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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이 되는 말로 은혜를 끼치라 (엡 4:25-29)
이정현 목사 2013-09-08 추천 0 댓글 0 조회 534
말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말이 그 사람의 인격, 철학, 지식, 가치관, 삶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하는 말은 나 자신이 어떠한 자인가를 들어내는 도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을 들어보면 그 사람이 어떤 자인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말의 홍수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만큼 인간들의 말이 많다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은 하루에 25,000-30,000마디의 말을 한답니다. 그러니 이것이 1주일 것이 모이면 얼마나 되겠으며, 100명의 말을 모으면 얼마나 되겠습니까? 우리가 하루, 이틀, 한달 두달을 살아가면서 참으로 많은 말을 하는데, 그 중에 얼마만큼이 가치 있는 말이고, 몇 마디가 진실한 말이고, 몇 %가 유익한 말이겠으며, 긍정적인 말이겠는가? 사람들이 말을 하면, 한 말이 금방 사라지는 줄 생각하나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사라지는 말도 있지만 상당수의 말은 어떤 사람의 기억에 남거나, 아니면 가슴속에 상처로 남거나, 그것도 아니면 의미 있는 말로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그 만큼 말은 오래갑니다. 그리고 무서운 힘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 천냥이 얼마입니까? 그것은 상놈이 양반 될 수 있는 큰돈입니다. 옛날에 상놈이 양반이 되는데 천냥이면 양반신분을 살 수 있었다고 합니다. 말 한마디로 인생을 바꾸고, 신분을 바꿀 수 있다는 말입니다. 말에 무서운 힘이 있고 귀한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같이 무서운 힘이 있고, 귀한 가치가 있는 말을 함부로 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와 아픔을 주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가 이 땅을 사려고 했을 때, 모 장로님이, 소망교회가 땅을 사고, 예배당을 지으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장로님의 손은 아직도 멀쩡합니다. 말은 삼가 조심해야 되고, 할 말이 있고 안할 말이 있는 것입니다. 본문 29절에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는 말씀에서, 입 밖에 내지 말아야 할 말과 덕이 되는 말이 무엇인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입 밖에 내지 말아야 할 말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미국 버지니아대학교의 Bella de Panlo교수가 77명의 학생과 70명의 마을사람, 합 147명을 대상으로, 1주일 동안 얼마만큼의 거짓말을 하는지 조사를 했습니다. 그 결과 학생 1명과 주민 6명만 거짓말을 안 했고, 나머지 140명은 전부 거짓말을 했답니다. 140명이 1주일 동안 한 거짓말 건수는 무려 1534개 였답니다. 중, 고등학생들이 부모 앞에서 거짓말을 제일 많이 했고, 심지어 어떤 학생은 자신은 '심각한 거짓말쟁이'로 자인하기도 했답니다. 종교인들도, 기독교인들도 거짓말을 꾀 잘한다고 봅니다. 집사가 되면 "주일도 잘 지키고, 십일조도 잘 하겠습니다."라고 약속해 놓고, 실행치 않았다면 거짓말 한 것입니다. "헌금하겠다"라고 해놓고 시험 들어 안 하는 것도,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하나님을 속이고 성령을 속인 것이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는 자도 거짓말쟁이입니다. "하나님 이번에 건강주시고, 사업 잘 되게 해 주시고, 아들 합격시켜 주시고, 딸 취직이 되면, 하나님 앞에 이렇게 이렇게 하겠습니다."라고 해놓고 이행치 않았다면 다 거짓말 한 것입니다. 성경은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엡4:25)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뻥치는 사람도 많고요, 이렇게 이렇게 하겠다고 해 놓고 하지 않는 공수표 남발자도 많습니다.

거짓말은 아닌데, 남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연약한 가슴에 비수를 꽂는 일이 있습니다.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와 아픔이 될 얘기는 안 하는 게 좋은데, 의외로 할 때가 많다는 겁니다. 남의 아픈 부분을 들추어 내거나, 상대방의 약점을 실랄하게 공격하거나, 자존심 상하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칼이나 총에 죽는 사람보다 말에 죽는 사람이 더 많다는 말은, 그만큼 상처 주는 말을 많이 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칼에 맞은 상처는 몇 달이면 아물지만, 말에 맞은 상처는 몇 년도 갈 수 있고, 아니 평생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거짓말, 그리고 남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말을 하지 말아야 될 뿐만 아니라, 불평, 원망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나 목사나 타인에 대해 원망,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원망, 불평, 불만은 사탄이 교회를 넘어트리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입니다. 불평은 하면 할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결국 그것에 치어 죽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광야생활을 하면서 각종 환경과 지도자를 이유로 불평하게 될 때에, 하나님이 싫어 하사 그들을 심판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사랑에 만족하지 못하고, 조금 어려움이 있고 살기가 힘들다고 하나님과 지도자에 대해 원망, 불평하는 자들은 결국 가나안 땅에 한 사람도 들어가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원망은 복 받을 말이 아니며, 크리스챤의 언어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를 왜 이렇게 어렵게 하느냐고 원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 나에게 이런 병을 주셨느냐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안 그런데 왜 나만 이런 고통을 겪느냐고 한탄하는 자도 있습니다. 그러나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신 줄 믿고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매사에 부정적인 말도 복 받을 언어가 아닙니다. 안 된다, 못한다, 없다, 죽겠다, 불가능하다, 등등의 말은 상대방의 사기를 꺾고, 하나님의 일을 이루지 못하게 합니다. 올해도 어려운 일은 나한테 다 맡겨놓네, 나는 올해 도저히 못해, 나 시키지 마-등등의 말은 결코 긍정적인 말이 아닙니다. 부정적인 말은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습니다. 부정적인 말은 축복을 가로 막습니다. 그것을 누리지 못하게 합니다. 민수기 14:28절에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부정적인 사람에게는, 들으신 대로 부정적으로 응답해 주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남편이 저녁에 퇴근하고 들어왔는데, 부인이 밥상을 차려왔습니다. 그런데 반찬이 시원찮았나봅니다. 그때 남편이, ‘아니 이것도 반찬이라고 했어. 사람 먹으라고 한 거야. 집에서 놀면서 도대체 뭐 하는거야?’ 그런데 이 말을 누가 들었느냐, 하나님이 들었습니다. 그 이후부터 하나님의 귀에 들린 대로, 계속하여 남편의 밥상에는 그 반찬이 나왔다고 합니다. 

남을 비방하는 말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누가 어떻고, 누구 집사가 어떻고, 어떤 구역원이 어떻고-이런 말은 기독교인에게 어울리지 않는 언어입니다. 남을 탓하거나 비방하거나 비판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치사한 일이고, 하나님 앞에서의 죄악이며, 동일한 비판을 나도 받게 될 일입니다. 남의 험담하지 마세요. 구역예배 드리면서, 선교회 일하면서, 부엌에서 봉사하면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이웃을 놓고 입방아 찢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남을 험담하는 일에 사명감을 가지고, 이집 저집을 다니면서 비방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 어려서 학교 다닐 때 화장실에서 선생님 막 욕하고 있는데, 그 선생님이 화장실 안에서 나오는 거예요. 으악! 얼마나 기겁을 하고 놀랩니까? 그런데 내가 누군가를 욕할 때 그 사람이 듣고 나타날 때 놀라는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듣는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들으시고 그 사람이 말하는 데로 되게 해 줘 버립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두렵지 않습니까? 

야고보서 3장을 읽어보시면, 입술에는 권세가 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입술과 혀는 우리 신체 중의 극히 작은 일부분입니다. 혀는 대장, 소장의 길이에 비하면 세치밖에 안 되는 작은 것입니다. 혀는 두개골이나, 심장, 허파, 간 보다 훨씬 작은 지체입니다. 그러나 입술의 권세는 온 몸을 지배하고도 남습니다. 야고보서에는 입술의 권세가 얼마나 큰 지를 몇 가지 비유로 말씀합니다. 먼저 입술은 말을 어거하는 재갈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야고보서 3장에 보시면, "우리가 말을 순종케 하려고 그 입에 재갈 먹여 온 몸을 어거한다"고 하셨습니다. 말은 야성이 있습니다. 야생마라고 합니다. 난폭합니다. 이런 말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면 사람이 어떻게 다룹니까? 재갈입니다. 재갈은 말이 입을 마음대로 놀리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입에 쇠를 물려 놓는 것을 말합니다. 비록 이 재갈이 작지만 큰 덩치의 말이나 난폭한 말도, 이 재갈로 방향을 지시할 수 있고, 말의 행동을 효과적으로 다스릴 수 있는 것입니다. 말을 어거하기 위해서는 재갈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이처럼, 한 마리의 야생마를 다루는 데는 절대적으로 작은 재갈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과 같이, 우리의 혀는 작지만 온 몸을 어거한다고 하셨습니다. 또 야고보서 3장 4절에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라고 하셨습니다. 수백, 수천, 수만 톤급의 배가 큰 광풍에 밀려갈 때, 어떻게 방향을 잡고 균형을 잡습니까? 그것은 바로 키입니다. 키는 작지만 배의 전체를 통제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공이 키를 놓치면 그 배는 표류하고 말 것입니다.그곳에 또 다른 비유가 나옵니다. 5-6절에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작은 불씨 하나가 숲 풀에 붙게 되면, 급속히 번져서, 온 산을 태우게 됩니다. 작은 불씨가 온 산을 태우고, 가옥을 잿더미로 만들고, 짐승을 태우고, 농작물까지 태워서, 엄청난 피해를 입힌다는 사실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외국에서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야고보 선생은 작은 혀가 얼마나 큰 권세를 가지고 있는지, 말의 재갈에, 배의 키에, 수풀의 작은 불씨에 비유를 한 것입니다.이 말씀의 공통점은 작은 것이 큰 것에, 또는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재갈이나 키나 불씨는 작지만 큰 덩치의 말에, 수백 톤의 배에, 큰 수풀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혀도, 입술도 작은 지체이지만, 몸 전체에 좋은 영향, 때로는 악한 영향을 주며,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이웃과 이 사회와 교회와 세계에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 속담도 그 만큼 입술의 영향력이 크다는 것이고, "혀는 먼데 있는 사람까지 죽이며 도달하지 못할 데가 없다"고 한 것도 혀의 권세가 큼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입술은 분명 파괴하고, 죽이는 권세도 있고 또한 축복하고 살리는 권세도 있습니다. "혀는 작은 지체이지만 큰 것을 자랑하고,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고 하실 정도로 권세가 있습니다.

말이 얼마나 악영향을 미치는지, 모간 블레이즈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나는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는 힘과 기술을 가지고 있다, 나는 죽이지 않고도 승리할 수 있다. 나는 가정과 교회와 국가를 파괴한다. 나는 수많은 사람의 인생을 파괴한다. 나는 바람의 날개를 타고 여행한다. 아무리 순결한 사람도 내게는 무력하며, 아무리 깨끗한 사람도 내게는 무력하다. 나는 바다의 모래 보다 더 많은 노예들을 거느리고 있으며, 나는 결코 망각하지 않으며, 나는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내 이름은 중상모략이다"모간 블레이즈의 이 말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남을 헐뜯고 비방하는 중상모략은, 많은 사람들에게 무한한 손해를 끼치며, 깊은 상처를 준다는 것입니다. 혀가 사람을 더럽히며, 생의 바퀴를 불사르는 것입니다. 혀의 악영향은 먼 데까지 미치는 것입니다. 도달하지 못할 데가 없는 권세가 있습니다. 잠언서 기자는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고 하셨습니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습니다. 거짓말, 남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말, 원망과 불평의 말, 부정적이고 믿음이 없는 말, 남을 비방하는 말은 입 밖에 내지 않는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이제는 반대로 덕이 되는, 해야 할 말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진실하게 말하라.예수를 말하라.남을 존중하는 말을 하라.믿음의 말을 하라.감사의 말을 하라.덕을 세우는 말을 해야 합니다.남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성적표를 가져왔는데 다 양, 양, 양입니다. 그런데 딱 체육하나가 ‘수’입니다. 그때 아버지는 화를 내면서 호통 치는 아버지가 있을 것입니다. ‘이 이자식아, 이것도 성적이라고 받아왔느냐?’ ‘아빠는 1학년 때부터 줄 곧 1등 했단다.’그런데 이런 아버지도 있을 수 있습니다. 아들을 불러놓고 ‘야, 야, 너는 한 과목에만 힘을 쓰는구나. 너는 한 과목이 되는 것 보니까, 다른 과목도 잘 할 수 있을 거야. 체육이 ‘수’잖아. 그 힘을 잘 쓰면 큰 인물이 되겠구나.‘ ‘너는 아빠보다 훨씬 더 탁월한 인생을 살 것이다.’성경에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엡5:4)고 하셨습니다. 또 본문에서는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며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론 말 때문에 상처가 되기도 하고, 말 때문에 큰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 교회의 일을 하면서 말 때문에 시험에 들기도 하고 반대로 힘과 용기를 얻기도 합니다.말로 다 해먹는 사람도 있습니다. 행동은 안하고, 말로 은혜를 다 까먹는 사람이 있습니다. 은혜 받은 것을 말 때문에 일순간에 다 쏟는 사람도 있습니다.말과 혀는 길들이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개는 사람이 훈련을 시켜서 사냥도하고, 집도 지키고, 맹인들을 안내하기도 하고, 검색도 하고, 군견으로 쓰기고 하고, 투견으로 쓰기고 하고, 어떤 개는 심부름을 하기도 합니다. 비록 짐승이지만, 길들이니까 이처럼 유익하게 쓰임 받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요즈음은 고양이도 훈련을 시켜, 장애물 경기에 내 보내기도 합니다. 맹수인 호랑이와 사자도 길들여, 유익하게 이용하고 있고, 소나 말도 잘 훈련시켜 농사일이나 이동수단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짐승뿐만 아니라, 날짐승인 독수리나 비둘기를 길들여 유용하게 쓰기도 하고, 해물인 돌고래나 거북이를 길들여 이용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지난번 태국에 가서 보니까, 코끼리를 길 드려서 쇼를 하게하고, 관중들로부터 바나나를 얻어먹게 하고, 그리고 심지어 돈을 받아서 주인에게 건네주게도 합니다. 이 같은 짐승도 훈련을 시켜 유용하게 사용할 수가 있는데, 세 치 혀는 길들일 자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길들여지지 않음으로 유용한데 사용되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에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며 벌레와 해물은 다 길들므로 사람에게 길들었거나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들의 혀는 길들여져 있어야 하는데, 여러분들의 혀는 성령에 의해 길들여져 있습니까? 이 말을 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아니면 사탄이 좋아할까? 생각해보고 말하십니까? 이 말을 할 때, 남에게 유익을 줄까? 아니면 상처를 줄까? 생각해보고 말하십니까? 삼사일언하는 편입니까? 아니면 겨냥도 하기 전에 화살을 놓는 편입니까? 입술에 파수꾼을 세우는 편입니까? 아니면 나오는 대로 지껄이는 편입니까? 혀에 재갈을 물리는 편입니까? 아니면 아무 말이나 막 하는 편입니까? 진실을 말하는 편입니까? 아니면 적당히 거짓말을 섞어가며 타협하는 편입니까? 그런데 우리 기독교인들이 생각 외로 전자를 쫓기보다 후자가 될 때가 많습니다. 다시 말해 사탄이 좋아하는 말을 하고, 남의 마음에 상처를 줄 때도 많고, 되는 대로 아무 말이나 내 뱉는 경우가 많고, 거짓을 말하거나 부정적인 말을 할 때가 많다는 예기입니다. 이 모든 현상들을 볼 때, 예수 믿은 지가 몇 년인데, 아직까지 그 입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있으니, 역시 혀를 길들이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혀가 길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의 온갖 악한 것들이 입술을 통해 밖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어떤 유대인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다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이 때 주님께서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입을 통해 밖으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마음이 깨끗지 못하고, 더럽고, 악이 가득하면, 그것이 곧 입술을 통해 밖으로 나온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말에 따라 그 사람이 더러운지, 깨끗한지를 판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매사에 믿음으로 말하시고, 긍정적으로 말하시고,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일구이언하지 마시고, 남에게 덕이 되는 말을 하시고, 위로와 격려가 되는 말을 하시고, 은혜스러운 말을 하시고, 진실한 말을 하시고, 자랑하지 마시고, 원망 불평하지 마시고, 속된 말 하지 마시고, 주님께 영광이 되고, 신앙적인 말을 하시고, 감사하는 말을 하시고, 칭찬하고 존경하는 말을 하시고, 교회에 유익한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결국, 말 많은 사람들 때문에 가정과 교회가 시끄러운 때가 종종 있는 것 같습니다. 말할 때는 삼사일언하고 신중하게 해야 합니다. 아이슬란드 격언에 “두마디 말을 하고 싶을 때는 한마디만 말하고, 한마디 말하고 싶을 때에는 입을 다물라”는 말이 있습니다. 성경은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 혀에 달려있다’고 했습니다. 잠언 10:19절에도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에 근거하여, 덕이 되는 말로 은혜를 끼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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