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갈라디아서3:23-29 개역개정
-
23.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25.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29.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갈3:23-29, 율법과 그리스도 아래에 있을 때의 우리
사람은 누구 아래에 있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영향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좋은 부모님 아래서 성장을 한다면 분명 자식들은 그 부모의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또 좋은 선생님 밑에서 공부를 하거나 연구를 하면 그 학생 역시 선생님으로부터 좋은 영향을 받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나쁜 사람 밑에서 살면 그 사람 역시 나쁜 영향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옳지 못한 부모와 나쁜 선생과 교수 밑에서 자라고 공부를 한다면, 그 자식들과 학생들은 분명 좋지 못한 영향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누구 밑에서 사느냐? 누구 밑에서 공부를 하느냐? 누구 아래에서 회사 생활을 하느냐가 우리의 현재적 삶과 미래의 삶에 대단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우리가 율법 아래에 있을 때와 그리스도 아래에 있을 때의 모습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그 모습은 확연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율법 아래 잇을 때의 내 모습과 그리스도 안에서의 내 모습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1. 그럼 먼저 율법 아래에 있을 때의 우리의 모습을 보겠습니다. 이때의 모습을 두 구절을 통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율법 아래 있을 때의 우리의 모습을 다른 말로, ‘믿음이 오기 전에’라는 말로 표현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 아래에 있다는 말과 믿음이 오기 전이라는 말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23절에서 율법 아래 있을 때, 또는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의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1)감옥에 갇혀있는 것과 같았다고 말합니다.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23). ‘우리가 매인바 되다’는 말을, 다른 성경에서는 ‘우리가 수감되다’(NIV), 또는 ‘우리가 속박되다’(KJV)는 뜻으로 번역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번역본들을 근거하여 볼 때 이 말은, 율법 아래에 있을 때 우리는 모두 죄수처럼 율법이라는 감옥에 갇혀서 살았다는 말이 됩니다. 거기에다 이 말은 한두 번 갇혀 있다가 풀려 난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갇혀있었다는 뜻입니다. 믿음이 오기 전까지 계속적으로 율법아래 갇혀 있었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오기 전 우리의 모습이었습니다. 마치 죄인처럼 율법에 매여서, 율법의 굴레에 갇혀서, 율법의 감시를 받으며 믿음이 오기 전까지 살았습니다.
이때의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구원을 얻는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크게 구원을 얻는 믿음과 그 다음 생활에 필요한 믿음으로 나눌 수가 있겠습니다. 구원 얻는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지만, 우리의 삶에 필요한 믿음은 성령의 은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성령의 은사로서 큰 믿음의 소유자가 되어야 하는데, 그 믿음의 기초가 바로 구원 얻는 믿음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게 되는 이 믿음이 오기 전에 모든 인간은 율법 아래에 갇혀 정죄 받으며 살았던 것입니다.
2)그리고 율법아래 있을 때의 우리의 모습을 한 가지 더 말해주고 있습니다. 24절 말씀에 나옵니다.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었다고 했는데, 이때의 초등교사는 정식 학교의 교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주인의 종으로서 어린 아이들의 학교출입을 지도하고 예의범절을 가르치고 때로는 숙제를 검사하고 그 행동 전반을 감독하고 보호하는 개인교사를 말합니다. 집안에서 아이들의 버릇을 가르치는 가혹할 정도로 엄격했던 훈육교사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늘 회초리나 짧은 지팡이를 가지고 다니며 아이들을 엄하게 지도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초등교사는 임시직이었습니다. 그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만 그를 책임지고 돌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근거하여 볼 때, 우리에게 믿음이 오기 전까지 우리는 그런 초등교사 밑에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엄한 규율 가운데 자유도 없이 가혹하게 살았음을 표현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맨날 율법 초등교사에게 혼나는 것입니다. 이것도 잘 못했고 저것도 잘못했고, 시간시간 죄 지었다고 혼나는 것입니다. 불안과 두려움 가운데 사는 것입니다. 언제 벌서고 매 맞을지 모르니까 언제나 벌벌 떨면서 사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두 구절을 통하여 우리가 율법 아래 있었을 때의 모습을 2가지로 설명한 것입니다. 우리는 율법이라는 감옥에 갇혀서 살았다, 또한 맨날 잘못하고 죄짓는다고 율법의 초등교사 한테 혼나며 지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바울은 이런 말씀을 하기 전 앞부분에서는 이것보다 더 심한 말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믿음이 오기 이전에 너희들은 ‘저주 아래 있었고(10절), 율법의 저주 아래 있었다(13절)’고 단정적으로 말한 바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 아래서 율법에 매여 산 것이나, 율법의 초등교사 밑에서 날마다 질책과 벌을 받으며 사는 인생은 곧 저주 아래 있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곧 구원 얻는 믿음이 오기 전에는 모두 다 율법의 저주 아래 있는 존재인 것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저주 받아서 영원한 지옥에 갈 사단의 자식들입니다.
2. 그러면 이제 한걸음 더 나아가서,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의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바울은 우리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그리스도 아래에 있을 때의 우리의 모습을 3가지로 설명을 합니다.
1)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23절에서는 ‘믿음이 오기 전에’라고 말했다면, 이제 25절에서는 ‘믿음이 온 후로는’이라는 말을 쓰면서, 정 반대의 상황과 내용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율법 아래 있을 때를 믿음이 오기 전이라는 말로 표현했다면, 이제 그리스도 아래(안에) 있을 때를 ‘믿음이 온 후로’라는 동일한 말로 표현했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믿음이 온 후로는, 다시 말해 그리스도 아래 있을 때에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다고 했습니다. 옛날에는 초등교사 아래에서 질책을 받으며 정죄를 당하기도 하고 벌을 받기도 했고 두려워 벌벌 떨었는데, 이제는 그 아래에서 벗어났다는 것입니다. 뭐가 와서, 초등교사 아래에서 벗어나게 되었지요? 예 믿음이 와서. 구원 얻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제 초등교사 아래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율법의 감금상태에 있거나 정죄 받은 상태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이 위대한 선언을 간단히 거꾸로 얘기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될 수 있고 그 이전에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는 없지만 다른 성경을 근거로 말한다면, 믿음 이전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다시 앞에서 순서대로 말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믿음을 가질 수 있고, 그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는 것이고, 그래야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 전체의 핵심 된 진리이고 또한 본문의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개인의 구세주로 믿어야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에서는 “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율법 아래 갇혀있던 우리를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사셔서 아들의 명문을 얻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확실하게 선포한 이후에, 다음 구절에서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데,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외적인 표가 세례입니다. 그래서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졌고 또한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고 설명을 합니다. 율법의 옛 옷은 벗어던지고 이제는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은 것입니다. 세례는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이고 동시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외적인 표시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으십니까? 믿음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확신하십니까? 세례를 받음으로 그리스도로 옷 입었습니까?
로마 사람들은 남자가 16세가 되면 매년 3월 17일에 성인식을 하는데, 이때 toga virilis(토가 비릴리스)라는 옷을 입혀 줍니다. 이것은 하나의 롱코트입니다. 이것을 입혀주면 그때부터 그 소년은 성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토가 비릴리스는 ‘저 사람이 성인이다.’라는 표시의 옷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라는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며 또한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로 옷 입고 계십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2)예수 안에서 우리는 다 하나가 되었습니다. 28절 말씀에서 이 사실을 밝혀주는데, 민족의 차별도 없고 신분상의 차별도 없고 성별상의 차이도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은 사람은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차별이 없습니다. 인종차별이 없다는 말입니다. 세계 어디를 가든지 어떤 모습으로든 인종차별은 다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는 차별이 없이 우리는 하나입니다.
또한 주 안에서는 신분상의 차이도 없습니다. 종이나 자유인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세계 어디를 가든지 그곳에는 반드시 신분이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이 존재하고 종과 주인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세속적 신분이 철폐되고 계급적인 차별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차별 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동등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주 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또한 주 안에서는 남자 여자의 성차별도 없습니다. 옛날에는 남존여비 사상이 강했지만 지금이 많이 나아진 것 같습니다. 이미 1세기 때에 바울은 남녀평등에 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하여 남녀 구별은 존재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문제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상호 형제자매로서 동등한 사람임을 인정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중에 다른 사람을 멸시하거나 편애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차별이 없는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로서 하나가 되었습니다(고전12:12-13, 골3:15).
3)그리스도 아래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습니다. 본문 마지막 구절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29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우리가 만약 그리스도 안에 있거나 그리스도 아래에 있거나 그리스도의 것이라면, 우리는 영적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육적 아브라함의 자손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히브리인으로 이스라엘 땅에서 태어나지 않게 하셨습니다. 극동의 작은 나라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브라함의 육적 자손은 될 수 없지만, 예수를 믿음으로 영적 아브라함의 자손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면 또한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가 되었습니다. 유업을 이을 자라는 말은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축복에 참여할 자’라는 뜻입니다. 한 마디로 천국을 상속 받을 자라는 뜻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 1절에서는 “유업을 이를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라”고 하셨고 또한 갈라디아서 4장 7절에서는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약속하셨음으로 반드시 그렇게 이루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혹시 부모로부터 많은 재산을 상속 받을 자입니까? 우리는 부모로부터 집이나 부동산이나 회사나 통장을 유산으로 받지는 못한다하더라도, 그것들보다도 훨씬 더 가치 있고 중요하고 영원한 낙원인 천국은 유업으로 받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액면 그대로 믿으시면 먼 훗날 반드시 믿음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비록 요 모양 요 꼴로 산다하더라도 천국을 유업으로 받을 상속자라는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결론
나는 누구입니까? 우리는 누구입니까? 믿음이 오기 전에는, 평안과 기쁨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율법 아래 갇혀서 율법의 책망을 받으며, 고통과 괴로움 가운데 죄의 저주 아래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온 후로는 내 모습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를 믿었더니,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셨고, 세례를 통하여 하나가 되게 해 주셨고, 주 안에서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게 하셨고 천국의 상속자가 되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나의 신분을 완전히 바꾸어 주셨습니다. 주님이 나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셨습니다. 주 예수께서 나를 하나 되게 해 주셨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셨고 도한 천국의 시민권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 아래서 이 같은 놀라운 은혜와 사랑과 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각양 좋은 것들의 공동 상속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 믿음 위에 굳게 서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한 몸의 지체답게, 또한 천국의 상속자답게, 멋지게 당당하게 신실하게 살아가는 우리가 되도록 합시다.
댓글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