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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8 - 세례, 그리스도와 연합됨의 표 이정현 목사 2018-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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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로마서6:1-13절 개역개정

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10.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12.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롬6:1-13, 세례, 그리스도와 연합됨의 표

 

세례를 의미하는 헬라어는 밥티조(βαπτιζω)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잠그다’와 ‘씻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잠그든지 씻든지 기본적인 의미는 성결입니다. 이 단어는 과거 시제로 되어 있는데, 헬라어의 과거 시제는 한순간에 일어나고 그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세례는 여러 번 반복적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한번만 받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진중 세례, 가톨릭에서 오신 분, 혹은 비자격자에게 세례를 받은 분... 그 당시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면 다시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자칫 잘 못하면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일컫는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세례는 누구에게 주어야 합니까?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에게 물로 주는 것입니다. 세례를 통하여 죄를 씻고 구원을 받으라는 의미로 세례를 시행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를 믿어 구원 받은 사람에게, 당신은 이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고 외적으로 인치는 행위입니다. 한마디로 구원 받으라고 세례를 주는 것이 아니고, 구원 받은 자에게 구원을 받았다고 세례를 준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할례가 남자의 성기 포피를 짜르므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표식을 하는 것처럼, 물로써 당신이 구원 받았음을 내외에 공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교회의 일원이 되었음을 공포하는 의식입니다. 세례교인은 교회가 지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임을 공증한 사람입니다. 세례교인만이 성찬에 참여할 수 있고, 교회의 각종 직분을 맡을 수 있는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갖는 것입니다. 1년에 한 번 열리는 공동의회에 참여하여 의사권과 의결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세례는 물이라는 수단을 사용하지만,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주는 것입니다. 성결 의식에 사용하는 수단이 물이지만 그 물 때문에 세례의 효력이 있는 것이 아니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에 세례의 효력이 있습니다. 물의 양이나 질 때문에 세례의 효력이 발생하는 것 아닙니다. 침례교에서는 장로교회보다 물을 훨씬 더 많이 쓰지만, 그것 때문에 효력이 있고 장로교회는 효력이 없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았다는 요단강 물을 떠와서 세례를 준다 해도 그것 때문에 세례의 효력이 있고, 수돗물을 받아서 한 것은 효력이 없는 게 아닙니다. 물의 양이나 질에는 상관이 없고, 세례 시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음으로 하나님의 자녀 되었음을 확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례가 중요하지만 구원의 조건이 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도 세례 요한을 통하여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세례를 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야 하고 받아야 합니다. 중요한 사항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구원을 얻기 위해, 반드시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세례를 받은 사람 중에도 진실한 신앙고백 없이 받았다면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고, 반대로 세례를 받지 않았다할지라도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다면 그 사람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주교와 달리 기독교에서는 세례가 구원의 필수 조건은 아닌 것입니다. 천주교에서는 중환자실에 계시는 분이 돌아가시기 전에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하면, 빨리 신부를 모시다가 영세를 받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세례가 구원의 필 수 조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오늘 성경에서 세례에 관하여 명확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먼저 세례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원래 그리스도는 하늘나라에서 성부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는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함께 하늘나라에 계셨습니다. 주님이 하늘나라에 계셨을 때에는 고난을 받으시거나, 사람들로부터 조롱과 멸시를 받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늘나라는 죄나 악이 없는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그리스도께서 인간과 같은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는데, 이 세상에 오셨다는 말은 죄와 악으로 오염된 세상 속으로 들어오셨다는 말입니다. 죄가 없는 나라에서 죄가 가득한 나라로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는 고난과 멸시와 천대를 받으신 것입니다. 그분이 당하셨던 최고의 수난과 멸시와 천대는 바로 십자가였습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으시고 장장 6시간 동안 수모와 멸시를 당하셨고, 피와 물을 다 쏟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다 이루었다’ 하시고 운명하셨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본문을 통하여, 너희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그리스도가 십자가 위에서 죽으실 때, 너희들도 함께 죽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본문을 통하여 여러 번 말씀하고 있습니다. 3절에,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았다, 4절에,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다, 5절에,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다, 6절에는,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말하고, 8절에,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주와 함께 십자가에 죽은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옛 사람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옛날 성품이 죽은 것입니다. 예수 믿기 이전의 못된 성질들이 죽은 것입니다. 시기 질투하고, 원망 불평하고, 험담하고 거짓말하고, 이간질하고 도덕적으로 부정하고, 우상숭배하고, 물질에 인색하게 살았던 것, 분노하는 것, 호색하며 술 마시는 것-옛 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입니다.
 
죽는다는 말은 없어지는 것, 사라지는 것을 말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잔인 한 것이 죽음입니다. 죽음에는 양보도 없고 인정도 없습니다. 천하의 진시황도, 알렉산더 대왕도, 나폴레옹도 죽음은 거역하지 못했습니다. 죽음 중에 가장 잔인한 죽음은 생매장입니다. 산채로 묻어버리는 게 생매장입니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내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함께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나 자신의 옛날 습관을 죽이고 생매장하듯이 단호하게 죽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갈 5:19-21).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얻지 못할 짓을 하고 다녔던 과거의 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기 이전의 나의 모습은 십자가에 매장하였다는 말입니다.

다음으로 세례는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사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함께 못 박혀 죽었다고 하시고 이어서,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연합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5절에,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고 하셨고, 8절에는,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줄을 믿는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주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면, 우리도 그와 함께 산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이제 주님으로 말미암아 산 자가 되었으니, 다시는 옛 생활로 돌아가면 안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전 것은 지나갔고 모두가 새것이 되었습니다.  
 
본문에 ‘세례’라는 단어가 여러 번 나오는데, 이 말은 물속에 들어갔다가 물 위로 올라오는 것을 말합니다. 물속에 들어가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의미이고, 물에서 올라오는 것은, 이제 그리스도와 함께 살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의미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면, 우리의 옛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하나님에 대하여는 산 사람이 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는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산 자가 되었는데, 이것을 바울은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 한 자가 된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합하다.’라는 말과 ‘연합하다.’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옵니다. 뿐만아니라, 다른 성경에도 ‘그리스도와 연합했다’, 또는 ‘주님과 합하였다’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이것을 ‘그리스도와의 연합 교리’라고 하는데, 성경은 이것을 매우 귀하게 취급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5)에서는 이 연합교리를 남편과 아내의 연합을 통하여 설명하셨고, 고린도전서(12)에서는 머리와 몸의 연합으로 설명하셨고, 요한복음(15)에서는 포도나무와 가지의 연합으로, 그리고 에베소서(2)에서는 건축물의 모퉁이돌과 다른 벽돌과의 연합으로 설명하셨습니다.  
 
그래서 존 머레이(J. Murray)라는 신학자는, ‘그리스도와의 연합 교리는 성경의 가장 핵심적인 교리’라고 했고, 아더 핑크(A. W. Pink)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성경에 나타난 내용들 중 가장 중요하며, 가장 축복된 내용이라.’고 했습니다. 
 
청교도 굿윈(T. Goodwin)이라는 사람은, 그리스도와의 연합 교리를 ‘두 거인에 비유’하여 설명하였습니다. 하나는 아담인데 아담은 온 인류의 대표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이신데, 그는 택하신 모든 백성의 대표입니다. 그런데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은 두 거인의 허리에, 고리로 연결되어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은 처음에 아담에게 그 고리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아담처럼 죄로 말미암아 다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아담에게 매여 있는 고리를 풀어서, 그리스도에게 연결시켜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우리의 고리가 그리스도의 허리에 묶여져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한 번 이 고리가 그리스도에게 연결되기만 하면, 다시는 이 고리가 풀어지지 않습니다. 그 누구라 하더라도 이 고리를 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맺어 놓은 이 사랑의 고리, 은총의 고리를 끊을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5-39) 이 세상에 있는 그 무엇도, 하늘에 있는 그 어떤 것도, 현제의 일이나 장래의 그 어떤 것도, 우리와 그리스도와 맺은 이 사랑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그리스도와 연합 한 자가 되었다면, 거기에 합당한 삶이 있는데, 바울은 어떻게 살라고 하셨습니까?

그리스도에게 접붙임을 받은 우리들은 과거의 옳지 못한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옛 생활로 되돌아가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아담의 자리를 떠나서, 그리스도에게 연합이 되었는데, 우리가 다시 아담에게로 갈 수 있겠습니까? 옛날 성품을 따라 살수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또 다시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따라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또 다시 죄와 사망의 노예로 살겠습니까? 절대로 그래서도 안 되고,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11)  
   
그래서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양면적인 생활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죄에 대하여는 죽고 의에 대하여는 사는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죄에 대하여 죽는 생활을 ‘죄 죽이기’라고 합니다. 한번 따라합시다. ‘죄 죽이기.’ 12절에,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죄에 대하여는 죽고, 다른 한 면으로는, 의에 대하여 사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의를 위해 산다는 말은,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어서 그분과 교제하며, 그 분에게 순종하며 그분으로 인하여 열매 맺으며 사는 것을 말합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을 불의의 병기로 드리지 말고 의의 병기로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골3장에 보면, 땅의 것을 찾지 말고 위엣 것을 찾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땅의 것은 세속적이고 악한 것을 말하고, 그리고 위의 것은 신령하고 영적인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땅의 것을 구체적으로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과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라고 설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위의 것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설명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는다는 것은, 음란과 정욕과 탐심과 비방과 거짓과 악의를 죽인다는 것이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산다는 말은, 날마다 예수만을 생각하고, 예수만을 바라보고, 예수만을 찾으며, 예수만을 위하여 살아간다는 것을 말합니다. 

결론
여러분은 세례를 받았습니까? 아니면 앞으로 받을 것입니까?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죄에 대하여는 죽었고 의에 대하여는 산 자가 되었고, 그리스도와 연합 한 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담하고 연결된 고리를 잘라서 그리스도에게 연결시켜 주셨습니다. 주님과 연합 된 자로서, 날마다 죄를 죽이고 예수만을 바라보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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