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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9 - 말의 영향력 이정현 목사 2018-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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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사도행전5:29-32절 개역개정

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30.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31.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32.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3:1-12, 말의 영향력

 

8월의 주제가 기독교인의 언어이기 때문에, 첫째 주에는 말에 대한 잠언의 교훈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하였고, 지난주에는 하나님 나라의 꿈이라는 제목으로 임현수 목사님이 길게 설교해 주셨습니다. 예상외로 설교가 길었지만 그래도 한마디 한마디가 은혜로운 말씀이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자유가 얼마나 귀한 것인가, 또한 옆 사람과 함께 하나님께 찬송하고 기도하며 말씀을 들으며 예배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이며 복인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도 간혹 있었지만 대부분의 성도님들이 무더위를 잘 견디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산본에서 오시는 공석한 장로님 내외는 연세가 구십이 다 되어 가시지만, 지난주에도 1, 2부 예배에 제일 일찍 오셨고 곧곧이 앉아서 예배를 다 드렸습니다. 땀이 줄줄 흐르는 찜통 같은 예배당 안에서, 2시간 동안 인내하시면서 예배를 드린 여러분들에게, 또 다른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야고보서 3장의 말씀을 통하여 말의 영향력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릴 때, 주의 집중해서 들으심으로 은혜가 되시기 바랍니다.

 

1. 자기 입을 잘 통제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라(1-2).

 

1절에서는 선생이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초대교회 때에는 선생이 아주 귀한 존재였습니다. 왜냐하면 교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고, 새신자들을 믿음 안에서 세워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다운 교회를 세우려면 좋은 교사는 필수적으로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선생인데, 야고보는 선생이 더 큰 심판을 받는다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는 말이 많으면 자연히 실수를 많이 하기 때문에 거기에 따른 책임이 무겁다는 뜻입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말이 많으면 실수가 많고, 실수를 많이 하면 거기에 대한 책임도 남들보다 더 져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설교를 30년 넘게 했고요, 대학에서 강의를 20년 넘게 했습니다. 1주일에 5섯번 설교를 했다고 한다면 5*52*32=8320번의 설교를 한 것이고, 학교에서는 1년에 2학점짜리 평균 5과목을 20년 가르쳤으면 2080시간 이상 강의를 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교회에서나 학교에서 다 말쟁이 선생 노릇을 했습니다. 그러니 저는 남들보다 훨씬 더 말에 실수를 많이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따른 더 큰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래서 요사이는 강의를 하거나 설교를 할 때에도 신중하게 말하려고 노력하고요, 되도록이면 말을 많이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야 실수를 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 많은 사람은 물에 빠져도 엉덩이만 둥둥 뜬다는 말이 있습니다. 얼굴을 물속에 쳐 박고 물고기와 이야기한다고 엉덩이만 둥둥 떠 있다는 겁니다. )

 

다음으로 야고보는 말에 실수가 없는 자가 온전한 사람이라’(2)고 말씀 하셨습니다. 여기의 온전하다는 말은 성숙하다, 완전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자기 혀를 잘 통제하는 사람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다라는 말입니다. 이 말을 반대로도 할 수 있습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말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혀를 통제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해야 할 말, 안해야 할 말을 가려서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것입니다. 거짓과 진실을 구분하여 말하는 것도 쉽지 않고, 선한 말과 악한 말을 구분하는 것도 그렇고, 남에게 상처가 되는 말인가 아니면 덕이 되는 말인가를 가려서 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자기 입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의 온 몸도 통제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 뜻에서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고 하셨습니다. ‘굴레 씌운다는 말은 고삐를 매다는 뜻으로, 마치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는 송아지를 코뚜레를 하고 고삐를 매어서, 그때부터는 그 고삐로 송아지를 제어하는 것처럼, 혀만 통제가 되면 온 몸도 통제가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결국 야고보는 1-2절을 통해서, 선생이든 아니든 간에 그리스도인들은 말에 실수하지 말고 자기의 입을 잘 통제하는 성숙한 기독교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말하기를 더디하라고 하셨습니다(1:19). 하나님이 사람의 얼굴을 만드실 때, 콧구멍은 두 개, 눈도 두 개, 귀도 두 개를 만드셨지만 입은 하나만 만드셨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그것은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냄새 맡되 말은 적게 하고 더디 하고 조심하고 절제하라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창조의 섭리대로 보고 듣는 것의 절반만 말하면 좋겠습니다. 자기 입에 파숫군을 세워서, 항상 말을 절제하는 성숙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말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가?(3-6)

 

본문 3-6절에서는 말의 영향력에 관하여 말씀하십니다. 여기에는 3가지 비유가 나타납니다. 먼저는 말의 입에 재갈비유입니다.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3). 재갈은 말의 입에 가로 물리는 쇠토막을 가리키며 이곳에 고삐를 매어서 사람들이 움직이고자 하는 방향대로 몰고 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신체가 큰 말이라 할지라도, 심지어 성질이 사나운 야생마라 하더라도 이 재갈로 말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입, 혀는 지체 중 작은 부분이지만 이 혀를 다스릴 때, 허물을 면할 수 있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음은 큰 배의 키비유인데, 4절입니다.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4). 앞절에서는 힘이 센 가축을 어거하는 재갈의 비유를 하였다면, 여기서는 큰 배의 작은 키를 비유로 설명합니다. 여기서 야고보는 배를 묘사할 때에 매우 크다는 말을 붙이고 키를 말할 때는 매우 작다는 말을 사용합니다. 사람이 만들 수 있는 것들 중에 움직일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큰 구조물이 배라고 합니다. 지금 세계에서 제일 큰 배가 어떤 배인 줄 아십니까? 이 배는 대한민국 거제에서 삼성중공업 조선소가 만든 프리루드 FLNG’라는 가스 유조선입니다. 총길이가 488m 폭이 74m 중량이 총 265천톤입니다. 미국의 최대 항공모함인 제럴드 포드함이 모든 무기를 다 탑재 한 중량이 112000톤이라고 하고, 여러분이 잘 아시는 타이타닉호가 46천톤의 배입니다. 이런 것들과 비교해 보더라도 프리루드는 엄청나게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프리루드에 가스를 전부 다 채우게 되면 그 배의 총 무게가 60만톤 정도가 된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해상에 떠 있는 작은 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엄청난 배도 작은 키 하나로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비유 역시 지극히 작은 것을 통하여 극히 큰 것을 조절할 수 있다는 극적인 효과를 주는 것입니다. 키는 큰 배의 작은 일 부분에 속하지만 사공은 그 키 하나로 자기가 마음먹은 대로 조종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말은,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 운행한다는 말입니다. 배는 외부에서 불어오는 큰 광풍에 의해서 이리갔다 저리갔다 하는 것이 아니고, 작은 키에 의해서 운행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 말은 인간의 세치 혀는 비록 작지만, 높은 파고와 같은 외부적인 환경도 능히 이기게 하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믿는 자들이 비록 역경 중에서도 혀를 지혜롭게 잘 사용한다면, 인생 전체를 긍정적 방향으로 움직여 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수십만톤의 큰 배도 작은 키 하나로 움직여 간다는 사실을 알고, 내 인생 전체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작은 혀로 항상 긍정적이며 믿음의 말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신은경 아나운서가 홀리 스피치라는 책에서 초등학교 3학년인 자기 딸 아이 이야기를 썼습니다. 딸이 내성적이고 남들 앞에서 말을 잘 안했다고 합니다. 엄마 아빠는 말을 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데, 아이가 말을 잘 안 하니까 은근 걱정이 되더랍니다. 그래서 기도 수첩에 이렇게 적어 놓고 기도하기 시작했답니다. ‘딸이 전국 영어 말하기 대회에 대상을 받는다.’ 시간 날 때마다 딸을 위해서 이렇게 선포하며 기도를 했답니다. 2년 후에 그대로 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 딸은 자신감을 얻어서 영어뿐만 아니라 한국말도 사람들 앞에서 자신 있게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긍정적이고 믿음의 말을 하니까 그대로 되더라는 이야기입니다.

 

세 번째 비유는 큰 숲의 불인데, 5절 하반절에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라는 말씀입니다. 야고보는 계속하여 작은 것 하나가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를 설명합니다. 여기서는 작은 불과 많은 나무를 대조하여 말씀하시면서, 각각의 앞에다가 얼마나라는 말을 붙이고 있습니다. 결국 얼마나 작은 불과 얼마나 많은 나무를 비교하는데, 이 비교 역시 지극히 작은 불씨 하나가 엄청난 수와 양의 숲을 태운다는 것입니다.

 

지금 전 세계는 이상 기후 현상으로 찜통더위를 겪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자주 지구가 불처럼 달아오르는 현상들이 일어 날 것입니다. 그리고 이상 기후현상으로 지구촌 곳곳에서는 산불도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산불의 원인도 여러 가지이지만, 대부분의 발화점은 미미하고 보잘 것 없는 불씨 하나 때문입니다. 무심코 버린 담배꽁초 하나, 성냥불 하나에 의해서 수십만 헥타르의 광대한 숲이 불타 버리고 맙니다.

 

이것은 작은 혀가 얼마나 큰 해악을 가져 오는지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고, 말은 상상 이상으로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작은 혀 하나가 내 온 몸 전체를 더럽히고, 우리의 삶의 바퀴를 태워 버리는데 그 불은 지옥에서 난다는 것입니다.

 

말끔하게 차려 입은 한 신사분이 여러분과 대화를 하는데, 저급한 주제를 가지고 저급한 말로, 때로는 욕을 섞어서 말을 한다면, 여러분은 그 사람의 인격을 어떻게 평가하시겠습니까? 결국 그 사람의 저속적인 말은 그의 몸을 더럽히는 것이고, 지옥의 불로 자기의 삶의 바퀴를 불태우고 있는 것입니다. 불과 말의 가장 비슷한 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번진다는 것입니다. 불도 삽시간에 번지고, 말도 순식간에 천리를 갑니다. 그 말이 번져서 결국은 자기 삶을 태워 버리는 것입니다. ‘삶의 바퀴를 불사른다는 것은 우리의 전 인생에 불을 질러 그 생 전체를 망쳐버릴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자기의 혀로 내뱉는 말이 전 인격을 오염시키는 것입니다.

 

위에서 나온 재갈, , 불은 작지만 효과적인 제어장치라는 점입니다. 말에 비해서 재갈은 작은 것이고, 큰 배에 비해 키는 작은 부분이고, 큰 산불에 비해 불씨는 아주 작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작은 것이 큰 말과 큰 배와 큰 숲에 절대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혀는 작은 지체이지만, 이것이 우리의 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는 것입니다.

 

3. 혀는 길들여지지 않는 모순덩어리이다(7-12).

 

7절 이하 몇 구절에서는 길들일 수 있는 동물길들이기 불가능한 혀를 대조하면서, 혀는 모순덩어리이고, 잘 못 사용하는 혀는 파괴력이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모든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을 다 길들일 수 있지만(7)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다고 하였습니다(8). 동물들은 지금까지 인간에 의해서 길들여져 왔고 앞으로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처음에 모든 것을 만들어 놓으시고, 사람에게 그 모든 것들을 다스리도록 위임해 주셨기 때문입니다(1:28). 사람이 동물을 다스린다는 것이 타락 이전에는 완벽했지만, 타락 이후에는 불완전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교육과 훈련을 거듭하여서 길을 드립니다.

 

요즈음은 고양이도 훈련을 시켜, 장애물 경기에 내 보내기도 합니다. 맹수인 호랑이와 사자도 길들여, 유익하게 이용하고 있고, 소나 말도 잘 훈련시켜 농사일이나 이동수단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짐승뿐만 아니라, 날짐승인 독수리나 비둘기를 길들여 유용하게 쓰기도 하고, 해물인 돌고래나 거북이를 길들여 이용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지난번 태국에 가서 보니까, 코끼리를 길 드려서 쇼를 하게하고, 관중들로부터 바나나를 얻어먹게 하고, 그리고 심지어 돈을 받아서 주인에게 건네주게도 합니다. 이 같은 짐승도 훈련을 시켜 유용하게 사용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다고 하셨고,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사람의 혀 속에 치명적인 독이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그 독이 쉬지 않고 뿜어져 나온다는 것입니다. 시편 1403절에, “뱀 같이 그 혀를 날카롭게 하니 그 입술 아래에는 독사의 독이 있나이다라고 말합니다. 뱀의 독이 치명적인 상처를 주듯이, 독이 가득한 혀로 내뿜는 말에 얻어맞게 되면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이 혀가 얼마나 모순덩어리인지를 말하기를, “한 입으로 저주와 찬송이 나온다”(9)고 했습니다. 입술의 가장 아름다운 기능은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목적이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입술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하나님을 자랑하고, 하나님을 높이며, 하나님을 전파해야 하고, 남을 축복하고 칭찬하고 위로해야 할 터인데, 그러지 못하고 불평불만하고 남을 험담하고, 저주하고 나쁜 놈이라고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 것은 기독교인의 언어생활에 합당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이어서 마지막 부분에서도 모순적인 혀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샘이 한 구멍에서 단물과 쓴 물을 내지 못하며, 무화과나무에서 감람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지 못하며, 이와 같이 짠물이 단물을 내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한 우물에서 두 가지 맛을 내는 우물이 있습니까? 한 과수나무에서 다른 열매를 딸 수가 있습니까?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혀는 한 입으로 저주도 하고 찬송도 하는, 자가당착과 모순에 빠져있다는 것입니다. 폴 데이비스(P. H. Davies)라는 사람은 이같이 혀는 불안정성과 이중성을 가진 악마적인 표지다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인간의 혀는 우물만도 못하고, 과수나무만도 못한 불안정하고 이중성을 가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성도들을 한 입에 축복과 저주의 말을 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7:16)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야고보도 선한 마음에서 선한 말을 내고, 악한 마음에서 악한 말을 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마태복음 12장에서(34-35) “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35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본성이 선하면 선한 말을 내게 되어 있고, 본성이 악하면 악한 말을 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짠물이 단물을 낼 수 없는 것처럼, 혀를 통제하지 못하면 선한 말을 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내 혀를 제어할 수 있나요?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님을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매일 매시마다 성령님 도와주셔서, 우리의 입술을 통제하여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에 충만하여 살 때 우리는 한 입으로 하나님을 찬송하며 이웃을 축복하고 위로하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십자가 좌우편에 강도들이 달려 있었습니다. 한편의 강도는 예수님을 비방하여 말하기를, ‘네가 그리스도냐 그렇다면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고 조롱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편의 강도는 오히려 비방하는 그 사람을 꾸짖으며 우리는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보응을 받고 있지만,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하며,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했더니, 예수님께서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심으로 그를 구원하여 주셨습니다(23:40-43). 한 사람은 그리스도를 비방함으로 구원에서 멀어졌지만, 다른 한 사람은 자비를 구함으로 구원 받은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나의 말 한마디가 이처럼 엄청난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입니다. 지옥이냐 천당이냐를 가르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입으로 예수를 시인하는 자는 다 구원을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입으로 주를 시인하지 않으면 구원 얻을 자가 없는 것입니다.

 

결론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18:21).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벧전 3:10).

 

예수님은 군더더기 없이 담백한 말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5:37).

 

그리고 무익한 말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고 하셨습니다. “3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37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12:36-37).

 

낙관적 심리체계 또는 긍정적 심리학의 기초를 세운 마틴 셀리그만(Martin E. P. Seligman) 박사는 언어생활과 우울증에 관해 연구를 하고 다음과 같은 간단한 결과를 내 놓았습니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대부분, 난 못한다, 내가 잘못했다, 내가 나쁘다, 난 쓸모없다 이런 말만 한답니다. 그러면서 그는 인생에서 능력이나 재능보다 중요한 것은 긍정적 언어 습관이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좋은 날 보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부정적이고 불 신앙적이고 악하고 무익한 말은 입 밖에 내지 마시고, 성숙한 기독교인의 언어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말에는 대단한 파괴력과 영향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성령님에 의해 말의 통제를 받으며 살아가는, 성숙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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