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목사설교

  • 예배 · 설교 >
  • 이정현목사설교
2025 5 18 <예수님은 어디서 오셔서 어디로 가시는가?>
이정현 목사 2025-05-18 추천 0 댓글 0 조회 83
[성경본문] 요한복음7:25-36 개역개정

25. 예루살렘 사람 중에서 어떤 사람이 말하되 이는 그들이 죽이고자 하는 그 사람이 아니냐

26. 보라 드러나게 말하되 그들이 아무 말도 아니하는도다 당국자들은 이 사람을 참으로 그리스도인 줄 알았는가

27. 그러나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아노라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으리라 하는지라

28.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외쳐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거니와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니라 나를 보내신 이는 참되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29.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라 하시니

30. 그들이 예수를 잡고자 하나 손을 대는 자가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31. 무리 중의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말하되 그리스도께서 오실지라도 그 행하실 표적이 이 사람이 행한 것보다 더 많으랴 하니

32. 예수에 대하여 무리가 수군거리는 것이 바리새인들에게 들린지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를 잡으려고 아랫사람들을 보내니

3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34.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하시니

35. 이에 유대인들이 서로 묻되 이 사람이 어디로 가기에 우리가 그를 만나지 못하리요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에게로 가서 헬라인을 가르칠 터인가

36.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한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5518일 요 7:25-36 예수님은 어디서 오셔서 어디로 가시는가?

 

지난번 시간에는 예수님에 대한 다양한 반응들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친 형제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음으로 조소 섞인 말로 세상적인 처세술을 한번 써 보라고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미워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무리를 미혹하는 자라고 했고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고 혹자는 당신은 미쳤다고 험한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온갖 좋지 않은 말로 폭언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아버지의 때에 맞추어 말씀을 준행하셨고 때에 맞추어 성전에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일에 충성을 다하신 것입니다. 피할 때는 피하셨지만 나타나야 할 때는 죽이려는 위협 속에서도 공개적으로 말씀을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본문의 앞부분은 사람들이 예수를 잡고자 했으나 그러지를 못했다는 말씀이 나옵니다(25-31). 본문을 시작하는 몇 구절은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를 기록해 두었지만 복잡해서 누가 누구인지가 많이 혼동이 되는 말씀입니다.
 

“25 예루살렘 사람 중에서 어떤 사람이 말하되 이(예수)는 그들이(종교지도자들) 죽이고자 하는 그 사람이(예수) 아니냐 26 보라 드러나게 말하되(주님) 그들이(종교지도자) 아무 말도 아니하는도다 당국자들은(관원) 이 사람(예수)을 참으로 그리스도인 줄 알았는가 27 그러나 우리는(예루살렘인) 이 사람이(예수) 어디서 왔는지 아노라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으리라(우리) 하는지라.”

 

이 구절에서 중요한 말만 쉽게 설명을 하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사는 어떤 사람이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와서 드러내놓고 진리를 말해도 이것을 듣고 지켜보고 있던 종교 지도자들과 관원들은 예수를 체포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알고 있는데 그리스도는 특별하게 오심으로 그가 오심을 아는 자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평범하게 왔음므로 그리스도(메시아)가 아니라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어디서 왔는지를 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나사렛에서 왔으면 요셉의 가문에서 태어난 우리의 이웃이요 목수로 생활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평범한 출생과 성장 과정에 대하여 피상적으로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이 정도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비록 갈릴리 사람이 아니라도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전에 즉, 중간 시대에 나온 계시 문학에 있는 내용과 사상인 것 같습니다. 그 시대의 계시 문학에서는 그리스도께서 갑자기 구름에서 나타난다, 혹은 해에서 나타난다고 하였습니다(4 에스라 7:28, 13:32). 그러나 이것은 성경 말씀이 아니라 그 당시 전해오는 중간 시대의 문학 작품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특히 예루살렘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주로 이런 작품에 영향을 받아 그리스도께서 갑자기 나타나서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에서 구원하여 낼 정치적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메시아의 탄생지를 명확하게 말씀하고 있는 미가서 5:2의 말씀을 무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이 말씀을 전면 부인하고 갑자기 나타날 그리스도를 고대하고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에는 주의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고대 문학 작품에만 의지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때 주님이 나서서 당신이 어디에서 오셨는지를 분명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28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외쳐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거니와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니라 나를 보내신 이는 참되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29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라 하시니.”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안다고 하셨고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하나님이신데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나는 그를 알고 나를 보내신 하나님은 참되신 분이시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은 여기서 자신의 신적 기원과 신적 사명을 선언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사실은 자기의 신적 기원을 알아야 진짜로 나를 아는 것인데 예루살렘 사람들은 이것을 모른 채 나의 육적인 기원만 안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기서 관심을 가져야 할 단어가 외쳐, 외치다’(크라조)라는 단어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이 사용하신 전체 세 번 이 단어가 나오는데(7:28, 37, 12:44) 그 첫 번째가 오늘 본문에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본인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강조하며 외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가르치시며 외치고 강조하신 내용이 무엇인지에 주의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이 저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결국 나를 보내신 분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나를 알지 못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역으로 하나님을 알았더라면 나를 알았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저들은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온 사람인지는 알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분인지는 알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인성은 조금 알았지만 신성은 전혀 몰랐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피상적으로만 알았지 본질적으로 알지는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를 잡고자 했으나 손을 대는 자가 없었는데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30). 첫 번째 문단의 마지막 구절인 31절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31 무리 중의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말하되 그리스도께서 오실지라도 그 행하실 표적이 이 사람이 행한 것보다 더 많으랴 하니.” 예수님에 대한 예루살렘 사람들의 반응으로 그를 잡고자 했으니 잡지 못했음을 보여 주고 곧장 그를 믿은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믿은 사람들도 뒤의 말을 보니까 확실하고 분명한 믿음은 아닌 듯 보이지만 아무튼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의 그룹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을 중심으로 세 그룹의 사람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일 왼쪽에는 예수님을 죽이려 하고 붙잡으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종교 지도자들이 여기에 속할 것입니다. 둘째는 오른쪽에 있는 믿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이적을 보았고 그의 말씀도 들었던 사람들입니다. 셋째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간에 끼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불신과 믿음 사이에 갈팡질팡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중립을 성숙과 객관성의 표시로 여깁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에 대하여 중립적인 입장을 취한다는 것은 좋은 견해가 아니고 위험스러운 일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그리스도를 배반하고 그를 미쳤다고 하며 그를 죽이려는 그룹에 속하여 있습니까? 아니면 그 부류에 속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믿는 그룹에도 속하지도 않은 중간 입장이라고 말 할 사람이 있습니까? 빨리 돌이키시고 회개하여 믿음의 그룹에 속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만의 하나 좌측에 있는 사람이 있다면 중립을 거쳐서 우측의 믿는 그룹으로 즉각 이동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은혜받고 복 받는 사람이 됩니다. 그렇치 않고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사람은 멸망뿐일 것입니다.

본문의 뒷부분은 예수님에 대한 유대 지도자들의 반응이 기록되어 있습니다(32-36). 예수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소리가 바리새인들에게 들렸습니다. ‘수군거리다는 말은 마치 꿀벌들이 집을 오가면서 붕붕거리는 소리를 말하는데 이것이 점점 더 커 갔다는 얘기입니다. 수군거림은 앞 절에 나온 그리스도께서 오실지라도 그 행하실 표적이 이 사람이 행한 것보다 더 많겠느냐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예수가 행한 표적이 대단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장차 메시아가 오신다고 해도 이 이상의 능력을 행하지 못할 것이라는 수군거림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잡으려고 아랫사람들을 보내게 됩니다. 아랫사람은 아마도 성전 경비대를 말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의 대제사장들은 복수로 되어 있는데 이전의 대제사장 안나스(59, AD 6-15)와 현 대제사장 가야바(63, AD 18-36)가 나란히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들은 전부 하나님의 율법을 어긴 것입니다. 대제사장은 반드시 레위 지파에서 대제사장이 죽어야 그 맏아들이 대제사장 직을 이어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둘 사이는 장인과 사위입니다. 수리아의 총독 구레뇨가 임명한 첫 대제사장이 안나스이었습니다. 로마의 권력자에 의하여 임명 되었다는 것도 문제고, 그의 다섯 아들이 전부 대제사장이 되는데 이것도 문제이지만 그의 사위가 대제사장이 되는 것도 율법의 규정을 어긴 것입니다. 그리고 대제사장은 대부분 사두개파에 속하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두개파의 인원은 적었지만 막강한 파워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바리새인들은 다른 사람들과 철저히 구별된 자로 자처하며 율법주의에 빠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주님으로부터 외식주의자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이들 두 그룹, 다시말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산헤드린공의회의 주요 회원들이었으며 또한 백성들의 생활과 사상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지금 예수를 잡기 위하여 아랫 사람들을 보낸 것입니다. 사실 이 두 그룹의 종파는 서로 가까이 지내는 사이는 아닙니다. 믿고 있는 내용도 많이 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예수님을 잡으려는 작당에는 함께 협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서로 비판했던 사람들이 여기서는 협력하여 그리스도를 대항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을 향해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33 ...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34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조금 후에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너희가 나를 보지도 못하고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땅 위에서 역사하시는 기간이 길지 않을 것과 멀지 않은 장래에 하늘로 올라가실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죽음을 소멸로 보지 않으시고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얘기하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오고 가심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이 땅에 와서 3년 동안 공생애 사역을 마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사 하늘로 다시 돌아가실 것을 말씀하셨는데도 불구하고 말씀에 대한 깨달음과 이해가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영적 무지 속에서 불신하며,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 자기들의 메시아를 기다릴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땅에 오고 가신 그리스도(메시아)의 말씀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그를 알아보지도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메시아가 벌써 오셨다 가셨는데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알지도 못하고 믿지도 않음으로 자기들의 메시아를 계속 기다리며 살아갈 것입니다.

 

심지어 유대인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이 사람이 어디로 가기에 우리가 그를 만나지 못하리요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에게로 가서 헬라인을 가르칠 터인가”(35).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하늘나라로 다시 돌아갈 것이라고 하셨는데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 그들이 디아스포라들, 사방으로 흩어진 유대인들에게 가서 가르치려고 하나-라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이란, 헬라와 기타 외국에 분산되어 사는 유대인들을 말합니다. 정통 유대인들은 사실 외국에 흩어져 사는 동포들을 천하게 보았으며, 특히 이방인(헬라인)들을 멸시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에게로 가서 헬라인을 가르칠 터인가라는 말은, 예수님의 권위를 업신여기고 하찮게 여기는 말입니다. 조롱하고 경멸하며 얕잡아보고 하는 말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니까 엉뚱한 추측이나 하고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개 풀 뜯어 먹는 소리, 황당한 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사실 마지막 구절의 이 말씀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말씀인지를 잘 알지 못하였습니다.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36). 이 구절과 같은 뜻의 말씀이 잠언에 있습니다. “24 내가 불렀으나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폈으나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25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26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27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같이 이르겠고 너희에게 근심과 슬픔이 임하리니 28 그 때에 너희가 나를 부르리라 그래도 내가 대답하지 아니하겠고 부지런히 나를 찾으리라 그래도 나를 만나지 못하리니”(1:24-28).

 

주님을 부지런히 찾아도 만나지 못하고 주님이 계신 그 천국에 오지도 못한다고 하셨음으로 그런 자는 얼마나 비참하고 절망이겠습니까? 지금은 모르지만 그날이 되면 주님을 찾아도 만나지 못한 자들이 주님과 함께 있지 못하고 영원한 불 못으로 끌려 들어가면서 땅을 치며 통곡하고 한탄할 것 아닙니까? 그들은 주님의 이 무서운 말씀 앞에서도 두려워 회개할 줄 모르고 오만한 태도로 그저 한 번 의문을 갖고 지나가 버렸습니다. 불신앙은 자기가 당할 내세의 일에 이렇게 캄캄하고 둔감한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 어두움 속에 있었던 당시 유대인들의 모습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결론

 

예루살렘 사람들은 예수님을 갈릴리 출신이요, 목수의 아들로 한 평생을 산 평범한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특별하게 태어나야 하는데 너무 평범하게 태어나서(사실은 아주 특별하게 태어 나셨지요)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그는 사람의 아들이지 신의 아들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들은 예수를 단순히 사람으로 알고 그를 메시아로 인정하지도 믿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종교 지도자들과 관원들은 호시탐탐 그리스도를 죽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성전에서 들어내 놓고 진리를 가르쳐도 그들은 주님을 체포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주님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이들은 주님을 죽이기로 결심한 것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그 결심한 것을 실행하려고 기회만 엿보고 있었습니다.

 

또 다른 한 그룹은 주님의 대단한 표적과 이적을 보고 예수님을 믿는 편에 섰지만 아직 굳건한 믿음이 아니라 어슬픈 어린아이의 신앙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표적을 보고 믿는 것도 중요하나 거기에 그치게 되면 계속 또 다른 이적, 더 신기한 이적을 요구하게 되고 그것이 제공되지 않으면 신앙을 표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표적과 이적을 보여 주신 것은 그것을 통하여 자기를 믿게 하기 위함이지만 그러나 그것이 우선이 아니라 말씀을 통하여 믿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보고 믿는 것보다 듣고 믿기를 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에 의해 이 세상에 보내심을 받은 분이십니다. 주님은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곳에 오셔서 자기의 사역을 충성스럽게 감당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성전에서 큰 소리 외쳐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거니와’(28). 예수님은 사람들이 자기의 육적 기원에 대해 알고 있음을 인정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이 알지 못하는 신적 기원에 대하여 밝히셨습니다.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니라’(19).

 

19세기 초 몇몇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소위 예수전이라는 책을 통하여 예수님의 생애를 역사적으로 재구성하고자 하는 시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처럼 예수님의 일대기를 추적하여 낱낱이 연구한 학자들도 인간 예수의 기원만 추적했을 뿐 신적 기원에 대한 예수를 알지도 못하고 인정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인간 예수의 기원만 알 뿐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하나님에게서 왔고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라는 사실을 믿지 못하면 구원과 관계가 없습니다. 요한복음 17:3에서 예수님이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이 땅에 오셨음을 알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한일서 4장의 말씀입니다. “14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언하노니 15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14-15).

 

그리스도의 존재와 사역은 여기에서 끝나지 아니하시고 지상에서의 모든 사역을 완수하시고 본향으로 귀환하셨습니다. 주님은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34). 예수님은 이번 초막절을 지내고 다음 해 유월절에 십자가에 죽으신 후에 본향인 하늘나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때에는 예수님을 찾아도 만나지 못할 것이고 예수님이 계신 곳에 오지도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의 목적지는 분명합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그곳으로 다시 귀환을 하는 것이고 그 길을 영광의 길인 것입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주님이 가시겠다는 그 길을 알지 못함으로 엉뚱한 소리를 했지만 오늘 우리는 그분 가신 그 길을 잘 앎으로 우리도 믿음으로 그 길을 걸어가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주님처럼 진리를 외치며 그 길을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고난의 길임과 동시에 영광의 길인, 주님 가신 그 길을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찬송/ 비바람이 앞길을 막아도...

기도 제목/ 주님가신 그 길을 믿음으로 따라가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자유게시판 목록
구분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2025 5 25 <누구든지 내게로 와서 생수를 마셔라> 운영자 2025.05.25 0 73
다음글 2025 5 11 <예수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 운영자 2025.05.11 0 109

15010 경기 시흥시 배곧4로 42 (정왕동, 소망교회) 소망교회 TEL : 031-431-4817 지도보기

Copyright © 소망교회. All Rights reserved. MADE BY ONMAM.COM

  • Today4
  • Total360,997
  • rss
  • 모바일웹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