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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2 22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
이정현 목사 2026-02-22 추천 0 댓글 0 조회 67
[성경본문] 고린도전서15:1-8 개역개정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2.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5.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6222일 고전 15:1-8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

 

신학교에서 예수님에 관해 공부하는 것을 가리켜, 기독론을 공부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기독론을 공부할 때에는 반드시 두 가지로 나누어서 공부를 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입니다. 인격에는 또 두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신성과 인성입니다. 예수님은 인간과 달리 온전한 인성에, 온전한 신성을 가지고 계신 분이십니다. 이것을 어렵게 이성일인격자라고 합니다.

 

사역에도 마찬가지로 두 가지 즉, 낮아지심과 높아지심이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본 것이 예수님의 낮아지심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낮아지심, 즉 단계적으로 낮아지심을 예수님의 비하라는 말로도 표현합니다. ‘성령으로 잉태하시고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가 되신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비하에는 구체적으로 다섯 단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잉태, 탄생, 고난, 십자가의 죽음, 장사지냄입니다.

 

예수님의 낮아지심에 반하여 높아지심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고 저리로서 심판하러 오시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높아지심을 다른 말로 예수님의 승귀라고 합니다. 여기에는 네 단계가 있습니다. 오늘은 제일 첫 번째 단계인 부활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세 가지로 구분해서 생각해 봄으로 은혜 받기를 원합니다.

 

1.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지난번 시간에 예수는 십자가에 죽으시고땅에 묻히셨다는 말씀을 들었는데, 이는 절망을 나타내는 단어라고 했습니다. 전혀 회생과 회복의 희망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 그리스도는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우리에게 삶의 희망을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가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구원도 있을 수 없고 영생이나 우리의 부활도 있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죽은 자가 어떻게 살아날 수 있느냐라고 묻습니다. 이런 질문은 현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도 있었습니다. 고린도교회의 성도들 중에 죽은 자들이 어떻게 살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라고 묻는 자가 있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 바울은 무엇이라고 대답을 했습니까? 그는 고린도전서 153-4절에,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라고 대답했습니다. 20절에는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라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확실하다고 말합니다.

 

복음서에서는 유대 지도자들이 시체 도적설을 퍼뜨리기도 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서 다른 곳에 유기하고서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문을 내었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마지막 부분에 보면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군병들을 매수하여 유포시킨 유언비어의 말이 나옵니다. “군병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가로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적질하여 갔다 하라”(28:12-13). 여기서부터 시체 도적설이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성경에서만 그리스도의 부활을 의심하고 부정하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지금의 세상에는 그런 사람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기절설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실제로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탈진하고 기절하셨다가 서늘한 무덤에 넣어두었는데 그곳에서 정신이 깨어났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환상설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환상설은 예수님을 너무 사모하던 제자들이 예수님의 죽음 뒤에 그를 사무치게 그리워한 결과 일종의 환상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혹자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환생으로 이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흔히 부활이라고 하면 환생을 생각합니다. 씨앗이 땅에 떨어져서 썩어 없어진 것 같으나 겨울이 지나가면 굳은 땅을 뚫고 새 생명이 올라오는 것을 봅니다. 번데기가 나비가 되고 나비가 애벌레가 되고 다시 번데기가 되고 나비가 되는 윤회나 환생 따위의 부활을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종류의 부활을 우리가 믿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또는 부활을 철학적(관념론적) 부활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진리는 영원히 산다는 말이나 사랑은 영원한 것이다.’ 또는 정의는 결국 승리한다라는 식의 부활 신앙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온 세상을 덮고 있기에 예수님이 부활하셨고 결국은 정의가 승리하기에 부활을 믿는다는 식입니다. 서글프게도 교회 안에 이런 관념적인 부활을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부활 신앙은 이러한 이야기에 근거하여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런 철학적 부활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시체 도적설, 기절설, 환상설, 환생, 관념론적 부활 등등 이 모든 주장들은 성경이 말하는 예수님의 부활이 아닙니다. 잘못된 주장들이고 거짓 진리입니다.

먼저 우리는 예수의 부활을 역사적 사건으로 믿어야 합니다. 역사적 사건이라는 말은 요즘 식으로 말하면 신문에 대문짝만한 활자로 예수 부활하다라는 기사가 실리고 텅 빈 무덤을 사진 찍고 TV 9시 뉴스에 요란스럽게 방영하는 그러한 성격의 사건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것이 희미해지고 추상적이 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확실한 것은 교회가 생겨난 것을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교회가 그때부터 시작해서 오늘까지 존재하는 것을 볼 때 부활은 역사적 사건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근거하여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죄 용서를 받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의롭다 함을 받은 신자들의 모임이 교회입니다. 그 교회가 오늘날까지 세계 곳곳에 존재하는 것을 볼 때, 역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은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 주님의 날이 생겼습니다. 주일은 안식 후 첫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매주일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고 축하하고 예배하는데 부활이 없었다면 이것이 벌써 무너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부활이 있기에 구속의 완성을 기념하고 예배하고 축하하는 주일이 있는 것입니다.

 

빈 무덤도 그리스도의 부활을 입증합니다. 이것은 마태가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빈 무덤을 보임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빈 무덤의 종교입니다. 예루살렘에 가 보시면 지금도 빈 무덤을 볼 수 있습니다.

 

언젠가 인도에서 석가의 뼈가 하나 발견되었다고 해서 난리법석을 떨었습니다. 그것을 지켜본 어떤 선교사가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뼈가 하나만 발견되면 기독교는 무너지고 만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심으로, 뼈가 무덤에 남아있지 않은 것입니다. 기독교는 빈 무덤의 종교입니다.

 

그리스도가 부활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친히 40일간 부활의 확실한 증거를 보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인들에게 자신의 부활체를 보여 주셨고 12제자들에게도 자신의 신령한 부활의 몸을 보여 주셨습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에게 자신의 부활체를 보여 주셔서 부활을 믿게 했습니다.

 

예수는 500여 명의 형제에게도 자신의 부활체를 보여 주셨습니다.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고전 15:5-7). 마지막에 만삭되지 못한 자, 사울에게도 보여 주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58절에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레이몬드 교수는 예수님께서는 개인에게, 소그룹에게, 많은 무리에게도 나타나셨고, 남자와 여자에게도, 사적 공적으로도, 갈릴리에도 예루살렘에도 나타나심으로, 그의 부활의 온전함과 확실함을 드러내셨다고 했습니다.

결국 말씀의 요지는 이런 것입니다. 지금까지 교회가 존재하고 그 가운데 주일예배가 계속되고 빈 무덤을 보며 친히 당신의 부활체를 많은 사람들에게 보이신 것을 보니까, 그리스도의 부활은 확실한 역사적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2. 왜 예수님의 부활이 확실하다고 증거 하는 것입니까?

 

복음서에서도 부활을 강조하고 사도행전 2장에서도 베드로가 설교하는 중에 이것을 강조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셨다.’ 그들이 강조한 예수님의 부활이 왜 중요합니까?

 

첫째, 의롭다 하심의 확증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십자가의 구속사역이 완성되었음을 보증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죄 값을 다 치르셨음에 대한 확인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다면 그것은 아직도 죄의 값을 치르고 있음을 뜻합니다. 그래서 부활이 중요합니다. 부활이 십자가와 함께 전해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부활이 없다면 십자가는 아직도 죄의 값을 치르고 있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부활은 십자가 위에서의 고통과 삼일 동안 사망에 복종함으로 하나님의 공의가 충족되셨음을 증거합니다. 죄 값이 다 지불되었기에 이제는 더 이상 죄의 권세에 매여 있을 필요가 없었고 다시 살아나심으로 이것을 확증하셨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4장에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부활을 통해 의롭다함 받았음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저와 여러분이 의롭다함을 받았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둘째, 우리의 부활의 보증입니다. 고린도전서 1520절에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라고 했습니다. 첫 열매라는 말은 구약을 배경으로 한 말씀입니다. 구약성경 출애굽기 2319절 이하와 레위기 2210절 이하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농사를 지을 때 그 추수의 첫 열매 혹은 첫 추숫단을 하나님께 드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먼저 추수할 수 있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였고 나아가 앞으로 남은 열매들도 첫 열매와 같이 하나님께서 풍성하고 기름지게 해 주실 것을 믿는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첫 열매가 남은 열매를 보장한다는 뜻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은 부활의 첫 열매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남아 있는 부활, 즉 성도들의 부활의 보장이 된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에게도 그리스도에게 일어났던 부활과 똑같은 부활이 일어나게 됩니다. 고구마를 캘 때 하나를 뽑으면 나머지는 줄줄이 딸려 올라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주님 부활에 우리의 부활이 따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재림주로 다시 오실 때에는 그가 첫 열매가 되셨기 때문에 그 때 입게 될 우리의 몸도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과 같은 영광의 몸이 됩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3장에서도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21)고 했습니다.

 

깊이 생각하십시오. 주님이 부활하셨기에 우리도 부활합니다. 이 미래의 부활이 우리의 모든 소망의 근거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기독교인에게 부활이 없고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이 전부라면 우리 기독교인은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만일 부활이 없다면 마음껏 먹고 마시고 즐기는 사람이 가장 현명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진실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의롭게 살려고 애쓰며 교회에 헌신 수고 봉사하는데도, 부활의 믿음이 없다면, 이것은 속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셋째, 승리의 능력이 됩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살아 계셔서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힘이 되고 능력이 됩니다. 실망과 낙심에 빠져 엠마오로 향하던 제자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남으로 실망과 슬픔의 엠마오 길에서 새 힘과 새 용기로 예루살렘을 향하여 달려갑니다. 부활하신 예수를 만남으로 실망과 낙심이 변하여 희망과 용기가 되고 벅찬 감격을 안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달려가 부활의 증인이 됩니다. 그들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낙심하여 흩어졌던 모든 제자들이 한결같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다음, 능력의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감옥도 핍박도 죽음마저도 가로막을 수 없는 소망의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의심하던 도마마저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에 인도까지 가서 복음을 증거 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그는 가죽을 벗겨 죽임을 당하는 순교를 했다고 합니다. 지금도 인도에 가면 도마가 복음을 전한 곳에는 기독교가 흥왕하고 있고 또 도마의 무덤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결코 고난이 고난 그대로, 절망이 절망 그대로 끝나지 않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새 능력이 되시고 새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가 지금도 우리 속에 살아 계시고 능력으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디모데후서 2장에서 복음 사역이 힘들 때 내가 전한 복음대로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8)고 부탁했습니다. 다시 사신 주님이 어려움을 이길 수 있도록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인도의 유명한 성자 선다 싱(Sundar Singh)이 영국을 방문했을 때 많은 사람이 그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대표적인 질문이 당신이 오랫동안 좇은 전통의 힌두교를 버리고 기독교를 믿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부활하신 예수가 지금도 살아 있기 때문이라고 간단히 대답했습니다.

 

부활을 믿는 자에게는 엄청난 축복을 주십니다. 다시 살 수 있는 은혜, 죽어도 살 수 있는 희망을 주십니다. 부활이 우리의 현실에 끼친 영향은 지대합니다. 평강이 전혀 없었던 자들에게 참 평강을 주셨고 기쁨이 전혀 없었던 자들에게 참 기쁨을 주셨으며 희망이 전혀 없었던 자들에게 참 소망을 주셨습니다. 부활은 우리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고 삶의 방향을 바꾸었으며 삶의 목적과 수단 그리고 방법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습니다.

 

3.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를 부활 신앙으로 살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의 어려움과 아픔이 있어도 흔들리지 말고 굳게 서 있어야 하고 사방이 막혀 있어도 그 가운데서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부활에 관해 길게 말한 후에 제일 마지막에 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아무리 심한 환란과 핍박이 와도 견고하고 흔들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활신앙으로 견디어 내라는 것입니다. 부활신앙만 있으면, 죽어도 다시 산다는 이 확고한 믿음만 있으면, 극한 환란도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환란의 바람이 강한 게 문제가 아니라 부활신앙이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현재 우리들의 삶이 견고하고 흔들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마지막 부분에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 하셨습니다.

 

부활 신앙을 가지고 있는 성도는 아무리 큰 어려움이 와도 그것 때문에 주의 일을 포기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더욱더 힘쓰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날에 주 앞에 서게 되었을 때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받고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하리라는 말씀을 들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프랭크 모리슨(Frank Morison)이라는 영국의 저널리스트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예수를 전혀 믿지 않던 사람입니다. 오히려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상당한 진리들이 허구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 중에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조작된 사건으로 생각하여, 그 허구성을 파헤쳐서 글로 쓰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4복음서를 중심으로 성경을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부활의 허구성과 신화성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허구성을 찾는 일을 포기하고 오히려 무릎을 꿇고 당신은 역사적으로 부활하셨습니다라는 고백과 함께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모리슨은 한 권의 책을 썼습니다. “누가 돌을 옮겼는가?”(Who moved the stone?)라는 책입니다. 이 책의 서문에서그는 한번 쓰여지기 거절되었던 책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모리슨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가 그리스도의 부활임을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부활이 사기라고 주장하며 책을 쓰려고 했던 그가 성경을 읽다가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변화되었고 예수의 부활은 확실하며 중요하다고 책을 썼던 것입니다.

 

결론

 

예수의 부활은 역사적 사건입니다.

예수의 부활이 왜 중요한 것입니까?

의롭다 하심의 확증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부활의 보증이 되기 때문입니다.

승리의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부활 신앙으로 날마다 승리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예수님이, 장사된 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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