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야고보서4:7 개역개정
-
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 [성경본문] 요한Ⅰ서4:9-12 개역개정
-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 [성경본문] 창세기39:7-18 개역개정
-
7. 그 후에 그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8.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9.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10.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11. 그러할 때에 요셉이 그의 일을 하러 그 집에 들어갔더니 그 집 사람들은 하나도 거기에 없었더라
12. 그 여인이 그의 옷을 잡고 이르되 나와 동침하자 그러나 요셉이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두고 밖으로 나가매
13. 그 여인이 요셉이 그의 옷을 자기 손에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감을 보고
14. 그 여인의 집 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보라 주인이 히브리 사람을 우리에게 데려다가 우리를 희롱하게 하는도다 그가 나와 동침하고자 내게로 들어오므로 내가 크게 소리 질렀더니
15. 그가 나의 소리 질러 부름을 듣고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갔느니라 하고
16. 그의 옷을 곁에 두고 자기 주인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려
17. 이 말로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데려온 히브리 종이 나를 희롱하려고 내게로 들어왔으므로
18. 내가 소리 질러 불렀더니 그가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밖으로 도망하여 나갔나이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약4:7, 요일4:9-12, 창39:7-18, 물리치고 채우고 피하라.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이 세상을 살다보면 때때로 시험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성경이 시험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시험에는 어떤 종류가 있는지, 그 중에서 사탄의 시험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살펴보는데, 그 사탄은 어떤 경로를 통하여 우리를 시험하는지, 그런 시험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알아보겠습니다. 주의해서 잘 들음으로 하나님이 은혜 주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성경에는 어떤 시험들이 있는지 보겠습니다. 성경은 세 종류의 시험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1)시련입니다. 약1:2-3/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이때의 시험이라는 말은 신앙을 지키다보면 따라오는 외적인 역경과 학대와 압제 같은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여기서의 시험은 시련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다보면 이런 시련들은 다양하게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시험입니다. 창22: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이 시험은 영어의 test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잘 알고 있고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를 시험하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얼마나 공부를 잘 했는지, 또는 지금까지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대학에 갈 실력이 되는지를 시험해 볼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3)유혹입니다. 앞의 두 가지는 하나님의 허용하심 가운데 시련이 있을 수 있고 또한 하나님이 직접 시험을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유혹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 아니고 사탄이 하는 것입니다. 약1:13-14/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하나님은 이런 유혹은 아무에게도 하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오늘은 이 세 번째 시험인 유혹에 관하여 좀 더 살펴보며,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이 땅의 모든 악의 근원은 사탄입니다.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죄와 악들이 있는지 모릅니다. 그 죄악들을 다 나열하려면 책 한권으로도 부족할 것입니다. 대표적인 몇 가지 죄들만 나열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거짓말, 시기질투, 비방, 우상숭배, 탐심, 간음, 살인, 테러, ... 이런 모든 죄악들의 배후에는 사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악의 근원이 사탄이라고 해서, 사탄이 항상 개인적으로 우리를 공격하고 시험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6.25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은 김일성이지만, 그 때의 모든 전투에 김일성이가 참여한 것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사탄은 영적인 전투, 공격에 직접참여하기도 하지만, 자기가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여 우리를 공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탄은 세 가지 경로를 통하여 우리에게 시험을 합니다. 첫째, 사단은 직접 우리를 공격합니다. 사탄, 마귀는 인격적이고 초자연적이며 영적 존재입니다. 천사장 루시퍼가 타락하여 사단이 되었다고 합니다(사 14장). 그 놈은 처음부터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입니다. 이 사단이 우리를 직접 공격할 때는, 우리의 신앙을 근본적으로 흔들려고 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진리를 흔들리게 만들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의심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신실성을 부정하게 만들기 위함입니다. 사탄이 유혹하는 목적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지 못하게 하고 부정하게 하는데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의 12명 제자들 가운데 사탄이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다고 했습니다(눅 22:3, 요 13:2). 사탄의 공격은 유다를 예수님에게서 분리해 놓으려는 것뿐만 아니라 팔아서 완전히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탄이 직접 공격해 올 때에, 우리는 사단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 사탄을 공격해야 합니다. 물러서거나 피하지 말고 정면 도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약4: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께는 무조건 복종하고요 마귀는 무조건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구체적으로 대적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이 본을 잘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이 40일 금식기도 하시는데 마귀가 시험을 하였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이 말은 이 돌로 빵을 만들어서 네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해 보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창조주이신데 이 정도야 못하시겠습니까? 얼마든지 하실 수 있으시지만 돌을 떡으로 만들지 않으시고 오히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신 8:3).
이제 마귀가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마귀가 성경을 인용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시 91:11-12). 사단은, 당신이 이 성전 꼭데기에서 뛰어 내려도 천사들이 다치지 않게 받쳐 줄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 시험에 주님은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신 6:16).
이번에는 마귀가 예수님을 높은 산으로 데려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며,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고 했습니다. 나에게 경배하기만 하면 이 모든 것을 너에게 주겠다는 말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사탄아 물러가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고 하셨습니다(신 6:13).
예수님은 사탄의 시험에 세 번 다 기록된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탄을 공격한 것입니다. 그랬을 때 마귀는 떠나갔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탄이 우리의 믿음을 흔들어 놓기 위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우리를 갈라놓기 위해서 시험을 해 올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탄을 물리쳐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사탄을 공격할 수 있는 유일한 성령의 검입니다. 예수님처럼 말씀으로 완전무장해서 사탄의 시험을 이기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 사탄은 세상을 통하여 우리를 공격합니다. 이것은 외부에서 우리를 공격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말하는 세상은 요한일서에 잘 나타나 있는데 그것은 곧 하나님과 원수인 세상을 말하고 또는 세상의 악한 풍조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일 2:15-16).
사도 요한은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에게 이 말씀으로 교훈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보통 세상이라고 말할 때,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사랑하시는 세상이고, 다른 하나는 타락하여 하나님을 떠나 사탄의 통치를 받는 영역, 사상, 가치관, 삶의 방식을 말합니다. 그러면 본문이 말하는 세상은 후자에 속하는 것입니다. 악하고 음란하고 속되고 저급한 사탄의 통치아래에 있는 세속적 세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 구절을 들여다보면 이 세상에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있다고 했습니다. 먼저 ‘육신의 정욕’은 육신대로 사는 것, 육체의 욕심을 이루는 것, 육체의 욕망대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마치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사탄의 꾀임에 넘어가서 자기의 욕망대로 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다음은 안목의 정욕인데 이는 눈을 통하여 추구하게 되는 죄악 된 욕망을 말합니다. 눈은 쾌락을 감지하는 첫 번째 통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와가 선악과를 보았을 때, 보암직 하였습니다. 다윗이 목욕하는 밧세바를 보고 범죄 하였습니다. 당시 로마 사람들은 거대한 원형경기장을 만들어 놓고 각종 검투경기를 했는데 이렇게 한 목적 중의 하나가 시민들의 안목의 정욕을 충족시켜 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또는 사자들에게 공격을 당하는 노예들의 모습을 보여줌으로 그들의 안목의 정욕을 만족시켜 주었던 것입니다.
마지막이 이생의 자랑인데 이것은 세상적 소유에 대한 자랑을 말합니다. 야고보서 4장(16)에서는 이것을 ‘허탄한 자랑’이라고 했습니다. 야고보는 자기를 높이거나 자기의 소유를 자랑하는 것은 곧 허탄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넓은 집, 큰 자동차, 몇 개의 통장, 부드러운 비단 옷, 많은 지식, 높은 권세를 자랑하는 것은 그 만큼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반증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은 다 지나가고 말 것입니다. 화무십일홍입니다. 아침 안개와 같고 상한 갈대와 같은 것들입니다. 이 모든 부귀영화는 속히 지나갈 뿐만아니라, 이런 것들을 사랑하면 결코 아버지의 사랑이 그런 사람에게 없다고 하셨습니다. 빛과 어두움이 공존하지 못하듯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세상을 향한 사랑이 공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섬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세상과 세상의 것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셨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때때로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사탄이 이것들을 통하여 우리를 공격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승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시험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이런 시험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여 승리하기 위해서는 우선 왜 나에게 이런 마음이 드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왜 나에게 자꾸 육체의 욕망대로 살고 싶은 마음이 들고, 왜 자꾸 보는 것으로 쾌락을 추구하려 하고, 왜 자꾸 내가 가진 것, 이거 아무것도 아닌데 이것을 자랑하려고 하지? 내 마음 속에 이런 것으로 즉, 세속적인 것들로 채우려고 하는 것은 내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내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면 나는 세속적인 것들에 마음 두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식어지면, 그 공백 속에 자꾸 세상에 대한 욕정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내 마음을 채워야 하고요,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씀과 기도로 경건생활에 힘을 써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에 대한 처음 사랑을 회복하면, 세상에 대한 사랑은 식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을 통한 사탄의 공격은, 그 힘을 잃고 말 것입니다.
셋째, 사탄은 우리의 육신의 욕심을 이용하여 공격합니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3대 욕구가 있답니다. 식욕과 수면욕과 성욕입니다. 그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지만 이것이 지나치면 죄가 될 수 있습니다. 식욕이 과하면 비만이 되고, 수면욕이 과하면 게으름이 되고, 성욕이 과하면 간음이 되는 것입니다.
이 중에서 사탄은 성욕을 통하여 우리를 자주 유혹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암몬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침략해 왔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때 이스라엘의 왕은 다윗이었습니다. 전쟁에 능했던 다윗이 군대를 소집하여 작전을 지시하여 전쟁을 하게 하였습니다. 군대를 보내고 나서 다윗은 저녁에 왕궁 옥상을 거닐고 있는데, 저 아래에서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그 여인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였고 우리아는 조금 전 전쟁터로 나간 장수였습니다. 다윗은 그 여인을 데리고 와서 동침하게 되었습니다(삼하11:1-4). 다윗은 자기 속에 일어나는 성욕을 억제하지 못하고 간음을 하게 된 것입니다. 사탄은 다윗에게 목욕하는 여인을 보게 함으로 유혹을 했을 때, 다윗은 그 사탄의 덫에 걸려들고 만 것입니다.
다윗과 반대로 창세기의 요셉이라는 사람은 어떠했습니까? 야곱의 아들 요셉은 가나안 땅에 살다가 애굽의 종으로 팔려간 사람입니다. 바로 왕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 종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요셉과 함께하심으로 요셉이 형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가 손대는 것마다 잘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셉은 잘 생겼습니다. 보디발의 부인이 요셉을 유혹하는 것입니다. 눈짓을 하고 동침하자고 요구합니다. 그때마다 요셉은 그 자리를 피합니다. 그 이후는 날마다 그 여인이 요셉에게 동침하자고 얘기합니다. 어느날 요셉이 일을 하기 위하여 그 집에 들어갔더니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이때 보디발의 부인이 요셉의 옷을 붙들고 동침하자고 했을 때, 요셉은 그 옷을 버리고 그 자리를 피해서 도망갔습니다. 결국 이 여인이 요셉에게 누명을 씌어서 요셉은 감옥에 가게 됩니다. 여러분, 다윗하고는 다르지 않습니까? 다윗은 보고 정욕대로 행하였지만, 요셉은 그 자리를 피하여 도망갑니다. 창세기 39:1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여인이 그의 옷을 잡고 이르되 나와 동침하자, 그러나 요셉이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두고 밖으로 나가매.” 요셉은 성욕의 현장을 빠져나와 도망감으로 그 유혹을 이겼습니다.
어떤 수도사가 아무도 몰래 수도원 밖으로 나가서, 음란한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에 갔습니다. 너무나 추잡한 영상들이 화면에 가득찼습니다. 오랫동안 야한 장면들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이 수도사가 영화를 보면서 기도했습니다. ‘마귀야 물러가라. 물러가라.’ 그러자 마귀가 나타나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야, 여기는 내 영역이야, 그런데 네가 와서 왜 나를 나가라고 해.’
그런 곳에 가서 믿음으로 이기려고 하지 말고, 그런 곳에 가지 않는 것이 현명한 것입니다. 잠6:27-28/ “27 사람이 불을 품에 품고서야 어찌 그의 옷이 타지 아니하겠으며, 28 사람이 숯불을 밟고서야 어찌 그의 발이 데지 아니하겠느냐.”
넘어지지 않으려면 미끄러운 곳에 가지 말아야 하고, 불에 데지 않으려면 숯불을 피하는 것이 가장 현명합니다. 죄악의 자리에 있으면서 ‘시험에 들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는 미련한 기도입니다.
임희택이라는 사람이 ‘망각의 즐거움’이라는 책을 썼는데, 그곳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분노와 도박도 같은 종류, 유혹 등의 충동이 발생할 경우 가장 현명한 길은 도피하는 것이다. 뒤도 보지 말고 뛰어라. 피하라는 36계가 최고의 계책이다.’
결론
사탄이 직접적으로 우리의 신앙을 근본적으로 공격해 오면, 그때는 말씀으로 무장하여 물리쳐야 합니다. 이때는 피하여 도망가면 집니다. 당당하게 맞서서 사탄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사탄이 세상을 통하여 우리의 신앙을 외부로부터 공격해 올 때, 이때는 경건생활에 힘씀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그래야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생각나지 않는 것입니다.
사탄이 정욕을 통하여 우리의 신앙을 내부로부터 공격해 올 때, 우리는 그 현장을 피해야 합니다. 그래야 요셉처럼 그 정욕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교회 모든 성도들은 어린아이부터 어른, 노년에 이르기까지, 사탄의 시험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적하고,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우고, 정욕의 현장을 피함으로 승리하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피할 길을 주사 능히 이기게 하실 것입니다.
댓글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