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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 1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이정현 목사 2023-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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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호세아1:1-11절 개역개정

1.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이어 유다 왕이 된 시대 곧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에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2. 여호와께서 처음 호세아에게 말씀하실 때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

3. 이에 그가 가서 디블라임의 딸 고멜을 맞이하였더니 고멜이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4.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이스르엘이라 하라 조금 후에 내가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며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폐할 것임이니라

5. 그 날에 내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의 활을 꺾으리라 하시니라

6. 고멜이 또 임신하여 딸을 낳으매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루하마라 하라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겨서 용서하지 않을 것임이니라

7. 그러나 내가 유다 족속을 긍휼히 여겨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 구원하겠고 활과 칼이나 전쟁이나 말과 마병으로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8. 고멜이 로루하마를 젖뗀 후에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암미라 하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

10.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11. 이에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우두머리를 세우고 그 땅에서부터 올라오리니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임이로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성경본문] 호세아2:1절 개역개정

1. 너희 형제에게는 암미라 하고 너희 자매에게는 루하마라 하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311, 1:1-2:1,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2023년 첫날 첫 주일입니다. 한 해 동안 여러분 개인과 가정과 사업터 위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복이 넘쳐나기를 기원합니다. 아울러 여러분의 영육이 강건하기를 소원합니다.

 

2023년 교회의 표어를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라로 정하였고, 거기에 따라서 1월의 주제는 사랑으로 정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고귀한 성품 중의 하나가 사랑인데, 이 사랑에 관하여 1달 동안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호세아서를 통하여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살펴봄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구약 성경 소선지서 12권 가운데, 제일 첫 번째 책이 호세아서입니다. 이 책의 기록자는 호세아 선지자인데, 그는 북 이스라엘이 멸망하기 30년 전부터,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 나라에 의해서 멸망하기 직전까지 활동했던 선지자입니다.

 

본문 1절을 보면 그가 어느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는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이어 유다 왕이 된 시대 곧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에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이 말씀을 받았던 때의 유다 왕은 누구이며 북이스라엘 왕은 누구였는가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4). 물론 북 왕국의 왕이 한 명만 기록되어 있지만, 남 왕국의 왕들이 통치했던 시기에 맞추어 보면, 실제로는 7명의 왕들이 통치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 왕들의 이름과 함께 호세아의 아버지 이름도 적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며는, 하나님께서 호세아에게 말씀하신 것은,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을 입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허무맹랑한 것이 아니고, 허공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것이 아니며, 한 역사의 시점에 사실로 있었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역사 선상에서 하나님이 호세아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2절에, 하나님이 처음으로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참으로 황당한 얘기를 하셨습니다. “너는 음란한 아내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여기서 음란하다는 말은 단순히 마음이 음탕하다는 뜻이 아니라, 음란의 행위가 계속되었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는 창녀였다는 증거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보고 창녀를 취하여 결혼을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에게 하실 말씀은 아니고, 더더구나 선지자에게 음란한 여자를 취하여 음란한 자식을 낳으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봅니다. 하나님은 부정한 여인을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그 부정함이 자식들에게까지 이어지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그런데 호세아 선지자에게는 이런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구약성경 레위기 21장의 말씀을 보면, 레위인들이 결혼을 할 때,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 성경에 보면, “그는 처녀를 데려다가 아내를 삼을지니 과부나 이혼 당한 여자나 창녀 짓을 하는 더러운 여인을 취하지 말고 자기 백성 중에서 처녀를 취하여 아내를 삼으라”(21:13-14)고 되어 있습니다. 비록 호세아가 레위지파는 아니라할지라도, 적어도 선지자이기 때문에, 결혼 자격이나 기준이 기본적으로 이 정도의 도덕적 수준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음란한 아내를 취하여 음란한 자식을 낳으라는 말씀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를 않습니다.

 

이것은 도덕적 기준으로 보나, 개인적인 입장에서 보나, 사회적인 측면과 성경적으로 보더라도 용납할 수 없는 말씀이었습니다. 행복한 가정에 대해서는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같은 말씀과 아울러 하나님이,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한 가정 얘기를 하시면서, 뒤에서는 그 나라를 얘기하고 계십니다. 이 나라가 행음했다고 지적하시는데, 이는 단순히 선지자 개인에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이것을 이스라엘 전체에게 말씀하고 계시다는 것이며, 한 가정을 통하여, 이 나라를 향하여 가지고 계신, 하나님의 의도와 계획을 엿볼 수 있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호세아의 결혼을 통하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이스라엘이 누구인지를 알게 함으로써 이스라엘이 보지 못한 것을 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여기의 행음이라는 단어는 보통은 남여간의 불륜을 말하지만,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언약관계에서는 영적 간음, 하나님을 저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행위를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이 나라 즉, 북 이스라엘이 영적으로 크게 간음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로 하여금 음란한 아내를 취하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내인 이스라엘이 음부가 되었음을 보여주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이를 우리는 행위 계시라고 합니다. 이 행위 즉, 선지자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메시지를 백성들에게 전달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이상한 명령을 받고 항변하지 않고 그대로 순종합니다. 그래서 고멜이라는 여인을 취하고 그를 통하여 이스르엘이라는 첫 아들을 낳습니다. 3절부터 5절의 말씀입니다. “3 이에 그가 가서 디블라임의 딸 고멜을 맞이하였더니 고멜이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4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이스르엘이라 하라 조금 후에 내가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며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폐할 것임이니라 5 그 날에 내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의 활을 꺾으리라 하시니라.”

 

선지자가 취한 여인은 가상의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분명히 그녀도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인물이었는데, 디블라임의 딸이라고 했고 결혼하여 아들, 딸을 낳았음을 보아 알 수 있습니다. 호세아와 고멜 사이에서 첫 번째로 태어나는 아들은 이스르엘인데 그 이름이 이스라엘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그 뜻은 정 반대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더불어 승리한자라는 축복된 이름이지만, 이스르엘은 하나님이 흩으신다라는 심판적인 이름입니다.

 

이스르엘은 이제 그들의 죄악을 하나님이 심판하시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아들이 태어남으로 인하여, 이 아들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경고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 아들이 가는 곳곳마다 그 땅의 백성들에게 걸어 다니는 메시지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흩으신다. 하나님이 이 백성을 뿔뿔이 흩어버리신다. 이 나라의 죄악을 심판하사 이 민족을 사방으로 흩어버리시겠다는 하나님의 경고의 메시지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 자기 자식이 태어났을 때, 이런 이름을 짓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 예쁜 이름, 의미 있는 이름, 복된 이름, 이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좋은 이름을 지을 것입니다. 그러나 호세아는 하나님이 지어 주시는 이름을 그대로 붙여서 아들 이름을 불렀습니다. 장남은 이스르엘입니다.

 

이스르엘의 출생과 더불어 나오는 말씀이, “조금 후에 내가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며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폐할 것임이니라. 그 날에 내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의 활을 꺾으리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결국 예후를 비롯한 이스라엘 전체를 심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의도였던 것입니다. 그 이름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방 팔방으로 흩어버리겠다는 것입니다.

이스르엘에 이어서 고멜은, 둘째로 딸을 낳습니다. 하나님이 그 이름을 로루하마라고 지어 주십니다. 그런데 성경을 주의하여 보면, 로루하마가 호세아의 딸이라는 기록이 없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분명히 호세아와 고멜 사이에서 태어나는 아들인데, 둘째 딸은 그런 표현이 없다는 것입니다.

 

“6 고멜이 또 임신하여 딸을 낳으매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루하마라 하라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겨서 용서하지 않을 것임이니라 7 그러나 내가 유다 족속을 긍휼히 여겨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 구원하겠고 활과 칼이나 전쟁이나 말과 마병으로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로루하마는 긍휼을 받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이제 다시는 하나님의 긍휼을 받지 못하는 백성과 나라가 될 것임을 말한 것입니다. 자비와 긍휼의 때가 지나고 이제 심판의 때가 왔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북 이스라엘은 심판을 받으나, 남 유다는 계속하여 긍휼을 받을 것을 말씀하십니다. 저들을 칼이나 활로가 아닌 내 힘과 능력으로 그들을 구원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남 유다가 이처럼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받는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유다는 하나님이 다윗과의 언약을 맺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왕위가 계속되라고 하셨고, 다윗의 후예로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래도 유다를 긍휼히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북 이스라엘의 왕조는 전부 악을 행하였으나 거기에 비해 유다 왕조는 선한 왕이 있어서 백성들을 잘 지도하여 하나님을 섬기게 했음으로,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신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이유로 하나님이 유다 백성을 긍휼히 여기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북 이스라엘은 내가 긍휼이 여기지 않겠다-로루하마-고 하신 것입니다.

로루하마를 젖 뗀 후에 세 번째 자식을 낳는데, 그가 로암미입니다. 로암미 역시 호세아의 아들이라는 증명이 없습니다. 그래서 둘째와 셋째는 밖에서 그 씨를 받아왔다고 생각합니다. “8 고멜이 로루하마를 젖뗀 후에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암미라 하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

 

로암미는 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뜻인데, 이는 굉장히 잔인하고 무서운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맺으시는 언약의 내용이,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는 것입니다.

 

이것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은혜가 없고, 이것 같은 큰 사랑이 없고, 이것 같은 큰 축복이 없지요. 내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은 가장 큰 복이며 은혜이고 사랑입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향해, ‘로암미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더 이상 너희는 나의 백성이 아니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과거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언약은 내가 너희 조상들을 쇠풀무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던 날에 그들에게 명령한 것이라 곧 내가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순종하고 나의 모든 명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라”(11:4). 결국 이 약속을 이스라엘이 파괴를 한 것입니다.

 

호세아서의 이 구절이 MS 성경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 아이의 이름을 아무것도 아닌자라고 하여라. 너희는 내게 아무것도 아닌자가 되었고 나 하나님도 너희에게 아무것도 아닌 하나님이 되었기 때문이다.” 언약을 파기했던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너희는 내게 아무것도 아닌자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호세아의 세 자식을 통하여 보여 주시고자 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첫째가 이스르엘인데, 이를 통해서는 북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을 말씀하시는 것이고, 둘째는 로루하마인데, 이를 통해서는, 북 이스라엘에 대한 은총을 거두시겠다는 것이고, 셋째, 로암미를 통해서는, 북 이스라엘과의 언약 관계를 포기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죄악을 심판하시겠다고 하셨으나 회개하지 않았고, 긍휼히 여기지 않겠다고 했으나 참회하지 않았음으로 이제, 그들은 내 백성으로 여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점점 더 강도가 쎈 심판의 말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북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관계없는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결국, 이 세 자식을 통하여 하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신 것은, 이스라엘의 타락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의 때가 되었음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회개를 촉구했으나 여전히 하나님을 등지고 우상을 숭배하며 각종 죄악을 행하였음으로, 이제 심판의 때가 다가왔다는 것입니다.

 

호세아 선지자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상태는 심각했습니다. 음탕한 고멜처럼,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과 짝하였고, 각종 우상숭배와 도덕적인 부패에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의 심판이 눈앞에 다가왔다는 것입니다.

 

아내의 외도와 부도덕함 때문에, 너무 괴로워하는 남편, 너무 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배신을 당한 남편의 절망을, 호세아를 통하여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의 호세아는 하나님을 비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고멜과 그의 자식들은 이스라엘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범죄하고 허물진 이스라엘을, 어떻게 취급하시는지를 마지막으로 엿볼 수 있습니다. 너무 범죄하고 배신하고 타락하여 심판의 문턱에 와 있는 이 민족을 어떻게 다루시는지 보게 됩니다.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고 심판에서 제외될 수 없는 이 백성을 하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10절에,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같이 되어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사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수를 셀 수 없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다 뿔뿔히 흩어지고 하나님의 긍휼을 입지 못한다면, 그 백성이 많아질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10절에서는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수가 많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너희는 사신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조금 전에는 로암미라고 하셨는데, 이제 암미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들을 자칫 잘못 생각하면, 하나님이 변덕이 심하신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긍휼히 여기지 아나하리라(6)고 했다가 긍휼히 여기리라(7)고 하셨고, 내 백성이 아니다(9)라고 했다가 내 백성이라(10)고 하셨고, 폐할 것이라(4)고 하셨다가 바닷가의 모래알과 같게 하시리라(10)고 하셨고, 흩으시리라고 하셨다가 모으리라고 하신 것을 보니까, 변덕쟁이 하나님으로 보여 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변덕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불 붓는 사랑이 그들을 놓지 못하시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그들이 심각한 부패와 죄악으로 인하여, 바벨론으로 뿔뿔히 흩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방인을 몽둥이로 사용하셔서 그들을 징계하심으로 긍휼히 여기지 않으실 것입니다. 내 백성이 아닌 것처럼 이방인의 포로가 되어가서 압제를 받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을 완전히 버리지 않겠다는 말씀입니다. 긍휼히 여겨서 회복시켜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포로에서 자유와 해방을 주셔서 약속하신대로 그 민족이 번성해 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 건설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시고, 그 나라를 번성케 하실 것을 예언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변덕쟁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신실하신 여호와의 말씀이십니다.

 

21절에, “너희 형제에게는 암미라 하고 너희 자매에게는 루하마라 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이름들은 로암미와 로루하마에서 앞의 자만 뺀 것입니다. 히브리어의 는 부정어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로암미는 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뜻인데, 로짜를 빼면, 내 백성이다라는 뜻이 됩니다. 로루하마는 긍휼을 받지 못한다는 뜻인데, 로자를 빼면, 긍휼을 받는다는 뜻이 됩니다.

 

과거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창세기 22:17-18,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어쩌면 호세아 선지자는 지금, 아브라함의 선상에서 이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라.’ 내 백성이 이렇게 많아지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과거의 약속을 회복하시겠다는 표현입니다.

 

신약으로 넘어와서, 로마서 9:24,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 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10에는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말씀들은 우리가 과거에 유대인이 아니었고 하나님의 긍휼을 입지 못했고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와 백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입는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하겠는가?

 

11절로 가 보십시오. “이에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우두머리을 세우고 그 땅에서부터 올라오리니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임이로다.”

 

유다와 이스라엘 자손이 한 우두머리을 세우고, 그 땅으로 올라오게 될 때에,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의 한 우두머리는 궁극적으로 메시야를 의미함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다윗의 후손으로 오사 다윗의 보좌를 계승하시고 인류의 메시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그를 가리켜 한 우두머리라고 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수많은 백성들이 구원받게 될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실제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역사 중에 이루어진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11절의 이 말씀이 문자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가 다 같이 심판을 받지만, 북 이스라엘은 다시 회복되지 못하고, 10지파의 흔적조차 찾기가 어렵습니다. 다만 유다나라만 바벨론의 70년 포로 이후 귀환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돌아온다는 말은 문자적이 아니라, 영적인 회복을 약속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스라엘과 이방 민족이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고 구원받게 될 것을 약속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만민이 그리스도의 은혜와 의와 평강의 통치 안에서 그분을 섬기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오직 한 우두머리, 우리의 리더, 우리의 진정한 통치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영적 회복의 역사입니다.

 

결론

 

본문은 멸망 중에 구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폐하심 중에 세우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타락 중에 회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범죄 한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끝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호세아와 고멜의 비극적인 사랑을 통하여, 범죄 한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측량할 수 없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신약에서 가장 잘 해석해 주고 있는 말씀이 베드로전서 2장입니다. 전에는 긍휼을 입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입었고, 전에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한 우두머리이신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이 구원을 받고 죄에서 해방을 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일평생 잊지 말아야 하며 잊을 수 없는 사랑입니다. 호세아를 통하여 보여주신 하나님의 그 사랑은, 측량할 수 없는 큰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이 큰 사랑을 기억하며, 남마다 감사와 찬송을 주 앞에 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송/ 304(1, 3)

기도 제목/ 나에게 베풀어 주신, 그 큰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하여 감사를 드립니다.
올 한해는 그 큰 사랑을, 더 깊이 느끼며 경험하며 살게 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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