문에 그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하나님을 가까이서 예배하는 제사장들이었습니다. 이 세 사람은 사실, 이스라엘의 영적 생활을 지도하고 주도해 나갔던 사람들이고, 이 민족의 영적 상태를 가늠할 수 있는, 대표적이고 상징적인 인물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두 아들이 한 전쟁터에서 같이 죽게 되고, 이 소식을 들은 엘리도 의자에 앉았다가 뒤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결국 두 아들과 함께 아버지가 같이 죽은 것입니다. 이 들 세 명의 동시적 죽음은, 단순한 육체적 죽음만을 의미하는 것이아니라, 영적인 심각한 암흑기의 절정에 빠졌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사시대 중에도 더 비극적이고 암울한 세계 속으로 들어갔다는 상징적인 의미일 것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비느하스의 아내가, 아이를 낳다가 아이의 이름을 이가봇, 곧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고 외치며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엘리 집안에서 떠났다, 이 가문에서 떠났다는 의미입니다, 엘리 집안의 가족이, 한꺼번에 네 명이나 비참하게 죽은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여러 사람의 이 죽음, 특히 홉니와 비느하스의 죽음을 가리켜, ‘이 일이 네게 표징이 되리라고 하셨는데, 이는 아들 둘이 죽는 것부터 시작해서 망하기 시작한다라는 뜻입니다. 아들들이 죽는 것을 보면, 그때부터 내 말이 이루어지는 것을 본다는 것입니다.

3. 엘리 집안에 대한 저주의 예언이 본문에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지만, 사무엘상 3장에 가면 한 가지 더 나타납니다. 그것은 엘리 집안의 죄를 사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3:14). 첫 번째 저주의 말씀이 네 집안 노인이 없을 것이라는 것이고, 두 번째가 엘리의 두 아들이 한 날에 죽게 된다는 것이고, 이제 세 번째는 하나님이 엘리 집안의 죄를 속하지 않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어쩌면 이 사항은 앞의 두 개의 저주보다, 더 비참하고 참혹하고 영원한 저주의 말씀으로 보여집니다. “그러므로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맹세하기를 엘리집의 죄악은 제물로나 예물로나 영원히 속죄함을 받지 못하리라 하였노라 하셨더라”(삼상 3:14). 여기의 제물과 예물은 희생제와 소제를 말하는 것으로, 이 제사를 드림으로 죄 용서를 받게 되는데, 오히려 엘리 집안의 제사장들은 이것으로 죄를 범하였음으로, 이것으로 인하여 너희들의 죄 용서의 방편이 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맹세를 통하여, 엘리 집안의 심판은 어떤 방법으로도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람이 죽는 것은, 젊어서 죽거나 늙어서 죽거나 죽는 것은 정해진 것인데, 그것보다 더 뼈 아픈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죄 용서를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속죄를 받지 못한다는 것은, 영원한 죽음에 떨어진다, 영원한 불 못에서 마귀와 함께, 고통과 괴로움을 영원토록 당하여야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이같은 저주와 무서운 심판의 말씀이, 엘리 집안에 임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같은 말씀이(예언이), 실제로 역사적으로 엘리 집안에 그대로 이루어 졌을까요? ‘네 집안에 노인이 없어지리라는 예언은, 이후의 제사장의 계보를 다져보면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그 제사장의 족보에 세월이 지남에 따라서, 엘리 가문은 아예 점점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솔로몬 시대에는 엘리 제사장의 후손들이, 없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엘리가, 가문에 대한 예언을 받은 날로부터, 120년 이후에는 그 가문이 사라졌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제사장 직분이 이어지지 못하고 가문이 붕괴하니, 당연히 노인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아들이 한 날에 죽으리라는 예언은, 사무엘상 4:11에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두 아들이 법궤를 가지고 블레셋과 전쟁을 하러 나갔다가, 법궤도 빼앗기고, 그 전장에서 같이 죽고 맙니다. 그리고 엘리와 비느하스의 부인도 죽고, 나머지 그의 후손들은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에 의해서 학살을 당합니다.

 

당시 사울 왕은, 아히둡의 아들 제사장들과, 그 집안의 모든 제사장들 85명을 불러 놓고, 너희들이 다윗을 도와서 나를 치러했다는 죄를 뒤집어 씌어서, 그들을 새마포 옷을 입힌 채로 칼로 쳐서 죽이게 됩니다. 이때 사울의 칼에, 엘리 가문의 남은 제사장들이 학살을 당한 것입니다(삼상 22:11-23).

 

그 학살의 현장을 벗어난 사람이 아비아달인데, 그가 다윗에게 피하여 생명을 부지하게 되고, 후에 다윗에 의해서 제사장이 됩니다. 하지만 그 역시 솔로몬 시대 때 아도니야의 왕위 계승 사건에 휩싸여서, 솔로몬에 의해 결국 제사장 직분을 잃고 말았습니다. 솔로몬이 아비아달의 직분을 파면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26 왕이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네 고향 아나돗으로 가라 너는 마땅히 죽을 자이로되 네가 내 아버지 다윗 앞에서 주 여호와의 궤를 메었고 또 내 아버지가 모든 환난을 받을 때에 너도 환난을 받았은즉 내가 오늘 너를 죽이지 아니하노라 하고 27 아비아달을 쫓아내어 여호와의 제사장 직분을 파면하니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엘리의 집에 대하여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함이더라”(왕상 2:26-27).

 

그들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심으로, 결국 하나님은 예언을 하신대로 실행하시는 분이심을 알게됩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예언을 그대로 성취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엘리 집안이, 왜 이렇게 무서운 저주를 대대로 받아야 합니까? 원인과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경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첫째로, 홉니와 비느하스가 콘 죄악을 지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죄악을 성경은 낱낱이 열거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상 2:12/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고 했습니다. 행실이 나쁜 것도 문제이지만, 더 안 좋은 것은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알지 못하면 결국, 행실이 나쁘게 되어 있습니다.

둘째는, 사무엘상 2:13-16/ 제사를 드리면서, 좋은 고기를 갈고리로 찍어 빼 돌려서, 자기가 먹었다고 했습니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리려고 제물을 가져오면, 자기가 그것을 가로채서 먼저 먹었다는 얘기입니다. 그들의 이같은 행위를 보고,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삼상 2:17). 본문에서도 하나님은 너희가 어찌하여 내가 내 처소에서 명령한 내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 내 백성 이스라엘이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너희들을 살지게 하느냐”(29)라고 책망하셨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이스라엘 민족의 제사를 주관하는 제사장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했던 것입니다.

 

셋째로, 삼상 2:22/ “엘리가 매우 늙었더니 그의 아들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행한 모든 일과 회막 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과 동침하였음을 듣고.” 엘리의 두 아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햇을 뿐만아니라,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했고, 더 나아가서 수종 드는 여인들과 동침하는 죄를 범하였다고 했습니다. 도덕적으로 타락한 사람을 살았습니다.

 

이처럼 성경은 홉니와 비느하스의 죄를, 세 가지로 명확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제사장이었으므로 에봇을 입고, 제사장의 모자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겉모습으로만 보아서는 거룩한 것처럼 보였고, 하나님의 종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고, 제사를 멸시했고, 여인과 동침하는 악을 행하였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이들은 하나님을 존중하지 않았고, 오히려 하나님을 경멸하였던 것입니다.

 

둘째로, 아비가 아들에게 철저히 교육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들들이 끔찍하고 심각한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께 죄를 짓고 이웃에게도 죄를 지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그 아들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정치적으로 종교적 도덕적으로 심각한 죄악 속에 빠져 있는 아들을 보면서도, 그 아버지 엘리는 어떻게 합니까?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무엘상 2:23-25절입니다. “23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이 모든 백성에게서 듣노라 24 내 아들들아 그리하지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죄하게 하는도다 25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만일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그를 위하여 간구하겠느냐 하되 그들이 자기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더라.”

 

이제 아이들의 죄가 공공연히 들어났습니다. 그들의 악행에 대한 이야기가 사방으로 퍼졌습니다. 그 아들들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죄를 짓는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사람에게뿐만아니라 이제는 하나님께 심각하게 범죄하는 일도 일어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엘리는 단호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내 아들아 소문이 안 좋으니 그러지 말아라.’ 이 정도였고, 그같은 아비의 권고를 아들들은 듣지도 않았다고 말합니다. 마치 롯의 말을 사위들이 농담으로 들음으로 유황불에 다 멸망을 당한 것처럼, 이들도 똑같이 죽고 말 것입니다.

 

엘리는 아들에게 단호하게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지를 못하였습니다. 죄를 책망하고 회개하라고 도전하고, 같이 울며, 재 가운데 앉아서 통곡하며 회개하였어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하였습니다. 아들들에게 소극적인 권면은 했으나, 회초리를 드는 적극적인 교육은 하지 못하였습니다. 성경은 자식들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교육을 권하고 있습니다.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13:24).

 

결국 자식을 좀 더 철저하게, 적극적으로, 매로 다스리지 못함으로, 그 집안은 멸망의 길로 가고 말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어떤 교훈을 마음에 새겨야 하겠습니까? 엘리 집안의 붕괴를 보면서 어떤 교훈을 받아야 하겠습니까?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시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우리 가정에, 우리 교회에 주시는, 삶의 기준이 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면 내가 너를 존중히 여기고, 반대로 나를 멸시하면 나도 너를 경멸하리라.’ 이 말씀은 엘리와 그의 가문에게 있어서도, 기준의 말씀이 되어서 그대로 되었던 것처럼, 우리와 우리의 가정에도 그대로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홉니와 비느하스처럼 하나님을 경멸하며 살아가시렵니까? 아니면 그 뒤에 일어난 충실한 선지자’(삼상 2:35) 사무엘, 사독, 그리고 멜기세댁의 반차를 좇아오신 그리스도처럼, 매사에 하나님을 존중하며 사시렵니까?

 

오늘 내가 홉니와 비느하스처럼 하나님을 멸시하면, 멸시한대로 우리도 멸시를 받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 가정이 엘리의 가정처럼 하나님을 하찮게 여기면, 하찮게 여긴대로 우리도 하찮게 여김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나와 우리 가정이 사무엘과 그리스도처럼, 매사에 하나님을 존중하면, 존중한대로 우리도 존귀하게 여김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와 우리 가정이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하나님을 최고로 대접해 드리면, 그것대로 하나님이 우리의 이름과 명예를 높여주시고, 많은 사람 가운데서 우리를 최고로 대접해 주시는 것입니다. 잠언 4:8,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입을 것이라고 하셨고(8:17),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풀어주신다’(20:6)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높이고 품고, 주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면, 주님이 우리를 높여주시고 영화롭게 해 주시고, 사랑해 주시고, 천대까지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세우신 기준대로, 말씀대로 행하십니다.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항상 이 기준을 따라 행하십니다. 그 말씀대로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뜻대로 그 계획대로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역사는(History) 그분의 역사(His Story)가 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은 심판의 말씀도 그대로 행하시고, 희망의 말씀도 그대로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말씀의 기준대로 행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주는 또 다른 한 가지 교훈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녀들의 교육 문제입니다. 본문은 우리에게 자녀들을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지를, 엘리를 통하여 반면교사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엘리처럼 자녀들이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악을 행하고, 하나님의 것을 갈취하며 자기 욕심만 채우고, 예배를 멸시하고 아비의 말을 듣지 않고 제 마음대로 살아도 그대로 둬야 합니까? 하나님을 멸시하며 살아도, 언젠가는 돌아오겠지라고 생각하며 방치 해야 하는 것입니까?

 

엘리처럼 대충 교육하고 말 것입니까? 권면하여 들으면 다행이고, 안 들으면 어쩔 수 없다고 방관하시겠습니까? ‘얘야 그러면 안 된다이 정도로 하고 마시렵니까? 그렇게 두다간 그들이 어떻게 될지를 뻔히 알면서도, 소극적으로 권면하고 말 것입니까?

 

엘리와같이 교육하다간 자식 농사는 망치는 것입니다. 아들과 함께 둘 다 망할 수 있고, 더 나아가서 가족 전체가 풍비박산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간절히 바라기는 우리와 가정이, 주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주의 교양과 훈계로 아이들을 양육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우리의 신앙이 회복되고, 우리의 가정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멋진 가정으로 회복될 수 있습니다.

 

 

 

찬송/

 

기도 제목/ 주님을 존중히 여기며, 살게 해 주시옵소서.

자녀들을 주의 교양과 훈계로, 철저히 교육하는 부모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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