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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03 26 무엇을 어떻게 절제해야 하는가? 이정현 목사 2023-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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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시편141:3절 개역개정

3.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제공: 대한성서공회

[성경본문] 잠언23:1-3절 개역개정

1. 네가 관원과 함께 앉아 음식을 먹게 되거든 삼가 네 앞에 있는 자가 누구인지를 생각하며

2. 네가 만일 음식을 탐하는 자이거든 네 목에 칼을 둘 것이니라

3. 그의 맛있는 음식을 탐하지 말라 그것은 속이는 음식이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성경본문] 창세기39:7-18절 개역개정

7. 그 후에 그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8.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9.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10.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11. 그러할 때에 요셉이 그의 일을 하러 그 집에 들어갔더니 그 집 사람들은 하나도 거기에 없었더라

12. 그 여인이 그의 옷을 잡고 이르되 나와 동침하자 그러나 요셉이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두고 밖으로 나가매

13. 그 여인이 요셉이 그의 옷을 자기 손에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감을 보고

14. 그 여인의 집 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보라 주인이 히브리 사람을 우리에게 데려다가 우리를 희롱하게 하는도다 그가 나와 동침하고자 내게로 들어오므로 내가 크게 소리 질렀더니

15. 그가 나의 소리 질러 부름을 듣고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갔느니라 하고

16. 그의 옷을 곁에 두고 자기 주인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려

17. 이 말로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데려온 히브리 종이 나를 희롱하려고 내게로 들어왔으므로

18. 내가 소리 질러 불렀더니 그가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밖으로 도망하여 나갔나이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23326일 시 141:3, 23:1-3, 39:7-18, 무엇을 어떻게 절제해야 하는가?

 

지난주에도 모든 일에 절제하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율법서에는 가난하고 소외되고 어렵고 힘든 사람을 배려하고 도와주라는 말씀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서와 예언서에서는 사회적 약자들을 돌보지 못하고 오히려 탐욕스럽게 가난한 자, 약자들을 억압하고 착취하였다는 것을 실랄하게 비판, 책망하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바울의 권면으로 이기기를 원하는 사람은 모든 일에 절제해야 한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운동장에서 경기하는 사람이 상 얻기를 바란다면 최선의 노력과 절제를 해야한다는 것처럼 썩지 아니할 면류관을 받기 원하는 그리스도인은 마땅히 절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절제에 대한 마지막 시간으로 그러면 실제로 무엇을 어떻게 절제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몇 가지로 나누어서 살펴봄으로 은혜받고자 합니다.

 

1. 마음과 생각을 절제해야 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에는 어떤 것들이 담겨져 있을까요? 좋은 것도 있겠으나 나쁜 것, 좋지 못한 것들만 몇 가지 나열해 보겠습니다. 마음의 미움, 분노, 교만, 탐욕, 시기, 악한 계획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정도가 아니라 주님이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그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밖으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21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22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23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7:21-23)고 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우리가 말할 수 있는 모든 악한 것들이 이 마음에서부터 입을 통해 밖으로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에 지저분하고 더럽고 역겹고 악한 것들이 얼마나 많이 자리하고 있습니까? 이런 것들이 마음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생각과 연결되어 계속 생각되면 우리가 제어할 수가 있겠습니까?

 

잠언 25:28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이런 우리의 마음을 제어하지 못하면(절제하지 못하면) 그 마음의 성벽이 무너지고 없는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담이 없으니 도둑놈들이 마음대로 들락날락 할 것이고, 약탈해 가고 빼앗고 죽이고 멸망시키지 않겠습니까? 사탄에게 쉽게 정복당하고 말 것입니다. 그 마음이 더 엉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연이어 말씀합니다. “오직 너는 스스로 삼가며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4:9).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4:23).

 

네 마음을 힘써 지키고, 지킬 만한 것 중에 네 마음을 더욱 지키라고 하지만 마음을 지킨다는 것이 그리 쉬운 것만은 아닙니다. 그래서 잠언서 기자는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16:32)고 한 것입니다. 성을 빼앗은 용사가 얼마나 훌륭한 장수입니까? 그 장수보다 나은 게 곧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자라고 했던 것입니다. 용맹한 장수보다 마음을 절제할 줄 아는 자가 더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다스릴 수 있을까요? 일반인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차나 커피를 마시면서 마음을 진정시키며 다스린다고 하고, 혹자는 잔잔한 단조 음악이나, 서정적인 음악을 들으면서 마음을 다스린다고 합니다. 유교에서는 마음의 절제를 위하여 수양을 하라고 하고 불교에서는 헛된 욕심을 버림으로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기독교에서는 어떻게 마음을 다스리라고 합니까?

 

그것은 곧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분노와 물질에 대한 탐욕, 이성에 대한 정욕, 세상으로부터 온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마음에서 뽑아 버리는 것입니다. 회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잘못과 죄를 인정하고 철저히 고백하여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이같은 악한 마음을 철저히 하나님께 자백하며 용서를 빌 때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 마음의 깨끗함을 주시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9). 그래서 결국 마음의 절제를 위해서는 부단히 분노와 욕심과 정욕을 회개함으로 없애버리는 것입니다. 악한 것들을 회개로 제거하고 그 마음을 더욱더 선하고 좋은 것, 진리와 하나님 나라로 채우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결국 마음에서 불 일 듯 일어나는 정욕을 절제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정욕을 절제하고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은 회개하여 깨끗한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은 항상 생각과 연결된 것으로 보아서 생각을 절제할 수 있는 방법도 같이 생각해 봅니다. 바울은 로마서 12장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12:3). 한글 번역이 분명하게 그 뜻이 드러나지 않음으로 영어 번역을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네가 마땅히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너 자신을 높이 생각하지 말라. 네가 그리스도 안에 어떤 사람인지에 관한 합당하고 정확한 사고방식으로만 생각하라.” 이것을 쉽게 말하면 앞 문장은 바울이 성도들의 교회 생활을 말하면서, 너희들은 교만한 생각을 갖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 자신을 높이 평가하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다른 사람을 깔보고 무시하고 너 자신은 높이지 말라는 권면인 것입니다. 다음의 문장은 너에게 주어진 은사에 비추어 자신을 바라보고 주 안에서만 너 자신을 평가하라는 말씀입니다. 결국은 교만한 생각을 갖지 말고 주님 안에서만 너 자신을 평가하라고 하시면서 생각을 절제하라는 것입니다. 교만한 생각을 지혜로운 생각으로 생각을 통제하라는 말씀입니다.

 

바울이 빌립보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마음과 생각을 지킬 수 있는 방법에 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4:6-7).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킬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평강인데, 이것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통하여 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절제할 수 있는 것은 기도를 통한 하나님의 평강이 임할 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마음에 충만할 때 마음과 생각의 악한 것들, 욕심과 정욕을 절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절제할 수 있는 방법은 회개를 통하여 욕심과 정욕과 분노를 뽑아내고 대신 진리로 채우는 것이고 또한 기도하여 하나님의 평강을 얻을 때 마음과 생각을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2. 말을 절제하라.

 

사람들은 대부분 말로서 자기의 의사를 전달합니다. 말이 의사전달의 수단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만 마디의 말을 합니다. 흔히 기독교인들은 말이 많다는 곱지 않은 소리도 듣습니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도 있고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는 말의 중요성과 말의 전파력이 빠르다는 의미의 속담입니다.

 

기독교인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습니다. 거짓말, 교만한 말, 비방, 원망 불평의 말, 마음에 상처가 되는 말, 험담, 모함, 저주, 음담패설, 저속하고 품격이 낮은 육담 등등입니다. 이런 말은 입 밖에 내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말은 하나님의 자녀로 그 품위를 떨어뜨리는 처사이고 일반 사람만도 못한 어리석고 저질스러운 사람들입니다. )

 

성경에 말과 관계된 성구가 많이 나타나는데 그 중에 몇 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시편 4:4의 말씀입니다. “너희는 떨며 범죄하지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셀라)”. 말하는 것을 조심하고 가급적이면 말하지 말고 잠잠하라고 얘기하셨습니다. 말이 많으면 실수도 많다고 하였으니 함부로 말함으로 죄를 짖지 말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디도서 2:1에서, “오직 너는 바른 교훈에 합당한 것을 말하여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디도에게 하나님의 바른 교훈에 부합한 것에 대하여 담대하게 선포하고 적극적으로 외칠 것을 권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바울은 진리에 부합한 말은 담대하고 적극적으로 외칠 것을 말한 것입니다.

시편 141:3입니다.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시편 기자가 하나님께 내 입의 파수꾼을 세우시고 입술의 문을 지켜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여기서 파수꾼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내 입술을 지키는 수단과 도구를 말하는 것입니다. 시인은 대적들의 핍박과 부당한 공격에 대하여 자신의 입술로 불평하거나 저주의 말을 쏟아내지 않도록 내 입술을 지켜 달라는 것입니다. 여기의 세우다지키다는 말은 강세 명령형임으로 간절히 간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군인들이 성을 지키기 위하여 철저하게 파수꾼을 세우고, 성문을 굳게 지키는 것처럼 내 입에도 그런 파수꾼을 세워서 지켜달라는 것입니다. 함부로 불평과 저주와 교만과 거짓말이 나오지 않도록 지켜달라는 간구입니다.


잠언 6:24에는 이것이 너를 지켜 악한 여인에게, 이방 여인의 혀로 호리는 말에 빠지지 않게 하리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여기의 이것은앞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곧 네 아비의 명령임을 알 수 있습니다. 확대해석하면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곧 하나님의 명령으로 무장하여 있으면 호리는 여인의 말에 넘어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내 마음에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가득 채우면 어떤 유혹의 말이 온다 하더라도 대적하고 승리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내가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119:11)라고 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원수의 유혹을 이길 수 있고 범죄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한 구절 더 보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 되기를 원하나이다”(19:14)라는 말씀입니다. 시인은 내 입의 말과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 되기를 원한다고 기도합니다. 그는 자기의 말이 허망하지 않고 주께서 기뻐 받으실 수 있는 제물이 되길 간구합니다. 그의 입에서 튀어 나가는 말이 죄와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니라 유익하고 생명을 전하는 것이 되길 빈 것입니다.

 

결국 이같은 말씀들에 근거할 때 우리의 입술을 절제할 수 있는 방법은 31언하는 것이고, 입술에 파수꾼을 세우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내 마음에 채우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통하여, 우리의 말을 절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특히 내 입술의 파숫꾼을 세움으로 덕이 되지 않는 말은 절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먹고 마시는 것을 절제하라.

 

사람이 살아가는데 먹고 마시는 문제는 대단히 중요하고 필수적입니다. 인류가 살아가려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앞으로는 인류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식량 공급은 지금보다 더욱더 심각한 어려움을 겪을 것입니다. 그래서 각 기업에서는 미래의 먹거리에 관심을 가지고 사업을 키워나가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먹고 마시는 문제로 전쟁도 불사하게 될 것입니다. 아프리카나 동남아의 빈국들은 먹고 마시는 것을 절제 할 것이 아니라, 먹고 마시고 살 것조차도 없거나 부족한 나라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세계 곳곳에는 굶어 죽는 아이들과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을 포함한 한국 사람들은 먹고 마시는 일에 절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풍성합니다. 너무 좋은 거 너무 많습니다. 마시는 것도 너무 많이 삽니다. 제대로 마시지도 않습니다. 마시는 물도 너무 비쌉니다. 그런데 너무 많이 낭비합니다. 한 병을 제대로 다 마시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커피도 음료수도 너무 낭비합니다. 커다란 컵에다가 고봉으로 채워서 빨 때 하나 꽂아서 주면 반도 마시지 않을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낭비가 너무 심해요. 물 사용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돗물, 목욕물, 세차용 물도 아껴야 할 겁니다. 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물 부족국가였는데 이것이 이제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물 값이 기름값보다 더 비싸질 것입니다. 기름 없이는 살아도 물 없이는 못 삽니다. 교회에서도 전부 정수기 물을 먹고 패트병 물을 사지 마세요, 마오병에다가 물 받아서 가방 속에 넣어서 다니며 드세요.

 

잠언 23장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1 네가 관원과 함께 앉아 음식을 먹게 되거든 삼가 네 앞에 있는 자가 누구인지를 생각하며 2 네가 만일 음식을 탐하는 자이거든 네 목에 칼을 둘 것이니라 3 그의 맛있는 음식을 탐하지 말라 그것은 속이는 음식이니라.” 잠언서 기자의 충고는 혹시 높은 관직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음식을 먹을 때 차려져 있는 많은 음식에 탐욕을 부리지 말고 적당히 먹으라는 얘기입니다. ‘네 목에 칼을 두라는 말은 바로 식탐이 일어나면 네 목에 칼을 대고 서라도 절제하라는 얘기입니다. 그래야 관원으로부터 좋은 평판을 들을 수 있고 또 다른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14:21). 바울은 얼마든지 모든 음식을 먹을 수 있지만 그러나 상대편의 양심을 위하여 고기와 포도주를 먹지 않겠다는 결심인 것입니다. 먹을 수 있는 자유를 상대편을 위하여 절제하겠다는 말입니다.

 

디모데전서 3:11절입니다. “여자들도 이와같이 정숙하고 모함하지 아니하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 여기의 여자들은 집사들의 아내들을 말합니다. 그런 여자분들도 정숙하고 모함하지 아니하며 절제해야 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의 절제하며라는 말을 헬라어로 네팔레오스인데 이 단어는 디모데전서 3:3술을 즐기지 아니하며라는 단어와 거의 같은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그래서 본문의 여자들 즉, 안수집사님의 아내들은 술을 즐기지 않는 자들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술을 절제하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여자들에게도 술 마시는 것, 술 자리에 자주 참여하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의 통계를 보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망 원인 1위가 암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암의 원인 40%가 담배와 술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 외의 원인도 대부분 먹고 마시는 것 때문에 발병이 된다고 얘기합니다. 요사이는 먹기 위해 음식을 요리할 때 발생 되는 발암물질로 주부들이 암에 많이 걸리기도 한답니다.

 

그런데 다른 음식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술 담배는 안 먹어도 되잖아요? 굳이 그것을 먹고 피움으로 건강을 해치고 병 걸려 일찍 죽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생이 아니지 않습니까? 술 담배는 백해 무익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망교회의 모든 성도들은 술과 담배를 절제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술, 담배 절제하라는 말은 줄이거나 적당하게 하라는 얘기가 아니고 금연, 금주하라는 말입니다.

예레미야 35장에 보면 레갑 자손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은 자기의 선조인 요나답이 후손들에게 어떤 경우라도 술을 마시지 말라는 명령을 하였는데 그 후손들이 그 명령을 기억하며 지금까지도 잘 지켜오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진짜 그런지를 예레미야 선지자가 알아보기 위하여 그 후손들을 불러 놓고 술을 마시라고 했더니 진짜로 그들은 술을 마시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가 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18 예레미야가 레갑 사람의 가문에게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너희 선조 요나답의 명령을 순종하여 그의 모든 규율을 지키며 그가 너희에게 명령한 것을 행하였도다 19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레갑의 아들 요나답에게서 내 앞에 설 사람이 영원히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35:18-19). 그들은 선조 요나답의 명령을 기억하여 그것을 존중하였기 때문에 지금까지 절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내 앞에 설 사람이 영원히 끊어지지 아니하리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레갑의 아들들은 선조의 명령을 따라서 술을 절제하며 살므로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도 먹고 마시는 일에 절제할 수 있기를 바라고, 식탐이 생길 때(즐기는 것이 있을 때), 목에 칼을 대는 심정으로 절제하시고,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그 말씀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절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4. 정욕을 절제하라.

 

우리가 지난번에 살펴 본 고린도전서 7:9,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나으니라는 말씀을 대략 살펴보았습니다. 이 말씀은 성욕을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는 말씀이고 그렇게 하는 것이 정욕이 불타는 것보다 낫다는 말씀입니다. 불타는 정욕을 해소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결혼하는 것도 무방한 것입니다. 이것보다 더 근본적인 결혼의 의무는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고 또한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명령 때문에 남녀는 결혼해야 합니다. 결혼을 하면 결혼 관계 속에서는 얼마든지 자유롭게 성 관계를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불타는 성욕을 부부관계를 통하여 해소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도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정욕을 어찌해야 하는가? 물론 결혼하지 아니한 사람의 성욕도 마찬가지이지만 이럴 때는 과다한 성욕을 절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국에는 결혼 전의 사람이든 결혼하고 난 이후의 사람이든 절제는 동일하게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선을 넘으면 결국 죄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매일같이 밤 늦은 시간에 야한 동영상을 봤답니다. 식구들이 다 잠든 사이에 작은 방에 가서 새벽까지 그런 동영상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자고 있는 자기 부인에게 와서 부부관계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자기 부인도 직장 생활을 하니까 피곤한데, 새벽마다 남편에게 시달리는 것입니다. 한두 번이 아니라 매일 새벽마다 이런 식이니까, 나중에 부인은 이것은 정상적인 부부관계가 아니라 성폭행을 당하는 거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결국 그 일로 인하여 이혼하고 말았습니다. 부인에 의해서 남편이 이혼을 당한 것입니다. 그 남편은 젊은 사람이 얼마 못살고 병으로 인하여 죽고 말았습니다. 그 때도 그런 생각을 했지만, 이 사람은 불타오르는 정욕을 억제하지 못하는구나,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판단이 되었습니다.

 

요한은 말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라.’ 눈 뜨고 하루 일과를 시작하며서 저녁에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 때까지 이런 것들의 유혹을 받습니다. 지속적으로 이런 것들의 유혹을 받으며 살아가는데, 어찌하면 좋을까요? 어떻게 쉴세없이 다가오는 이런 유혹들을 절제하며 살 수 있을까요?

 

주님은 더욱더 철저하게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이미 간음하였다’(5:28). 육체적인 간음이 아니라 마음과 생각의 간음까지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런 육신의 정욕들을 어떻게 절제할 수 있는지 요셉의 경우를 살펴봄으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 가정 총무로 일할 때였습니다. 그 집안의 마님 즉,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의 잘 생긴 것을 보고 유혹을 한 것입니다. 멋있는 요셉을 보고 눈짓하고 동침하자고 유혹을 한 것입니다. 보통 남자들 같으면 이 정도면 벌써 넘어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내가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을 수 없다고 하며 거절합니다. 그랬는데도 보디발의 아내는 날마다 동침하자고 유혹을 합니다. 하루는 집안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안 여인이 요셉의 옷을 잡고 적극적으로 동침하자고 했을 때 요셉은 그 옷을 버려두고 밖으로 뛰쳐 나갔습니다. 자존심이 상했던 여인이 큰 소리로 저 히브리 남자가 나를 희롱하고 동침하려고 들어왔다가 도망쳤다고 말합니다. 이것으로 인하여 요셉은 억울하게 가정 총무직을 박탈당하고 감옥에 가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요셉이 그런 유혹을 받았을 때에, 일단 이것은 하나님 앞에 범죄하는 일이라고 말하면서 단호하게 거절하였다는 것입니다. 아니요, 노라고 말하면서 그 이유를 분명히 말합니다. 그리고 지속적인 그 여자의 유혹이 있었을 때 요셉은 아예 그 여자의 소리를 듣지도 않았고 함께 있지도 않았다(39:10)고 했습니다. 유혹의 장소에 접근하지도 않았다는 말입니다. 더 나아가서 요셉은 그 여자가 자기의 옷을 붙들고 간청했을 때도 그것을 뿌리치고 밖으로 나갔다는 것입니다. 그 장소를 뿌리치고 벗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요셉은 유혹과 육신의 정욕 문제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요셉이 당하였던 정욕적인 유혹은 그 자리를 뿌리치고 박차고 나가는 것이 절제하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 접근하거나 그 자리에 멈추어 서 있으면 유혹에 넘어갈 수 있지만, 그 자리를 벗어나야 승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요사이는 다양한 채널을 통하여 정욕의 유혹을 받습니다. 야한 영화나, TV 19금 방송을 통해서나, PC나 핸드폰의 동영상을 통해서 수 많은 볼거리들을 통하여 육신의 정욕적인 부분에 유혹을 받게 됩니다. 어떻게 이런 유혹들을 이길 수 있습니까?

 

피하여야 합니다. 19금 방송을 차단해야 합니다, 핸드폰의 동영상은 아예 클릭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젊은 청소년들에게는 집에 들어오면 어느 정도 시간까지는 핸드폰을 활용 하다가, 10시 정도만 되면 전부 마루의 한 장소에 갖다 놓고 각자의 방에서 자고 아침 먹고 학교 갈 때 즈음에 핸드폰을 쓰게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어른이든 아이들 할 것 없이 정욕을 불타게 하는 것들을 차단하고 피하고 멀리해서 보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네 눈이 보는 것을, 네 귀가 듣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육신의 정욕을 절제할 수 있다고 봅니다. ‘네 눈이 보는 것을 조심해*2, 위에 계신 주께서 사랑스레 보시네 네 눈이 보는 것을 조심해.’ ‘네 귀가 듣는 것을 조심해*2 위에 계신 주께서 사랑스레 보시네 네 귀가 듣는 것을 조심해.’

 

우리가 마음과 생각을 절제하기 위해서는, 회개하고 기도하여 하나님의 평강을 얻을 때 마음과 생각을 지킬 수 있습니다. 말을 절제할 수 있는 방법은 우리의 입술에 파숫꾼을 세우고, 함부로 말하지 말고 깊이 생각하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먹고 마시는 것을 절제하려면 목에 칼을 대는 심정과,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그 말씀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절제하는 것입니다. 정욕을 절제하기 위해서는 그 자리를 뿌리치고 피하여야 합니다.

지금까지 말씀을 드린 4가지를 절제하기 위하여 나름대로의 방법을 따라서 시행을 한다면 어느 정도 절제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것보다 더 많은 부분에 있어서 절제해야 할 것인데, 모든 일에 있어서 절제하며 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한 마디로 바로 성령의 통치를 받는 것이다, 즉 성령 충만 해야 한다고 봅니다. 매일 매시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성령님이 절제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셔서 절제할 수 있게 하시고 결국 절제의 열매를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하게 살아야 절제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의 철저한 통치와 통제를 받음으로 모든 일에 절제가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결론

 

자동차는 두 개의 페달이 있는데, 한 개는 엘셀레이트인데 이것은 자동차를 잘 달리게 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브레이크인데 이것은 자동차를 잘 멈추게 하는 것입니다. 자동차에 있어서 엘셀레이트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바로 브레이크의 역할입니다. 기독교인에게 이 브레이크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절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절제는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매우 중요한 성품입니다.

 

성경이 가르쳐 주는 절제의 성품을 잘 배워서 우리 모두 모든 일에 절제함으로 멋진 인생이 되시고 행복하고 복된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미국의 벤자민 플랭클린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가난한 청교도 집안에서 자라났습니다. 정식 학교는 1년밖에 다니지 못하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가정에서 어머니의 교육을 받았고 또한 교회에서 목사님의 청교도 교육을 받았을 뿐입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그는 일과 독서를 통하여 세상을 배우게 된 것입니다. 후에 그는 미국 철학회의 창시자가 되었고, 피뢰침을 발명하였고, 초대 프랑스 대사를 역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13가지 덕목을 정해서 평생 그것을 지켰다고 합니다. 13가지 덕목 중에 첫째가 절제였는데, 왜 이렇게 절제를 제1덕목으로 정하였는가 하며는, 자신이 목표한 것을 이루기 위하여, 또한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영적 사람이 되기 위하여 제일 중요한 것이 절제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게 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을 절제로 알고, 절제하여 살므로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영적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찬송/ 절제

기도 제목/ 하나님, 우리에게 성령의 충만을 주셔서, 절제하며 살게 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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