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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마가편(走馬加鞭)
한성기 목사 2016-12-04 추천 0 댓글 0 조회 738
[성경본문] 로마서15:14-20 개역한글

1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15.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인하여 더욱 담대히 대강 너희에게 썼노니

16.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하게 하려 하심이라

17.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

18.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하여 나로 말미암아 말과 일이며 표적과 기사의 능력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19. 이 일로 인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20.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오늘 본문말씀은 로마서의 결론적인 부분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여기서 저자인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직무가 무엇이며 그 직무를 어떻게 감당했는가에 대해서 말해 주고 있다. 즉 사도 바울은 본문말씀 16절에서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라고 말하면서 일꾼으로서 자신이 주어진 일들을 어떻게 감당해 왔는가에 대해서 말해 주고 있다. 

  오늘은 12월 첫째주일이다. 신년예배를 드린 것이 엊그제 같은데 달력을 이제 한 장밖에 남겨두지 않게 되었다. 지나간 시간들을 뒤돌아보면 아쉬움도 있지만, 우리는 그 시간들 속에서 여호와 이레로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 오늘 본문말씀 속의 바울처럼, 내가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으로서 주어진 사명들을 잘 감당했는가를 생각해 보면 후회와 아쉬움과 부끄러움이 앞서게 된다. 

  이제 이 시간에는 바울의 사역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우리 또한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으로서, 우리의 신앙공동체인 이 교회를 섬김에 있어 어떠한 삶의 양식을 가져야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그래서 이제 우리의 남은 생애 속에서,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으로서, 우리의 사명과 책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며 새로운 결단과 각오를 다짐하는 시간이 되고자 한다.

 

첫째로, 복음의 제사장(Priest)으로서의 자세를 갖자!

  16절: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으로서 무슨 일을 하는 자인가 하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바울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일꾼으로서의 자신의 역할에 대해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즉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다하는 것이었다. 제사장이란 백성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를 말한다. 이 제사장이란 말은 영어로 ‘프리스트’(Priest)라고 하는데, 이 말은 라틴어의 ‘폰티펙스’(Pontifex)라는 말에서 왔다. 그리고 그 뜻은 ‘다리를 놓는 사람들’(Bridge Builder) 이라는 의미이다. 

  옛날 구약시대의 제사장들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선택을 받은 자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 제사장직은 시내 산에서 모세가 레위 자손 아론을 성별하여 세운데서 시작되었다. 그래서 대대로 아론의 후손들은 제사장이 되었고 그들은 제사를 통해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중재의 역할을 했다. 이처럼 제사장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에서 다리를 놓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오늘의 시대에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모두가 제사장이 되었다. 종교개혁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만인제사장의 원리라고 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성경은 베드로전서 2:9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사랑하는 여러분!

  그렇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자 또한 제사장이기도 한 것이다. 오늘의 우리는 구약시대처럼 제사를 집례하는 제사장이 아니라 오늘 본문말씀의 표현처럼 ‘복음의 제사장’인 것이다. 자! 그러면 여기서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다. 우리가 제사장이라면 제사장다워야 하는데, 과연 우리가 제사장다운 모습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가 복음의 제사장이라고 한다면 세상 사람들과는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오늘날 우리 기독교가 이 사회로부터 많은 지탄을 받고 있다. 심지어는 개독교라는 모욕적인 말까지도 듣는다. 왜 그럴까? 결국 그것은 우리가 세상과의 사이에서 복음의 제사장르로서 직무를 잘 감당하지 못해서 그런 것 아니겠는가? 사회적 이목을 끄는 불의한 사건들 속에 예수믿는 사람들이 중심에 개입되어 있는 모습을 종종 접하게 된다. 요즘 들어 부쩍 우리 기독교에 대해 반감을 갖는 시각들이 늘었다. 어쩌면 그런 소리 들어도 마땅한 것이 오늘의 우리 현실이다. 그러니 세상으로부터 비난을 듣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으로서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잘 감당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과 이 세상 사이에서 복음의 사역자로서의 제사장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한다. 세상과 하나님을 연결해 주는 ‘Bridge Builder’(다리를 놓는 사람들)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복음을 느끼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무엇보다 몸과 마음과 행실을 깨끗이 하며(cf. 레 21:16-24: 성성규정), 바울처럼 신실한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은 그 어떤 일꾼들보다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1:1에서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 받는 자가 되라”고 했다. 우리도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세상을 향해, 자신 있게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여러분도 나를 본 받는 자가 되십시요!”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삶이 복음의 제사장의 삶이다. 그렇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이 지역사회에서도 본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얼마나 복음의 제사장 역할을 잘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교회는 물론 이 지역사회 속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과 삶의 모습을 보고 저들은 이 교회를 바라볼 것이다.

 

둘째로, 겸손한 종(Servant)으로서의 자세를 갖자!

  18절: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19절: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이 말씀은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나타난 수많은 이적과 결실 등은 모두 자신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하신 일이요 자신은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다는 고백이다. 즉, 자신은 복음을 전하는 도구로 쓰임 받은 것뿐이라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의 선교사역속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사건들은 모든 것이 성령의 능력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처럼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으로서 일할 때에 무엇보다 겸손한 모습으로 일을 했다. 이러한 모습은 자신을 스스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라고 말하는 바울의 아름다운 신앙고백이다.  바울은 이러한 자신의 모습을 고린도전서 15:10에서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이 얼마나 아름다운 신앙의 고백인가?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도 자랑할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존재들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오늘의 나의 나 된 존재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 어디에 이르고 있는가? 그 모든 것들을 내 힘으로 성취했는가? 내 능력으로 그곳에 이르렀는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 아니었는가? 사도 바울이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가? 세 차례에 걸친 세계전도여행을 통해 세계선교의 기초를 놓지 않았는가? 그의 외형적인 모습 속에서 자랑할 만한 조건들은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가? 그러나 그는 그 모든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고백을 했다. 이 얼마나 겸손한 신앙의 고백인가? 

   야고보서 4:6에 보면 “하나님이 교만한 자는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하셨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를 기쁘게 여기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으로서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감당할 때 가져야 할 자세는 무엇보다 먼저 겸손한 종의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종의 덕목은 일도 잘해야 하지만 겸손해야 한다. 

  마태복음 20:28에 보면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셨다. 우리는 교회에서 이 ‘섬긴다’ 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그런데 이 ‘섬긴다’는 행위는 겸손한 마음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겸손함이 없이 하는 행위는 위선이고 가식이고 자기 자랑이 될 뿐이다. 

   

셋째로, 창조적인 개척자(Pioneer)로서의 자세를 갖자! 

  20절: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이 말씀은 말하자면 바울의 사역의 원칙이다. 이것은 언제나 창조적으로 살아가는 바울의 모습이다. 따라서 이 말씀은 오늘의 우리에게 있어서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끊임없이 도전하라는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바울은 비록 일꾼이지만 시키는 일만 하는 수동적인 자세가 아니라 언제나 새로움에 대한 도전정신을 가지고 창조적으로 일을 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새로운 것을 창조하며 살아가는 사도 바울의 모습을 배워야 한다. 바울은 남의 터 위에 건축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바울은 이미 복음이 증거된 곳에서는 전도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선교의 영역에서 뿐만이 아니라 교회의 운영이나 사역에서도 남이 하는 것 따라 가다가는 발전이 없다. 오늘날 교회들을 보면 다양한 영역에서 많은 사역들을 하고 있는데, 그저 다른 교회에서 하니까 우리도 해야 한다고 하면서 따라가는 사역은 별 의미가 없다. 교회의 일은 무엇을 하든지 개척자(pioneer)의 정신을 가지고 해야 한다. 그래야 발전이 있고 변화가 있는 것이다. 

  요즘 교회성장이 잘 안 되고 오히려 감소추세에 있다고 한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출산율의 감소를 가장 큰 원인의 하나로 꼽는다. 그러나 우리가 현상을 냉정하게 분석해 보면 단순하게 인구가 감소하니까 교인도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교회가 하는 전도나 사역의 방향에 문제가 있음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교회가 모든 것에 앞서가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는 나날이 변해 가는데 우리의 믿음은 성장도 못하고 우리의 의식은 변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창조적인 일들을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예수 믿는 것도 그렇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모든 면에 있어서 앞서가야 한다. 예수님은 한 번도 누구를 따라 가신 적이 없다. 성경에 보면 언제나 “나를 따라 오라”고 하셨다. 이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면에 있어서 앞서가는 창조적인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 

  바울은 말하기를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고 했다.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않으려 했던 바울의 이 생각, 이는 늘 새로움을 향해 개척자의 정신으로 도전하는 바울의 사역 모습이었다. 오늘날 교회를 섬기는 우리의 모습도 이러해야 할 것이다. 물론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의 모습을 위해서는 이 시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바울의 사역처럼, 따라가는 일꾼이 아니라 창조적인 생각을 가지고 앞서가는 일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된 자로서의 바울의 모습을 통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오늘 본문말씀의 시작인 로마서 15장 14절과 15절의 말씀이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바울은 지금 로마교회 교인들이 신앙적으로 성숙해 있고 모든 면에 잘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의 신앙적 미덕을 칭찬하고 있다. 선한 일 많이 하고, 지식도 풍성하고, 서로 아껴주고 배려하고 사랑하는 것도 잘하고 있는 것, 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더 잘할 수 있도록 이 로마서를 통해 다시 한 번 사역의 원리에 대해 설명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더욱 믿음에 굳게 서서 성숙한 신앙생활을 하도록 하려 한다는 것이다. 오늘 설교의 제목으로 제시한 ‘주마가편’(走馬加鞭), 즉 “달리는 말에 채찍을 더한다”는 말은 바로 이 말씀을 생각하며 떠올리게 된 것이다.

  그렇다!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으로서, 이 소망교회의 일꾼으로서, 지금까지 잘 해왔으며 지금도 잘하고 있는 줄 안다. 이 어려운 시기에 교회도 이처럼 아름답게 지었다. 참으로 귀한 사역을 잘 감당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오늘 바울의 사역 모습을 보여주시며 우리가 지금까지도 잘해 왔지만, ‘주마가편’의 마음으로 더욱 최선을 다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복음의 제사장의 모습으로, 겸손한 종의 모습으로, 그리고 창조적인 개척자의 모습으로 말이다. 이것이 바로 이 시대의 우리 모두를 향한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일 하기를 원하신다. 일꾼은 일을 해야 일꾼이다.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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