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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04 04 - 부활을 믿는 자의 생활 이정현 목사 2021-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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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고린도전서15:58절 개역개정

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44일 고전 15:58, 부활을 믿는 자의 생활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장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부활에 관한 논문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어느 주석학자는 본 장은 바울의 모든 서신 중에서 그 아름다움과 중요성에 있어서 탁월하다. 인간의 기록 중에서 본 장의 말처럼 슬픔을 당한 만인에게 위로를 준 말은 아직 없었다고 말하였습니다. 부활은 죽음으로 인해 슬픔 중에 있는 백성들에게 큰 위로와 희망이 된다는 말입니다.

 

본 장은 부활에 관한 2대 질문과 그 해답과, 마지막 결론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1-34절의 부분으로, 12절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하느냐는 의문에 대한 대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둘째는 35-49절로, 35절의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는 의문에 대한 답변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결론은 50-58절로서 부활에 관한 회의를 풀고 죽음을 정복한 부활의 개가를 높이 부르고 있습니다.

 

오늘은 고린도전서 15장 전체를 간략히 살펴보고, 그것을 근거로 마지막 58절의 말씀을 좀 더 중점적으로 살펴봄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럼 두 가지 의문 중 첫 번째 질문부터 해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질문은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질문은 당시의 헬라사람들이 제기한 것이라고 봅니다. 헬라철학에서는 영혼의 불멸은 믿었으나, 죽은 자의 부활은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헬라사람의 경향은 세계 어디서나 찾을 수 있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영혼이 불멸한다는 것은 이해를 하였지만, 죽은 자의 부활은 좀처럼 믿으려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현대 독일신학의 중추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불트만과 그의 제자들도 죽은 자의 부활은 없다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의문에 대한 답으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역사적 사실을 들고 있습니다. 그는 부활의 목격자로서 베드로, 12사도, 5백여 형제, 야고보, 그리고 나 바울도 부활하신 주님을 목격하였다고 시간적 차례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막달라 마리아 이하 제자들이 환상을 본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5백여 명이나 일시에 환상을 보지는 못할 것입니다. 혹은 부활이 전연 사실이 아닌 조작된 사건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수백 명의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친히 목격하였다고 분명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런 산 증인들이 증거하고 있는 것을 보니까,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적 사건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인한다면, 복음 전파나 성도들의 믿음이 헛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특히 바울이 주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다고 그렇게 강력하게 전하였던 것이, 거짓 증거가 되고 말 것입니다(15). 그러면서 바울은 계속하여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으면 여전히 우리는 죄 가운데 있었을 것이고(17), 그리스도를 믿고 이미 죽은 자들도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18). 결국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소망하는 것이 현세의 삶에 국한된다면, 성도야말로 이 땅에서 가장 불쌍한 자들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19).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20).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라는 것은 계속하여 다시 살아날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가 살아나셨다면 그에게 붙어 있는 성도들도 그리스도처럼 다시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첫 사람인 아담에서 죽을 운명을 지닌 인류는 둘째 사람인 그리스도에서 부활과 영생의 생명을 부여받은 것입니다(22). 부활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일어나게 되고 전 인류는 차례대로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23). 그리고 성도가 부활하게 되면(생명의 부활로 나타나게 되면) 모든 원수는 멸망 받게 될 것이고(24-26) 그리스도께서 만유를 통치하시게 될 것입니다(27-28).

 

아무튼 이와 같은 논리로 부활이 없다고 하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바울은 부활은 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에게 접붙인 바 된 성도의 부활도 반드시 있을 것을 말하면서, 부활을 분명하게 입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의문은 부활의 몸이 어떤 것이냐라는 것입니다. 첫 번째 질문이 헬라 사상에 물든 사람들의 질문이었다면, 두 번째 질문은 당시의 애굽 사람들의 사상에서 나온 의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애굽인들은 부활을 믿었을 뿐만 아니라, 현재의 상태 그대로 부활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부활 후에도 바로는 여전히 전제 군왕이고, 거기에 노예가 있고, 궁녀가 있고, 현제의 오락을 그대로 가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오래 전에 애굽의 피라미드와 카이로 박물관을 가 본적이 있습니다. 피라미드도 애굽 왕의 무덤이지만 기타 여러 애굽 왕들의 무덤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왕들의 시신을 모신 관은 석관, 동관, 그리고 금관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왕의 무덤에는 신하들과 노예들이 같이 묻혀 있었고, 그 옆에는 크고 작은 항아리 속에 각종 곡물들이 담겨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왕이 부활한 후, 신하들의 시중을 받으며, 궁으로 가기까지 배고플 것이므로 우선 먹을 식물로 준비한 것이란 설명을 들었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이와 같은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죽어 썩은 몸이 어떻게 다시 살며, 산다면 어떤 몸으로 오느냐’(35)라는 질문이 당연했을 것입니다. 그럼 먼저 죽어 썩은 육체가 어떻게 다시 사느냐?’는 질문에 대해 사도는 썩지 않고 어떻게 다시 사느냐?’라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파종한 씨가 죽지 아니하고 어떻게 다시 살 수 있느냐고 말한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이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12:24)고 하신 말씀과 방불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바울은 씨앗을 비유로 죽은 육체가 어떻게 사느냐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만약 다시 산다면 어떤 몸으로 사느냐의 질문에 바울은, 세상에는 몸의 종류가 많다는 것을 예로 들어 설명을 합니다. 지상에는 사람의 육체, 짐승의 육체 또 새나 물고기의 육체 등이 있고, 하늘에는 하늘의 형제가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것들을 근거로 부활체가 어떠한 몸이 될 것인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썩을 것, 욕된 것, 악한 것, 즉 육의 몸으로 심고, 영광된 것, 강한 것, 곧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부활체는 그리스도의 부활체처럼 썩지 아니할 몸, 신령한 몸으로 변화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의 신령한 몸, 현세의 모든 고통 및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떠난, 영원의 세계에서 살아갈 몸이라는 것입니다. 부활의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를 따라 우리도 같은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48). 이같은 부활체는 인간의 이성으로 다 이해할 수 없는 신비이며, 영광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재와 똑같은 몸으로 부활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생각은 잘못이며 어리석은 것입니다.

결국 부활에 관한 2대 질문은 부활의 신앙을 파괴하는 양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양극은 지금도 우리의 주변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좌편에는 지성파가 있어 부활을 전적으로 불합리한 것으로 돌리고 머리로부터 부정하는 것입니다. 우편에는 몰지각파가 부활을 그대로 신봉하는 것은 좋으나, 현세와 내세의 한계점을 분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는 좌우 양파는 다같이 진정한 부활의 신앙을 흐리게 하고, 나아가 파괴하는 것입니다. 바람직한 부활관을 갖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좌우 양극을 배제하고, 본장에서 밝히고 있는 부활의 역사성을 믿고,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분명히 다시 살아나셨으며, 그분의 부활을 믿는 자는 주님 재림 시 반드시 영생의 부활로 다시 살아날 것을 믿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두 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은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으십니까? 여러분은 정말로 그리스도에게 접붙인 바 된 자로, 그리스도의 재림 시 여러분이 부활할 것을 믿으십니까?

 

이 사실을 믿는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그것을 바울은 마지막 구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우리가 부활을 믿는 신앙(죽어도 산다)을 가졌다면, 세상을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첫째, 믿음에 견고히 서서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이런 권면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많은 부분, 진리에서 떠나 좋지 못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분당 문제가 있고 성적인 문제가 있고 재판 문제가 있고 예배와 성찬 문제가 있고 은사 문제도 있었고 또한 부활신앙에 대한 잘못된 견해도 있었던 것입니다. 특히 기독교인의 핵심 교리인 부활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기 때문에, 이런 권면이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믿음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교회 때문에 시험에 들었다, 목사님 때문에 시험에 들었다, 헌금 때문에, 사람들의 말 때문에 시험 들었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충성 헌신 봉사해도 칭찬도 없고 댓가도 없다며 낙심해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열심히 기도하지만 하나님의 응답이 속히 없을 때 믿음이 흔들립니다. 정말로 살려고 발버둥치지만 도리어 삶이 더 힘들어지고 물질의 문제 등이 더 악화될 때 믿음이 흔들립니다. 일은 자기가 열심히 충성을 다하는데, 그 공로는 다른 사람이 차지하는 것 때문에 시험에 들고 믿음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상대편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니까 시험에 들고 믿음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우리의 믿음과 마음이 흔들리는 것은, 마귀가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우리를 흔들어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믿음이 흔들리고 마음이 흔들리고, 감사가 없고 불평불만이 생긴다면, 더러운 마귀가 나의 믿음을 흔드는 것으로 얼른 눈치채고, 말씀과 기도로 물리쳐야 합니다. 이렇게 마귀는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게 하고, 성도들 원망하게 하고, 목사님 원망하게 하고, 교회 원망하게 하고, 결국 예수 믿는 믿음까지 까먹게 하여, 우리를 타락시키기 위하여 온갖 계략과 작전으로 우리를 공격해옵니다. 이 때는 마귀의 교묘한 계략인 줄 알고, 마귀를 물리쳐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항상 주님을 믿는 믿음 안에 견고히 서서,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늘의 상급과 이 땅에서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부활신앙을 가진자의 삶입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나의 부활을 믿는자는 이런 유혹과 시련에 흔들리지 말고 믿음에 견고하게 서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는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더욱 힘써야 할 일은 주의 일입니다. 우리가 더욱 힘써야 할 주의 일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주일에 온 성도가 함께 모여서,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것이 주의 일입니다. 예배드리는 시간과 장소를 기억하고 잘 준비하여 하나님께 열정적으로 예배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주의 일입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것도 주의 일입니다. 마음을 토해 놓고 하나님께 그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우리가 힘써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주의 일인 것입니다.

 

전도하는 일, 복음을 열정적으로 전하는 것도 주님의 일입니다. 건강할 때, 여건이 허락할 때 더욱더 힘써서 복음전파 하는 주의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전도는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5:7에서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전도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을 주심으로 우리를 기쁘게 해주십니다. 내가 전도하여 주님의 일을 하면 주님은 내 일을 대신하여 해 주십니다.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힘써 전도하여,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전도의 씨를 뿌리면, 반드시 전도의 열매를 맺습니다.

 

20053월에 미국 애틀란타에서 있었던 한 사건을 소개하겠습니다. 법원에서 성폭행, 마약소지, 납치혐의로 제판을 받던 죄수 브라이언 니콜스라는 사람이 보안관의 권총을 빼앗아서 판사를 죽이고 그리고 네 사람을 더 죽이고 도망쳤습니다. 이 흉악범이 어느 아파트의 주차장에 숨어 있다가 한 젊은 여성을 인질로 잡아서 그녀의 집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에게 인질로 붙잡던 젊은 싱글맘은 애슐리 스미스였습니다.

 

그녀는 3년 전에, 우연한 싸움에 휘말려 남편이 살해되는 장면을 목격한 사람으로 마음의 상처가 큰 여성이었습니다. 그런데다가 이번에 총기 살인범의 인질로 붙잡힌 것입니다. 그 때 에슐리 스미스의 나이는 26살이었고 어린 딸 아이가 하나 있었습니다. 이때는 다행이 딸을 친정집에 맡겨놓고 식당에서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딸에게는 이 광경을 보여주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범죄자는 전 애인으로부터 강간죄로 피소당한 데 대한 분노가 컸고, 세상에 대한 원망과 살기가 가득했습니다.

 

한편 십대 때부터 절도, 음주운전, 과속, 폭행에 연루되었고, 남편의 죽음과 마약 중독 등 삶의 나락으로 추락한 경험이 있는 애슐리는, 두려움 속에서도 납치범과의 만남 역시, 하나님의 목적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녀는 우연히 선물로 받았던,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책을 매일 읽으며, 자신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깨달아가는 중이었습니다.

 

에슐리는 자신의 슬픈 가족사와 실패와 상처로 점철된 자신의 삶, 그 와중에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를 니콜스에게 들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책의 일부를 읽어 주기도 했습니다. 또한 용기를 내어 납치범에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에슐리 스미스는 침착하게 예수님의 죽음과 다시 살아나심을 진지하게 전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에슐리는 니콜스에게,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며, 당신이 감옥에 가면 그 감옥에서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하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하면서 자수를 권하였습니다. 다음날 아침 아침을 먹으면서 에슐리는 다시 한번 더 하나님이 당신을 이 세상에 보내신 이유를 설명하고, 당신이 해야 될 사명을 가르쳐 주었더니, 이 범인이 감동을 받고, “당신은 하나님이 나에게 보내주신 천사라고 말했답니다. 에슐리가 딸과의 약속이 있어서 나가야 한다고 하니까, 납치범은 그녀를 순순히 놓아 주었습니다. 애슐리는 7시간 만에 풀려나서 경찰에 신고했고, 니콜스는 하얀 수건을 흔들며 경찰에 투항을 했습니다.

 

흉악한 살인범에게 인질로 잡혀서 두려움과 죽음의 공포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슐리는 그 범죄자에게 복음을 전하였고, 그 살인범은 그 복음을 받아 드리고, 자수를 하였습니다. 아마도 그 범죄자는 감옥에 있으면서, ‘당신의 사명은 감옥에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하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말을 늘 가슴에 세기며 평생을 살았을 것이라고 봅니다.

 

이 사건이 있었을 때 그 당시 많은 언론들이 에슐리를 영웅이다, 챔피언이다, 천사다라는 말로 찬사를 했고 보상금도 많이 받았고, 출판 제의와 영화 제의까지 받는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그녀의 이 이야기는 책으로 나왔고, 영화 인질”(Captive)이라는 제목으로 나와서 상영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녀는 인질의 상황속에서도 복음을 전하였고, 또한 전도의 좋은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그녀를 위한 하나님의 목적이며, 그녀가 해야 할 하나님의 일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이 전도뿐만 아니라, 봉사하고 구제하는 일도 주의 일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마음으로 이웃을 섬기는 것입니다. 구제와 봉사는 하나님의 마음이 가 계시는 곳에, 내 마음도 가 있는 것입니다. 고와와 과부들, 어렵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 사회적으로 소외를 받고 있는 사람들, 노숙자들, 녹거 노인들, 혼자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들, 병들어 고통 중에 신음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마음이 가 있기 때문에, 그런 자들에게 우리의 마음이 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회적 약자들을 섬기고 봉사하고 구제하는 일이 바로 주님의 일인 것입니다. 물론 교사, 찬양대원, 재정부원, 차량봉사, 식당봉사, 예배당 청소, 새가족부원들의 일도 다 하나님의 일입니다.

 

소망교회 성도 여러분들은,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했다 안했다 하지 말고 항상 힘써야 되고, 이전보다 더욱더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주의 일은 직장 다니고 학교 다니는 일보다 더 철저히 해야 합니다. 직장이나 학교를 다니면서 힘들다고 안 다니면 되겠습니까? 그 이상으로 철저히 주의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등록한 사람보고, ‘이제 주의 일 좀 하시지요라고 했더니, ‘목사님 저는요 지난번 교회에서 교사도 했고요, 찬양대원도 했고요, 구역장도 했고요, 여전도회 회장도 했는데요, 이제 너무 힘들어서 좀 쉬려고 왔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주의 일에는 항상 힘쓰고, 과거보다 지금 더욱더 힘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죽도록 충성하라고 하셨는데, 이 말은 죽을 때까지, 죽을 힘을 다해 충성하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부활을 확실히 믿는 성도로서 이렇게 산다면, 즉 어떤 유혹과 시련 앞에서도 견실하며 흔들리지 않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된다면, 우리가 주 안에서 수고하는 이 모든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은 것입니다. ‘헛되지 않는다는 말은 거기에 따른 결과가 반드시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그리스도인들의 수고에 대한 보증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유혹과 환란 앞에서도 믿음에 흔들리지 않고,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린다면, 그런 자에게 하나님이 은혜와 사랑을 주시는 것입니다. 새벽과 저녁으로 모여서 기도하기를 더욱더 힘쓰면 기동응답의 결과를 주시는 것입니다. 주어진 환경과 여건 속에서 최선을 다해 전도한다면, 하나님이 전도의 열매를 주실 것이고 하늘의 상급으로 채워 주십니다. 봉사하고 구제하면, 하나님이 더 많이 선행을 하도록 건강과 물질의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주 안에서 수고하는 것은, 결코 헛된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은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고전 3:14). 주님이 친히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22:12)고 말씀하셨습니다.

 

저 세상과 이 세상 사이에 끼어 있는 우리, 하나님 나라의 미래와 현재 사이에 끼어 있는 성도들은, 이 땅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더 힘쓰며 살아야 합니다. 그 모든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으며, 수고한 대로 주께서 넉넉히 갚아 주실 것입니다.

 

 

 

 

 

 

찬송/ 주 하나님 독생자 예수

 

기도제목/ 부활을 믿는 자로서, 세상 유혹에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님의 일에 힘쓰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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