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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말을 하나님의 통제 아래에 두라.(야고보서 3:1-12)
이정현 목사 2015-05-03 추천 0 댓글 0 조회 332

하나님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실 때, 인간에게만 언어생활을 할 수 있도록, 특별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 입으로 하루에 보통, 25000-30000마디 말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이 말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말이 그 사람의 인격, 철학, 지식, 가치관, 삶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하는 말은, 나 자신이 어떠한 자인가를 들어내는 도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을 들어보면, 그 사람이 어떤 자인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말이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나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것이, 내가 하는 말속에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기독교인 중에서도 성숙한 신자가 있고, 조금 덜 성숙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숙한 사람과 미성숙한 사람을 분명하게 구분 짓기는 쉽지 않겠지만, 그러나 신앙생활 하는 것을 보면, 어느 정도는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을 보면,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성숙한 신자는 우선 하나님과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감사의 말을 많이 합니다. 어떤 환경 속에서도 긍정적인 말, 믿음의 말을 합니다. 남을 칭찬하고 격려하고 힘을 주는 말을 합니다. 어느 누구 앞에서도 진실하게 그리고 진지하게 말합니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말을 합니다. 장점을 말합니다. 부드럽게 말합니다. 말에 절재를 합니다.  

 

그러나 미성숙한 사람은 그 반대로 말합니다. 하나님께 말씀 드리는 것을 즐겨하지 않습니다. 원망과 불평의 말을 많이 합니다. 환경이 조금만 어려워지면, 부정적이며 불신앙적인 말을 내 뱉습니다. 남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말을 서슴없이 합니다. 거짓을 말하고 심사숙고하지도 않고 말합니다. 상대방을 배려하지도 않고, 남의 험담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과격하게 말하고, 절제함이 없이 안해야 할 말도 다 해버립니다.  

 

그래서 저 사람이 성숙한 신앙인인가, 미성숙한 사람인가? 그 사람의 말을 보아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단적으로 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어떤 여자 집사님이, 눈이 시퍼렇게 멍이 들어서, 목사에게 찾아 와서 상담을 합니다. ‘아니 집사님, 무슨 일이 있어요? 누가 이랬어요?’ 남편하고 부부싸움을 했는데, 남편이 이렇게 때렸다는 것입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가 나오다가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혹시 남편이 때리기 전에, 집사님이 무엇이라고 말한 것이 있습니까?” “예 목사님, 하도 화도 나고 신경실이 나서, 한바탕 해 줬지요.” “그래 잘났다. 그래도 사내라고. 당신이 해 준 게 뭐가 있어. 때려 봐! 때려! 아예 죽여!” 이 말을 들은 목사님이, 그 여 집사님에게 한마디 했답니다. “그래도 남편이 훌륭한 데가 있네요. 죽이라고 하는데 때리기만 했으니까...”  

 

이 예에서, 남편이 아내를 구타한 것, 손의 폭력을 쓴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입니다. 하지만 아내가 남편의 자존심을 건드린, 언어의 폭력도 분명히 잘못 된 것입니다. 손의 폭력도 아내의 마음에 두고두고 아픈 상처로 남아있겠지만, 언어의 비수 또한 남편의 마음에 오랫동안 박혀있을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은 말과 행동에 있어서, 결코 성숙된 신자라고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바라기는 소망교회의 모든 성도들은, 성숙한 신자답게, 은혜롭고 덕이 되는 말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초기 교회에서는 선생(교사)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그들은 교회나 회당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성도들을 양육하는 일을 했습니다. 무엇인가 남을 가르치려면, 자기가 먼저 잘 알고 있거나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경험과 지식이 풍부하고 인품이 좋은 선생은, 마땅히 좋은 평가를 받을 것입니다. 초대교회 당시의 선생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매력적인 직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서 당시 많은 사람들이 선생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1)고 하셨습니다. 선생들이 더 큰 심판을 받으니 선생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속히 선생이 되려고 하지 말라는 뜻과, 마치 선생인 척 하지 말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대로 준비도 하지 않고, 성급하게 선생이 되려는 자들을 경계하는 말씀이고, 아울러 이미 선생 된 사람들이, 자기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지 못하고, 오히려 지위나 명예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선생인척 하는 사람들에게, 선생이 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어서 2절에,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고 하셨습니다. 말에 실수가 없으면 온전한 사람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온전하다는 것은 성숙하다, 완전하다는 뜻입니다. 말로 인해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은, 성숙한 사람인데, 그런 사람은 자기 입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자기 몸 전체도 잘 절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야고보가 본문 1-2절을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은, 경솔하거나 이기적인 마음으로 선생이 되려고 해서는 안 되고, 또한 자기의 혀를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은, 자기 몸 전체를 통제할 수 있다고 교훈한 것입니다.  

 

교회에서 누군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자 하는 사람들은, 기도하면서 신중하게, 잘 준비하여 자원해야 하고,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쳐 줌으로, 그들을 귀한 그리스도의 제자로 만들고자 하는 마음으로, 교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 안에 가르치는 모든 선생들은, 잘 준비된 교사가 되어서, 아이들과 학생들과 구역식구들과 자식들을, 말씀으로 잘 양육하는 훌륭한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말할 때마다, 우리의 혀를 잘 다스려야 하겠는데, 말에 대한 야고보의 교훈을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우리의 말에는,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알고 말해야 합니다.

 

본문 3-4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3-4).  

 

말(馬)이 얼마나 힘이 셉니까? 사람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겠습니까? 힘센 말을 조종하려면 그 입에 재갈을 물려야 하는 것입니다. 국어사전에서 재갈이라는 단어를 찾아보니까, ‘말을 부리기 위하여 아가리에 가로 물리는 가느다란 막대’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런 재갈을 물리지 않으면, 결코 사람의 힘으로는 사나운 말을 움직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사납고 힘센 말이라 할지라도, 입에 재갈을 물리기만 하면, 기수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말을 통제할 때, 반드시 입에 재갈을 물려야만 합니다. 그 재갈로 덩치 큰 말을, 죄로 우로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배’가 아무리 클지라도, 그 배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지극히 작은 키입니다. 수천 수만 톤의 배라 할지라도, 작은 키 하나로 사공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따라서 배에 키가 없거나 부러져 버린다면, 그 배는 방향 없이 표류하거나 암초에 부딪쳐 파선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배 안에 키가 튼튼하다면, 선장은 자신의 뜻대로 항해할 수 있으며, 정해진 목표 지점에 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말의 재갈이 말을 통제하듯이, 배의 키가 배의 방향을 결정하듯이, 우리들의 혀도 내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기수가 말의 재갈을 함부로 다루면, 말이 한 방향을 향해 열심히 달려갈 수 없고, 선장이 배의 키를 함부로 좌우로 돌리면, 배가 방향을 잃고 마는 것처럼, 혀도 함부로 놀리면, 내 인생의 방향이 바로 서지 않고 표류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 입이 부정적으로 말하면, 내 인생도 부정적인 인생이 되는 것이고,

 

내 말로 남의 마음에 상처만 준다면, 내 인생도 상처투성이인 인생이 되는 것이고,

 

입만 열면 원망하고 불평한다면, 평생 동안 원망 불평하는 인생이 될 것이고,

 

말할 때마다 거짓말만 한다면, 그 인생은 거짓되고 사기 치는 인생이 될 것이고,

 

말끝마다 불신적인 얘기만 한다면, 매사에 의심하는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내가 하는 한마디 한마디 말이, 차곡차곡 쌓여서 내 삶의 방향을 정한다는 것을 알고, 절제된 언어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 입에 재갈을 물려서, 내 혀를 통제해야 합니다. 내 말을, 하나님의 통제 아래에 둘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우리의 말에는, 파괴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알고 말해야 합니다.

 

5절 6절의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여기서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고 했습니다. 이는 혀의 악함을 말하는 것으로, 우리 주변에 보면, 혀의 전쟁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릅니다. 서로 다투고, 시기하고, 상처주고, 죽이는 말들을 거침없이 내뱉고 있습니다. 결국 혀는 마음을 깨뜨리고, 가정을 파괴하며, 관계를 무너뜨리고, 교회를 파괴합니다.

 

1939년 9월 1일 아돌프 히틀러는, 폴란드를 향해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히틀러의 말 한 마디가, 온 세계를 전쟁의 포화 속으로 몰아넣었고,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됐습니다. 이 세계대전을 통하여 수천만 명이 죽었고, 인류는 유사 이래 최대의 공포 속에 떨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히틀러의 말 한 마디는, 온 세상을 전쟁과 죽음과 불안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것입니다. 히틀러의 말 한마디 때문에, 수 많은 가정과 교회와 국가가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혀는 온 몸을 더럽힌다고 했습니다. 더러운 공기가 온 도시를 오염시키고, 오염된 물이 마을 주민 모두를 죽게 만드는 것처럼, 이 혀가 악하게 사용이 되면, 인격 전체를 오염시키고, 모든 사람을 더럽게 만드는 것입니다.

 

또한 혀는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른다고 했는데, 여기서의 생의 바퀴는, 삶의 전 과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통제되지 않은 말은, 내 삶의 전 과정에 미치고, 전 인생을 불사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혀는, 자기 몸을 쉴 새 없이 파괴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혀는 길들일 사람이 없고,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고 했습니다(7-8).이 구절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혀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것이지만, 잘못 사용하면 큰 피해가 된다는 것입니다. 불은 우리의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것입니다. 추운 겨울에도 필요하고, 음식을 만들 때도, 자동차를 움직일 때도 불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불을 잘못 사용하면 큰 피해를 봅니다. 그래서 불은 사용하면서도 무서워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들의 말도 산불처럼 번질 수 있습니다.  

 

아주 작은 불씨가, 큰 산의 모든 나무를 다 태워 파괴해 버립니다. 나무를 심어 가꾸어 자리잡는데 20-30년 걸리지만, 작은 담뱃불 하나에 잿더미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혀도 지극히 작은 것이지만, 우리 인생 전체를 불태울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좋지 않은 말들, 거짓이나 풍문, 비방과 험담, 원망과 불평은 일반뉴스보다 더 빨리 전달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런 내용들은 상대방에게 심각한 피해를 가져 다 주기도 합니다. 우리들의 혀에는 파괴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알고, 항상 언어생활에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3. 우리의 말에는, 양면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말해야 합니다.

 

9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말을 허락하신 것은, 의사를 소통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이웃에게 용기와 위안을 주도록 지어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혀를 악한 곳에 사용할 때가 많습니다. 이 혀로 하나님을 찬양하기도 하지만, 형제를 저주하고 욕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샘물이 한 구멍에서 단물과 쓴 물을 같이 낼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무화과나무가 감람나무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 열매를 맺을 수 없듯이, 우리의 입에서도 두 가지 극단적인 말이 나올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입에서 두 말이 같이 나오는 모순된 입이라는 것입니다. 한 입으로 이 말했다 저 말 합니다. 앞에서는 이 말하고 뒤에서는 저 말 합니다. 주일에 교회 나와서는 하나님께 찬송하고,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다가, 평일에도 똑같은 입으로 하나님께 원망하기도 하고, 이웃을 씹기도 하고, 비판하고 험담하고, 시기 질투하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소망교회 성도들의 입에서는 일관된 언어가 나와야 하겠습니다.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왕이면 주님을 찬양하고, 감사의 말을 하고, 칭찬하고 격려하는 말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 부인의 한 마디 말은, 아이젠하워의 인생을 완전한 성공으로 이끌어 주었습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군인출신입니다. 10년째 소령으로 있으면서 진급이 되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실망과 짜증이 날만도 했는데, 그녀는 남편에게 짜증을 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여보, 난 당신을 믿어요. 되지 않는 진급에 얽매이지 말고, 교육 방면에 1인자가 되 보세요. 반드시 당신에게 기회가 올 거예요.” 이렇게 위로하는 아내의 말이, 단순한 위로의 말이 아닌 새로운 용기를 주는 말이 됐습니다. 이 때부터 아이젠하워는, 군사교육을 연구하는데 전념하여, 마침내 군에서 인정받는 교육의 일인자가 됐습니다. 그러더니 바로 중령으로 진급이 됐고, 또 얼마 안 가서 대령이 됐고, 그리고 별을 달고 해군 사령관이 되는 등, 고속승진이 됐습니다. 그러다가 결국엔, 미합중국의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는, 행운을 얻게 되었습니다. 격려의 말, 생명의 언어는 이렇게 힘이 있고, 이렇게 위대한 성공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결론

 

에모토 마사루라는 일본 학자가, 물과 소리의 영향에 대하여 연구를 해서, 책을 한권 내 놓았습니다. 그 책 제목이 “물은 답을 알고 있다”입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물이 좋은 말, 아름다운 음악소리를 들으면 좋은 결정인 육각수의 결정을 가지지만, 나쁜 말, 시끄러운 헤비메탈과 같은 음악을 들으면, 물의 결정이 깨어져 흩어진다고 말합니다. 이 같은 사실을 과학적으로 증명하였습니다.  

 

그 실험을 잠깐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물을 한 그릇 떠 놓고, 그 물을 향해 좋은 말을 하는데, ‘참 예뻐, 정말 잘했어, 너무 멋져, 천사, 고맙습니다, 감사, 사랑, 힘내’ 등등의 말을 하고, 물의 결정체를 특수 카메라로 촬영을 했더니, 그 물이 가장 좋은 육각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그 물을 향해, ‘바보, 싫어, 짜증나, 하지 못해, 무관심, 죽여 버릴꺼야, 악마’ 이런 말을 하고 동일하게 조사해 보았더니, 물의 결정체가 깨져서 좋은 물이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사람에게 적용해 보는 것입니다. 우리 몸은 70-80%가 물로 되어있습니다. 사람들의 대화 중에 ‘나를 물로 보지 마, 누구를 물로 보나?’ 이런 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사람은 거의 물로 된 존재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좋은 말을 들으면, 우리 몸의 물성분이 육각수로 바뀌어, 우리 몸을 유익하게 만들지만, 하지만 부정적인 생각, 부정적인 말을 들으면 물의 형체가 깨어져서, 몸에 안 좋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 좋은 그 물이, 암세포를 돕는 역할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처럼 말에는 역사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말 한마디에 사람들의 삶이 달라집니다. 격려와 칭찬의 말 한마디로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저주와 독한 말은 사람을 죽게도 합니다.

 

우리는 말 때문에 상처가 되기도 하고, 말 때문에 큰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 교회의 일을 하면서 말 때문에 시험에 들기도 하고, 반대로 힘과 용기를 얻기도 합니다.

 

성경에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엡5:4)고 했습니다. 또한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 4:29)고 하셨습니다. 야고보 선생은, ‘너의 말을 잘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141:3).

 

  우리 모두는, 이제 이후로 더 철저히, 우리의 말을 하나님의 통제 아래에 둠으로, 늘 감사하는 말을 하고 덕을 세우는 말을 함으로, 듣는자들에게 은혜를 끼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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