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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2 04 성령 강림과 나타난 결과 이정현 목사 2024-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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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1-13 성령의 강림과 나타난 결과

 

한국교회 성도들이 오해를 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절기입니다. 절기는 유대인의 절기와 교회력과 한국교회의 절기가 있습니다.

 

유대인의 절기로는 구약 성경에 명시된 유월절, 무교절, 오순절(칠칠절), 맥추절, 장막절(초막절) 등등을 말합니다. 5대 절기 중 유월절, 오순절 그리고 장막절은 유대인들의 3대 절기입니다(16:16).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지금도 복음에는 관심이 없고 이 절기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력은 주후 2-4세기에 완성된 것으로 대강절, 성탄절, 사순절, 부활절, 성령 강림절, 삼위일체절 등등을 말합니다. 전 세계의 모든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거의 다 이 교회력들을 부분적으로는 지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국교회의 절기로는 미국 청교도들의 영향을 받은 추수감사절과 한국교회만의 절기인 광복절, 3.1, 어린이 주일, 어버이 주일 등등이 있습니다. 특히 주일이라는 이름 앞에 무엇을 붙이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주일은 주일일 뿐이며 거룩하고 존귀한 날로 지켜져야 합니다. 다른 어떤 것이 주일을 대신하거나 강조될 수는 없습니다. 주님 외에 다른 존재가 주일의 주인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유대교의 절기는 우리 기독교인 지킬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월절을 안 지키듯 맥추절 같은 것도 유대교의 절기이므로 지킬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절기는 예수님과 연관된 것이고 예수님이 이 모든 것을 성취하셨기 때문입니다. 만약 지금도 여전히 우리가 이 절기를 지킨다면 기독교가 아니라 유대교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구원의 성취자, 메시야를 부인하는 경우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상 교회력도 사람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지킬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 의미만 잘 새겨서 신앙 생활하면 되는 것이고 또한 주일만 잘 지키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일 안에 모든 의미가 다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주일 안에 구원과 은혜가 다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은 주일만 강조해서 잘 지켰습니다. 성탄절이나 부활절 같은 것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나타나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더구나 한국교회가 만든 절기도 지킬 필요가 없습니다. 지킨다고 죄가 되는 것이 아닐 뿐더러 신앙생활에 유익한 것도 별로 없습니다. 특히 앞에서도 언급한 주일 앞에 무엇을 붙여서 지키는 것은 주일을 욕되게 하는 것이 되므로 근절해야 합니다. 성경에 성탄절은 없지만 성탄은 엄연히 존재하며 부활절을 없지만 역시 그리스도의 부활은 귀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 시점에 그 의미를 제대로 새기며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오순절은 무슨 날입니까? 오순절은 오십일 째 되는 날이라는 말인데 유월절 후 첫 안식일 다음 날부터 50일째 되는 날을 말합니다. 흔히 이 날을 칠칠절 또는 초실절이라고도 부릅니다. 처음으로 보리를 추수해서 그것으로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날입니다.

 

오순절은 유월절과 장막절과 더불어 유대교의 3대 절기에 속하는 것인데, 이때에 모든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순례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개종한 이방인까지도 함께 모여서 절기를 보냈습니다.

 

본문 1절에 나타난 오순절이 바로 그날인데, 이 오순절이 다가오자 사방에서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여 온 것입니다. 그날에 갑자기 하늘로부터 성령이 마가의 다락방에 있는 사람들에게 임하신 것입니다. 오순절을 지키기 위하여 모인 사람들에게 다 임한 것이 아니고 마가의 다락방에서 아버지의 약속을 기도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성령이 임하신 것입니다. 이 날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50일째 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40일 동안 계시다가 승천하시고 그 이후 제자들이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한 지 10일 만에 성령이 오셨기 때문에 부활 이후 50일째가 되는 것입니다. 성령 강림은 예수님 부활 이후 50, 승천 이후 10일 만에 이 땅에 이루어졌습니다. 120명이 다 같이 한곳에 모여 있을 때 홀연히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요엘서에 예언된 그 성령이 오셨습니다. 아버지의 약속이 이 땅 위에 성취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2-3절의 말씀을 볼 때 참으로 희한한 모습으로 성령님이 오셨습니다.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성령 강림의 현상을 상세히 말하고 있습니다. 이 현상이 희한하다는 말은 성령이 영적 존재인데 마치 어떤 육적인 존재가 현란하고 위엄 있게 임하시는 모습처럼 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성령 강림은 1)한 곳에 모여 있을 때 일어났습니다. 혼자 있을 때 성령이 임하신 것은 신약시대에는 거의 없습니다. 전부 모여 있었을 때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사도행전 4장도 그렇고 10장의 고넬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홀연히 나타났습니다. 갑자기 이루어졌다는 말입니다. 성령 강림의 뜻밖의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라기는 바랐으나 임하실 때는 생각지 않은 때 홀연히 임하였다는 뜻입니다.

 

3)하늘로부터 임하였습니다. 성령 강림의 신적 기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땅에서 출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가 보내주신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늘로부터 임하신 영이십니다.

 

4)강한 바람 소리가 나타났습니다. 혹자는 이 소리를 대포알이 공중으로 날아가는 예리한 음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혹자는 누가복음 21:25바다와 파도의 우는 소리를 가리킨다고 봅니다. 로버트슨은 거칠게 생겨난 강풍과 같은 반향음이라고 하면서 일종의 회오리 바람과 같이 돌진해 오는 소리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같은 소리는 인간이 청각적으로 인식할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5)급하게 나타났습니다. 다급하게 갑자기 임하셨습니다.

 

6)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불이 맹렬히 타오르는 것을 말합니다. 번갯불처럼 임하셨다고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처음에는 불덩어리 하나가 나타났지만 그 형상은 이쪽저쪽으로 나뉘어져서 그 결과 그 일부분들이 그곳에 참석한 사람들 위에 임하였다는 뜻입니다. 각 사람 위에 분여 되어 머무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 인간의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가시적인 현상이었습니다. 앞에서는 들리는 표적이, 이제는 보이는 표적이 나타난 것입니다.

 

7)각 사람과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했습니다. 각 개인에게도 임하였고 온 집안에 가득했다, 충만했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에게도 성령이 가득 찼고 집에도 그 기운이 가득했다는 말씀입니다. 2절의 가득했다는 것은 15(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의 약속의 성취로, 마치 세례를 하기 위해 욕조에 물을 가득 채운 것처럼 성령으로 온 집안이 가득차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 같은 현상은 인간이 시청각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현상이라는 점입니다. 지금까지는 성령님이 간헐적으로 사람들에게 임하셔서 역사하셨습니다. 모세에게나 사사들이나 사무엘에게, 다윗 왕에게, 선지자들에게 간헐적으로 임하셔서 역사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성령님이 믿는 자 속에서 내주하셔서 역사하십니다. 떠나지 않으시고 신자들 안에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구원과 부활의 보증으로 영원토록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

성령이 임한 그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성령의 충만을 받았습니다. 성령 세례(1:5)와 성령 충만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전자는 예수 믿고 받게 되는 성령을 말하고 후자는 그 이후로 지속되는 성령의 충만을 말합니다. 전자는 단회적이며 후자는 반복적입니다. 오순절에는 바로 이 두 사건이 동시에 일어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믿는 자 가운데 성령이 내주하시기 위해 오셨고 동시에 충만히 임재하신 것입니다. 이같은 현상은 구약의 특별한 경우와 임시적인 방식으로 성령이 오신 것과는 분명한 차이가 나는 성령 강림 현상입니다.

 

방언을 말했습니다(4).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8). 이때의 방언을 1)다른 나라의 말(칼빈)로 이해하거나, 2)청취의 이적, 또한 3)천사의 말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칼빈의 견해를 취할 수 있고 아울러 로버트슨의 다음의 말도 참고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각각 그들로서는 지금까지 전혀 배우지 않은 언어 그러나 실제의 언어로서 그들의 인접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들이다.’ 방언은 외국어 방언(2)과 신령한 언어(고전 14)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전자는 일시적이나, 후자는 성령의 은사로 지속적으로 나타납니다. 전자의 주 목적은 복음 전파이나(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후자는 개인의 영적 유익을 위함입니다. 둘 다 성령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결국 성령이 임하심으로 난 곳 방언의 역사와 성령 충만한 임재가 일어났습니다.

 

5절 이하에 보면 당시(오순절) 예루살렘에 모였던 경건한 유대인들이 각각 어디로부터 왔는지, 그 지역을 말하고 있습니다(2:5-13). 천하 각국으로부터 왔다고 했습니다. 열방으로 흩어져있던 유대인들이 모였는데 15개 지역 이상에서 왔습니다. 바대인, 메대인, 엘람인, 메소포타미아인, 유대, 가바도기아, 본도, 아시아, 부르기아, 밤빌리아, 애굽, 그레네, 로마로부터 온 사람들, 그레데, 아라비아 등지에서 절기를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온 것입니다. 곳곳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을, 살던 지역에 따라 다음과 같이 네 가지 주요 지역으로 구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Page). 첫째는 동방 혹은 바빌로니아 유대인, 즉 바대인, 메대인, 엘람인, 메소포타미아인이고, 둘째는 수리아의 유대인, 즉 유대, 가바도기아, 본도, 아시아, 부르기아, 밤빌리아에 사는 사람들이고 셋째는 애굽의 유대인, 즉 애굽, 그레네 사람이고 넷째는 로마인입니다. 페이지(Page)의 말은 나머지 두 그룹(그레데와 아라비아)은 나중에 본 목록에 추가된 사람들이라고 주장을 합니다. 아무튼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이라는 것은 이 몇 그룹의 방언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적어도 4-5가지의 방언으로 복음이 전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각 나라의 방언으로 전파된 내용이 하나님의 큰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내용의 주제는 죄, 회개, 심판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의 위대한 사역에 대한 선포였습니다. 하나님이 역사 속에 새롭게 개입한 사건에 관해 말한 것입니다. 즉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삶, 죽음과 부활, 영광의 승천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위대한 구원에 대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신 구약의 출애굽 사건이나 광야에서의 놀라운 이적 사건과 같은 것을 하나님의 큰일이라고 말하는데, 초대교회 신자들은 방언으로 이것을 말하였다는 것입니다.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일에 대하여 들었던 그들의 특징은 경건한 자들이 많았으나 천박한 유대인도 섞여 있었습니다. 방언을 듣고 조롱하면서 술주정뱅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4절에 조롱했다는 말은 농담으로 여겼다는 뜻입니다. 마치 롯이 자기 사위에서 복음(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셨던 일)을 전했을 때 장인의 말을 농담으로 여겼던 것과 같습니다. 오만한 자들도 있었습니다. 교양 없는 갈릴리 사람들에게서 뭐 신통한 것이 있겠느냐는 입장을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다양한 사람들에게 방언으로 복음이 전해진 것입니다. 이쪽에서 말하면 저쪽에서는 난 곳 방언으로 알아듣는 것입니다. 일시적인 언어의 통일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바벨탑 이후로 이처럼 성령의 은혜로 언어의 통일을 이룬 시대는 결코 없었습니다.

 

결론

 

성령이 임하심으로 교회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성령이 이제 믿는 자 속에 내주 하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쳐 주시고 주님을 증거 하시고 세상을 책망하시기 위하여 임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약속대로 성령이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보내주신 성령님이 오신 것입니다. 구약에 예언된 대로 성령이 강림하신 것입니다.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방언을 주셔서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이 당시 방언의 목적이 복음 전도였습니다. 오늘의 은사도 곧 교회를 섬기라고 복음전파를 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성령 충만함으로 복음을 전파하며 교회를 잘 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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