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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6 16 -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이정현 목사 2019-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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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사도행전3:1-10절 개역개정

1.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2.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3.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4.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5.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9.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10.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3:1-10,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성경에는 이름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옵니다. 히브리어로 이름을 쉠( )이라고 하고 헬라어로는 오노마( )라고 합니다. 쉠과 오노마는 인격사역평판그리고 존재 자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이름이 나오면 그것은 그 사람의 인격, 그 사람이 한 일, 그 사람에 대한 평판을 말하고 궁극적으로는 그 사람 존재자체를 말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이름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4:26, 13:4, 21:33)는 표현이 많이 나오는데, 이는 하나님(여호와)을 불렀다는 말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20:7)는 말씀도 하나님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죽일지니라’(24:16)고 하셨는데, 이 말씀 역시 하나님을 모독하면 죽게 된다는 뜻입니다. 또한 여호와의 이름을 전파하라’(32:3)는 말도 여호와 존재 자체를 전파하라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신약 성경에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했다’(8:12)는 말은 곧 그리스도를 전도했다는 뜻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15:25)라는 말은 결국 예수님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않고 헌신한 자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이 있다’(벧전 4:14)고 하셨는데 이 말씀도 그리스도 때문에 치욕을 당하면, 그런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바울이 빌립보서에서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2:10)라고 했을 때,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 꿇게 하시겠다는 말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 앞에 무릎 꿇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결국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과 예수님의 이름은 곧, 하나님 자신과 예수님 존재자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베드로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하며, 그리스도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 이름으로 앉은뱅이는 낫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이름은 능력의 이름으로, 우리와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의 이름을 통하여 저와 여러분들은 많은 은혜를 얻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우리가 얻게 된 은혜를 몇 가지로 살펴봄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름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데, 성경은 이것을 다른 말로 주의 이름을 부름으로 구원을 받는다고도 표현을 합니다. 예를 들면 시편 54:1절에,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으로 나를 구원하시고라는 말씀이 있고, 이사야 63:16절에는 여호와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라 옛날부터 주의 이름을 우리의 구속자라 하셨다는 말씀도 있습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주의 이름이 우리의 구속자라는 말은 이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 주신 때부터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자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이것 뿐만아니라 사도행전 9(14)장에 보면 바울에 관하여 표현을 하면서,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는 말씀이 나오는데, 여기서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은구원 받은 성도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울러 사도행전 22:16절에, “이제는 왜 주저하느냐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는 말씀도 있고, 또한 가장 분명한 말씀으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10:13)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진실된 마음으로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주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곧 주님을 모신다, 주님을 영접한다, 주님을 믿는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이름은 우리를 구원하신 이름이고, 죄를 용서하신 그 이름이고, 자유와 해방을 주신 그 이름이 됨으로, 우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2. 그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이런 부탁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28:19).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 이후 제자들은 복음을 전하고 믿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습니다사도행전 2:38절에,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라고 하셨고,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 하고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하니라”(10:47-48). 이 외에도 사도행전 여러 군데에서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받으라’(19:5, 22:16)는 말씀이 나타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나를 당신의 종으로 선택하신 것은, 세례를 주려하심이 아니고 복음을 전파하게 하려하심이라고 말하면서, 자기는 한 사람을 제외 한 아무에게도 세례를 주지 않았고 또한 자기 이름으로 세례를 준 바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세례의 의미를,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2:12, 6:3). 세례를 통하여 지난 날의 모든 죄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것이고, 의를 위해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남으로 이제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름으로 구원을 받아서,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외직인 표로서 주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이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연합이 되었으니, 그 이름이 얼마나 복된 이름입니까?

 

3. 그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평소에 수많은 구신들을 쫓아내심으로, 귀신 들린 사람들을 건강하게 해 주셨습니다. 특별히 군대 귀신 들린 거라사의 광인도 온전하게 낫게 해 주셨습니다. 그 주님은 우리에게,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10:18절의 말씀입니다. “1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고 하셨고, 동네를 다니며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전하며 “8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617절 말씀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믿는 자는 주의 이름으로 구신을 쫓아내라고 하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9:49-50절에, 요한이 여짜오되 주여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50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70인 전도대에게 동네에 다니며 복음을 전하라고 내 보냈습니다. 그들이 기뻐하며 돌아와서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10:17)라고 보고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 성에서 전도하는데, 점하는 귀신들린 여인이 바울을 찾아와서 심히 괴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 귀신에게 말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왔다’(16:18)고 했습니다.

 

이와 같은 성경의 기술들을 볼 때, 예수 믿는 우리들에게도,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권능이 있다는 것입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그 이름으로 더러운 귀신들을 제압하며 살아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4. 그 이름으로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예수의 이름을 부름으로 구원 받았고, 그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이제 그 중보자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절대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존재들이었는데, 이제는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 되시는 그 이름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

 

주님이 친히 너희가 지금까지는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이제는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구하라’(16:24)고 하셨고, 또한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14:14)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주님이 들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15:16)고 하셨고,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16:23)고 말씀하셨습니다.

 

야고보 선생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5:14). 주의 이름으로 그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유일한 중보자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는 특권을 부여 받은 것입니다. 얼마나 좋고 기쁘고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참으로 위대하고 귀한 예수 그 이름이, 우리를 하나님과 교제하게 만들었습니다. 뿐만아니라 구하는 대로 주의 이름을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5. 그 이름을 전파하며 타인에게 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까,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기 위하여 성전에 올라갑니다. 가다가 성전 미문에 구걸하기 위하여 앉아 있는,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사도들이 그를 주목하여 우리를 보라로 말을 합니다. 아무래도 이 사람은 구걸하면서 그냥 땅만 처다 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저 절망 중에 땅만 보고, 사람들에게 소리로만 구걸하는 것이지요. 우리를 보라는 말에, 거지가 무엇을 얻을까 해서 사도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사도들이 이 거지를 주목하여 보았던 것과, 거지가 이 사도들을 바라보는 것에는 기대하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사도들은 이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한 사람으로 보았지만, 거지는 사도들을 오로지 무엇인가 적선할 수 있는 사람으로 쳐다 본 것입니다. 사도들은 영적인 무엇인가 주기를 바랐지만 거지는 육적인 무엇인가 얻을까 했습니다.
 
이때 베드로가 말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베드로는 무엇인가 얻기를 바랬던 이 거지의 마음을 일언지하에 포기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은과 금은 없다.’고 했습니다. 네가 바라는 금은이 없다는 선포입니다
 
대신 베드로에게 있었던 것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었습니다. 앉은뱅이에게는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이 돈 일수 있습니다. 그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주지를 못했지만, 그러나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주었습니다. 돈 보다도 더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예수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단순히 일어나라고만 하지 않았습니다. 일어나서 걸으라고 명령한 것입니다. 여기서 일어나 걸으라는 말을 그대로 번역하면, ‘너는 일어나고 지금부터 계속하여 걸으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1회적인 기적이 아닙니다. 나면서부터 한 번도 걸은 적이 없는 사람을, 이제부터는 계속해서 걸어 다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40년 동안이나 말라붙어 있었던, 앉은뱅이의 한스럽고 초라한 다리의 근육이 단번에 새로운 힘을 얻은 것입니다. 아무런 의학적인 치료를 한 것이 아닙니다. 이제 다시는 성전 문에 앉아서 비참하게 구걸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발과 발목에 힘을 얻은 그 사람이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합니까? “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그는 베드로의 손을 잡고 뛰면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사도들과 함께 성전으로 걸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고 하나님을 찬미 했습니다. 여러분 이 사람이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얼마나 감격스러웠으면 이렇게 했겠어요. 40년 만에 발로 땅을 밟아보는 것입니다. 40년 만에 걸어보는 것이고 뛰어보는 것입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성전 문에 앉아서 구걸하지 않아도 됩니다. 남들의 경멸과 비난을 받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비참하게 살지 않아도 됩니다. 성전 바깥에만 있지 않아도 됩니다. 이제 자기 발로 걸어서 성전 안으로 들어가며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당당히 성전 안에 들어가 예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의학적 치유에서 이제 종교적 치유로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이제 종교적 치유에서 영적인 치유까지 이루어 진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는 앉은뱅이가 치료되어 육체적 치유를 받았고, 성전 안으로 들어감으로 종교적 치유를 받게 되었고, 하나님을 찬미하는 영적인 치유까지 일어 난 것입니다. 자기 안에 온전한 치유가 일어남으로, 기쁨이 매우 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절름발이를 사슴같이 기뻐 뛰게 하시겠다’(35:6)는 예언이, 주님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모든 백성들이 그가 기뻐 뛰며 하나님을 찬송 하는 것을 보고,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심히 놀랐다고 했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다 놀란 것입니다. 이들이 무엇에 놀랐습니까? 복음의 능력, 예수 이름의 능력이 주는 엄청난 사건을 보면서, 저들은 어리둥절하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앉은뱅이를 업고 나온 사람은 육체적인 봉사자입니다. 매일매일 업어다가 이곳에 데려 놓고 하루 일과가 끝나면 또 데려가고, 이것도 참 귀한 봉사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육체적인 봉사가 그 앉은뱅이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였습니다. 또한 성전을 출입하면서 이 사람에게 한 푼 두 푼 동냥한 사람들은 물질적인 봉사자들입니다. 유대인들은 정해진 기도 시간마다 이곳에 와서 기도를 해야 하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불쌍한 이 앉은뱅이에게 적선을 하였을 것입니다. 성전의 미문은 웅장하고 아름다운 문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왕래가 더 많았기 때문에, 하루의 수입도 괜찮았을 것입니다. 그것으로 하루하루를 먹고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던져주는 아무리 많은 수입이라 할지라도 그 물질 봉사가, 그 앉은뱅이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하였습니다. 더 나아가서 예루살렘을 다스리는 행정관들이 이 사람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었습니까, 아니면 유명한 의사들이 이 사람의 문제를 해결해 주었습니까? 이 사람에게 약간의 도움은 줄 수 있었는지 모르지만, 이 사람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 앉은뱅이를 일으키지 못하였고 또한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 찬양하며 경배하게 하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들에게는 그럴만한 능력과 힘이 없었습니다. 생명력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해냈습니다. 그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40년 동안의 비참하고 처량한 앉은뱅이 신세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나의 신체적 장애를 치료해 주셔서, 일어나 걷게 해 주셨습니다. 펄쩍펄쩍 뛰면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성전에 들어가서 예배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그 이름이 나의 능력과 힘이 되었습니다. 주님이 나의 참 만족이 되었습니다
 
나사렛 예수는 지금까지 천대와 멸시를 받던 이름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조롱과 경멸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부활승천하시고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그 이름으로 하나님이 높여 주셨습니다. 지극히 높아지신 그 이름, 모든 무릎이 그 앞에 꿇을 수밖에 없는 그 이름이 본문의 앉은뱅이를 낫게 하셨습니다. 그 이름의 가치와 능력을 잘 보여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조금 뒷편에서, ‘이 역사는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된 것이 아니라, 예수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예수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다고 하였고,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부활 승천하사 하나님 우편에 계신 그분이, 바로 이 사람을 성하게 하신 것입니다.
 
13세기 중세 로마 가톨릭의 전성시대에 필립스 교황이라는 사람이 교황청에 재물이 가득 쌓여 있는 것을 보고, 옆에 있는 어느 추기경에게, 금은보화를 가리키며, ‘이제는 은과 금은 내게 없으며라고 말하던 시대는 벌써 지났다고 말했답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대 신학자였던 토마스 아퀴나스라는 사람이, ‘교황 폐하의 말씀이 옳습니다. 그러므로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명하는 시대도 지나갔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재물의 부함을 자랑하는 필립스 교황의 말은 참으로 어리석은 말이고, 예수 이름을 줄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아퀴나스의 말은 가슴 아픈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론
이름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교인이 아들을 낳고는 목사님에게 이름을 지어달라고 부탁했답니다. 그래 목사님이 고민하다가 어느 날 성경을 읽다 이사야 601절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일어나 빛을 발하라는 뜻으로, 이름을 발광이라고 지었습니다. 발할 발()자에 빛 광()자를 쓴 것입니다. 부모가 목사님이 지어준 그 이름을 아이에게 썼습니다. 아이가 자라서 학교에 갔는데, 자꾸 다른 아이들에게 이름 때문에 놀림을 당하는 것입니다. ‘지랄 발광’-그래서 이름의 의미는 좋지만 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하니까 그 이름을 바꾸었다고 합니다.어느 집에 아들만 넷이 있었습니다. 집안이 얼마나 삭막하겠습니까? 그러다가 다섯째로 딸을 낳았습니다. 딸이 얼마나 예쁘고 귀했는지 이름을 귀한 여자라는 뜻으로 귀녀(貴女)라고 지었습니다. 그런데 성이 방씨였습니다. ‘방귀녀’. 부모님의 의도는 좋았는데, 이 역시 다른 사람들로부터 방귀 끼는 여자라고 놀림을 받으니까, 할 수 없이 이름을 바꾸게 되었답니다.

 

우리에게는 바꿀 필요가 없고, 영원히 변치 않는 이름이 있습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그 이름 예수를 통하여 구원 받은 자들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고, 그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예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을 얻게 되었고, 그 이름을 전파하는 자가 되었고 남들에게 그 이름을 주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 이름을 세상에 주어야 합니다. 교회가 세상에 주어야 할 가장 소중한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은금이 큽니까? 예수의 이름이 큽니까? 무엇이 더 소중하니까? 교회가 세상에 주어야 할 것이 돈입니까? 예수의 이름입니까? 돈을 아무리 많이 줘도 예수 그 이름을 주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돈이 저들을 정하게 못하고 저들을 의롭게 못하고 구원하지 못하고 저들을 찬송하게 못하고, 저들을 예배하게 못합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정말로 세상에 주어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그 이름, 예수! 우리네 인생을 바꾸어 놓는 위대한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슬픔을 기쁨으로, 절망을 소망으로, 불행을 행복으로, 환난을 승리로, 문제를 해결로, 불구를 정상으로, 진노를 긍휼로, 죽음을 영생으로, 심판을 구원으로 바꿀 수 있는 이름입니다. 그 이름, 예수를 높이고 그 이름, 예수를 찬양하고 그 이름, 예수를 의지하고 그 이름, 예수를 자랑하며 살아가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도행전 8장에 보면 빌립집사님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서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빌립의 말을 듣고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리고 빌립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도 쫓아냈고 중풍병자와 앉은뱅이를 걷게 했더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빌립 한 사람에 의해서 사마리아 성에 살고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병자들이 낫게되니까, 성 전체에 기쁨이 넘쳐나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 이름이 그 성 전체에 큰 기쁨을 준 것입니다.

 

우리 소망교회 성도들이 배곧 구석구석을 다니며 예수, 능력의 그 이름을 자랑함으로 배곧 전체에 큰 기쁨이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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