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마태복음6:9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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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제공: 대한성서공회
마6:9,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지난번 시간에는 주기도문의 처음 부분으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 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기도의 대상이 누구인지를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를 초월하여 계신 아버지이신데, 그 하나님은 만물에 대한 주권자이시고, 모든 일을 하실 수 있는 전능자이시며, 또한 모든 것을 아시는 전지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바로 그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그 다음에 나오는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라는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에는 기도의 대상에 대한 말씀이고, 이제부터 본격적인 간구가 나오는데, 전체 6가지의 간청 중 첫 번째 간구에 해당됩니다. 여기서 다루어야 할 부분은 두 부분인데 하나는 ‘하나님의 이름’이고 다른 하나는 ‘거룩하게 하시며’입니다. 먼저 아버지의 이름에 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여기 이름(쉠, 오노마)에는 단순한 호칭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여기에는 네 가지 뜻이 있습니다. 인격, 사역, 평판 그리고 존재자체입니다. 그래서 누구의 이름을 대면 그 사람의 인격, 그 사람이 한 일, 그 사람에 대한 평판, 그리고 결국은 그 사람 존재자체를 생각하고 말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이정현 그러면, 여러분은 저의 인격에 대하여 말할 것입니다. 저 사람 인격이 됐어, 아니면 저 사람 인격이 엉망이야, 바닥이야, 그것도 아니면 저 사람 인격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니야-등의 말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정현 그러면, 여러분은 제가 한 일들을 말할 것입니다. 교회를 개척해서 지금까지 목회하고 있다. 대학교에서 교수 생활을 20년 동안 했다. 50여권의 책을 쓴 저술가이다. 어떤 사람이 전화를 했습니다. ‘야 이 목사, 지난번 명랑에서는 벙어리로 나오더니만, 이번 군함도에서는 주연으로 나오던데...’ ‘제가 국회에서 정치도 하고 영화도 찍고 있습니다.’라고 농담으로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처럼 그 사람 이름을 데면 그 사람이 한 일을 말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이정현 그러면, 여러분은 저에 대한 평판을 얘기할 것입니다. 그 사람 의리가 있더라. 사람대접을 잘하더라. 끊고 맺는 게 확실하더라. 그 사람 어른을 공경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 사람 약속을 잘 지키더라. 그 사람 됨됨이가 괜찮던데. 아니면 그 반대의 평가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한 사람의 이름을 말하면 그 사람의 인격, 사역, 평판을 애기하게 됩니다. 결국에 그 사람의 이름은 그 사람 존재자체를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이정현이라는 이름은 나의 존재자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본문에 사용된 ‘하나님의 이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와 그러면 그분의 성품과 하나님이 하신 일과 하나님에 대한 평판과 그리고 결국 하나님 자신을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도 마찬가지이고 보혜사 성령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이름은 궁극적으로 존재자체를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일컫지 말라’는 말씀은, 여호와는 항상 존귀히 여김을 받아야 하고 언제나 찬양과 경배를 받으셔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 자신을 불손하게 부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의 이름을 높이세’라는 말씀은, 우리 다같이 주님을 높이자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내 이름을 더럽히고 있다’는 말씀은, 너희의 죄악으로 인하여 나를 더럽히고 있다는 뜻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신 것은, 누구든지 주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이 사람을 일으킨 것은 나사렛 예수의 이름이라’고 하신 것도, 결국 이 앉은뱅이를 낫게 하신 것은 예수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겠다’는 것은, 심판 때에 모든 사람의 무릎을 예수님 앞에 꿇게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예수님)의 이름은 곧 하나님(예수님) 존재자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거룩하게 하시며.’가 무슨 뜻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옛날 번역에는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되어 있습니다. 저도 주기도문 번역 위원으로 들어가서 번역에 동참을 하였는데, 이 부분을 번역하는데 사람들의 의견이 제일 분분했습니다. 문제는 이것이 수동태냐 능동태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법적으로 수동태라고 한다면, 하나님이 사람들에 의해서 거룩히 여김을 받으신다는 뜻이고 능동태라고 한다면 하나님 스스로가 거룩하게 하신다는 뜻이 됩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고 그 영광을 드러내는 진정한 주체는 하나님이시다는 말입니다. 천지의 창조주이시고 역사의 주관자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역사 가운데서 스스로 존귀하심을 드러내시고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인간과 죄와 세상과 구별되는 온전히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요한계시록 4장에서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향하여 네 생물이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세 번이나 거룩하시다고 말했는데, 이것은 곧 온전히 거룩하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분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온전히 거룩하신 분으로 존재하시지, 인간들에 의해서 거룩하게 되신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 의해서 거룩하게 되신다거나 또한 우리에 의해서 추하게 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러나 원문에는 수동태로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우리로 인하여 거룩히 여김을 받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그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도록 기도하라고 하신 것을 볼 때에 이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스스로 거룩하신 분이시지만, 또한 우리로 인하여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아는 자들은 마땅히 이 땅에서 하나님의 거룩을 추구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죄악 되고 나약한 존재이지만 아버지 하나님을 거룩하게 해 드릴 수가 있고, 하나님께 기쁨을 드릴 수 있고, 영광을 돌릴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거룩을 드러낼 수 있을까요?
1. 순종하면 됩니다.
누구에게 순종하는가 하며는 아버지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됩니다. 사실 이것은 둘로 나눌 수 없습니다. 아버지께 순종하는 것과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한다고 하면 그분은 영이심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피상적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으로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라고 보면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진리의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해 드릴 수 있다는 얘기이고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다는 말입니다.
자식들이 부모의 말씀에 순종할 때, 부모님이 기뻐하지 않습니까? 어느 집에 심방을 갔더니 자기 자식 자랑을 하는데, 우리 집 큰 아들은 지금까지 부모 말에 한 번도 아니요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 아들 대단한 아들이지 않습니까?
제자들이 스승의 말을 잘 따라서 살 때, 스승이 기뻐하는 것입니다. 제 제자가운데 대학 총장 된 사람도 있고 청와대 직원 된 사람도 있고 교수된 사람도 있고 목사 된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 중에서 군목으로 임관해서 지금 소령으로 성남에서 근무하는 이 목사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부인도 제 제자인데 참 열심히 살고 성실하고 일도 잘하고 글도 잘 쓰고 성경도 많이 알고 기도도 열심히 하고 말씀대로 살려는 열심히 특심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선생이 기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우리가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시고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순종을 그렇게 기뻐하십니다.
순종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지만, 실제로 혜택과 은혜는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순종하면 우리가 은혜 받고 복 받고 위로 받고 사랑 받고 회복되고 문제해결 받는 것입니다.
마치 교통 신호등을 만들어 놓고(교통 규칙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잘 지키면, 지키는 사람에게 유익이 돌아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순종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심과 동시에 우리가 은혜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하시면 지키십시오. 우리가 은혜 받고 복 받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주일을 존귀한 날로 거룩하게 잘 지키면 하나님이 평강으로 지켜주시고 명예를 높여주시고 물질의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사 58:13-14).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 누릴 수 있는 복이 대단한 것입니다.
또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라.’고 하면, 이런 저런 핑계와 이유를 달지 말고, 순종해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과일이 떨어지지 않게 하시고 병충해가 틈타지 않게 하시고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너희 땅을 복되게 하심으로 이방인들로 하여금 ‘참으로 하나님의 복을 많이 받았다.’는 얘기를 듣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말 3:7-12). 순종함으로 이런 복을 누리고 십지 않습니까? 순종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지만, 결국 우리가 복 받는 길입니다.
그리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파해라.’는 말씀에도 순종해 보십시오. 한 사람을 옳은 대로 인도하면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난다고 하셨습니다. 전도자들의 발이 아름답다고 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회개하여 돌아오면 하늘에서는 잔치가 열린다고 하셨고 하나님이 그렇게 기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눅15장/ 한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줄 분깃을 달라고 하여, 그것을 가지고 먼 나라로 가서 창기와 함께 허랑방탕하게 다 탕진하고 말았습니다. 나중에는 돼지나 먹는 쥐엄 열매를 먹으며 살았습니다. 아버지 집을 생각하며 이 사람이 돌이켜 회개하며 아버지에게로 옵니다. 둘째 아들이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그 아들의 목을 안고 연신 입마추며 제일 좋은 옷을 내어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워주고 발에 신발을 신겨주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 동네 사람들을 불러 놓고 잔치를 벌입니다. 아들이 돌아 온 것이 그 아버지에게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순종하여 한 사람을 전도하면 하나님이 잔치를 여시고 그렇게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까?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해 드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며 그 이름을 높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번 박 집사님에게 제가 문자를 보내서 ‘책을 한권 내야하는데 경비를 좀 부담해 줄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박 집사님이 선뜻 ‘예 목사님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답을 주셨습니다. 참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감동스러운 것은, 그 뒤의 말이었습니다. ‘어제 오늘 퇴근길에서 왜 그렇게 순종하라는 말씀이 귀에 들어왔는지, 하나님의 뜻이 있었네요. 내가 선택해서 순종하지 말고, 내가 필요할 때만 순종하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순종하지 말라는 말씀이 되새겨집니다. 바라옵기는 늘 무리가 되더라도 물질적으로 순종할 수 있는 믿음과 물질을 허락해주시길 기도 부탁드립니다.’
오늘 우리는 순종으로 하나님의 명예를 더 높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분의 이름을 거룩하게 해 드릴 수 있고, 그분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동시에 순종함으로 많은 은혜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2. 예배를 잘 드리면 됩니다.
모든 성도의 기본적인 임무가 예배입니다. 예수를 믿던 안 믿던 교회에 나오면 우선 그리고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이 바로 예배입니다. 예배당에 나와서 제일 처음 하는 행위가 바로 예배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되, 잘 드려야 합니다. 잘 드린다는 말은 ‘영과 진리’로 드려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 말은 내 영혼이 진리를 따라서 하나님께 예배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이 이 자리에 앉아있다고 예배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는 영적인 행위입니다. 그리고 말씀에 이렇게 예배하라고 가르쳐 주시기 때문에 그 말씀에 따른 예배가 되어야, 그런 예배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말씀에 따라 기도하고 찬송하고 헌금하고 설교하고 설교 듣고, 말씀에 따라 성찬을 하는 것입니다. 말씀에 따르지 않는 예배는 자의적 예배(골2:23)이며 자의적 예배는 곧 우상숭배와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영과 진리로 예배를 잘 드리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예배의 요소에 적극적인 마음과 사모하는 마음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설교를 들을 때/기도함으로, 인간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모함으로,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아멘으로 들어야 합니다.
-찬송를 부를 때/ 곡대로, 영적으로, 열정적으로 불러야 합니다.
-기도/ 내 마음을 다하여 참여해야 합니다. 수동적이 아닌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멘으로 분참해야 합니다.
-헌금/ 감사함으로, 자원함으로, 평균케 하려는 마음으로,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힘껏 드려야 합니다.
-교제/ 광고 좀 잘 듣고 어려운 사람을 위해 도와주고 기도해 줘야 하고, 교회의 일에는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배의 구경꾼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구경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예배를 드릴 때 딴 생각을 품거나 졸아서는 안 됩니다. 피곤하면 토요일 저녁에는 일찍 주무시는 것으로 주일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조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입을 딱 벌리고 자는 사람, 코를 고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예배가 하나님께 영광이 되겠습니까? 이런 예배로 은혜 받을 수 있습니까? 1주일에 한번 예배드리면서 예배를 경홀히 여기면 되겠습니까? 제가 언젠가 다음과 같은 설교를 한 적이 있습니다. 바울이 밤늦게까지 설교를 하니까, 유두고라는 청년이 창문에 걸터앉았다가 그만 떨어져서 죽었습니다. 이 본문을 가지고 ‘졸면 죽는다.’라는 무시무시한 제목으로 설교했는데, 그래도 그 시간에 조는 사람이 있더라구요. 아무리 깨우려고 해도 안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30년 목회하신 목사님이 목회 금기사항 1호로, ‘잠자는 성도를 깨우지 말라’고 하신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경홀히 여겨서는 안 됩니다. 큰 코 다칩니다. 엘리 제사장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있었습니다. 이 두 아들도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사람들에 관하여 얘기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 수종드는 여인과 간음했다, 살찐 제물을 갈고리로 빼돌렸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멸시했다. 예배를 멸시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과 그 가정과 그 가문에 벌을 내리셨습니다. 둘 다 전쟁터에 나가서 죽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었던 아버지도 의자에 앉았다고 뒤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비느하스의 아내가 아들을 낳다가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이가봇)는 저주를 하고 죽었습니다. 이 가문에는 사람들이 젊어서 죽어져 나갔습니다. 제사장의 직분이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저주 받은 가문이 되었습니다. 왜이지요? 예배를 멸시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반면에 느헤미야 7장에 보시면 하나냐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느헤미야가 이 사람에 관하여 ‘사람됨됨이가 충성스러운 사람이고 아울러 모든 백성들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함이 뛰어난 자라.’고 하셨습니다. 느헤미야가 그 사람을 세워서 예루살렘 성곽을 다스리게 하였습니다.
예배를 잘 드리면 내 인생도 잘됩니다. 자녀들이 예배를 잘 드리면 자녀들 인생도 잘됩니다. 예배를 잘 드리면, 하나님의 영광과 그 이름을 높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3. 선행에 힘쓰면 됩니다.
우리는 지금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해 드릴 수 있는가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순종을 통하여,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고요, 이어서 선행을 통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세상에 드러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선행에 힘쓰면 하나님이 그것으로 인하여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의로운 일’과 ‘선행’은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의로운 일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바른 일’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 차원을 넘어서 선한 일은 ‘남의 유익을 위해 자신이 희생하는 것’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설명하면 내가 길거리를 가다가 돈 1만원을 주었습니다. 이것을 주인에게 돌려주는 일은 의로운 일입니까, 아니면 선한 일입니까? 이것은 의로운 일입니다. 신자라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합니다. 만약 내가 내 호주머니에서 1만원을 꺼내서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었습니다. 이것은 의로운 일인가요 아니면 선한 일인가요? 이것은 선한 일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의로운 단계를 넘어서, 바로 이 선한 단계까지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고 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면, 그것이 곧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곧 착한 행실입니다.
‘자식이 잘 못하면 그 애비가 욕을 먹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제가 어릴 때 못된 짓을 많이 했습니다. 수박 서리도 하고, 화투도 치고, 술 담배도 먹고, 안 해 본 것이 없을 정도로 경력이 화려합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았는지 아십니까? 국민학교 6학년 때까지 이렇게 살았습니다. 하루는 남의 집에 밥과 김치를 훔쳐 먹었는데, 아침에 그 주인이 찾아와서 ‘기호 자네 자식 있는가? 자네 자식이 어제 밤에 우리 집 김치를 훔쳐갔네.’ ‘자네는 자식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가.’ 그날 아침에 아버지께 얼마를 맞았는지 모릅니다. 보십시오. 자식이 잘못하니까 아버지가 욕을 먹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서 신자들이 잘 못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욕을 당하시는 겁니다. ’저것들이 예수 믿는다고.‘ ’저런 놈들이 교회 다닌다고.‘
구약성경 마지막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말1:6).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범함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더렵혀 놓고 우리가 언제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느냐고 반문하는 것입니다. 자식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못함으로 하나님이 모욕을 받는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이(우리가) 잘 못함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힘을 받는 것입니다.
반대로 자식이 잘하면 그 애비가 영광을 얻습니다. 공부를 조금만 잘해도, 운동을 잘해도, 예의 바르고 친절해도, 인사만 잘해도, 말만 잘 들어도, 친구들을 잘 도와만 줘도, 교회 와서 예배만 잘 드려도, 기도를 열심히 해도, 전도를 잘해도, 성경을 열심히 읽어도, 장로님들에게 인사만 잘해도, 누구집 자식이냐고, 너의 아버지 이름이 뭐냐고 묻습니다. 그것은 곧 자식이 잘하니까 그 부모에게 영광이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선행에 힘쓰면,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소망교회 성도 여러분, 순종, 예배, 선행을 통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의 이름을 높이세”(시 34:3). 또한 선지자 말라기는 이렇게 외칩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말 1:11). 아멘.
아래는 요약
마6:9,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오늘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라는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 다루어야 할 부분은 ‘하나님의 이름’과 ‘거룩하게 하시며’입니다.
이름(쉠, 오노마)은 단순한 호칭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여기에는 네 가지 뜻이 있습니다. 인격, 사역, 평판 그리고 존재자체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그러면 그분의 성품과 하신 일과 평판과 하나님 자신을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일컫지 말라’는 말씀은, 여호와는 항상 존귀히 여김을 받아야 하고 언제나 찬양과 경배를 받으셔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 자신을 불손하게 부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신 것은, 누구든지 주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다음으로 ‘거룩하게 하시며.’가 무슨 뜻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원문에는 수동태로 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고 그 영광을 드러내는 진정한 주체는 하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천지의 창조주이시고 역사의 주관자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역사 가운데서 스스로 존귀하심을 드러내시고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는 우리로 인하여 거룩히 여김을 받으신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스스로 거룩하신 분이시지만, 또한 우리로 인하여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비록 죄악 되고 나약한 존재이지만 아버지 하나님을 거룩하게 해 드릴 수가 있고, 영광을 돌릴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거룩을 드러낼 수 있을까요? 1. 순종하면 됩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해 드릴 수 있고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라,’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파하라’ 등등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며 그 이름을 높일 수 있는 것입니다. 동시에 순종함으로 많은 은혜도 누릴 수 있습니다.
2. 예배를 잘 드리면 됩니다. 예배는 ‘영과 진리’로 드려야 합니다. 예배는 영적인 행위이고 말씀에 따른 예배가 되어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말씀에 따라 기도하고 찬송하고 헌금하고 설교하고 설교 듣고 말씀에 따라 성찬을 하는 것입니다. 말씀에 따르지 않는 예배는 자의적 예배(골 2:23)이며 자의적 예배는 곧 우상숭배와 같습니다. 또한 예배의 요소에 적극적인 마음과 사모하는 마음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예배의 구경꾼이 되거나 딴 생각을 품거나 조는 것은 예배를 경홀히 여겨서는 행위입니다. 하나냐처럼(느7) 모든 백성들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함이 뛰어난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배를 잘 드리면, 하나님의 영광과 그 이름을 높일 수 있습니다.
3. 선행에 힘쓰면 됩니다. 예수님이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고 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면, 그것이 곧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선행에 힘쓰면,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순종, 예배, 선행을 통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의 이름을 높이세”(시 34: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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