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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7 14 -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신 주님
이정현 목사 2019-07-14 추천 0 댓글 0 조회 1683
[성경본문] 히브리서12:1-2 개역개정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12:2,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신 주님

 

지난 주에는 고난과 인내의 대명사로 불리는 욥에 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욥의 인내는 그에 대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의 결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빚으시고 그를 인내하도록 만드시고 마침내 하나님을 뵈올 수 있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인내함으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복을 받아 누리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참으신 것을 살펴봄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십자가 한 사건만 아니라, 예수님의 생애를 통하여 주님은 고난을 어떻게 참으셨는지, 왜 인내하셨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무엇인지를 알아보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히브리서 12장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지금 아시아에 흩어져 있는 유대 기독교인들에게 편지를 한 것입니다. 이 편지의 수신자들은 지금 예수를 믿는 것 때문에 심하게 핍박을 받아서 신앙을 포기할 위험에 처해있었습니다. 로마로부터 핍박을 받는 것이 아니고, 자기 동족인 유대인들로부터 핍박을 받고 있기 때문에 더 괴로운 것입니다. 이들은 지금 기독교를 떠나 유대교로 다시 돌아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기독교의 신앙고백을 포기하고 유대교로 회기 할 상황 속에 놓여있었던 것입니다. 이때 본서의 기자는 그들에게 편지하여 권면하기를, 믿음의 선진들을 본 받아서 끝까지 신앙을 지키라고 한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리스도의 인내를 배워서 끝까지 신앙을 지키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 권면의 말씀을 주의하여 들음으로, 그리스도의 인내를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베들레헴에 탄생하셨을 때, 사관에 있을 곳이 없어서 마굿간에서 태어나심으로, 환경적으로 어려움을 당하셨습니다. 아무리 없이 살아도 짐승들이 잠을 자는 마굿간에서 태어나서, 구유에 누워계실 수가 있습니까? 주님은 낮고 천한 자리에 오심으로 고난의 삶을 시작하셨습니다.

 

태어나서 얼마 있다가, 죽이려고 하는 헤롯왕을 피해 애굽으로 피해가야만 했습니다. 예수님은 평생에 걸쳐 외국 여행을 딱 한 번 하셨는데, 이때 헤롯의 칼날을 피하여 생명을 보존하시기 위하여 고난의 피신 여행을 하신 것입니다. 그것도 밤에 피신해야만 했습니다. 그 부모님은 베들레헴에서 애굽까지 장장 수백 km를 걷고 때로는 짐승을 타고 가셔야만 했습니다. 애기라고 어찌 힘들지 않았겠습니까?

 

헤롯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주님은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와서는 유대로 가지 않으시고 갈릴리 지역에서 살아갑니다. 만약 요셉이 일찍 죽었다면, 주님은 장남이었기 때문에,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만 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30년 동안 주님은 일반 유대 청년들처럼, 목수의 일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 갔을 것입니다. 이 기간 동안 주님은 때를 기다리신 것입니다. 아버지의 때, 주의 길을 평탄케 할 요한이 나타날 때를 기다리신 것입니다. 그 동안도 많은 고난과 시련 중에 아버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인내하셨습니다.

 

이제 세례를 받고 드디어 주님의 공생애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주님은 세상에 속하지 않으셨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으셨음으로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자기 땅에 오셨지만, 그 땅의 백성들은 그 주인을 알아보지 못하셨고 오히려 고난과 핍박을 가하였습니다.

 

주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제자들에게 자기의 마음을 표현하시기를, ‘내가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날 밤 예수님은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기까지 기도하셨습니다. 이 기도를 생각만 해도, 주님의 영적인 고뇌가 얼마만큼 컸을 것인지, 또한 십자가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을까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도를 마쳤을 때에, 가룟유다가 찾아와서 선생님 안녕하십니까라고 하며 입을 맞추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자가 스승의 안부를 묻는 인사가 아니라, 배신의 키스이지요. 예수님을 로마 병정들에게 은 30에 팔아먹는 것입니다. 이 밤에 예수가 누구인지를 키스로 정해주는 것입니다. ‘내가 입 맞추는 자가 바로 예수다.’ 주님이 순순히 병정들과 사람들에게 붙잡히신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의 배신으로 인하여 마음에 더 심한 고통을 느꼈을 것 같습니다

이때 베드로가 칼을 빼서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귀를 떨어뜨렸습니다. 예수님이 “52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53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54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26:52-54). 주님은 베드로에게 이것까지 참으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얼마든지 저들을 한 순간에 다 쓸어 없앨 수가 있지만,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붙잡혀 끌려가도 인내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참으심은 성경을 이루기 위함이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주님은 고난과 어려움이 닥쳐도 먼저 아버지의 뜻을 생각하고, 성경말씀을 생각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목표를 두시고, 거기를 향해 가시다가 고난과 고통이 있어도 인내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는 몸으로 빌라도의 법정에 서게 되었습니다. 많은 무리들이 비방하며, 거짓 증인들을 세우고,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아우성을 쳤을 때도, 그는 인내하셨습니다.

 

채찍에 맞고 머리에 가시채를 뒤집어쓰지만, 그것도 참아 내십니다. 죄 없는 자가 죄 있는 자의 손에 의해, 이렇게 고난과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채찍으로 심하게 맞고, 조롱과 멸시와 천대를 다 받으셨습니다. 수염을 뽑히시고 따귀를 맞으시고 침 밷음을 당하셨습니다. 하나님으로써 당하실 수가 없는 수모를 인간에게 당하셨으나, 그 모든 고난을 인내하셨습니다. 이 모습을 미리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을 하셨습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53:7). 그리스도는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저항하지 않으시고 인내하셨습니다.

 

골고다 언덕을 오르시면서, 몇 번을 넘어지시지만 그래도 십자가의 그 길을 걸어가십니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고, 쓰러지면 또 다시 만신창이가 된 그 몸을 일으키셔서, 언덕을 올라가셨습니다.

 

드디어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에 이르렀습니다. 죄인들이 주님의 손과 발에 큰 대못을 박았습니다. 이제부터 고통의 극치의 시간을 지내게 될 것입니다. 십자가 처형은 가장 수치스럽고 공포스럽고 잔인한 사형방법입니다. 하나의 흠과 티가 없는 그 분이 이런 불명예스럽고 수치스럽고 끔찍한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장장 6시간 동안 처참한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쇠약한 그 몸이 십자가에 달려서 피를 흘리십니다. 예수님은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주님이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절규하시니까, 사람들은 저가 엘리야를 부른다고 조롱하였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거기서 내려와 보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조롱하였습니다. 마침내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고 하시고 운명하셨습니다. 주님은 옆구리에 창을 받으셨습니다. 그 분이 다른 흉악한 죄수 중의 한 사람처럼, 취급을 당하신 것입니다. ‘인자도 들려야 한다는 말씀대로, 주님은 십자가 높이 달리셨습니다. 누구든지 그를 쳐다보면 다 살게 하시려고, 수모와 멸시와 천대의 그 십자가 위에 높이 달리신 것입니다. 아무런 흠과 티가 없는 그분이 모진 십자가의 고통을 감내하신 것입니다.

 

오늘 히브리서 기자는, 지금 고난과 핍박의 현장 속에 있는 유대 기독교인들에게, 믿음의 여러 선진들도 신앙을 지키다가 수많은 고난을 당하였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동시에 이것보다 더 확실한 인내의 셈플로 그리스도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분이시며,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신 분이라고 말합니다.

 

그 분은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그의 기쁨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이고, 자기 백성들의 죄가 용서 받는 것이고, 작정 된 자가 믿고 영생을 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앞에 있는 이런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의 고통을 참으셨고 부끄러움도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이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승천하여 하나님 우편에 앉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인내를 인정하신 것입니다. 빌립보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게 하사, 만물을 통치하게 하셨습니다. No Cross, No Crown.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원치 아니하게 여러 가지 고난을 만날 수 있습니다. 고난이 없을 수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오히려 예수를 믿게 되면 고난을 받는다고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난이 있지만 그 길이 생명의 길임으로 고난 중에도 인내하며 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어떤 모델이 있으면 그 모델을 따라서 신앙생활을 하면 한결 쉬울 수 있고 바르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본문의 히브리서 가지는 그 모델로 누구를 소개하고 있습니까? 고난 중에 인내 하신 분의 셈플로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분은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사 만물을 통치하시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이 권면을 받아서 우리도, 앞으로 어떤 고난이 있더라도, 주님을 기억하면서 고난을 인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살아갈 때 피곤에 지쳐서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고, 절망하고 낙심스러울 때도 있고, 건강의 문제로, 환경의 문제로, 자식의 문제로, 생업과 사업의 문제로 인간관계의 문제로 고통을 당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중요 또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시고, 기쁨을 바라보며 부끄러운 십자가를 참으신 예수님을 바라보시면 됩니다.

 

세계 2차 대전 때 유대인들이 독일의 히틀러에게 끌려가서,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무려 600만 명이, 총으로, 칼로, 가스로, 생체 실험으로 죽었습니다. 작고 밀폐된 콘크리트 건물 안으로 수백 명을 밀어 넣고, 위에서 가스를 주입해서 죽이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들의 신발을 따로 모아 놓았는데 산을 이루었습니다. 잔인한 히틀러의 폭정살인 현장에서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물은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 받을 때, 하나님은 어디 계셨습니까?”(Where was God in our suffering). 내가, 우리가, 당신의 백성들이 이렇게 죽어 가는데, 당신은 어디계십니까? 그때라도 유대인들은, 자기 백성을 위하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시고, 십자가 위에서 수모와 멸시를 당하시면서, 피와 물을 흘리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자기들을 위하여 죽으시는, 십자가의 예수를 바라보지 못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히브리서 기자의 권면을 받음으로,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바라보고 십자가를 참으신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주님을 본 받아서, 어떤 고난이 오더라도 믿음으로 인내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그리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다른 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보이지 않는 영적 기쁨을 위하여, 부끄러움도 개의치 않으며 인내할 수 있는, 그런 사람 되어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인정하시고 높이 세워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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