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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11 30 <아들로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이정현 목사 2025-11-30 추천 0 댓글 0 조회 18
[성경본문] 요한복음17:1-5 개역개정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

2.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제공: 대한성서공회
251130일 요 17:1-5 나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요한복음 17장은, 13장부터 이어져 오는 예수님의 다락방 강화의 결론 부분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주님이 직접 길게 기도하신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세 가지 기도가 나옵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통하여 아버지께서 영화롭게 되기를 기도하셨고 그의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셨으며 먼 미래의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과 그 가운데 기록된 예수님의 기도에 대한 평가들이 많습니다. 메튜 헨리라는 주석가는 세상에서 지금까지 드려진 기도 중 가장 탁월한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종교개혁자 멜랑히톤이라는 사람은 죽기 전 주님의 이 기도에 대하여 아들이 하나님께 바친 이 기도야말로 하늘에서나 땅에서나 우리가 들어온 것 중 가장 숭고하고 가장 거룩하며 가장 결실이 충부하고 가장 탁월한 기도이다라고 극찬했습니다. 존 브라운이라는 학자는 요한복음 17장보다 더 놀라운 내용은 없으며 여기에는 은혜로 충만하고 진리로 충만하다고 했습니다. 이같은 세계적인 영적 거장들의 말에 근거하여 볼 때 요한복음 17장은 대단한 진리가 담겨져 있는 아주 중요한 예수님의 탁월한 기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은 1-5절을 근거로 예수님이 자신을 통하여 아버지께 영광이 되기를 원한다고 기도하신 것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경청함으로 깨닫고 은혜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1절 말씀은 매우 중요하고 본문의 핵심 구절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1).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셨다는 것은 요한복음 13장부터 16장까지의 다락방 강화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세상에서 환란과 핍박을 당하게 될 제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씀을 주님이 마치셨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세상으로부터 환란과 핍박을 당할 때 넘어지거나 신앙을 포기하지 않게하기 위하여 길게 권면한 말씀을 마치셨습니다.

 

이제 그의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취하였던 전형적인 자세이고 또한 유대인들의 일반적인 기도의 자세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의 예수님의 눈은 제자들을 향해 있었는데 이제 그의 눈은 하늘을 향하게 되었습니다. 바라보는 눈의 방향, 그 대상이 바뀐 것입니다. 제자들에게서 하늘, 즉 아버지가 거하시는 처소인 하늘을 쳐다보게 된 것입니다. 땅에 있는 제자들을 보셨던 주님이 이제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을 우러러 본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존귀하신 하나님을 우러러본다는 의미입니다. 주님은 설교를 하신 후에 이제 하나님을 우러러보며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때가 이르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절부터 시작해서 26절까지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을 대상으로 기도하십니다. 본장에서 예수님이 여러번이나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기도하십니다(5, 11, 21, 25). 성자 예수님의 기도의 대상은 제1위 성부 하나님이십니다. 본문에서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고, 주님이 기도를 가르쳐 주실 때에도,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시면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며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성령을 선물로 받은 사람은 누구든지 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양자의 영을 받은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8:15, 4:6). 그러므로 우리는 자녀로서 아버지에게 자유롭게 당당하게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11절에서 하나님을 거룩하신 아버지라고 했고 25절에서는 의로우신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로서 담대하게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의 대상도 성부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예배의 대상이시고 찬송의 대상이시고 또한 기도의 대상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그 어떤 우상들에게 기도하는 것 아닙니다. 하늘의 성자들이나 마리아에게 기도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성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그렇게 가르쳐 주셨고 주님이 그렇게 본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라고 하셨는데 여기의 때는 자신의 죽음의 때를 말하고 더 나아가서 부활과 승천을 말한다고도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셔야 할 때가 가까이 왔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지금 십자가를 지시기 이전 날이기 때문에 십자가 수난의 때가 가까이 왔다는 것입니다...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라는 말은 앞에 나오는 때와 같이 사용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때가 바로 아들을 영화롭게 할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것이 아들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고 뜻입니다. 요한복음 앞에서는 예수님이 나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했다(7:30, 8:20)고 하셨는데 이제는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고 하셨음으로 이는 그만큼 주님의 죽음의 때가 가까이 왔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아들을 영화롭게 해 달라는 기도는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아버지의 뜻을 이룸으로 아들을 영화롭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아들을 영화롭게 해 달라는 기도는 뒤에 나오는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라는 기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목표는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인즉 주님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자체부터 아버지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시고 많은 표적과 이적을 통하여 또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여 받게 하시는 것을 통하여 아버지의 영광을 추구하셨습니다(2:11, 11:4, 40, 14:13). 오늘 본문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주님은 아버지의 영광만을 추구하며 살아오셨습니다.

 

여기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한다또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는 말은 자신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과 위엄을 드러낸다는 뜻입니다. 달리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통해 그분을 높이고 공경하는 것을 말합니다. 결국 여기서 주님이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라는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자신의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냄으로 하나님을 높이고 영광을 드러내게 해 주십시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자신을 위한 기도이지만, 실제적 궁극적으로는 아버지의 영광을 위한 기도입니다. 여기서도 주님은 자신의 영광을 추구하지 않으시고 오로지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기를 기도하신 것입니다. 오직 자신의 뜻을 버리고 아버지의 영광만을 추구하는 삶을 사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성자의 관심은 늘 성부의 영광에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이어지는 2절에서는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다고 말합니다. 이 권세는 심판과 아울러 영생을 주실 수 있는 권세를 말합니다. 요한복음 5장에서도 이미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이런 권세를 주셨다고 말씀하시고, 오늘 본문에 이어,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직전에도 아버지께서 나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아버지께서 주신 이 권세로 만민을 통치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서 이런 권세를 가지시고 행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권세를 주신 목적이 무엇일까요? 본문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2)라고 하셨습니다. 2절의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는 예수님의 열 두 제자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좀 더 포괄적으로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8:28) 곧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모든자들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6:39에서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신 바가 있습니다. 창세 전에 선택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들에게 영생을 주시려고 주님이 아버지로부터 권세를 받으셨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그의 아들에게 주신 권세의 목적이 강압적인 통치나 자기의 정욕적 만족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너무 아름답고 선하고 고귀한 것이고 바로 우리를 위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영원한 지옥의 구덩이에서 멸망하지 않도록 하시기 위하여,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게 하시기 위하여 주님에게 심판과 영생의 권세를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실 때 그 복음을 듣고 받아들이면 그들에게 영생을 주시고 그러나 복음을 듣고도 거절하고 배반하면 심판을 주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실 때 그 말씀을 잘 듣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믿고 마음에 구세주로 영접하면 바로 그 사람에게 영생을 주시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면 영생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영생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아는 것이라’(3)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3).

 

영생은 예수님을 믿는 것일뿐만아니라 예수님을 알고 경험하는 것입니다. 여기의 알다’(기노스코)라는 단어는 지적인 지식을 말하지 않고 관계적 지식을 말하고 경험적인 지식을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믿고 신뢰하고 순종하고 경험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갖게되는 주님을 아는 것입니다. 구약의 호세아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므로 망한다’(4:1, 6)고 말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호세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고 권면했던 것입니다(6:3). 이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관계적 지식이고 경험적 지식입니다.

주님은 선택된 자들에게 영생을 주시는 권세를 가지신 분이시며 동시에 불순종하는 자들을 심판하시는 권세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3절에서 하나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요한이 하나님에 관하여 표현하면서 유일하신 참이라는 말을 덧붙였는데, 여기서 유일하신이라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신데 여기서 유일신 하나님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단들은 이 구절을 근거로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아니라 신으로서의 하나님은 한분뿐이라고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예수님이 여기서 자신과 성령의 신성을 부인하고자 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여기서 유일하신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무슨 의미이겠습니까? 핑크는 두 가지로 설명합니다. 먼저, 그리스도께서 여기서 이방의 신들을 배제하고 아버지 안에 있는 신성만이 유일하고 참되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하셨습니다. 거짓 신들, 이방의 우상들을 배제한 것이지, 성자와 성령의 신성을 배제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한분 외에는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단지 신이라고 불리우는 다른 모든 신들을 부인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아버지 안에 있는 신성만이 유일하고 참되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것입니다. 둘째로 그리스도께서 이 구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내용은 구원의 순서와 경륜에 관한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구원의 경륜에 관해서는 다른 위격보다 성부 하나님의 위격은 언제나 왕적 위엄이 있는 최고의 통치자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주님도 이런 면에서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14:28)고 말했고 성령도 하나님의 종이라’(4:17-23, 16:13)고 표현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순서에서 아버지는 전체 신성을 대표하는 주역이신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가 신성의 창시자요 근본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여기에서 하나님을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시라고 부른 것은 단일신론을 인정하고 삼위일체 하나님을 부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다른 모든 이방 신들의 배제하고 오직 오직 아버지 안에 있는 신성만이 유일하고 참되시다는 것을 말하고 또한 구원의 순서에서 아버지는 전체 신성을 대표한다는 의미로 사용이 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고 경배하는 자들입니다.

마지막 4-5절의 말씀을 한 번 더 읽어보겠습니다. “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지금까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살았습니다. 아들이 어떻게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며 사셨습니까? 그것은 아버지께서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룸으로이 세상에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하라고 주신 일이 무엇입니까? 예수께서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일이 무엇입니까? 단적으로 그것은 곧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고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인류를 구원하고 그들에게 영생을 주는 것입니다. 주님은 바로 이것을 이루심으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였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아직 십자가를 지시기 이전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시간적인 성취의 의미보다는 실패할 수 없는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라는 차원에서 이해하여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 분명히 이루어진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이렇게 고백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인류 구원의 일을 시작하신 분은 하나님 아버지이시고 대속적 죽음으로 그 일을 이루신 분은 아들이시십니다. 아들은 이 일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시기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창세 전에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를 거론하며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본서의 저자 요한은 이미 영원 전부터 예수께서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계셨음을 진술하고 지금은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육신을 입으신 그리스도의 선재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두 번이나 아버지와 함께있었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앞에는 성육신 이전 상태로서의 하늘 영광의 회복을 바라보는 것이며, 뒤에는 십자가의 승리로 인해 얻게 될 영광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세상 만물이 존재하기 이전에 계셨던(1:1, 8:58, 16:28) 아들의 신성과 영광은 성육신을 통해 비천한 인간의 모습으로 스스로 비하(卑下)되었습니다. 그는 하늘 영광을 스스로 버리고서 완전한 인성으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분은 이제 십자가를 앞에 두고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계획과 권능과 지혜를 드러내심으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해 드리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결론

 

오늘 본문의 핵심 내용은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주기도문 제일 첫 번째 간구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입니다. 이같은 사실에 근거하여 볼 때 오늘 우리가 우선적으로 기도해야 할 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말이나 행동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의 사역을 완수하심으로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하라고 하신 일을 온전히 이루셨습니다. 십자가라는 하나님의 뜻을 이룸으로,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영광을 크게 드러내신 것입니다. 그 주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사역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 일에 충성을 다하여 하나님의 위엄과 능력과 지혜와 위대하심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해야 할 하나님의 일은 무엇일까요? 하나님 앞에서 인자와 공의와 겸손을 보이는 것입니다(6:8).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여 제자를 삼는 것입니다(28:19-20). 주변에 있는 궁핍한 사람을 돌보아 주는 것입니다(1:27). 다른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13:16). 무슨 일이 주어지든지 간에 맡은 자로서 충성을 다하는 것입니다(고전 4:2). 이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우리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삶의 목적이 아버지의 영광을 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도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 간절히 바라고 원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도 하나님의 영광에 두고, 우리의 말과 행동도 하나님의 영광에 둘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처럼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데 초점을 맞추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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