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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야를 기다리다 만난 두 사람 (누가복음 2:22-39)
이정현 목사 2015-12-20 추천 0 댓글 0 조회 700

본문에는 두 사람의 중요 인물이 등장합니다. 한 사람은 시므온이고, 다른 한 사람은 안나입니다. 이 두 사람에 관하여, 이들은 어떤 신앙의 사람이었는지, 그리고 이들이 무엇을 하였는지를 살펴봄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시므온은 어떤 사람입니까?

 

1. 의롭다. / 옳다. 바르다. 세상에 사람은 많지만, 바른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교인들은 많지만, 신앙의 정도를 걷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므온은, 의로운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적당히 타협하지 않았고, 곁길로 가지 않았습니다. 정도를 걸은 사람이었습니다. 뿐만아니라 도덕적 성품이 완전한 사람입니다.

 

2. 경건하다. / 말씀과 기도로, 늘 하나님과 교통하는 사람을 말함...성경에서 경건은 ‘고아와 과부를 돌보며, 자신을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는 자’라고 하셨음...경건이라는 이 단어를, 오늘날에는 중세의 영향을 받아서, 영성이라는 말로 많이 사용을 하는데, 이 단어는 성경에 없는 말임으로, 가급적 원래 성경대로, 경건, 또는 경건생활, 경건훈련이라는 말로 사용하는 것이 더 좋을 듯합니다. 아무튼 경건하게 살기도 쉽지 않은 세상 환경이지만, 우리도 시므온처럼 경건했으면 좋겠습니다. 늘 말씀과 기도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3.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이다. / 이스라엘의 위로는 ‘메시야’를 의미함. 또 26절에 나타나 있는 ‘주의 그리스도’라고도 할 수 있음... 또는 이사야서에서는 주로 ‘예루살렘의 구속’이라는 말을 씀. 곧 메시야를 기다리던 사람이라는 뜻임...

 

시므온 뿐만 아니라,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 전체는, 다 메시야 대망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애굽-앗수르-바벨론-메대파사-그리스-로마 시대까지 수 천년 동안 억압과 고통 속에 살았음...하나님은 그 때부터 지금까지 메시야가 오신다. 그가 오시면 너희들에게 자유와 평강이 있으며 평화가 있을 것이라고 하셨음...그러니 현실의 고통 속에서, 그들은 평화를 주러 오실 메시야를 기다리고 기다렸던 것입니다...이것을 우리는 유대인들의 메시야 대망사상이라고 합니다. 시므온은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였습니다.

 

4. 성령에 충만한 사람이다. /25절 하-‘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26-‘성령의 지시를 받았다.’ 27-‘성령의 감동을 받았다.’ 시므온 위에 성령이 계심으로, 그는 성령의 지시와 감동을 받아서,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자기 마음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성령님의 통치와 인도를 받았던, 영적 사람이었습니다...시므온은 세례요한과 신약의 사도들처럼 성령에 충만하여, 그 성령님의 인도와 지도를 받으며 살았습니다.

 

이처럼 시므온은 의로운 사람, 경건한 사람, 메시야를 대망했던 사람, 성령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대단한 영적 사람이었고,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제를 나누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성전에 들어갔더니, 마침 예수님의 부모가 아기 예수를 안고, 율법의 관례를 지키고자, 성전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율법의 관례’는 21절에 나오는 예수님의 할례의식과는 다른 것이라고 봅니다. 여기서 말하는 ‘율법의 관례’는, 레위기 12장에 나오는 것으로,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40일 후에 예루살렘 성전에 데려가서, 제사를 드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할례이후에 해야 하는, 율법의 관례였던 것입니다. 할례는 예수님과 관계된 예식이었고, 지금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관계된 정결 예식이었는데, 이때에 그의 부모들이, 예수님을 하나님께 바치는 의식까지 같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경건한 예수님의 부모들은,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제사를 드리게 됩니다. 원래 이 제사에는 어린 양을 잡아서 제물로 드려야 하지만, 예수님의 부모들은 너무 가난해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를 하려고 합니다.

 

앞에서는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행하시고, 이제는 난지 40일 만에 율법의식을 행하신 것을 볼 때, 주님은 율법아래 나셔서 율법을 준수하시고, 결국 율법을 성취하시는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아기를 데려왔을 때, 바로 그곳에서 시므온이, 아기 메시야를 만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께 찬송하였습니다.

 

시므온의 이 찬송을 우리는, 라틴어로 ‘눈크 디미티스’라고 합니다. 라틴어로 눈크는 ‘이제’라는 뜻이고, 디미티스는 ‘주’ 또는 ‘주재’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눈크 디미티스는 ‘주재여 이제’라는 뜻입니다.

 

이 찬송을 보면 시므온이, 얼마나 메시야의 오심을 고대하고 사모하였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늙고 고달픈 몸을 이끌고 살아가는, 그의 한 가지 소망은 메시야를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메시야를 지금 두 눈으로, 목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하겠으며, 얼마나 감격했겠습니까? 그래서 그는 이제 메시야를 보았으니, 종이 용서를 받아 자유케 되었으며, 평안히 죽을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2:29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이어서 시므온은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2:30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예수님은 지금 아기로 누워계시지만, 이 분은 만민을 위한 구원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처음부터 메시야였다는 것입니다. 점점 자라서 세례를 받을 때, 메시야가 된 것이 아니고, 처음부터 메시야이셨고, 아기로 태어날 때도 메시야이셨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이전 하늘나라에서도 역시, 메시야로 계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00년 전에 태어나신 그 분은 메시야이셨고, 지금도 영원한 메시야로서, 하나님 우편에 존재하여 계시는 것입니다.

 

이 같은 시므온의 고백에 이어, 이제는 그리스도를 이렇게 선포하십니다. “2:31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주님은, 하나님이 오랫동안 예비하신 복음이십니다. 모세와 선지자들이 오리라고 하신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그러므로 얼마나 오래 되었습니까? 그때부터 계속하여 인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메시야를 약속해 주신 것입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 하나님은, 죄악 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구원자 메시야를 오랫동안 준비하셨다가, 이 땅에 보내어 주신 것입니다.

 

또한 계속하여 말하기를, 주님은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라.’고 말합니다. 구약성경 전체가 이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메시야는 이방을 비추는 빛이시며, 동시에 이스라엘의 영광이라고 말입니다. 여기서의 이스라엘은 육적 이스라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이스라엘, 즉 현대의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교회의 영광이라는 뜻입니다.

 

시므온의 이 찬송은 결국, 지금 안고 있는 이 아기가, 어떤 분인가를 말하는 것임과 동시에, 이 아기에 대한 예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민을 위한 구원자이시며, 이방을 비추는 빛이 되실 것이고, 교회의 영광이 되실 것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시므온은 아이의 장래에 대하여 예언하였습니다.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2:35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이중적인 사역을 엿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심이 모든 사람에게 다 복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를 믿고 영접하는 자에게는 구원이요 영생이 되지만, 그렇지 않는 자들에게는, 오히려 낭패가 되고 심판이 된다는 것입니다(요3:18, 고후2:16). 이것은 율법을 듣고 그것을 지키는 자에게는 복이 되지만, 율법을 듣지 않고 파괴하는 자는, 저주가 되는 원리와 같은 것입니다(수8:34, 신28장).

 

실제로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사역을 하셨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분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여 믿고 따른 사람도 있었지만, 반대로 상당수의 사람들은, 믿지 않고 반대하고 심지어 그를 죽이려고까지 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말았습니다. 십자가에서 모진 고통과 저주와, 아픔을 당하고 계신 주님의 그 모습을, 그 십자가 밑에서 똑똑히 바라보고 계신 분이 마리아였는데, 이때 어머니 마리아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때를 내다보며 시므온이, 오늘 본문에서 마리아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 그때 자식을 바라보는 너의 마음은, 칼에 갈기갈기 찢기듯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사역의 결과를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든 이적이든 또 다른 행동이든 간에, 그것을 듣고 보는 사람들은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겸손하게 그분의 말씀과 행동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도를 구하는 그들의 선한 마음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받아 드리지 않고 그의 행동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완악한 마음을 드러내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선과 악, 선택받은 자와 선택 받지 못한 자 사이의 구분이 확연히 드러나게 되며, 그 사람의 생각이 밖으로 드러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시므온에 관한 지금까지의 말씀을 정리해 보면, 그는 의롭고, 경건했으며,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던 자였고, 성령에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상당한 신앙 인격을 갖춘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그가 성전에서 아기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서, 그 예수에 관하여,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구원자이시며,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이스라엘의 영광이요, 이 아이는 사람들의 흥함과 패함의 표적이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분이 메시야이심과 이분의 장래에 관해서도 분명히 말씀한 것입니다. 그는 기다리던 메시야를 만났을 뿐만아니라, 그 메시야를 많은 사람들 앞에 증거 한 것입니다.

 

두 번째 등장하는 안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1. 나이 많은 여선지자였습니다. /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가 매우 많았더라.’

 

2. 오래 동안 과부로 살았습니다. / ‘그가 결혼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지금 37절 성경은, ‘과부가 되고 84세가 되었더라.’고 말하지만, 옛날 성경에는 ‘과부가 된 지 84년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만약 과거의 성경을 따른다면, 결혼해서 7년 동안 살다가, 남편과 사별하고, 84년 동안 과부로 지내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나 현재의 번역을 따른다면, 안나가 과부로 산 횟수는 모르고, 단 현재의 나이가 84세임을 밝혀주는 것입니다. 두 가지 해석이 다 가능하지만, 현재의 번역을 따라서, 현재 안나의 나이가 84세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봅니다. 어느 번역을 따르든지 간에, 그녀가 오래 동안 과부로 살았다는 것과, 현재 나이가 많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3.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하며 살았습니다. /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이 여인은 젊은 과부시절부터, 성전 중심, 교회 중심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 안에서, 자신의 육신의 정욕을 쳐서 복종시키려고, 늘 금식하며 경건하게 살았던 여인이었습니다. 지금 늙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늘 금식하며 기도하며, 메시야를 기다리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할머니가 금식하며 기도하며 살기가 결코 쉽지 않지만, 안나는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4.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 ‘하나님께 감사하고’-이 늙은이로 하여금 메시야를 보게 하신 것을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시므온이 찬송하고 있는 내용을, 이 안나가 듣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여인은 내가 지금까지 주야로 금식하며, 이스라엘의 구속,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랬는데, 이제야 이 두 눈으로 뵙게 하시니, 감사합니다라고 했던 것입니다.

 

5. 그 여선지자도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이 분이 바로 예루살렘을 속량할 자’라고 말했습니다. / 시므온과 마찬가지로, 메시야를 대망하다가 그 메시야를 만나서, 많은 사람들에게, ‘이분이야 말로 우리가 기다리던 그 메시야라’고 말한 것입니다.

 

결론

1. 두 사람의 공통점/   1) 신앙생활에 경건했던 사람

  2) 메시야를 기다리던 사람

  3) 기다리던 그 메시야를 만나고, 메시야를 증거 했다는 것... 각자의 사명 감당

 

결국 본문을 유심히 살펴보면, 시므온이나 안나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어린 아기 예수님께 초첨이 맞추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메시야로 태어나신 그리스도가 이 본문의 핵심인 것입니다. 저들이 이처럼 기다리던 자가 누구이냐? 그들의 대망 가운데 만난 분이 누구인가? 그들의 입을 통해 전파된 분이 누구이신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성탄 계절의 중심은 사람이 아니라,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 이심을 알고, 그분에게 주의 집중하고,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계절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시므온과 안나처럼 경건한 신앙생활로, 주님의 재림을 고대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시므온과 안나는 주님의 초림을 고대하였지만, 우리는 지금 재림을 고대하는 것입니다. 경건하게 삶으로 다시 오실 주님을 대망하는 것입니다.

 

아울러 주님을 뵈올 때까지, 자기의 사명에 충실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사명은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것입니다.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구원자이시며,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이스라엘의 영광이요, 이 아이는 사람들의 흥함과 패함의 표적이 될 것이고, 예루살렘을 속량할 자’라고 전파하는 일에 성실한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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