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사람들이, 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면 밥을 주냐 떡을 주냐?” 이런 말로, 교회 다니는 사람들에게 핀잔을 주면서, 은근히 핍박을 한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에게, 아직도 이런 말로 핍박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당당히 말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교회는 1년 52주 내내, 밥도 주고 떡도 준다고.”
예수님이 베풀어주신 떡과 생선으로, 5천명이 넘는 많은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 12광주리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그 이튿날에도 이들은, 떡을 얻기 위하여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이때 주님께서 그들에게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라”(26)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육신의 양식만을 찾아온 그들을, 꼬집어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다.”고 자랑하듯 말을 합니다. 주님이 이 만나에 대하여 여러 가지를 설명하시면서, 이 만나 사건을 근거로, 자기는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임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요6:49-50). 광야에서 먹은 만나와,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을 비교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전자는 오랫동안 먹었지만 그것을 먹고도 죽었다는 것이고, 후자는 한 번 먹기만 하면, 영원히 죽지 않는 영생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하늘로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다(48), 이것은 요한복음의 특징 중 하나인, ‘나는 ...이다’라는 ‘에고 에이미’라는 표현을 쓰셨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에고 에이미’가 7번 나타납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8:12), ‘나는 양의 문이다’(10:7), ‘나는 선한 목자다’(10:11),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14:6),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11:25), ‘나는 참 포도나무다’(15:1). 이런 말씀들은 오직 주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다’라는 말씀도, 주님만이 하실 수 있고, 또한 주님만이 유일한 생명의 떡이라는 뜻입니다. 다른 것이, 다른 사람이, 죄로 말미암아 죽은 인간을 살릴 수 있는 생명의 떡이 될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하늘로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심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살을 찢고 피를 흘려주실 것을, 염두에 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 그의 제자들과 마지막 유월절 식사를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감사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 이르시되,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막 14:22-24)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본문에서 말씀하신 생명의 떡이라는 말씀과, 마지막 유월절 식사에서의 떡과 잔을 같은 개념으로 말씀하신 것이고, 이것은 곧 십자가 위에서의 대속적 죽음과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한 주님의 희생적 죽음을 기념하고, 여기에 동참함으로 받게 되는 은혜를 누리고자, 이 시간 성찬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 성찬이 우리에게 주는 몇 가지 은혜가 있습니다. 본문을 근거로 세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1.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고 했습니다(51, 54, 58).
세상 사람들은 무엇을 먹음으로 오래 살려고 했고, 심지어 죽지 않고 영원히 살려는 욕망을 가졌었습니다. 하와도 결국 ‘이것을 먹어도 결코 죽지 않고 하나님같이 된다는, 뱀의 말에 유혹을 받아, 선악과를 따먹은 것 아닙니까. 어떤 사람은 건강을 위하여 태국으로 뱀 먹으러 가기도 하고, 혹자는 건강을 위하여 해외로 곰쓸개 먹으러 가기도 한답니다. 돈 있는 어떤 사람은 명약을 찾아서 세계를 헤메인다고 하고, 현대 의학이 개발하고 있는 생체 음식을 먹으면 불로장생한다고 합니다. 혹시 그 뱀을 잡아먹고 곰쓸개를 먹고, 명약이나 생채 음식을 찾아서 복용한다 해서, 오래 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거 먹는다고 영생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영생 할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 51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 곧 자기 살이라고 하시면서, 이것을 먹으면 영생하리라는 것입니다.
54절과 58절에도 보시기 바랍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참된 양식이요 참된 음료인, 주님의 살을 먹고 주님의 피를 마시면,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이 말에서, 먹고 마신다는 말을 믿는다는 말로 대치하여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51절과 47절),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세례를 받고 이 성찬에 참예하는 사람들은, 영생을 얻고, 마지막 날에 생명의 부활로 나타나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이 떡과 잔을 받을 때, 여러분들은 감사함으로 믿음으로 받아, 먹고 마시기를 바랍니다.
2. 주님이 내 안에 거하신다고 하셨습니다(56).
본문 56절에서 주님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시는 자는, 주님이 내 안에 거하고, 내가 주님 안에 거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상호 내주’, 또는 ‘공동 내주’를 언급하신 것으로,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게 될 때, 그분이 우리 안에 살고, 우리가 그분 안에 산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거한다.’는 말은, ‘항상 머물러 있다.’ ‘영주한다.’는 뜻입니다. 주님이 나를 떠나지 않고 항상 내 안에 머물러 계시고, 내가 주 안에 영주한다는 것입니다. 이 관계는 영원히 변치 않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이후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 명령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19-20).
주님은 내 안에 좌정하여 계시면서, 항상 함께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항상 함께 하시겠다는 것은, 한 순간도 소홀함이 없이 동행하시겠다는, 임마누엘의 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까지 함께 해 주시겠다는 주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그 주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세상 만물에 대한 주권을 홀로 가지고 계신 그런 분이,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언제까지요? 세상 끝 날까지. 개인적 종말 때까지가 아니고, 이 세상 종말 때까지, 항상 임마누엘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것은 주님과 신자들 사이의 상호 연합과, 친밀한 교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포도나무와 가지와의 관계를 말씀하시면서도,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너희가 내 안에,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이 같은 말씀을 통하여, 주님과 상호 연합과 교제, 그리고 그것의 결과에 대하여 말씀해 주셨습니다.
오늘날 성찬을 통하여 주님과 나 사이의 관계를, 다시 한 번 더 확인하고, 더 깊게 하고, 더 친밀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성찬의 의미 중 하나가 교제입니다. 나와 주님과의 교제와, 나와 이웃과의 교제를 나누는 것이, 바로 성찬입니다.
이 성찬을 통하여, 주님이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분명히 확인하시고, 그 주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시기를 바랍니다.
3. 주님으로 말미암아 살아간다고 하셨습니다(57).
제가 좋아하는 성구 중의 하나인데, 57절입니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주님은 아버지의 보냄을 받아서, 이 세상에서 33년 동안 사셨는데, 전 생애를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셨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여기서 단 한번 사용하는 말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살아계신 아버지’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많으나, 살아계신 아버지라는 표현은 성경 여기에만 나옵니다. 이 말씀은, 생명의 원천이 오로지, 항상 살아계신 하늘 아버지에게 있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그 아버지로 말미암아 산다는 것은, 성자의 생명이 성부에게 달려있다는 의미로, 성자는 성부를 떠나서는, 결코 살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아버지께 의존하여 아버지로 인하여 살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 말은, 성자는 성부를 위해서 살아간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이 자신의 뜻대로 말하거나, 자신의 뜻을 펼치기 위하여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 성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오셔서, 그 뜻을 다 이루신 것입니다.
이것을 근거로,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주님이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하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주님이 아버지의 뜻대로 오셨고, 아버지의 뜻대로 말하시고, 아버지의 듯대로 행동하셨고, 결국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이루신 것처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시는 사람은, 주님으로 말미암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고 말씀하시면서, 가지로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포도나무를 떠날 수 없습니다. 포도나무에 꼭 붙어 있어서 자양분을 공급받아야 살 수 있고,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로 말미암아 산다는 것입니다. 가지가 포도나무를 떠날 수 없고, 물고기가 물을 떠날 수 없듯이, 신자들은 주님을 떠나서 살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분에게 붙어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삶으로,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하겠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2:20절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우리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구원 받은 사람들은, 이제 내가 사는 게 아니고 내 안에 주님이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자이시며,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가 되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과 뜻대로 사는 것 아닙니다. 내 고집과 내 주관과 내 경험과 내 지식대로 인생을 사는 게 아니라, 주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고, 주님의 통치 아래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천국생활입니다. 마음의 천국을 이루는 것이고, 심령의 천국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하든지 주님께 묻고, 생활해야 합니다.
주님, 이것 해야 될까요? 말아야 될까요?
주님, 이거 말해야 할까요? 안해야 할까요?
주님, 이거 사야 될까요? 사지 말아야 할까요?
주님, 저 직장 가야 될까요? 말아야 될까요?
주님, 저 사람과 결혼해야 될까요? 안해야 될까요?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엎드려 하나님의 뜻을 물으며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 뜻을 밝혀 주시고, 우리를 선하게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거기에 순종하여 사는 것을, 주님으로 말미암아 산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성찬은 세례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세례를 받은 사람이, 이 성찬에 참여하도록 규정해 놓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세례를 받을 때, 하나님과 여러 증인들 앞에서, 다음과 같이 서약을 했습니다.
1.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인정하십니까?
2. 여러분은 스스로 죄를 씻을 길이 없고, 오직 여러분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예수님의 공로를 믿음으로만 죄 사함 받고, 구원 얻는 진리를 믿습니까?
3. 여러분은 이제 성도로서 주일성수를 비롯한, 성도의 제반 의무를 성실히 준행할 것을 서약하십니까?
4. 여러분은 교회의 관할과 치리에 복종하고, 그 거룩함과 화평함을 이루도록 힘쓰겠습니까?
이런 서약을 진실 되게 하셨다면, 그 이후로, 주님으로 말미암아 이 서약을, 성실히 이루어 가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약과 여러분의 삶이 따로 놀면 안 되고, 같이 가야 하는 것입니다. 내 입술로 서약한대로 사는 것, 그것을 가리켜, 주님으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삶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성찬에 앞서서, 이 성찬에 참여하게 되면 어떤 은혜를 받을 수 있는지를, 간단히 살펴보았습니다. 이 성찬은 주님이 제정하신, 아주 귀한, 은혜 받는 교회의 예식입니다. 은혜의 수단인 이 성찬에 참여함으로, 어떤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까?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 주님이 내 안에 거하게 됩니다. 주님으로 말미암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 시간 성찬에 참예하는 여러분들은, 이 같은 은혜를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더 풍성히 누리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누리시기 바랍니다. 모두가 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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