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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0 - 찬송의 6하 원칙
이정현 목사 2018-06-10 추천 0 댓글 0 조회 1222
[성경본문] 시편137:1-6 개역개정

1.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2.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3.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4.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5.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의 재주를 잊을지로다

6.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하지 아니하거나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즐거워하지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137:1-6, 찬송의 6하 원칙

 

오늘은 시편 137편의 말씀을 중심으로, 찬송의 6하 원칙에 대하여 알아봄으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6하 원칙이라는 것은, 언제 어디에서, 누가 무엇을, 왜 어떻게를 말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통하여 찬송을 언제 부르고, 어디에서 부르고, 누가 부르고, 무엇을 부르고, 왜 부르고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를 알아보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잘 깨닫고 은혜 받음으로, 앞으로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을 더욱더 찬송하는 삶이되어지기 바랍니다.

 

1. 언제 찬송해야 하는가? 이것은 찬송의 때를 묻는 질문입니다.

 

역대상의 말씀(23:30)에 보니까, “아침과 저녁마다 서서 여호와께 감사하고 찬송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하는 때를 말하기를, 아침과 저녁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성전의 찬양대원들이, 제사장들이 아침저녁으로 제사를 드릴 때마다, 같이 하나님께 찬송한다는 뜻입니다. 이때의 찬양대원들은 레위인들로, 무려 4천 여 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드릴 때마다, 하루의 시작과 마지막을,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던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새벽에 비파와 수금으로, 하나님께 찬양한다고 했습니다(57:7-8).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내가 찬송하기로 작정하고 작정했사오니, 비파와 수금으로 새벽을 깨우리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에도 새벽부터 찬송하는 데는, 기독교 밖에 없습니다. 우리 교회도 매월 정기기도회 때에는 몇 개의 악기를 동원하여 찬양단들과 함께 20분 정도 찬송하고 있습니다. 새벽부터 다같이 힘차게 찬송하는 것은, 분명히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입니다.

 

시편에서는, ‘하루에 일곱 번씩주를 찬송하겠다고 했습니다(119:164). 작자 미상의 한 시편기자는, 나는 살아있는 동안, 평생 동안 노래하리라고 이야기 했습니다(104:33). 얼마나 아름다운 각오와 결심입니까? 찬양하는 시간을 하루 일곱 번이라고 정해 놓기도 하지만, 항상, 늘 여호와를 송축하고 찬송하겠다는 것입니다.

 

신약의 바울과 실라도, 감옥에 갇혀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도, 밤중에 일어나서 하나님께 찬송하고 기도합니다. 모진 고문과 채찍도 그들의 기도와 찬송을 막지는 못하였습니다. 그 같은 최악의 조건과 환경에서도 그들은,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찬양한 것입니다. 밤중에도, 감옥 안에서도, 하나님을 찬송하는 성도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히브리서 13(:12)의 말씀에, 예수님의 피로서 거룩함을 입은 우리들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고 하였습니다. 구속 받은 백성들은 항상 하나님께 찬송해야 하는데, 이를 가리켜 히브리서 기자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라.’고 하였습니다. 찬송이 구원 받은 자들의 입술의 열매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여러 성경구절, 특히 시편의 말씀에 근거하여 볼 때, 오늘날 우리도 새벽부터 밤중에까지, 하루에 일곱 번씩, 아니 그것을 넘어 항상, 온종일 하나님께 찬송할 수 있기를 바라고요, 특히 공 예배 때에는 더 열정적으로,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찬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어디에서 찬송해야 하는가? 이것은 찬송하는 장소를 묻는 질문입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하였을 때, 다윗성에 있던 법궤를 메고 올라와서, 성전에 안치를 시켰습니다. 법궤를 성전 안으로 모셨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모셔드렸다는 것과 같습니다. 이때 레위 사람 아삽을 비롯한 많은 성가대원들이, 악기소리를 내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나팔을 불고 제금을 치며 모든 악기를 울리며 일제히 소리를 높이며 여호와를 찬양했습니다. ‘선하시도다, 그 인자하심이 영원히 있도다.’ 그때에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가득했고 이것으로 인하여 제사장들이 능히 제사를 드리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하나님의 전에 가득찬 것입니다. 아삽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은 멋있게 지어진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양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감동스러운 것은, 이 성전은 7년 동안 지은 것인데, 이 기간 동안 내내 찬송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역대상 6장에 보니까,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언약궤가 평안을 얻었을 때에, 다윗이 여호와의 성전에서, 찬송하는 직분을 맡긴 자들은 아래와 같았더라. 솔로몬이 예루살렘에서 여호와의 성전을 세울 때까지, 그들이 회막 앞에서 찬송하는 일을 행하되, 그 계열대로 직무를 행하였더라”(6:31-32). 이 성가대원들은, 솔로몬이 성전을 짓는 7년 동안, 매일 회막 문 앞에서 찬송을 하는데, 24개 팀이 교대 교대로 찬송했다는 내용입니다.

  

남쪽 유다 왕 여호사밧 시대에, 모압과 암몬 나라가 침략을 해 왔습니다. 여호사밧과 온 국민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온 백성들이 금식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였습니다. 왕이 하나님께 기도하였더니 하나님이 응답해 주셨습니다. 왕이 군대를 소집하여 전장으로 나갈 때에, 성가대를 조직하여, 그들에게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서 나아가며, 하나님을 찬송하게 했습니다. 이 찬양대원들이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자비하심이 영원하도다라고 노래했을 때, 하나님이 복병을 두어, 모압과 암몬 사람을 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 전멸시키고, 유다가 승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대하 20:21-23). 유다 백성들이, 군대 앞에서 적진을 향해 진군하면서, 전장에서 하나님을 찬양함으로 승리하게 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 외에도 성경은, 어디에서 찬양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2장에서는 교회 중에서’(2:12) 찬송했다고 했고, 시편에서는 그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라’(150:1)고 하심으로, 교회와 성소에서 찬양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다른 시편에서는(149:5), “성도들은 ...그들의 침상에서 기쁨으로 노래할지어다라고 하셨고, 시편 113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절기 때에도 부르고, 특히 매일 아침 가정에서, 식사 전에 불려 졌다고 합니다.

 

결국 모든 피조물들은 어디에서든지,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해야함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사업장에서, 차안에서, 들판에서, 산이나 강에서, 골방에서, 광활한 대지에서, 어디에서든지 주의 이름을 찬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누가 찬송할 수 있는가? 이것은 찬송자의 자격을 묻는 질문입니다.

 

시편에 보면(30:4)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거룩함을 기억하며 감사하라.”고 하셨습니다. 다윗은 자기를 포함한 많은 주의 백성들에게, 여호와를 찬양하고, 그의 은혜에 감사하라고 하셨습니다. 진정한 찬송은, 아무나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목소리 좋다고, 음악을 공부했다고, 노래를 좋아한다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아 성도가 되어야, 진정으로 하나님께 찬송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다른 시편에서(113:1), ‘여호와의 종들이 찬양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오늘날에는 주 안에서 구원 받은 우리 모두를 가리켜, 여호와의 종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녀노소, 흑인 백인 황인, 가진 자 못가진자, 배운 자 못 배운 자, 지위가 있는 자 없는 자-이런 것은 상관없습니다.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주 안에 있는 자면 됩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는 자면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이면 하나님 아버지께 찬양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은혜이고, 대단한 특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사야 4321절에,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를 지으시고 구속하신 일차적인 목적이, 찬송이라는 것입니다.

 

시편 148편의 말씀에 보면, 누가 찬양해야 하는지를 길게 쓰고 있습니다. 모든 천군 천사도 찬양하고, 해 달 별들도 찬양하고, 하늘도 찬양하고, 하늘 위에 있는 물들도 그를 찬양하고, 바다의 큰 물고기들도 찬양하고, 불과 우박과 눈과 안개와, 광풍과 산들과 과수와 모든 백향목과, 짐승과 모든 가축과 기는 것과 나는 새며, 세상의 왕들과 모든 백성들과, 고관들과 땅의 모든 재판관들이며, 총각과 처녀와 노인과 아이들아,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이름이 홀로 높으시며, 그의 영광이 땅과 하늘 위에 뛰어나시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진정한 찬송은 예수를 믿는 우리만 드릴 수 있지만, 성경은 모든 민족에게와 모든 피조물들에게, 찬송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에 의해 지은 바 된 피조물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피조물들이 마땅히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지만, 그것을 모르고 있을 뿐인 것입니다.

 

4. 여기서는 무엇을에 해당하는 부분을 누구에게로 바꾸어서, 누구에게 찬송해야 하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이것은 찬송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찬송의 대상을 묻는 질문입니다.

 

우리가 드릴 찬송의 유일한 대상은, 하나님 여호와 이십니다. 시편과 그 외 많은 성경에서, 이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여호와, 주님만이 우리의 찬송을 받으셔야 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우상에게 주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42:8). 하나님만이 받으셔야 할 찬송의 영광을, 다른 우상에게 주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땅히 찬송과 영광을 하나님께만 돌려야 하는데, 이것을 다른 신에게 돌린다면, 그 때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것입니다. 찬송과 영광은 창조주 하나님, 영원하신 하나님께만 드리는 합당한 행위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시편 137편의 말씀을 보면, 남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가서, 고향을 생각하며 그발 강가에서, 슬퍼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이 포로로 잡혀가서, 먼 이국땅에서 어떻게 살아갔겠습니까? 먹을 것, 입을 것, 잠잘 곳이 제대로 있었겠습니까? 이방인들로부터 인권을 보장받았겠습니까, 대우를 제대로 받았겠습니까? 정말로 비참하게, 고통 가운데, 하루하루를 눈물로 살았을 것입니다. 오늘 시편 137편의 이 말씀은, 유다 백성들의 바벨론 포로 중, 거의 마지막 즈음에 쓰여 졌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은 원래부터 노래를 좋아했던 민족이라, 이곳 포로지에서도 여전히 수금을 키며, 시편을 노래했습니다. 어쩌면 포로지에서 돌아갈 고국을 생각하며, 향수에 젖어 하나님 앞에 찬송을 불렀을 것입니다. 수금을 타면서 시편을 노래했던 것입니다. 바벨론의 노예로서 심한 노동을 하면서도, 중간 중간 쉬는 시간에 몇 사람씩 모여서, 수금을 타며 찬송을 한 것입니다.

 

이것을 지켜보고 있던 바벨론 사람들이, 그 노래가 너무 듣기 좋고 감미로우니까, 우리를 위해서, 그 노래 좀 불러달라고 한 것입니다. 바벨론 사람들이 노래를 요구한 것이, 단순히 듣기 좋고 감미로웠기 때문만은 아니고, 새롭고 흥미로웠을 뿐만 아니라, 포로자들에게 노래를 시켜서, 승리자의 우월감을 들어내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유대인들에게 노래를 요구한 것입니다(3).

 

정복자가 포로자들에게 노래를 시키면, 당연히 그들은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연주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2절에 보면, ‘버드나무에 수금을 걸어버렸습니다.’ 유대인들은 비록 포로로 잡혀 온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을 위해서(바벨론 사람들의 흥을 돋구기 위해서), 찬송을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악기를 연주할 수 없다고, 수금을 버드나무에 걸은 것입니다. 아예 다시는 수금을 빼지 못하도록, 단순히 걸어 놓은 게 아니라, 꽁꽁 묶어 두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차라리 내 오른 손의 재주를, 잊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말씀인지 아십니까? 내 오른 손의 재주는, 수금을 탈 수 있는 기능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수금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지 못하고, 너희 폭군들을 위하여 노래하라고 한다면, 차라리 이 수금 타는 기능을 잊었으면 좋겠다는 말입니다. 너희들을 위하여 연주할 바에는, 차라리 내 모든 재주를, 잊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유대인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루살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께 대한 찬송을 잊어버리고, 너희들을 위하여 찬송을 부름으로, 너희를 즐겁게 할 것 같으면, 차라리 우리의 혀가 입천장에 붙었으면 좋겠다. 6절의 혀가 입천장에 붙는다.’는 것은, 말도 못하고 찬송도 못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 올려야 할 찬송을, 하나님께 드리지 못하고, 바벨론 너희들을 위하여 찬송하라고 한다면, 차라리 벙어리가 되기를 바란다는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은 결코 바벨론 사람들을 위해, 찬송을 부르거나 수금을 켜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수금을 버드나무에 걸었습니다. 악기를 다루는 재능을 잊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너희를 위하여 노래를 할 바에는 차라리 기악을 못하고 성악을 못했으면 졸겠다고, 안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이들은 오로지 포로지에서도 하나님께만 찬송하며 예배했던 것입니다.

  

5. 왜 찬양해야 하는가? 이 질문은, 찬송해야 할 이유를 묻는 질문입니다. 우리가 시공간을 초월하여 하나님께 찬양하는데, 왜 찬양합니까? 찬송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무엇보다도 구원의 감격 때문에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를 430년 동안 하다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애굽 땅에서 나와서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들이 애굽을 출발하여 홍해를 건너게 되었는데,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 가운데, 바다를 육지 같이 건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뒤쫓아 오던 모든 애굽 사람들은, 수장되어 다 죽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무사히 바다를 건너간 이후, 너무 감사하고 기쁘고 좋아서, 하나님께 감사 찬송을 드리는 것입니다.

 

먼저 모세가 이렇게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15:1-2). 높고 영화로우시며, 힘이요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이같이 찬송을 했더니, 미리암이 다른 여인들과 함께 소고를 잡고, 춤을 추면서 하나님께 이어서 찬송을 드립니다.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하였더라”(15:21). 미리암도 역시, 높고 영화로우신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한 것은 구원을 말하는 것이고, 홍해를 건넌 것은 집단 세례를 말하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은 사람들에게, 구원 받았음을 인치는 것이 세례인 것입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사탄의 손아귀에서 구원받았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이후 모세와 미리암이 번갈아 가며 찬송한 것은, 구원의 감격 때문에 찬송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것뿐만 아니라, 이 바다에서도 건짐을 받은 것에 감격하여, 찬송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은, ‘그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인한 일들 때문에하나님을 찬송해야 합니다. 시편 107(:8)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인자하심은, 말로 측량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죄를 따라 갚지 않으신 것도 그분의 인자이고요,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신 것도 그분의 인자하심 때문이고요, 수십 년 동안 먹고 마시고 자고 타고, 지금처럼 살 수 있게 해 주신 것도 하나님의 인자하심 때문이고요, 기거동작하며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릴 수 있는 것도, 그분의 인자하심 때문입니다.

 

우리가 찬송해야 할 이유가 또 있습니다. “여호와는 모든 나라들 위에 높은 분이시기 때문에찬송해야 합니다(113:4).

 

또 다른 성경에,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영원하시기 때문에,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운 분이시기 때문에, 찬송을 받으셔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해서 정리해 보면, 왜 우리가 찬양해야 하는가 하며는, 구원의 감격 때문에 찬양하고, 그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들 때문에 찬양해야 되고, 여호와는 모든 나라들 위에 높은 분이시기 때문에,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영원하시기 때문에,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운 분이시기 때문에, 찬송을 드려야 합니다.

  

6. 어떻게 찬양해야 하는가? 이것은 하나님을 찬송하는 방법과 수단을 묻는 질문입니다.

 

시편 33(:1-3)에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들이 마땅히 할 바로다. 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고, 열 줄 비파로 찬송할지어다. 새 노래로 그를 노래하며 즐거운 소리로 아름답게 연주할지어다.” 시편기자는 여기서, 악기로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하셨습니다. 여러 가지 악기를 다룰 줄 아는 것은, 특별한 하나님의 은사입니다. 그런 은사를 받은 사람들은, 그것으로 딴 데 사용하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연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송을 악기로 연주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은, 사람들 앞에서 뽐내기 위해서 하면 안 되고, 하나님 앞에서 연주해야 합니다. 자신의 재능을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높이는 연주가 되어야 합니다.

 

시편 47(:1)에서는, “너희 만민들아 손바닥을 치고, 즐거운 소리로 하나님께 외칠지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떠 나아가서 시편 68(:4)에 보니까, ‘하나님 앞에서 춤추며 찬양하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얼마나 좋으면 춤을 추겠습니까? 사람들에게 좋은 일이 있으면 덩실덩실 춤을 추지 않습니까? 그처럼 하나님 앞에 있는 것이 너무 좋으니까, 하나님이 너무 좋으니까, 그 앞에서 춤을 추며 찬양하는 것입니다

 

다음은, 손을 높이 들고 찬송을 하기도 해야 합니다(134:2). 손을 드는 것은, 기도하거나 찬송하는 하나의 자세입니다. 그리고 이 자세는, 정성을 다하여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올린다는 상징적 행위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전심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요구인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하나님께 두 손 들고, 찬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즐거운 소리와 큰 소리로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했습니다. 시편 66편에서는, ‘즐거운 소리를 지르며찬양하라고 했고, 역대하 20장에서는, “그핫 자손과 고라 자손에게 속한 레위 사람들은, 서서 심히 큰 소리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면서, 근심걱정 중에 찬송하지 말고, 평안한 마음으로 즐겁게 찬송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심히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송해야 하는 것입니다. 속으로 찬송하거나, 낮은 음으로 찬송하거나, 억지로 찬송하거나, 다른 사람 구경하지 말고, 중심으로 큰 소리로 찬송하는 것입니다.

  

결론

오늘은 성경을 근거로 찬송의 6하 원칙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언제 찬송해야 합니까? 항상 해야 합니다.

어디에서 찬송해야 합니까? 어디에서든지 찬송해야 합니다.

 

누가 찬송할 수 있습니까?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할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 찬송해야 합니까? 삼위일체 하나님께만 찬송해야 합니다.

 

왜 찬송해야 합니까? 우리를 구원해 주셨고, 인자하심이 영원하시기 때문이며, 높으시고 창조주이시고 영원하신 분이시기 때문이고, 우리의 삶을 날마다 새롭게 해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찬송해야 합니다.

어떻게 찬송해야 합니까? 모든 악기로, 손 벽을 치며, 춤추며, 두손들고, 큰 소리로 찬송하라고 했습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대로 하나님께 찬송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옛날 사진 한 장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이리시 임피면 임피중앙교회,,학생집회/ 3-400명 정도 학생들이 모여서... 먹보다도 더 검은(423)..주의 보혈 흐르는데 믿고 뛰어나가(날래게 뛰어나게-잽싸게 뛰어나가) 주의 은혜 내가 입어 깨끗하게 되었네...

 

)영등포에 동천교회가 있는데, 1000명 이상 출석하는 아주 오래된 좋은 교회가 있습니다. 이 교회에 제가 몇 년 전에 연합 집회를 갔었는데, 그때 예배의 요소를 말하다가 찬송에 대하여 이런 내용의 강의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집회에 참여했던 분들이 은혜를 많이 받았다고 얘기는 하는데 실제로는 잘 모르겠고, 단 한 사람은 은혜를 많이 받고 가르침대로 그대로 실천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분이 바로 그 교회의 담임목사이신 전충현 목사님이십니다. 그 이후로 전 목사님은 예배를 드리면서 자기가 제일 크게 찬송을 부르고 열정적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어느날 학교 예배에 설교를 하러 오셨는데, 학생들과 다른 교수들보다 훨씬 더 큰 목소리로 열심히 찬송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배 후에 그 분이, 자기는 그 이후로 어떤 예배를 드리든지 간에, 찬송을 이렇게 부르려고 한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오히려 전 목사님을 통하여 은혜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다하는 찬송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찬송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삶 속에 찬송이 회복되고, 우리교회는 찬송이 살아있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님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찬송/523-몸과 마음을 다하여 열정적인 마음으로 큰 소리, 박수치며 한 번 불러 보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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