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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2 8 <성자 예수님>
이정현 목사 2026-02-08 추천 0 댓글 0 조회 104
[성경본문] 마태복음16:15-16 개역개정

15.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2628일 마 16:15-16 성자 예수님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15-16).

 

고백은 나의 마음을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초기 기독교에 있어서 고백은 매우 중요한 신앙생활의 방식이었습니다. 로마서 10:10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했습니다. 마음으로 믿는 것을 입으로 시인해야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시인 즉, 진실한 고백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입으로 주님을 부인하면 주님께서도 하늘의 천사들 앞에서 우리를 부인하겠다고 하셨고 시인하면 또한 시인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고백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점을 고백하고 공개할 때 신앙적 자신감과 신앙인으로서의 책임감을 가지게 됩니다.

 

지난주에는 성부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살펴보았습니다.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나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나는 그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습니다. 이런 고백이었습니다.

 

오늘은 사도신경의 두 번째 고백으로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라는 고백입니다. 지난주에는 성부에 대한 신앙고백이었다면 오늘은 성자에 대한 고백입니다. 그런데 성자에 대한 고백은 대단히 길게 되어 있어서, 이 시간에는 그 일부만 살펴보겠습니다.

 

사도신경의 두 번째 부분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성자 예수님에 대한 종합적인 이 고백은 무슨 뜻입니까?

 

1. 나는 예수님을 그 유일하신 아들로 믿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그 유일하신 아들로 믿는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의 독생자로 믿는다는 말입니다. 과거의 번역에 표현된 외아들이라는 말은 성경에 없는 표현이고 더 정확한 표현은 독생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독생자라는 말은 한문으로 홀로 독(), 날 생(), 아들 자()자를 써서 홀로 태어난 아들’, 또는 스스로 태어난 아들이란 뜻입니다. 외아들이라는 말은 독자(獨子)라는 말인데, 사실 예수는 독자가 아니라 독생자(獨生子)이십니다.

 

세상 어느 누구도 스스로 태어날 수 없고 반드시 부정모혈의 관계 아래에서 태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스스로 인간 세계로 태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실만 가지고도 독생자 예수는 곧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번역에서는 유일하신 아들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아들이란 말이 대략 세 가지 의미로 사용 되었습니다. 첫째로 넓은 의미에서 창조되었다는 뜻에서, 세상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좁은 의미로 예수 이름으로 구원받은 자들을 하나님의 자녀라고 합니다. 셋째로 더 좁게 말해서 예수께서 하나님의 본체이시기에 예수를 일컬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예수를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하셨으니, 이런 의미에서 보면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독생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독생자는 곧 하나님이십니다. 즉 예수가 곧 하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소 새끼가 소이고 돼지 새끼가 돼지이고 사람의 아들이 사람이듯이 하나님의 아들은 곧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은 예수가 신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에 예수가 신인가 아니면 단순한 인간인가? 라는 문제를 가지고 오랫동안 논쟁을 했었습니다. 오리겐(Origen)이라는 사람은 이 문제를 얘기하다가 유출설이라는 것을 말했습니다. 이것의 의미는 큰 그릇에 물이 가득 들어 있으면, 그 그릇에서 물이 흘러 작은 그릇에 담기고 그 그릇에서 또 물이 흘러 다른 그릇에 차게 됩니다. 이렇듯, 제일 처음의 큰 그릇이 하나님이신데 그 하나님에게서 예수가 흘러 나왔다는 얘기입니다. 여기서 흘러나왔다는 말은 창조되었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를 창조하였고 예수가 다른 만물을 창조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리겐은 유출설을 주장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예수에게 신성이 있는가라는 물음에 50%는 인성을 가졌고 50%는 신성을 가졌다고 했습니다. 영어로 말하면 예수는 semi-God인 것입니다.

 

아리우스(Arius)라는 사람은 예수가 하나님은 아니다. 하나님도 하나님이고 예수도 하나님이라면 하나님이 둘이 된다. 그래서 예수는 하나님이 아니고 피조물 중에 독특하게 지음 받은 존재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런 논쟁 끝에 아다나시우스(Athanasius)라는 학자가 나와서, 자기가 성경을 읽어보니까 예수가 하나님과 비슷한 분이 아니라 동일한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 사람은 주요 직책을 파면 당하면서도 예수는 하나님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다가 콘스탄티노플 시대 때 150여명의 학자들이 모여서 이 문제를 가지고 오랫동안 연구하면서, 예수님에게 직접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예수님, 진정으로 당신은 누구십니까? 하나님이십니까? 인간이십니까?” 예수님이 응답해 주셨겠습니까? 예수님은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랍게도 이 학자들이 동일하게 예수는 참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하나님이시다. 독생하신 하나님이시다라고 연구결론을 내렸습니다. 사실은 성령께서 이들의 마음을 주장하셔서 이런 결론을 주셨던 것입니다.

 

이 같은 논쟁이 현대에는 그리 많지 않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의심 없이 예수를 하나님의 독생자로, 곧 하나님으로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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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세례를 받을 때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말은 곧 나와 같은 신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공생애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자신에 대해서 사람들이 무어라 하는지 궁금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더냐?” 제자들은 사람들이 주님을 세례요한, 엘리야, 예레미야, 선지자로 이해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다시 물으셨습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 물음에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것도 곧 당신은 하나님 이십니다라는 고백입니다.

 

요한복음 마지막 부분에서 예수님이 의심 많은 도마를 찾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이 도마에게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이때 도마가 예수님에 관해,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의심하던 자가 위대한 고백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고 증거 하셨듯이, 그 본체에 있어서 아들과 아버지는 하나이시며 동일한 신성을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요즈음에는 자기가 독생자라고 하거나 하나님의 외아들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이비 독생자, 거짓 외아들을 믿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의 유일하신 아들을 믿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를 그의 유일하신 아들로 믿습니다.

 

2. 나는 예수님을 주(The Lord)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을 우리 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라는 말은 나의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라는 말은 당시 로마시대의 노예들이 주인에 대하여 사용하던 표현입니다. 노예는 주인의 소유물로서 자신에 대한 어떤 권리도 가질 수 없었지요. 그러므로 예수님을 라고 고백함은 예수님을 주인으로 섬긴다는 신앙적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이 고백은 나의 전 존재, 삶과 죽음,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주권을 주님께 맡깁니다라는 뜻입니다. 나는 나에 대해 어떤 권리도 없다는 말입니다. 이 고백은 대단히 중요한 고백입니다.

 

라는 말은 구약에서는 대부분 성부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예레미야 3217절에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다음과 같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큰 능력과 펴신 팔로 천지를 지으셨사오니 주에게는 할 수 없는 일이 없으시니이다.” 여기서의 주는 여호와와 동격이며 전능자 하나님과 동일한 분을 가리킵니다.

 

신약에서의 는 대부분 성자 예수님을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22절에서 마태는 거짓선지자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 마가복음 1431절에서는 예수님께 충성을 다짐하는 베드로의 모습이 나타나 있습니다. “베드로가 힘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이 성구들에 나타난 주는 모두 제2위이신 성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가 같이 나타날 때가 있는데, 이 때의 주도 성자를 가리킵니다. 예를 들면 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 “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그리고 마가복음 1619절에서도 승천하시는 성자 예수님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이런 경우의 주도 성자 예수님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렇게 나름대로 구분하는 것은 여러분이 성경을 읽을 때 이 가 누구를 가리키는지를 잘 알아야 좀 더 분명히 말씀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가 성부로 사용되었는지 아니면 성자로 사용되었는지를 구분하라는 것입니다.

 

사도신경 가운데 나오는 주는 예수님을 가리키며 우리가 그 예수를 주인으로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주인이시며 창조의 주, 섭리의 주, 구원의 주, 심판의 주가 되십니다.

 

요한복음 1313-14절에서 예수님이 친히 자신을 가리켜 이런 얘기를 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예수님은 분명히 내가 주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036절에서 베드로는 예수는 만유의 주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이 말은 이 세상 모든 것의 주인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이 사실을 사도가 증언한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서 여러분의 주인은 누구십니까? 현대인들은 주인이 너무 많습니다. 자기 자신이 주인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습니다. 내 인생은 내 것이라는 거지요. 그래서 자기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자기의 몸을 아무렇게나 굴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혹자는 나의 주인은 당신이야라고 말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도 못하고 남편이나 아내에게 매여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나의 주인은 돈이다, 권력이다, 명예다라고 말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평생동안 그것들을 주인으로 섬기며 따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주인으로 섬기면 나중에 비참한 노예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만 연안에 폼페이라는 도시가 있었습니다. 이 도시는 베수비오 산의 남동쪽에 위치한 항구 도시였습니다. 농업과 상업의 중심지였고 산, 평야, , 바다가 어우러져 있는 곳으로 경관도 무척이나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이 도시는 일찍부터 휴양지로도 유명해져 더욱 번창하였습니다. 이처럼 번창하던 아름다운 도시가 어느 날 갑자기 지구상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A. D. 798월에 일어난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2, 3m 두께의 펄펄 끓는 용암과 화산재에 완전히 덮여버린 것입니다.

 

이곳에 한 탐욕스런 여인이 살았는데 그 여인은 무척이나 아름다워서 많은 남성들의 사랑을 독차지하였습니다. 화산이 폭발했을 때 그 여인은 많은 남성들의 도움을 받아 얼마든지 생명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 여인이 지나치게 보석과 장신구들을 좋아했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뜨거운 불덩이들이 시가지로 쏟아지자 정신없이 항구를 향해 달렸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집에 두고 온 보석과 장신구들이 생각났습니다. 그 여인은 도저히 그것들을 두고 몸을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달려가던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리고는 뒤돌아서서 자신의 집으로 다시 달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닥치는 대로 보석과 장신구들을 챙겨서 가슴 가득히 끌어안았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거리로 뛰쳐나와 항구를 향하여 달리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피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어버렸습니다. 도저히 그녀를 뒤쫓아 오는 화염을 피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조금씩 조금씩 그녀의 발걸음을 따라잡던 화염은 마침내 그녀와 그녀가 그토록 아끼던 보석과 장신구들을 삼켜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폼페이를 뒤덮은 용암 속이 아니라, 그녀의 마음을 가득히 채우고 있었던 탐욕에 묻혀 죽고 말았습니다. 세상 쾌락과 돈과 이성을 주인으로 섬기는 사람들의 인생의 마지막은 이처럼 비참해 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믿고 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10:9).

 

내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는 것이 이렇게도 중요한 것입니다. 구원을 받을 뿐만 아니라 한량없는 은혜와 사랑을 주인으로부터 받을 수 있습니다. 성경의 도마처럼 당신은 나의 주십니다라고 고백하고 그 믿음대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3. 나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습니다.

 

신앙고백에서 그리스도라는 말은 기름부음을 받으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래 전부터 예언자를 통해서 만민을 구원하실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보내겠다고 하셨는데 바로 그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리스도를 히브리어로 번역하면 메시야가 됩니다. 메시야는 구세주,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내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다는 말은 곧 내가 예수를 구세주로 믿습니다라는 고백과 같습니다.

 

초대교회 때에는 이 고백이 중요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이단 중에 영지주의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 이단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예수는 평범한 인간이었는데 세례를 받을 때 예수가 그리스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후로 메시야의 공생애를 살다가 십자가에서 죽을 때에는 그리스도는 영이시므로 죽지 않고 예수만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를 믿으면구원을 받을 수 없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고 행동을 본받아야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합니다. 이 같은 주장은 전부 엉터리입니다.

 

예수는 처음부터, 태어날 때부터 구세주요 메시야 이십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며 그리스도가 예수인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도 그리스도가 돌아가신 것이고 그리스도가 부활하여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으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이해가 잘 안 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은 이해가 안 되더라도 우리의 것을 그대로 믿으면 됩니다.

 

사도행전을 읽어보시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제자들이 곳곳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였을 때 듣고 믿는 자도 많았지만 반대하고 핍박하는 자들도 많았습니다. 그런 핍박과 고난을 받아도 그들은 쉬지 않고 담대히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사도행전 5장 끝 부분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능욕 받는 것을 기뻐하면서 그들은 날마다, 어디에 있든지 간에,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할 말도 많았을 것이고 그리스도의 주옥같은 말씀, 십자가와 부활도 얘기할 수 있었을 것인데 그것들을 제쳐 두고 예수는 그리스도다라는 진리를 전하고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8장으로 가면 사도바울이 2차 전도여행 때 고린도에 이르러서 그곳에 있는 많은 유대인들에게 동일하게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진리를 전하였음을 볼 수 있습니다.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18:5). 여기서 밝히 증언한다는 말은 확신시키기에 힘썼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예수가 참 메시야라는 사실을 그곳의 유대인들에게 확신시키기에 힘썼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이단이었던 영지주의자들이 예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라고 주장했기 때문이고 또한 유대인들이 예수를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로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예수는 날 때부터 영원 전부터 메시야이시며 구원자이심을 전한 것입니다. 이것이 너무 귀중한 진리였기 때문에 그들이 어디에 있든지 이 사실을 전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었을 때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베드로의 고백은 정확했습니다. 예수는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이며 인류의 구원자라는 고백입니다.

 

우리는 매 주일마다 이 고백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내가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는데 당신이 나를 구원해 주셨습니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모는 나에게 몸을 주셨음으로 귀하지만, 예수님은 나를 죄로부터 해방시켜 주시고 죽음으로부터 구원해 주셨음으로 더 귀한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예수님을 가리켜서 나의 구세주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 고백은 나의 일생, 나의 가치관, 나의 목적이 그분 안에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라 부르는 것입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자를 주께서 외면치 않으십니다. 반드시 도와주시고 함께하시며 인도해 주십니다.

소아시아에 흩어졌던 초대교회 성도들과 유럽과 로마에 흩어져 살았던 수많은 기독교인은 신앙 때문에, 복음 때문에 많은 고난과 핍박을 받았습니다. 신앙 때문에 산업을 빼앗기기도 하고 몰매를 맞기도 하고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심지어 짐승과 창과 칼에 의해 죽기도 하였습니다. 복음 때문에 그들이 겪었던 고통과 수모는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특히 로마로부터 압제를 받았을 때는 더 심하였습니다.

 

이 같은 환란과 고난 속에서도 그들은 로마의 감시를 피해 자주 모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성찬을 나누며 기도하고 조용히 찬송하며 구제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많아져서 그들만이 알아차릴 수 있는 그리스도인의 표시를 만들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물고기 표시입니다. 공공장소에서 비밀리에 서로를 알아보는 방법 중에 하나가 바로 이 물고기 모양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발로, 땅위에 물고기 모양의 윗부분의 반을 그리면 다른 사람이 다가와서 그 나머지 아래 부분의 반을 그렸으며 이런 약속을 통해 그들은 서로가 같은 믿음을 가진 자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물고기에 해당되는 고대 헬라어는 익투스’(IXθYΣ)입니다. 그런데 각각의 글자는 약어로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 아들, 구원자를 뜻합니다.

IXθYΣ

I : Iesus (예수스 : 예수)

X : Christus (크리스투스 : 그리스도)

θ : Theos (데오스 : 하나님)

Y : Huios (휘오스 : 아들)

Σ : Sojomete (소조메테 : 구원자)

 

그래서 단순해 보이는 물고기라는 단어 속에는 다음과 같은 거대한 신앙고백이 숨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그래서 물고기 표시는 기독교를 박해했을 때 기독교인 상호간의 암호로써 사용되었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신앙고백으로도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물고기를 그리며 서로를 확인했고 물고기를 그리며 서로를 위로했고 물고기를 그리며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며 살았습니다.

 

결론

 

예수가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이심을 믿습니다.

예수가 우리 인생의 주인이심을 믿습니다.

예수가 나의 구세주이심을 믿습니다.

 

이 고백으로 서로가 형제자매요 지체임을 확인하시고 서로 위로하며 서로 사랑하며 서로 은혜를 나누며 살아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찬송/

기도 제목/ 나는 믿습니다. 예수님은 유일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구세주이심을 믿습니다.

이 고백들이, 우리 가족들의 고백이 되게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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