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0:14-33, 기독교인은 추석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
다음 주 수요일이 음력 8월 보름으로 추석입니다. 이번 주 토요일부터 10일간의 긴 추석 연휴가 시작됩니다. 같은 빨간 날이라고 해서, 주일과 추석을 같이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분명히 다른 날입니다. 그래서 오늘 추석 한 주 전 예배를 드리면서, ‘그리스도인으로써 추석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추석 명절과 조상제사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추석의 기원이나 유래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힐 수는 없지만, 한가위의 기원에 대해서는 ‘삼국사기’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신라 제3대 유리왕(儒理王) 9년(서기 32년)에 왕이 6부를 정하고, 왕녀 두 사람으로 하여금 각각 부내(部內)의 여자들을 거느리게 하여 두 패로 가른 뒤, 편을 짜서 7월 16일부터 날마다 6부의 뜰에 모여 길쌈을 하는데, 밤늦게야 일을 파하고, 8월 15일에 이르러 그 공이 많고 적음을 살펴서, 지는 편은 술과 밥을 장만하여 이긴 편에게 사례하고, 이에 온갖 유희가 일어나니 이를, 가배(嘉俳)라 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가배’를 후에 한가위라 하였는데, 이때에는 길쌈을 많이 한 팀에게, 술과 밥을 대접하고 춤을 추며 즐기는 날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추석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그런 반면에 조상제사는 어떻게 유래하게 되었습니까? 이것을 우리의 미풍양속 또는 고유명절로 알고 있으나, 조상제사는 미풍양속이 아니라 외래문화입니다. 우리나라에 전래된 중국의 조상제사의 기원은, 공자 이전인 한나라와 당나라 때부터 시작되었다가, 성행하기는 주나라 때라고 합니다. 당시의 제사는 지금처럼 죽은 자에 대한 조상제사가 아니고, 살아 있는 종손을 높이는 의미에서 종손을 높은 곳에 앉혀 놓고, 제사 형식의 예(禮)를 갖추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나라의 최고 어른인 황제에게만 제를 올리도록 하였다가, 점차 제후들까지도 제를 올리게 되었고, 춘추전국시대에 이르러서는 평민들까지 ‘너희 부모만 휼륭하냐 우리 부모도 훌륭하다.’라고 하면서 자기들의 부모님을 높이고 존경하는 예로서 생존 부모에게 제를 올리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나중에는 죽은 조상에게까지 제를 지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조상 제사는 원래 살아 계신 어른들을 높이는 예로서 시작되었는데, 이것이 점차적으로 죽은 조상에게까지 확대되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시행하고 있는 조상제사에 대한 이론적 뒷받침은 송나라 때에 주자가 쓴 성리학(性理學)인데, 이 성리학이 우리나라에 도입되면서 초창기에는 특수한 사람에게 제사를 지내다가, 유교를 국교로 삼은 조선 태조에 의해 일반 민간에까지 장려되었다고 합니다. 이것도 태조 이성계가 순수한 마음으로 백성들을 생각하여 조상제사를 하도록 한 것이 아니고, 정치적인 술수로 민간에 조상제사를 하도록 권장 하였다는 것입니다. 태조 이성계가 무력으로 정권을 탈취하여 국호를 조선이라고 하였지만, 민심을 잡지 못하여 항상 정권의 정통성과, 도덕성 상실의 위기를 느끼고 있었을 때, 당시 우인처럼 지내던 무학대사에게 어떻게 하면 민심을 잡을 수 있겠는가라고 자문을 구하였습니다. 이때 무학대사가 말하기를 ‘정권은 칼로 잡을 수 있으나, 이반 된 민심은 칼로 잡을 수 없으니, 간접적인 방법을 쓰십시오. 자고로 이 백성은 조상에 대한 효가 극진하니 이를 장려하면 옳게 여길 것이외다.’라고 하면서 조상제사를 온 민중에게 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조상제사를 많이 드리면 드릴수록 효자로 보이도록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 이후로 계속해서 조상을 섬기는 후손들이 된 것입니다. 자고로 우리 민족처럼 조상제사를 많이 드리는 민족이 또 없다고 합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한 조상에게 드리는 제사 횟수가 너무 많습니다. 돌아가신 기일에 제사를 하지요, 설날과 한식일, 추석, 가을에 드리는 시사제 등등 제사 횟수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한 조상에서 1년에 4-5번의 제사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이로 볼 때 조상제사는 중국에서 유입된 외래문화요, 태조 이성계의 정치적 술수며, 무학대사의 아이디어가 토착화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한가위도 그렇지만, 한가위에 조상에게 제사하는 것은 너무 근거가 희박하고, 근거가 있어도 옳지 못한 것이어서 우리가 따를 수 없는 것입니다.
결국 추석에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근거 없는 것이며, 조상제사는 우리 민족의 미풍양식이아니라, 잘못 된 외래문화가 토착화 된 것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상제사를 모시기 위하여 2천 만명이 대 이동을 하고, 여기에 기독교인까지 가세한다면 이것은 너무 불행한 일입니다.
오늘은 고린도전서 10장을 본문으로 하여 ‘추석을 보내는 기독교인의 자세’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추석에는 해도 되는 것과 안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1)해도 되는 것이 있습니다.
-가족들과 즐겁게 놀이를 즐기는 것-적극적으로 일손을 열심히 돕는 것.
-궂은 일에 앞장 서는 것도 좋고, 농어촌의 일손을 도와주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가족을 화평케 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거나, 자신의 말과 행동으로 인하여 불화가 일어나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여행을 하는 것
-같이 건전한 놀이를 하는 것, 좋은 영화를 보는 것
-음식을 먹게 되는데, 다 먹을 수 있지만, 몸에 해로운 것은 안 하는 게 좋습니다.
-제사음식?
사도바울이 말한 것처럼 음식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므로 감사함으로 받으면 먹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시장에서 파는 고기가 비록 우상숭배에 사용되어 나온 고기라할찌라도, 그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 믿음이 연약한 자들이 제사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 시험에 들 수 있으므로, 그런 경우에는 타인의 양심을 위하여 먹지 않는 것이 좋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도 시장에서 파는 고기를 얼마든지 먹을 수 있으나, 그러나 남들에게 해를 준다면 일평생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사음식에 대한 결론은 먹을 수는 있으나 안 먹는 게 더 좋다는 것인데, 예루살렘 공회에서도 사도들은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2)추석 때 안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술 담배를 먹거나, 나이트글럽을 출입하는 일은 안해야 합니다.
-노름을 하거나, 과소비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올 추석 때 한 가구당 ...만원의 돈을 쓴다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우상숭배를 피하라. 오늘날의 제사는 효의 성격도 있는 반면, 원시 물활론(Animism)에 근거를 둔 일종의 잡신숭배의 성격도 강합니다. 즉 조상을 수많은 신중의 하나로 섬기는 종교적 성격이, 그 배후에 깔려 있다는 것입니다. 조상을 잘 섬기는 후손이 잘 살고, 무병장수한다는 생각, 조상의 묘 자리를 잘 써야 후손들에게 탈이 없다는 미신들이, 오늘날도 민간신앙처럼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제사음식을 차려 놓으면 조상의 혼백이 찾아와 음식의 기를 먹고 간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혼백’이란 고대의 음양설에 근거하여 양기의 정령을 ‘혼’이라 하고 음기의 정령을 ‘백’이라고 맹신하였던 일종의 귀신론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양기의 혼이 승천을 하는데, 그 가운데 미처 승천하지 못한 것은 음기가 되어 세상에서 여러 가지 해되는 짓을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 가운데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자가 귀신이 되는 것을 원귀라 부르는데 이것이 각종 악질 변괴를 일으킨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죽은 사람의 영혼이 혼백이나 원귀가 되지 않습니다. 귀신은 사단과 함께 타락한 악령의 무리이지(사14:12-15, 계12:3-4) 불신자의 사후존재가 아닙니다. 귀신은 얼마든지 죽은 어떤 사람의 이름을 빌려 자기의 신분을 위장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궂 하는데 가면 ‘죽은 조상의 음성’을 똑같이 내면서, 나에게 이런 원한이 있다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귀신이 죽은 자의 이름을 댄다고 해서 귀신과 그 이름의 주인공을 동일시하는 것은 귀신의 간교함을 너무 모르는 무지입니다. 귀신이 얼마든지 죽은 자의 조상처럼 가장하여 음성을 똑같이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의 상당수가 아직도, 조상신을 모시는 마음으로 제사를 하고 있으며, 이 제사를 드림으로 자기들의 일이 평안히 잘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답니다. 사실, 제사를 하는 것과 효도와는 아무 관계도 없으며, 제사는 분명 우상숭배입니다. 조상의 혼백도 미신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십계명에 저촉되는 것으로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조상제사는 분명한 우상숭배로 규정할 때, 기독교인들이 추석에 금해야 할 일입니다.
2. 그러면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추석을 적극적인 자세로 보낼 수 있겠는가?
1)효를 다하며 보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제사를 효도와 관련지어 생각하기 때문에 제사를 거부하는 기독교를 곧 불효의 종교로 낙인찍는 경우가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의 공격이, 왜 기독교인들은 조상도 몰라보고, 부모도 안 섬기고, 불효하느냐고 말합니다. 마치 조상숭배를 하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고, 조상제사를 하지 않으면 불효하는 것처럼 말합니다. 기독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곧장 천국에 가거나 지옥에 가는 것으로 믿습니다. 그 원혼이 구천에 떠돌아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죽어서 좋은 곳으로 가셨던 나쁜 곳으로 가셨던 인간이 관여할 문제가 아니며, 관여할 수도 없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이 아무리 공양을 하고 제사를 한다고 해도 그 영혼이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죽은 자를 위하여 산 사람이 해야 할 것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수백종류의 음식을 차려놓고 3-4대 종손들이다 모여서 거창하게 제사를 드린다할지라도 그곳에 죽은 자가 와서 먹는 것이 아니며, 올 수도 없는 것입니다. 제사한다고 죽은 조상에게 효도를 하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알지 못하고 행하는 불쌍한 행위입니다. 효도는 살아 계실 때 하는 것입니다. 어떤 모습으로든지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섬기기를 다하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경적인 진리입니다.
출20:12에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부정적인 교훈으로는 “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와,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만큼 살아계신 부모를 잘 모시라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효를 모르는 게 아니라, 효에 대한 바른 진리와 정확한 효관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알고 보면, 기독교처럼 효를 강조하고, 실행하는 기관이 없습니다. 부모님께서 살아 계시는 동안에 최선을 다해 공경하고 잘 섬기는 것이 효입니다. 돌아가신 다음에 제사를 드리는 것, 장례식을 거대하게 치루는 것, 묘 자리를 크게 하는 것은 모두 자식들의 이기적인 마음과 남들에게 자신들의 체면을 세우는 것 밖에 되지 않습니다.
2)남의 유익을 구하라. 추석은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들로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명절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에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추석 때에 신앙과 반대되는 것만 없다면, 부모형제들과 어울리면서, 그들의 유익을 위해서 사는 것이 필요합니다. 추석이나 명절에 믿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형제부모를 찾아보지도 않고, 큰일에 협조도 안하고, 부모님에게 용돈도 제대로 안 드리면, 이것은 분명 잘못입니다. 부모님이나 형제들의 유익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인데, 특히 가족들이 다 모이는 명절에 이런 일을 더 잘할 수 있다고 봅니다. 형제들을 좀 더 기쁘게 하고, 마음으로 육적으로 더 유익을 줄 수 있는 기독교인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종류의 사람에게든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남들의 유익을 구하여, 모쪼록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라고 권면하셨습니다. 명절에 먹는 일, 마시는 일을 많이 하는데, 그럴 때라도 우리의 관심은 하나님의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내 인생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남들에게 거치는 자가 되지 마시고, 남을 유익하게 함으로, 모쪼록 안 믿는 형제자매 친척들이 있다면, 그들을 구원하는데 주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결론
그리스도인은 제사 때나, 명절 때면, 항상 믿지 않는 가족들과 제사문제로 불편한 경우가 있습니다. 다 믿는 사람들이라면 모여서 감사하며 예배를 드리면 좋겠으나, 아직도 믿지 않은 분이 계시면 제사문제로 분쟁이 있을 수 있습니다.이번 추석 때에는 어떻게 보내야 하겠는가? 하나님이 원치 않는 것 즉, 제사하는 것은 철저히 삼가야 하겠습니다. 그런 반면, 하나님이 원하는 것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순종해야 하겠습니다. 모든 일로 가족을 기쁘게 하며, 자신의 이익을 먼저 챙기는 모습이 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살아계신 부모형제를 잠 섬겨야 하겠습니다. 오직 궁극적으로는 믿지 않는 가족들의 구원을 위해 섬기고 또 섬겨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남들에게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추석이 되어지기 바랍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갈 것은, 아직까지 주일과 추석을 분간하지 못하는 신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일과 명절이 중복되면, 신자들 중 주일을 휴일의 하루로 생각하여, 주일예배를 빼 먹는 경우가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들이 시댁이나 친정집에 가더라도 주일 예배만큼은 빼 먹지 않기를 바라고, 그리고 농어촌 미자립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릴 때에는, 반드시 목사님을 찾아뵙고 선물도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무튼 주일은 그 어떤 날과도 바꿀 수 없고, 대신할 수 없는 하나님이 명하신 날로 지킬 의무가 있습니다. 율법으로서가 아니라 도덕법으로서 지켜야 합니다. 도덕법이라서,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정도의 기준이 아니라, 도덕법 역시 신적권위와 하나님의 명령으로 십계명에 있는 한, 모든 성도는 당연히 지켜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사58:13-14) 매 주일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하여, 따로 떼어놓고 그 날을 온전히 드리고자한다면, 그런 자를 통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하나님은 그런자를 또한 크게 쓰실 것입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삼상2:30)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주일을 추석연휴와 구별하여 드림으로 하나님을 높일 수 있기를 바라고, 하나님께서 그런자를 더욱더 높이실 것을 믿습니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안하고 해야 할 것을 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행복한 추석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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