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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04 11 - 새로운 피조물 이정현 목사 2021-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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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고린도후서5:17절 개역개정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고후 5:17, 새로운 피조물

 

오늘은 너무 기쁘고 감사한 날입니다. 우리 교회의 학습 세례 입교식이 있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유아세례를 받는 아이들이 10명이고, 그리고 교회 역사이래 처음으로 아동세례를 받는 아동들이 11명이고, 학습 1, 성인세례 2, 그리고 입교를 하는 사람이 15명입니다. 39명이 2021년 상반기 성례식을 거행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위하여 기도해 주시고 진심으로 축하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세례와 성찬식 관계로 설교를 간단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설교는 귀로 듣는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성찬은 눈으로 보고 입으로 맛보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두 가지 즉, 말씀과 성찬을 통하여 은혜받는 날이 되겠습니다. 두 가지를 적당히 안배해야 하기 때문에, 설교를 짧게 하겠습니다.

 

본문을 다시 한번 더 읽어 드리고, 몇몇 단어를 중심으로 간단하게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여기의 누구든지는 복음을 복음되게 하는 은혜로운 말입니다. 복음에는 차별이 없다는 말입니다. 남녀노소, 백인, 황인, 흑인 모두를 포함합니다. 높고 낮은 사람, 부자와 가난한 사람, 지식인과 무식한 사람 모두를 포함합니다.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차별이 없습니다. 세상에는 나라와 민족끼리 차별하고, 신분에 따라 차별이 엄격하게 존재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 위해서는 누구든지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제한이 없습니다. 특별한 자격 조건이 있는 게 아닙니다.

바울은 로마서 10(11-13)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믿는데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차별이 없으며,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시고,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이전의 신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결국 여기서 말하는 누구든지는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을 말하는 것인데, 이 모든 사람의 공통점은 다 죄인이라는 점입니다. 죄인인 사람이 스스로의 힘과 능력으로는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의 누구든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없는 죄인된 모든 인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음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이라는 말을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는 주 안에서’,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표현이 많이 나타납니다. 그러면 이 말은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이 말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또한 세례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오늘도 세례를 받는 사람들이 많은데, 세례를 받는 것은 우리의 옛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진정한 의미로 세례를 받은 사람은, 이제 주 안에 있는 사람이고, 또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이 말은 그리스도를 믿는다, 그리스도를 영접한다, 그리스도를 모신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면 곧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지만은, 그리스도 밖에서는 절대로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동시에 주님이 내 안에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주님이 우리안에 계시는 것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과거에는 내 마음의 주인이 나였는데, 이제는 주님이 나의 마음의 주인이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 안 믿을 때는 내 마음대로 살았지만, 이제는 더이상 그렇게 하지 않고, 주님 뜻대로 내 인생을 주관해 가시도록 맡기는 것입니다. 이제는 주님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 것입니다. 마치 물고기가 물속에 있고, 물이 고기 속에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또한 나무가 흙 안에 있고, 흙이 나무 안에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주님과 우리가 이처럼 연합되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누구든지 주님 안에 있고, 주님이 내 안에 계시면, 그 사람은 새로운 창조물인 것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은 이전의 피조물과는 다른 것입니다. 이전의 피조물은 죄로 말미암아 죽었던 자들이었지만, 새로운 피조물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 용서를 받고 영원히 사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전의 존재는 하나님 없이 소망도 없이 사탄의 종노릇하였지만, 이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며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소망을 가지고 의의 종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피조물은 단순한 갱신이나 마음의 변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거듭남을 말하고, 새롭게 만들어진 것을 말하고, 죽었다가 살아난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전과 완전히 다른 존재입니다. 마음을 조금 고치는 수준이 아닙니다. 새 주인 아래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새로운 피조물을 하나님을 따라 새사람을 입은 자라고 표현을 했고(2:10), 4장에서는 옛사람과 대조적으로 의, 진리,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자’(4:24)라고 했습니다. 결국 새 창조물은 새사람과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설명을 드린대로, 단어의 의미를 담아서 앞의 문장을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아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창조물이 되도록, 어떤 자격조건을 정하지 않으시고, 누구든지 부르셨구나. 그러므로 누구든지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개인의 구세주로 영접하기만 하면 됩니다.

 

이제 뒤의 문장으로 가겠습니다. 사실 뒷 문장은 짧은 두 문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여기서는 이전 것과 새것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이전 것은 중생하지 못한 생활 방식, 편견, 잘못된 생각, 죄의 노예 생활 등등을 말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전 것이 지나갔다는 말은, 죄와 사망의 옛 질서가 사라졌다. 옛 사고방식과 묵은 차별이 다 폐지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새것은 무엇을 말하는가요? 중생했다, 거듭났다, 천국 시민권자가 되었다, 영생을 얻었다는 말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뒷 문장을 간단히 설명하면, 중생하지 못하였을 때의 죄악된 생활은 지나갔고, 이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죄의 용서로 인하여, 천국의 시민권자로,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삶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전 것은 지나갔다라는 표현은, 지나가 버린 상태를 말합니다. 어쩌면 지나가 버린 상태는 다시 되돌아 오지않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미 지나가 버린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것이 되었도다라는 말은, 지금 새롭게 되었을 뿐만아니라, 계속 새로운 상태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의 새로움은, 시간의 경과함에 따라 낡아지거나 시대에 떨어지는 그런 새로움이 아니라, 영원히 새로운 그런 새로움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옛날 것은 이미 싹 지나가 버렸고, 새것이 된 것은, 날마다 새로운 것이며 영원히 새로운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보라’(이두)는 단어는, 즉흥적인 기쁨을 외치는 환호입니다. 기쁨과 놀라움의 반응이 보라라는 단어입니다. 이제 죄의 노예 생활은 지나가 버렸다, 보라, 우리는 영원히 새로운 상태가 되었다고 환호하는 것입니다. 결국 자신의 변화를 보라고, 큰 소리로 부르는 감격적인 환호이며 고백인 것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의 마음속에는, 이런 고백과 외침이 있는 것입니다(43:18-19, 21:4).

 

그러면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새로운 피조물답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옛날 사고방식으로 살 수 없습니다. 옛날 가치관대로 살 수 없습니다. 옛날 목표대로, 옛날에 좋아했던 것을 여전히 좋아하며 살아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옛날의 말을 그대로 하고, 옛 습관대로 그대로 행동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옛날처럼 여전히 거짓말 하고, 여전히 똑같은 죄를 짓고, 여전히 성질내면서 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새로운 가치관, 성경적 사고 방식, 성경적 목표, 성경적 삶의 스타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세례 받은 사람은 신자답게, 그리스도인답게, 하나님의 사람답게, 천국 시민답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영국의 에드워드 모트(E. Mote) 37세까지 캐비닛 제조공으로 일을 했습니다. 이 사람은 공장에서 일하면서 열등의식과 불평과 원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의 삶은 전혀 의미가 없었고 소망이 없었습니다

 

어느 겨울 그는 런던 거리를 배회하다가 한 교회를 보고 예배당에 들어갔습니다. 그때 존 하야트 목사가, 요한복음 3장으로 거듭나는 도리에 대한 설교를 하고 있었는데, 그 말씀을 듣는 순간 그래, 나도 거듭나야 한다는 강렬한 소원을 가지게 됐습니다. 성령께서 그의 마음의 문을 여셔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거듭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 그는 일기에 이렇게 썼습니다. “내 망치 소리는 이제 노래하기 시작했다. 내 망치는 이제 춤을 춘다. 그리고 내 눈동자에는 생기가 돌고, 마음속에는 생수가 솟는다. 예수께서 내 마음에 오셨기 때문이다. 나는 거듭났다.” 그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졌습니다. 그 소망은 산 소망이었다

 

이제 그는 행복한 일꾼이 되었습니다. 일하면서도 찬송을 불렀으며, 일하는 보람이 생기자 일의 능률도 오르고, 신용도 얻어 수입도 많아졌습니다. 자기가 일하던 목공소가 그의 소유가 되었고, 그 사업장이 점점 더 커졌습니다. 그는 성공적인 사업가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거듭나게 하신 주님께 감사하며, 그가 소유한 재산을 교회를 짓는 데 아낌없이 드렸고, 그 자신도 목사가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을 향한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감사의 시를 지었습니다. 그 시가 바로 찬송가 488장입니다. “이 몸의 소망 무언가 우리 주 예수뿐일세. 우리 주 예수밖에는 믿을 이 아주 없도다. 주 나의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오늘 이 말씀을 듣고, 경건한 마음으로 성례(세례와 성찬)에 참여하는 모든 소망의 식구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창조물이 되셨습니다. 옛것은 다 지나갔습니다. 새것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과 에드워드 모트처럼, 새로운 피조물답게, 천국 시민권자답게, 멋지고 의미 있고 보람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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