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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5 25 <누구든지 내게로 와서 생수를 마셔라>
이정현 목사 2025-05-25 추천 0 댓글 0 조회 74
[성경본문] 요한복음7:37-52 개역개정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40. 이 말씀을 들은 무리 중에서 어떤 사람은 이 사람이 참으로 그 선지자라 하며

41.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라 하며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

42. 성경에 이르기를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이 살던 마을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며

43. 예수로 말미암아 무리 중에서 쟁론이 되니

44. 그 중에는 그를 잡고자 하는 자들도 있으나 손을 대는 자가 없었더라

45. 아랫사람들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로 오니 그들이 묻되 어찌하여 잡아오지 아니하였느냐

46. 아랫사람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 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니

47. 바리새인들이 대답하되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48.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자가 있느냐

49.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

50. 그 중의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그들에게 말하되

51.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심판하느냐

52.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찾아 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하였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5525일 요 7:37-52 누구든지 내게로 와서 생수를 마시라

 

지난번 시간에는 예수님에 대한 예루살렘 사람들의 반응과 유대 지도자들의 반응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오신 분이신지는 알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메시아인지는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다수가 믿었다고 했지만 확실한 신앙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믿지 않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자도 많았습니다.

 

또한 유대 지도자들의 반응은 예수님의 오고 가심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경멸하는 투로 말하고 잡아서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지난번 본문의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한 반응이 부정적으로 좋지 못하였고 믿은 사람도 상당수 있었지만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은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초막절은 715일부터 한 주간 이루어지는 절기입니다. 여기에 하루를 더하여 8일 동안 지켜졌는데(23:36, 29:35) 이 날은 성회로 모였습니다. 이 날을 명절 끝날 곧 큰 날이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초막절 기간에 날마다 했던 행사가 하나 있었습니다. 제사장들이 매일마다 실로암 못에 가서 물을 길어서 성전 마당에 있는 돌 항아리를 가득 채워 흘러 넘치게 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은 그들의 선조들이 광야에 있었을 때 반석에서 이적으로 솟아 나온 물이 흘러넘쳐 풍성히 공급하여 주신 것을 기념하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자신들의 삶에 물을 풍성히 공급해 주실 것을 기대하였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초막절 마지막 날에 모여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물을 풍성히 공급해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37)고 하셨습니다. ‘누구든지는 어떤 사람이든지, 아무나라는 뜻으로 이는 하나님의 구원이 보편적이다, 어떤 사람도 차별하지 않으신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목마른 사람은 누구든지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목마름은 육신적인 목마름 즉, , 명예, 쾌락, 안락, 방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목마름, 결핍함, 굶주림을 말하는 것입니다. 죄용서와 구원에 대한 갈증, 그리스도와 진리에 대한 목마름, 하나님을 알기 원하는 갈망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이런 갈급함과 목마름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게로 와서 마시라는 것은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니고 메시야로서 하실 수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 물 즉, 생수를 소개한 말씀이 아니고 생수를 가지고 있는 유일한 자기에게 와서 그 물을 마시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는 예수님만이 인류의 갈증을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인류의 갈증과 목마름과 기대와 소망을 채워 주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당당히 외치신 것입니다. 목마른 사람은 누구든지 나에게로 와서 마시라.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인류의 갈증을 참으로 만족시키신다는 사실은 지난 2,000년 동안의 진실한 기독 신자들의 경험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 땅을 스쳐 지나간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적인 목마름과 갈증을 해소하여 왔고 지금도 해소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해결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초청에 응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다 갈증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38)고 하셨습니다. 앞 구절의 말씀과 함께 이 구절은 예수님의 위대한 선포적 말씀입니다. ‘나를 믿는 자는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세주로 믿는 사람, 그리하여 구원을 받은 사람을 말합니다. 단순히 교회의 숫자에 가입된 사람을 말하지 않고 신자들, 성도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성경에 이름과 같이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온다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된 성경 구절들이 몇몇 있습니다(43:20, 44:3, 55:1, 58:11, 47:1-12, 3:18, 13:1, 14:8).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43:20).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내 자손에게 나의 복을 내 후손에게 부어 주리라’(44:3). ‘그 날에...유다 모든 시내가 물을 흘릴 것이며 여호와의 성전에서 샘이 흘러 나와서 싯딤 골짜기에 대리라’(3:18).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모든 생물이 살아나고’(47:9). ‘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14:8). 이런 모든 구약의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 말씀을 통하여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결국 이 예언들을 성취하신 것입니다. ...

 

그리고 여기의 그 배에서라는 말은 성령님께서 신자의 가장 깊은 심령 속에서 역사하실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신자의 가장 깊은 곳에서라는 뜻입니다. 여기의 배는 무엇인가 채울 것이 필요한 신채 부위입니다. 바울은 그의 신은 배요’(3:19)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이는 배가 가장 큰 관심과 돌봄을 받기 때문에 신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배는 결코 만족하지 아니합니다. 왜냐하면 항상 그의 욕구를 해소시켜 줄 무엇인가를 갈망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 신자의 영적 욕구를 만족시켜 줄 생수가 그 안에서 넘쳐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생수는 성령님을 비유하는 것이고 그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이 무엇을 말하는지 다음 구절에서 분명하게 설명해 줍니다...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으면 구원을 받고 구원을 받은 사람에게는 성령님이 오셔서 그 안에 내주하여 계십니다. 이때 오신 성령님은 나를 떠나지 않으시고 영원토록 함께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 이후는, 다시 말해서 믿는 자에게 성령이 내주 하시면 그때부터 그 안에서 생수의 강물처럼 은혜와 사랑과 기쁨과 감사와 복이 흘러 넘치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성령을 선물로 받은 사람들은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각종 좋은 은혜와 은사와 좋은 것들, 생명이 흘러 넘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괄호 안에 있는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아직 영광을 받지 아니하셨음으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아직 영광을 받지 않았다는 말은 아직 승천하지 않으셨다는 뜻입니다. 주님이 부활 승천하셔야 성령님께서 오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아직 승천하지 않으셨음으로 성령님이 아직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이제 그 시대가 곧 올 것입니다. 2위 성자 하나님의 승천과 3위 성령 하나님의 강림이 곧 오실 것입니다. 그 때가 되면 성령님은 강수와 같이 풍성하게 임하시어, 우리와 교회 안에 유하시며 우리와 교회를 근거로 하여 세상에 풍성히 흘러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성도들이 약속된 성령을 충만히 받게 될 것입니다. 구약에 이미 약속한 것처럼 남녀 종들에게 하나님이 성령을 물붓듯 부어주실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제자들에 의하여 이제 곧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일어 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 ‘목마른 사람은 나에게로 와서 생수를 마시라는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 중에 두 개의 다른 반응이 일어 났습니다. 하나는 이 사람은 참으로 그 선지자다’(40)라는 반응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모세가 예언했고 이스라엘이 고대했던 그 선지자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이 사람은 그리스도이다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은자 곧 메시아라는 의미입니다. 말씀을 듣고 아 이분이 바로 구약에 예언되어 있는 그 메시아이다라고 인정을 하고 믿은 것입니다. 이분들은 앞 절에 나오는 사람들보다 예수님에 대하여 훨씬 더 바르고 진전된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여집니다.

 

이 예수가 그리스도이다라고 하니까 주변의 사람들이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 성경은 분명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이 살던 마을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41-42)라고 했습니다. 이런 비판을 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갈릴리 출신으로만 알았지 그 이전의 삶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 어리석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주님의 탄생과 베들레헴 목자들의 경배와 동방박사들의 경배와 애굽으로의 피신과 갈릴리에서의 유년 시절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단순히 갈릴리에서 태어나 갈릴리에서 자란 것으로 생각하고 이 사람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을 보니까 이 사람은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판단을 한 것입니다. 그들은 갈릴리 출신의 예수를 메시아로 연결시킬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들은 죄로 인하여 마음이 어두어졌기 때문에, 유일한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대해서 이렇게 저렇게 견해를 달리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로 서로 논쟁만 벌이고 있었습니다.

˃

본문의 두 번째 부분은 예수님이 목마른 사람은 나에게로 와서 생수를 마시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믿지 않았습니다(45-52).

 

45절에 아랫 사람이 또 등장하는데 이들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잡아 오라고 보낸 성전 수비대원들입니다. 이들이 보냄을 받아 예수님이 말씀 전하시는 그곳에 가서 적어도 3일 이상 그 주변의 상황도 살피고 예수가 전하는 말도 듣고 사람들의 반응도 살폈지만 예수님을 잡아 오지는 못하였습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어찌하여 잡아 오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합니다. 이 말을 볼 때, 그들이 예수님을 해하려는 마음이 얼마나 불타 오르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당연히 잡아 올 줄 알았는데 왜 안 잡아왔어?’ 이 말에 아랫 사람들의 대답이 재미 있습니다.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 때까지 없었나이다’(46). 하속들(성전 경비원들)의 느낌에도 예수님의 말씀이 보통 사람의 말이 아니라 능력있는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그 말씀은 평민의 강연이 아니라 권세 있는 자의 말씀으로 들렸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 하속들도 압도가 되어서 예수님을 잡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잡으려고 갔던 하속들이 이렇게 말하니까 듣고 있던 바리새인들이 너희도 미혹되었느냐라고 말합니다(47). 바리새인들은 그들을 가리켜 미혹된 자들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 만큼 바리새인들은 하속들보다 마음이 더욱 강퍅하였던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지성인인척 하는 속물 근성과 종교적 교만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바리새인들이 “48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자가 있느냐 49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라고 말합니다. 바리새인들은 그 누구보다도 율법을 강조하고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려고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하속들에게 혹시 관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예수를 믿고 따르는 자가 있더냐라고 물은 것입니다. 우리 편에 있던 자들이 예수의 가르침에 현혹이 되어 그쪽 편으로 간 사람이 있더냐라고 물은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 편에 서 있는 자들을 향해 저주를 퍼붓는 것입니다. ‘율법을 알지 못하는 그 놈들은 다 저주를 받은 자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주의자들입니다. 율법을 열심히 배우고 가르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자기들 기준으로 믿는 자들을 저주한 것입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독선적인 우월 의식과 아집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누가 정녕 율법을 모르는 자들입니까? 누가 진짜로 무식한 사람들입니까?

유명한 어거스틴이라는 사람이 이 구절을 이렇게 해석을 하였습니다. ‘그 때에 율법을 모르는 무리는 도리어 율법의 제정자이신 그리스도를 믿었으나, 율법을 가르치노라고 하는 자들은 그를 정죄하였다. 그것은 그가 보지 못하는 자들을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하시리라는 말씀(9:39)의 성취이다.’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의 불신앙이 진리의 표준인 듯이 여기서 호언 장담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이 말은 결국 자기들에게로 되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결국 자기들이 율법을 알지 못함으로 멸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50절 이하에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다시 등장을 합니다. 이 사람은 유대인의 관원이며 바리새인으로 요한복음 3장에서 밤에 예수님께 찾아와서 거듭남에 대하여 배웠던 사람입니다. 니고데모가 나서서 율법에 무식한 사람에게 저주를 말했던 바리새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심판하느냐”(51). 어쩌면 바리새인들이 관원들과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자가 없느냐라는 질문에 니고데모가 나서서 그리스도를 변호하는 말을 한 것이기 때문에 은근히 당국자들과 바리새인 중에 믿는 자가 있다는 것을 말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또한 율법에 무식한 사람에게 저주를 말했던 그들의 말을 반박하면서 그의 행함을 살펴보지 않은 채 말만 듣고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한 것입니다. 역시 관원답게, 율법학자 답게,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답게, 어저면 거듭난 사람답게 니고데모는 멋진 충고를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남들을 정죄하려다가 도리어 자기들 자신을 정죄한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니고데모의 이 충고에 바리새인들이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찾아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52)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니고데모를 업신여기는 태도로 이 말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모순된 말이고 율법과 성경에 대한 그들의 무식을 스스로 증명한 것 뿐입니다. ‘상고하여 보라는 것은 율법책(혹은 성경)을 꼼꼼하게 따져서 검토하라는 말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도전적으로 자기들은 율법이나 성경의 권위자처럼 말하고 행동하지만 이것은 남들을 무시하고 교만한 처사에 불과합니다. 진짜로 성경을 깊이 있게 상고해야 할 사람은 바로 자신들입니다. 왜냐하면 선지자 요나, 호세아, 나훔이 갈릴리 출신이었는데, 그들은 갈릴리에서 선지자가 날 수 없다고 했음으로 그들의 말은 엉터리였던 것입니다.

 

결론

 

예수님이 초막절 마지막 날에 크게 외치셨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여기의 목마름은 육체적인 목마름과 치원이 다른 목마름을 말합니다, 그것은 곧 영적인 목마름이고 또한 내면의 목마름입니다. 명절의 들뜬 분위기 속에서 분주하게 오가던 사람들에게 목마름의 문제가 갑작스럽게 들릴 수도 있었지만 이것은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단적으로 말하면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입니다. 이 생수를 마시지 않고 목마름과 갈증 속에서 죽어 가느냐 그렇지 않으면 생수를 마시고 영적 갈증을 해소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육체의 목마름은 쉽게 느끼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목마르면 금방 물이나 음료수로 갈증을 해소합니다. 사람이 물을 마시지 못하면 갈증 때문에 고통을 느껴야 합니다. 만일 물을 마시지 못하는 기간이 조금만 길어져도 사람은 생명을 잃고 맙니다.

 

그런데 사람은 육적 존재일 뿐만 아니라 영적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영혼 역시 갈증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영혼의 갈증은 하나님과의 단절에서 오는 은혜의 결핍 상태를 말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존재로 자신을 지으신 하나님과 친밀히 교제하고 그로부터 오는 은혜를 받아야만 만족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영적 관계는 단절되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모든 인간이 하나님과의 영적 관계의 단절에서 오는 본능적 결핍, 곧 영혼의 갈증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히포의 주교 어거스틴이 말한 것처럼 인간의 내면에는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빈 공간이 있다. 그런데 그 빈 공간은 스스로 채울 수 없기에 인간의 갈증 문제를 어쩔 수 없이 안고 살아 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처럼 인간의 영적 문제의 갈증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십자가에서 화목제물로 죽으심으로 단절되었던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다시 회복시키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를 믿는 자는 단절되었던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함은 물론 그 회복된 관계를 통하여 내면의 빈 공간을 채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이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생수를 마시라고 외치신 것은 믿음으로의 초청임과 동시에 믿는 자가 누리게 될 은혜에 대한 약속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영혼의 목마름의 문제를 가지고 계십니까? 예수님께 나오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주시는 생수를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회복되시고 다시 여러분의 영혼이 살아나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개인의 구세주로 믿는 분들은 이미 성령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성령의 충만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배에서 생수의 강물이 흘러나와서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고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고 연약한 자들과 소망 없이 살아가는 자들에게 삶의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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