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들로부터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당시에는 명절이 되면, 무리의 청원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었습니다. 총독 빌라도는 예수의 무죄함을 알고도, 당시의 유명한 죄수 바라바와 예수 가운데, 누구를 놓아주기 원하느냐고 무리에게 물었습니다. 대제사장의 지로를 받았던 무리들은, ‘바라바는 놓아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마침내 빌라도는,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데려다가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게 넘겨주었습니다.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자색 옷)를 입히며,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희롱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침 뱉고 손으로 때리며,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쳤습니다. 그들은 희롱을 다 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갔습니다. 주님은 하찮은 인간들로부터, 이렇게 조롱과 멸시와 천대를 받으셨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향하셨으나, 이미 기력이 다하셨던 예수님은, 골고다까지 십자가를 지고 가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로마 군병들은, 시몬이라는 사람을 붙들어, 그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워, 예수를 따르게 하였습니다.
골고다에 이르러 제삼 시에, 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양손 양 발에 커다란 대못을 박아서, 예수님을 십자가 위에 고정하고, 그 십자가를 골고다 높이 세웠습니다. 그들은 그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라는 죄 패를 붙였습니다.
군병들은 후에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였습니다.
이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혔는데, 이들조차도 예수님께 욕하였습니다.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하였고,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은 함께 희롱하여,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고 하였습니다.
백성은 서서 구경하였고, 관리들은 비웃었으며, 군인들도 나아와 신 포도주를 주며,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면, 네가 너를 구원하라.”며 희롱하였습니다.
때가 제육 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 시까지 계속되었는데, 제구 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그리고 “다 이루었다.”,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하고, 숨지셨습니다.
이 날은 준비일이라,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였습니다. 군인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예수께 이르러서는,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왔다고 했습니다.
영화 ‘The Passion of the Christ’에서,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당하시고 채찍에 맞으시고, 조롱과 멸시와 천대를 당하시는 것과, 마침내 십자가를 지시는 장면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7분 상영-
왜 그리스도는 이처럼 모진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 위에서 이렇게 처참하게 돌아가셨습니까?
1. 나의 죄를 담당하시고 대신 저주를 받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악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담당시키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흔히, 그리스도의 죽음과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말을 합니다. 혹자는 또 내가 죄를 지었으면, 내가 심판을 받으면 되는 것이지, 왜 예수라는 사람이 죽었냐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어리석고 짧은 생각에 불과합니다. 아버지와 사춘기 아들과 말다툼을 하다가, 아들이 성질을 부리며 자기 방에 들어가 문을 잠가 버립니다. 아들은 아버지가 자기를 이해하지 못한다며, 밥도 안 먹고 씩씩 데며 방안에 쳐 박혀 있는 것입니다. 이럴 때 두 사람 중 누가 먼저 상대편에게 다가갑니까? 누가 먼저 져 주는 것입니까? 아버지가 자식에게 먼저 다가가고, 먼저 져 주는 것입니다. 문을 두드리며, 나와서 밥 먹으라고 말합니다. 아니면 방까지 밥을 차려서 갖다 주며, 먹고 기운차리라고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는 죄악 된 우리에게 먼저 찾아오셔서, 우리와 막힌 담 즉, 죄악의 담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허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에 대한 대속물이 되심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신 것입니다.
엡2: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하나님이 자기 아들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셔서,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막힌 담을 헐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화목하게 만드셨습니다.
사53:5-6/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였지만, 여호와께서는 우리의 죄악을 예수께 담당시키셨습니다.
갈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습니다.
이 같은 말씀들을 근거하여 볼 때,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나의 죄를 담당하시고 대신 저주를 받으시기 위함입니다.
2. 나의 죄를 씻어,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기 위함입니다.
아담 이후의 모든 인간들이 공통적으로 심각히 앓고 있는 것이 바로 죄의 병입니다. 이 죄의 문제를 어떻게 씻을 수 있고 해결할 수 있습니까? 인간 스스로의 힘과 능력으로 죄를 없이할 수 있습니까? 선행을 한다고 죄를 씻을 수 있으며, 자기의 그 공로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나요?
결코 그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죄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히9:22/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피흘림이 없이는 사함이 없다고 했음으로, 우리의 죄를 씻기 위하여는, 피흘림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유월절 어린양으로 희생됨으로, 그 피로 우리의 죄를 씻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벧전3:18/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단번에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 하심은,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계1:5-6/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6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고 했습니다.
위의 몇 가지 성구들을 통하여 볼 때,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피흘려 돌아가신 것은, 우리의 죄를 씻어,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기 위함입니다.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것,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관계를 해결하여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용서하신 우리의 그 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필리핀의 어느 한 소녀가, 예수님을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누었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이 소문이 마닐라에 잇는 대 주교에게까지 전해졌습니다. 그래서 대 주교가 그 지역을 담당하는 신부에게 이 사실을 확인해 보라고 지시를 하였습니다. 명령을 받은 신부가 그 소녀를 만나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어 보는데, 이게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신부가 그 소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너에게 마지막 부탁을 하나 하겠다. 만약 다시 예수님을 만나서 대화를 나누게 되면, 내가 하나님께 마지막 고해성사 때, 죄를 고백한 것이 무슨 죄인지 예수님께 물어봐 달라’고 했습니다. 소녀는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얼마 후 소녀가, 그 신부에게 면담을 청하여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신부님의 고해 성사를 듣기는 들었는데, 잊어버려서 기억이 안 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한 번 용서하신 죄를 잊어버리시고, 다시는 기억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3. 죽음의 세력 마귀로부터, 나를 해방시키기 위함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마귀에게 사로 잡혀, 마귀의 억압을 받으며 마귀의 종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결국 자기가 갈 곳인 영원한 지옥으로 사람들을 끌고 가는 것입니다. 이 같은 마귀의 세력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 주시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히2:14-15/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여기 히브리서 기자가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마귀를 멸하고,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마귀에게 사로잡혀 있는 우리들을, 그 가운데서 해방시켜 주시려고, 주님이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골1:13-14/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하나님이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주셔서, 죄사함을 얻게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려 돌아가신 것은, 우리를 마귀의 세력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4. 나의 연약함과 병을 짊어지시기 위함입니다.
오늘 본문 5절의 말씀을 보면 ‘그’와 ‘우리’를 대조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앞부분에서는, 그분이 십자가를 지신 이유를 말하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의 허물과 죄악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님에게 흠과 잘못이 있어서, 십자가에서 찔린 것이 아니라, 인간의 죄악 때문이라고 밝힌 것입니다.
그리고 뒷부분에서는, 그가 무엇을 하심으로 우리에게 어떤 혜택이 주어졌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분이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분이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사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끝 부분에서,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베드로가 그대로 인용하고 있습니다. 벧전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마태도 동일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마8: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주님이 채찍에 맞고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리시므로, 우리의 연약함과 병을 짊어지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악한 세력과, 모든 세상 질병을 다스리시는 권세를 가지고 계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5. 죄의 몸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 다시는 죄에게 종노릇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신 또 다른 목적이 있는데요,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다시는 죄에게 종노릇 하지 말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는 것입니다.
롬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다시는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않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롬6: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속함을 입은 사람은, 은혜를 더하려고 죄에 거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고후5: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바울이 이제 내가 사는 것은, 나를 위하여 몸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위하여 사는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왜 모진 십자가를 지셨냐고 묻는다면, 우리로 하여금 다시는 죄에게 종노릇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다시는 죄의 종으로 살지 않고, 주님을 위하여 사는 사람이 되도록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미국의 대통령 링컨이 1863년에 노예제도를 폐지하고, 2년 후에 그 사실을 헌법에 명문화하였습니다. 그러니까 1865년 이후에는 미국 땅에 노예가 한 사람도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미국 의회가 결정했고, 대통령이 선포했고, 언론에 공포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사회는 여전히 노예가 존재하였습니다. 노예제도가 폐지된 후 어느 작가가, 알라바마 주의 한 농장을 찾아가서 한 노예에게 물었습니다. ‘링컨 대통령을 아느냐?’ 그랬더니 안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노예제도를 폐지한 것도 아느냐고 물었더니 그것도 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여전히 노예로 살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 노예가 대답하기를, ‘우리는 이렇게 사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라’고 대답을 했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죄의 종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 주어셨습니다. 그럼으로 다시는, 그 죄의 종노릇 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유인으로 주님을 감사함으로 섬기면 죄는 것입니다.
6.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에 대한 대속물이 되어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수 있으셨습니다.
요3:14-16/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십자가 위에 예수 그리스도를 주신 것은, 우리가 그를 믿고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궁극적인 목적이며,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누릴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은혜이기도 합니다.
결론
흠과 티가 없는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로 이 세상에 오신 그분이, 왜 모진 고문을 받으시고, 수모 멸시 천대를 받으시고,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리며 죽으셔야만 했습니까? 왜 하나님의 아들이,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또는 털 깎는 자 앞에서 조용히 순응하는 어린 양처럼, 아무 말 없이 순순히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셨습니까?
그것은 곧,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여, 영생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다시는 죄에게 종노릇 하지 말고, 생명을 주신 주님을 위하여 살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것은 한량없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증표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보여 주신 증거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의 한량없는 사랑을, 십자가를 통하여 보여 주셨습니다.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격하며 감사하며 찬양하며 영광 돌리며, 그 은혜를 잊을 수 없어, 그 하나님을 더욱더 경외하며 사랑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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