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하박국3:16-19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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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합 3:16-19, 나는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하박국 선지자는 주전 700년대 말부터 600년 초기에 활동했던 선지자이며, 예레미야와 나훔 선지자와 동 시대 사람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말은 하박국 선지자는 남 유다의 멸망 전에 활동을 했다는 말이 됩니다.
하박국서 전체가 3장으로 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하박국의 두 개의 질문이 나옵니다. 이 질문들은 유다가 곧 멸망당할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을 묻는 형식으로 전개됩니다. 첫 번째 질문은 ‘하나님은 왜 유다 백성들의 죄를 간과하십니까?’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바벨론을 통하여 그들의 죄를 징벌할 것이라’(1:6)고 하셨습니다.
이 대답을 들은 하박국은 두 번째 질문을 합니다. ‘왜 우리보다 악한 바벨론을 들어 유다를 심판하십니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하박국에게 잠잠하라고 하시면서, ‘유다에게 폭정을 가하는 바벨론도, 결국 앗수르처럼 멸망하고 말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박국의 두 가지 질문에 따른, 하나님의 분명한 두 가지 대답을 염두에 두고 본문 말씀을 들으시면 되겠습니다. 본문은 하박국서의 마지막 부분으로, 죄악 된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을 당한다할지라도, 원대하신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을 바라보며, 선지자가 자신의 신앙을 노래로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6월의 주제가 ‘희락’입니다. 희락은 말 그대로 ‘기쁨과 즐거움을 아울러 이르는 말’입니다. 그래서 희락은 기쁨, 즐거움과 같은 단어입니다. 본문 18절에도 같은 의미의 단어가 나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이 6월 첫째주일임으로 하박국의 희락, 기쁨에 관하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남쪽 유다나라의 멸망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이들의 죄악을 이제 심판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특히 유다의 18대 왕인 여호야김은 사악하고 불경건하고 반역적인 인물이었습니다(왕하 23:36-24:7, 대하 36:5-8). 그 여호야김이 왕위에 오른지 얼마 되지 않아서 하박국은, 그가 자행하는 부패와 폭력과 탐욕과 싸움과 우상숭배와 불의를 보고 이 책을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선지자는, 하나님이 왜 이런 죄악을 보고만 계시느냐고 한스럽게 질문하는 것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 앞에서 왜라고 자꾸 질문을 하니까, 하나님이 내가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을 몽둥이로 사용해서, 유다를 징벌하겠다고 대답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유다를 징벌하는 도구로 사용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도, 앗수르처럼 멸망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유다를 징벌하는 도구로 바벨론을 사용하시고, 그 바벨론을 또한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벨론을 심판하신다는 것은, 곧 그 가운데 포로로 잡혀 간 이스라엘을 구원해 내신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유다에 대한 심판의 기간을 마치고, 하나님이 바벨론을 징벌하심으로 그 가운데서 유다를 구원하시고, 고국으로 귀환하게 하심으로 회복시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본문을 설명하는데,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유다 백성을 심판하실 때 바벨론을 사용하시는데, 그때 바벨론의 침략 모습을 보여준다고 해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유다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예언된 기간을 다 마쳤을 때, 하나님이 바벨론을 심판하시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주장합니다. 혹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인한 심판을 다룬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세 가지 주장 다 일리가 있지만, 저는 둘째 입장을 취하여 설명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어떤 모습으로 바벨론을 치심으로, 그 가운데 있는 당신의 백성 유다를 이끌어 내실까요? 오늘 본문 앞부분에 잘 나타나 있다고 봅니다. 하나님이 바벨론을 징벌하시기 위하여, 임하실 때, 땅이 진동하고, 산들이 무너지고(6), 창수가 넘치고 바다가 소리를 지르며(10), 해와 달리 움직이지 않으며(11), 여러 나라를 밟으시며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앞으로 바벨론을 징벌하실 하나님의 그 모습을, 미리 선지자에게 현현하여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강림하시는 목적은 오로지 하나, ‘주께서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려고’ 임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언약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대단한 역사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런 성구들은 결국 하나님이 승리하신다는 것이고, 하나님이 누구를 사용하시든지 바벨론을 이렇게 징벌하여, 내 백성을 그 가운데서 이끌어 내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본 하박국 선지자가, 어떻게 반응을 합니까? 16절입니다.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16). 하나님을 대면하여 본 선지자는, 창자가 흔들렸고 입술이 떨렸고, 그의 두 다리가 떨렸다고 말합니다. 온몸을 사시나무 떨 듯이 떠는 것입니다. 혼비백산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선지자가 하나님의 이같은 음성과 현현의 모습을 보고, 단순히 온 몸만 떨었던 것이 아니라, 유다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놀랍고 원대하신 계획을 깨닫게 되었다고 봅니다. 유다 민족에 대한 계획과, 바벨론의 통치에 관한 내용을 알게 된 것입니다. 결국 살아계신 하나님이 유다 민족을 비롯한 온 세계 만민을, 당신의 주권적인 섭리로 통치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박국은 이렇게 고백하며 찬양하는 것입니다.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하박국서에서 유명한 두 구절이 있는데, 하나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2:4)는 말씀이고, 다른 한 구절이 바로 17-18절입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17절에서 없는 것이 6가지가 나옵니다. 무화과가 없고, 포도가 없고, 올리브가 없고, 곡식이 없고, 양이 없고, 소가 없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그 가치가 작은 것부터 큰 것에 이르기까지 순서대로 나열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6가지는 보통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에게 내려주시는 풍요로운 양식입니다. 그런데 이 6가지가 있어야 되는데, 없다는 것입니다. 비록 이런 것이 없어도, 이것들이 하나님에 대한 나의 신앙을 흔들 수 없다는 고백입니다. 이런 것들이 없음으로 나의 삶이 궁핍해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겠다는 고백입니다. 이런 신앙을 저는 ‘없어도의 신앙’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이것도 있고 저것도 있고, 모든 것이 풍족함 가운데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생활 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이 부족할 때에도, 우리가 신앙을 지키는 것입니다. 삶의 환경이 좋지 못하고, 의식주의 모든 것이 부족하여 늘 염려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놓지 않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욥이라는 사람이 바로 ‘없어도의 신앙’을 가졌다고 봅니다. 욥은 자기 몸에 악창이 나서 기왓장으로 긁는 신세가 되었고, 진물을 개들이 핥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자기의 그 많던 재산이 하루아침에 다 날아가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자녀들 10명이 한날에 다 죽었습니다. 자기 부인이 찾아와서 이래도 당신의 순전을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어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욥은 어리석게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신앙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욥은 몸의 건강이 없고, 재산이 없고, 자녀가 없고, 부인의 사랑이 없어도,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굳게 지킨 것입니다. 욥은 어쩌면 ‘없어도의 신앙’을 넘어 ‘고난이 있어도의 신앙’을 가진 자였다고 봅니다.
이제 하박국 선지자는 ‘없어도의 신앙’을 고백하며,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라’고 말합니다. 정말 멋지고 아름다운 신앙을 고백한 것입니다. 나에게 아무것도 없어도,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라고 한 것입니다.
하박국의 고백에서, 그의 희락의 근원이 무엇입니까? 선지자는 무엇 때문에 즐거워하고 무엇 때문에 기뻐하고 있는 것입니까? 돈입니까, 자식입니까, 명예입니까?, 지식입니까? 밝은 미래입니까? 부귀영화입니까? 아니었습니다. 선지자가 가진 희락의 근원은 여호와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구약 여러 성경에서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로다”(시 104:34)라고 말합니다. “겸손한 자에게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쁨이 더하겠고 사람 중 가난한 자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사 29:19). 또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사 61:10). 이런 성구에서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 한다는 것입니다. 곧 즐거움과 기쁨의 근원이, 우리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입니다.
본문의 선지자는 확신 있고 감명 깊게 이 사실을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음으로 내가 고난 가운데 있어도, 나는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하박국은 마지막 구절에서도 확신에 찬 어조로 이렇게 말합니다. “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마치 젊은 사슴이 자기의 힘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비록 돌이나 바위나 엉겅퀴나 사나운 맹수들이 많은 산악이지만 그럼에도 부구하고, 거기를 기쁨으로 펄쩍 펄쩍 뛰어 나니는 것처럼, 지금 선지자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신다고 말합니다. 자기 민족의 죄악과 그로인한 멸망을 생각하면, 탄식하며 괴로울 수밖에 없으나, 이 민족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생각하니 새로운 힘과 희망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로 사슴 같이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신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럴 수 있게 된 것도, 하나님이 나의 힘이시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선지자가 처한 상황은, 하박국서를 시작할 때나 마치는 지금이나 바뀐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다만 선지자 자신이 바뀐 것입니다. 하나님의 현현을 뵈옵고, 유다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을 깨닫고, 구원을 위하여 일하실 하나님을 경험하게 됨으로 인하여, 선지자 자신이 바뀐 것입니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그는 이제 나에게 아무것도 없어도, 나는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한다고 고백했으며, 주님만이 나의 힘이라고 노래한 것입니다.
앞에서 하박국서에서 유명한 성구 두 구절을 소개했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구절과 ‘나에게 아무것도 없어도, 나는 오직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리라’는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이 두 본문은 상통성이 있습니다. 이 두 본문이 서로 통한다는 것은, 의인이 믿음으로 산다는 말이나, 아무 것도 없어도 하나님을 의존하여 살며, 오로지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산다는 말은 거의 같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어 의인이 된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곧 환경에 지배를 받거나, 좋은 환경 때문에 주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환경과 여건이 나쁘고, 생활이 어렵고 힘들어도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과 뜻을 믿는 믿음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불신자들과 믿음이 약한 사람들은 환경이 좋은 것 때문에 교회에 나올 수도 있지만, 참 신앙을 가진 사람은 환경이 나빠도, 먹을 것이 없고 입을 것이 없고 잠잘 곳이 없어도,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며 사는 것입니다. 신자들은 불신자들과 삶의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진짜 신자는 아무리 궁핍하고 척박한 환경 속에 있어도, 베풀어 주신 구원의 은총만 생각해도, 기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다른 거 다 없어도 구원의 은총, 그것 하나만 붙들고도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크리스찬입니다. 그것처럼 구원의 은총이 놀랍고 귀하고 가치 있고 위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현현을 뵈옵고, 이 민족의 구원의 계획을 깨달은 선지자는, 수금에 맞추어 감격 중에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어도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우리도 이 땅을 살아가면서 결코 세상에 물들거나 타협하지 말고, 아무리 힘들고 어렵고 고통이 있어도, 도도하게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도 ‘없어도의 신앙’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있어도 제대로 믿지 못하는 사람 많은데, 여러분은 없어도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시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생각하며 ‘무화과나무 잎이 마르고’라는 복음성가를 함께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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