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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01 29 그리스도의 새 계명 이정현 목사 2023-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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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요한복음13:34-35절 개역개정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성경본문] 요한Ⅰ서2:7-11절 개역개정

7.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가 들은 바 말

8.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그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둠이 지나가고 참빛이 벌써 비침이니라

9.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

10.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11.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3129, 13:34-35, 요일 2:7-11, 그리스도의 새 계명

 

오늘 본문이 요한복음 13장과 요한일서 2장이기 때문에 이 성경에 대한 기본적인 기록 배경을 알아야만 본문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아서, 먼저 이 부분에 대하여 간략히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사도 요한은 신약성경 27권 가운데 5권의 책을 기록하였습니다. 5권의 성경을 세 그룹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첫 번째는 복음서인 요한복음이고 둘째는 서신서인 요한 1,2,3서이고 셋째는 예언서인 요한계시록입니다. 요한복음은 그리스도의 말씀과 사역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관점에서 기술한 것입니다. 요한 1,2,3서는 복음서의 예수님을 해석하는 관점에서 편지로 쓴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앞으로 되어질 일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계시를 쓴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AD 85년경에 썼고, 요한 1,2,3서는 AD 90년경에 썼고 계시록은 AD 97년경에 썼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요한복음과 요한서신은 에베소에서 썼다고 전해지고 요한계시록은 유배지였던 밧모섬에서 기록하였습니다.

오늘은 요한복음보다 주로 요한일서 2장의 본문을 중심으로 말씀을 살펴봄으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월의 주제가 사랑인데, 그 마지막 시간이 되겠습니다. 이 시간에도 말씀을 경청함으로 말씀을 잘 깨닫고 실천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도 요한이 말한 요한일서 2장 본문을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먼저는 7-8절의 말씀인데 여기서는 옛 계명과 새 계명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조금은 혼동이 되지만 자세히 읽으면 쉽게 이해가 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7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가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8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그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둠이 지나가고 참 빛이 벌써 비침이니라.”

요한은 지금 주변에 흩어진 성도들에게 이 편지를 보내려고 에베소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자들이라고 부르고 있는 대상은 에베소 주변에 신앙을 지키며 흩어져 있는 성도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사도는 흩어져 있는 성도들을 다정하게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들아라고 부른 것입니다.

그러면서 내가 새 계명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옛 계명을 말하고자 한다고 했습니다. 그 옛 계명은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것이며 이미 들은 말씀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요한이 쓰고 있는 옛 계명은 어떤 말씀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곧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모세오경에 사랑하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레위기 19장에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18), 너희와 함께 있는 거류민을 너희 중에서 낳은 자 같이 여기며 자기 같이 사랑하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거류민이 되었었느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34)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신명기 6장과 10장에서도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6:5). 이어서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라”(10:19)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기타 다른 성경에서도 사랑하라는 말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조심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23:11)고 하셨고 너희 모든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호와께서 진실한 자를 보호하시고 교만하게 행하는 자에게 엄중히 갚으시느니라”(31:23)고 하셨습니다. 잠언 4:6에는 지혜를 버리지 말라 그가 너를 보호하리라 그를 사랑하라 그가 너를 지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이 구약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이런 말씀들을 가리켜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것이며 이미 들은 말씀이라고 했고 또한 이것을 옛 계명이라고 불렀다고 봅니다. 다시말해서 구약성경에 사랑하라는 말씀은 이미 너희가 가지고 있던 말씀이고 이미 들었던 말씀인데, 그것을 옛 계명이라고 지칭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갑자기 이어서 다시 내가 새 계명을 쓴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옛 계명에 대해서는 약간의 설명을 덧붙였지만, 새 계명에 대해서는 그것이 무엇인지는 전혀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새 계명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사랑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이 곧 새 계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9:19에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지난주에 들었던 말씀도 있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10:27).

 

주님이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찬을 마치신 이후에 오늘 본문인 요한복음 13:34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그리고 주님은 요한복음 15:12에서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심지어 주님은 마태복음 5장에서 너의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주님이 이처럼 새 계명이라는 말을 사용하셨고, 또한 주님이 사랑하라고 가르쳐 주시고 본을 보여주신 모든 말씀을 일컬어 새로운 계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계명이 옛 계명과 달리 새롭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의 삶을 사셨기 때문이고, 희생적인 사랑의 삶으로 모범을 보여주셨기 때문이고, 하나님과 원수지간이었던 우리를 위하여 대속 제물이 되어 주심으로 우리에게 대한 사랑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달리말해서 옛 계명보다 더 깊은 사랑, 더 넓은 사랑, 더 높은 사랑을 보여주시고 가르쳐 주셨기 때문에, 그것을 새 계명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사랑의 범위가 넓어졌습니다. 죄인들까지 사랑하는 사랑이고, 유대인들을 넘어 이방인들까지 사랑하는 사랑이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사랑이기에 예수님의 그 사랑의 범위와 대상이 한없이 넓어졌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의 살아있는 모범이 되셨습니다. 이처럼 사랑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과 모범은 전혀 새로운 강조점과 차원과 범위를 갖게 되었다는 점에서 서로 사랑하라는 것을 새 계명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 서신의 수신자들은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부터 예수의 가르침을 들었을 것이며 따라서 사랑의 계명은 수신자들에게 결코 생소하거나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미 과거부터 알고 있었던 익숙한 계명이었습니다. 이 옛 계명을 근거로 사도 요한은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더하여 새 계명이라고 쓴 것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새 계명을 받은 베드로 사도도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벧전 1:22). 비록 새 계명이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 내용 즉,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다시 8절로 돌아가서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그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둠이 지나가고 참 빛이 벌써 비침이니라는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에 그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는 말씀이 있는데, ‘는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너희는 요한일서의 수신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은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이 그리스도에게서 나타난 것처럼 너희에게도 나타나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나에게 사랑을 나타내 보여주셨던 것처럼, 주님처럼, 주님과 똑같은 사랑을 이제 네가 이웃들에게 보여주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 )고 하셨고 실제로 그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던 것처럼, 이제는 그를 믿는 신자들에게서도 그 같은 사랑의 행위가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게 바람직하고 참된 것이라는 얘기합니다. 왜냐하면 어두움이 지나가고 벌써 참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비취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말씀을 하셨던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이웃을 위한 이런 헌신적인 사랑이 가능하겠습니까? 주님이 불가능 할 줄 알면서 이런 말씀을 한번 해 보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희생적인 사랑이 가능한가하며는, 내가 하나님과 원수지간이었는데, 나를 살리시기 위하여 주님이 나를 위해 희생하시고 목숨을 버리셨다는 사실을 정말로 알고 경험하고 체험했다면, 나도 그 사랑으로 이웃을 위해, 형제를 위해, 원수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7-8절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너희가 과거에 들었던 옛 계명과 서로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새 계명을 전하는데, 이는 그리스도로부터 온 것으로 너희가 지키는 것이 합당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의 두 번째 부분은 9-11절 말씀인데, 여기서는 빛과 어두움을 대조하면서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에 거하는 자임을 밝히 말씀하셨습니다. “9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 10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11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

 

9절에서는 빛 가운데 있다고 말은 하는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에 대한 말씀입니다. 말로는 형제를 사랑한다고 하는데 실제로 사랑하는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나는 참 빛 되시는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사람이라고 말은 하지만 예수님처럼 행동하지는 않는 사람입니다. 신앙고백은 하지만 실천이 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아직까지 어둠에 있는 자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빛 가운데, 주님 안에 있는자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위선적인 사람에 불과합니다.

 

10절에서는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가 나오는데 그런자는 빛 가운데(주님 안에) 거하는 자로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빛 가운데 거하며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스스로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을뿐더러 타인에게도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주님과의 관계도 돈독하고 또한 타인과도 관계도 원만하다는 말씀입니다.

 

11절은 형제를 미워하는 자가 나오는데, 그에게는 세 가지 결과가 주어진다고 했습니다. 그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 속에서 살아가며, 갈 곳을 알지 못하여 방황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입니다.

 

결국 사도 요한은 이 부분에서, 형식적으로 이웃을 사랑한다고 하는 자, 진정으로 형제를 사랑하는 자, 그리고 형제를 미워하는 자, 세 가지 경우를 들어 말하면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진 자들은 주님의 새 계명의 말씀을 따라서 진정으로 형제를 사랑함으로 어느 누구에게나 걸림돌이 되지 않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3장은 주님이 우리에게 이웃사랑의 모습을 본으로 보여주신 장입니다. 거기에서 주님은 세 계명을 말씀하시면서 35절에서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계명을 잘 지키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너희가 내 제자로 인정을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는 이 말씀에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는 서로 사랑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제자이다라는 증표를 받는다는 뜻입니다. 사랑은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표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리새파의 제자라는 표시는 성구함이라고 하고, 요한의 제자라는 표시는 세례라고 합니다. 이처럼 모든 유대교파마다 각각의 독특한 제자의 표시가 있듯이 그리스도의 제자 된 표시, 그리스도인의 표시가 사랑이라는 말입니다.

 

둘째로 이 말의 뜻은 내가 사랑함으로써 다른 사람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만들 수 있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사랑의 행위를 통하여 다른 사람을 예수님의 제자로 삼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을 그리스도 예수의 제자로 삼기 위해서는 그 사람을 위한 희생적인 사랑의 산고를 겪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 사랑의 열매로 한 사람의 그리스도의 제자가 탄생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대로 서로 사랑하면, 네가 진정으로 주님의 제자라고 인정도 받고 더 나아가서 사랑함으로 다른 사람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울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주님이 하셨던 것처럼 형제를 진정으로 서로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결론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12제자 중에 가장 오래 산 사람이고 가장 늦게 성경을 쓴 사도입니다. 그가 요한복음에서도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사랑을 강조하였지만 그의 서신에 가서는 사랑을 가장 우선적인 주제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서신에서는 사랑에 대한 많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중에서 우리는 오늘 새 계명 즉, 그리스도께서 주신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해석해 주신 부분을 보았습니다. 주님은 사랑을 말씀으로 가르치셨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희생적인 그 사랑을 베풀어 주심으로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주님의 가르침과 실제적 사랑을 본받아 우리도 주님처럼 사랑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처음부터 희생적이고 내 몸을 불사르는 사랑은 아니더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시작을 하시면 좋겠습니다.

 

어렵고 힘든 이웃들의 손을 잡아주거나, 그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거나, 입을 것이나 필요한 생필품을 사다 주는 것부터 하면 됩니다. 혹시 구역이나 부서나 기관에서는 모일 때마다 휴지나 아이들 기저귀나 물티슈나 마스크나 여성 생리대같은 것을 조금씩 모아서 전달하며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자매교회인 샘물교회를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청소나 빨래나 목욕을 시켜 주거나 음식을 가져가서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혹시 직장 동료 중에 어렵고 힘든 사람이 있으면 내가 가진 것 중의 일부를 나누어 주며 그를 위로 격려하는 것입니다.

 

같은 마음으로 교회에서 장학금도 내고 선교사들도 돕고 구제금도 내고 바자회와 헌혈이나 연탄 나누기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런 차원을 넘어 혹시나 값비싼 댓가를 지불하더라도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사랑을 실제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이 우리를 보아서 저 사람은 진짜 그리스도인이다, 믿는 성도이다, 예수님의 제자라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프란시스 쉐퍼라는 사람이 “20세기 말의 교회라는 책에서 사랑을 그리스도인의 징표라고 했습니다. 이어서 쉐퍼는 오직 이 사랑의 표징을 통해 그리스도인이 진정 그리스도인이요 예수께서 진정 아버지로부터 오신 분임을 세상에 알릴 수 있다는 말을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인 자신들도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 자기가 그리스도인임을 알 수 있다는 말이고, 그 사랑의 행위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에 알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예수님의 제자로 인정하게 되는 것은, 우리가 기적을 행하기 때문도 아니고 우리가 축복을 많이 받았기 때문도 아니고 유명하거나 인기가 많아서도 아니라, 사랑의 실천을 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말로 내가 그리스도인임을 증명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바로 실천적 사랑을 통하여 내가 그리스도인이요, 참 교회임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찬송/ 사랑(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기도제목/ 그리스도처럼 사랑의 실천자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말로만 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서로 사랑하는 자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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