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목사설교

  • 홈 >
  • 예배 · 설교 >
  • 이정현목사설교
이정현목사설교
2022 06 05 성령님의 은사들(2) 이정현 목사 2022-06-05
  • 추천 0
  • 댓글 0
  • 조회 541

http://www.isomang.net/bbs/bbsView/13/6096271

[성경본문] 고린도전서12:9-10절 개역개정

9.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0.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제공: 대한성서공회

고전 12:9-10, 성령님의 은사들(2)

 

지난번 시간에는 성령의 은사란 무엇인가, 누가 은사를 주시는가, 성령님이 은사를 주시는 목적은 무엇인가, 그리고 성령님의 은사 두 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 나오는 성령님의 9가지 은사 중, 지난번 시간에는 두 가지,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이어서 시간이 되는대로, 나머지 은사들을 차례로 살펴봄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9절에 믿음과 병 고치는 은사가 나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9). 우리가 믿음을 말하면, 대부분 구원을 얻는 믿음을 말한다고 봅니다. 바울은 구원에 이르는 믿음도, 하나님에게서 나온 은혜의 선물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바울이 여기서 말하는 은사로서의 믿음은, 구원 얻는 믿음과 다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카슨도 믿음의 은사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의 은사는 하나님이 주신 능력으로, 곧 여러분이 실제로 믿지 않는 것을 믿고, 성경에 약속되지 않은 어떤 복에 대해 하나님을 신뢰 하는 능력으로 나타난다,” 제임스 던이라는 신학자는 때때로 특별히 곤경이나 도전적인 상황 속에 처한 사람 속에서 생겨나고 그에게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행하실 것이라는 각별한 확신과 보증을 주는 신비로운 신뢰의 감동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두 분 신학자들의 말을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은, 믿음이 하나님이 주시는 특별한 능력이라는 점과, 하나님께 그 일을 행하실 것이라는 각별한 확신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환경 속에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무엇인가 하실 것이라는 분명한 확신을 갖는 것, 그것이 곧 믿음의 은사라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1:23-24에서 주님이, 이 믿음을 기도와 결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주님이 너무 긍정적이고, 확신에 찬 믿음의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이 산이 들리어 바다에 전져지라고 하고, 그 말한 것이 이루어질 줄 믿으면 그대로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면, 그대로 된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산을 옮길 만한 믿음, 곧 믿음의 은사를 말합니다. 기도도 마찬가지로 이런 믿음으로 기도하면, 무엇을 기도하든지 그대로 된다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믿음의 기도는 응답이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브리스톨에서 사역을 하신 죠지 뮬러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수 많은 고아원생들을 먹이고 입히고 교육을 하면서, 한 번도 유지들을 찾아가서 도움을 구하지 않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오로지 기도하여, 하나님의 응답으로 모든 필요를 채웠다고 합니다. 그가 하루는 아침에 식사 기도를 하기 위하여 식당에 갔는데, 그날도 빈 접시만 놓고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더랍니다. 뮬러는 오늘도 양식이 떨어져서 아이들이 먹을 것이 없구나’-이런 생각을 가지고, 식탁 앞에 앉아서 빈 접시를 놓고 식사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루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아침을 먹어야 하는데, 아이들이 먹을 양식이 없습니다. 이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 기도가 끝나자 마자, 누가 식당의 문을 두드리며 들어와서, 고아원 아이들에게 주라며, 빵 한 트럭과 우유 한 트럭을 내려놓고 가더랍니다. 죠지 뮬려는 빈 접시만을 바라보며 기도한 것이 아니라, 전능자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믿음으로 간구한 것입니다. 뮬러에게 이런 일은 다반사였다고 합니다. 그런 위기의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전능성을 굳게 믿는 믿음으로, 간구하여 응답을 받은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도 이런 믿음의 은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입니다. 이 은사는 의료기술을 배워서 사람의 약함과 병을 치료하는 의사와 다른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님의 은사로 인하여 연약한 자가 일어나고 병든 자가 낫게되는 것을 말합니다. 의술로 사람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능력으로 치유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 병 고치는 은사는 앞에서 말한 믿음의 은사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이 사실을 인정합니다. 야고보는 야고보서 5:15에서,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가, 믿음의 기도를 할 때, 주께서 그 연약한 자를 일으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과 기도와 병 고치는 일은, 서로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병고치는 사역을 많이 하셨지만, 그의 제자들도 다양한 방식으로 성령의 은사를 따라서, 이 사역을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4:30에 그 대표적인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4:30). 빌기를 다하매, 그대로 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 병 고치는 은사는 여기에서 뿐만아니라, 본 장 뒷부분에 가서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전 12:28-31입니다. “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29 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자이겠느냐 다 교사이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이겠느냐 30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이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이겠느냐 31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여기에서도 분명히 병 고치는 은사를 말씀하시고, 이 병 고치는 은사(healings)는 항상 복수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단순히 육적인 병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병도 치유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내 몸의 병뿐만 아니라, 귀신들림이나 정신병까지도 치유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일반 의사들은, 환자를 치료해 줌으로 자기가 치료자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병 고치는 성령의 은사를 가진 사람은, 결코 자기가 치료자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주께서 그 사람을 치료하는 것이므로, 단지 은사자는 주님께 쓰임 받는 도구일 뿐인 것입니다. 은사자는 성령의 나타내심에, 쓰임 받는 인격적인 도구라는 것입니다.

 

옛날 우리나라에서 신유의 은사, 즉 병 고치는 은사가 강하게 나타나셨던 분이 현신애 권사님이셨습니다. 대구지역에서 주로 집회를 많이 하셨는데, 수많은 각색 환자들이 모여들어서 집회를 통하여 병 고침을 받았습니다. 나은 사람들의 간증집도 많이 있었습니다. 저의 어머니도 40대 중반에 심장이 좋지 않으셔서, 병원도 많이 다니셨지만 낫지를 않았는데, 그 집회에 참석을 하셨습니다. 겨울인데 1달 동안 대구 고모집에 기거하시면서, 현신애 권사님의 집회에 참석하셨는 데, 그 때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인지, 중학교 1학년 때였는데, 대구 고모집에서 엄마와 함께 며칠 동안 지냈습니다. 엄마가 새벽마다 일어나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무엇인가 기도를 하셨습니다. 하루는 엄마가 제 머리맡에서 작은 소리로 울면서 기도를 하셨는데, 제 얼굴에 눈물이 떨어지는 것 때문에, 제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깨니까 엄마가 꼭 안아주시면서 더 자라고 하시던 것이 기억에 납니다. 아무튼 엄마는 새벽에 기도하시고 아침에 집회에 참석하시고 그러시다가 큰 은혜를 받고 조금 건강하게 사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저의 엄마는 이 정도였지만, 그 당시 실제로 건강하게 되어서,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렸던 사람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현신애 권사는 분명 병 고치는 은사를 받은 사람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으로서는 조용기 목사님이 병 고치는 은사를 받은 자라고 생각합니다. 오산리기도원 집회를 통해서, 그리고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예배 시간을 통하여, 공공연히 치유를 선포하면, 그 자리에서 병나은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처럼 9절에서는 믿음과 병 고치는 은사를 말하고, 10절에서는 5가지 은사를 더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10).

 

능력 행함의 은사는, 어떤 사람이 일반적인 행위를 넘어서는, 능력을 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이것은 믿음과 병 고치는 은사와 같은 범주의 은사라고 합니다. 피터 와그너라는 사람은, 이 은사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습니다. “이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 자연의 법칙을 초월한 기적적인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도록 해,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게 하는 능력이다.”

칼빈은 이 은사가 병 고치는 은사와 구별을 하여, ‘능력 행함은 귀신들린 자들과 위선자들에게 행하는 능력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사도들이 성령의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들을 쫓아냈던 일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그 자리에서 엎드려 죽게 하였던 능력의 행위도 있었습니다(5:1). 바울은 박수 엘루마를 소경으로 만든 일도 있었습니다(13:11). 이런 역사들을 일컬어, 능력 행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사탄을 파괴하는 능력 있는 행위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칼빈이 말하는 것처럼, 능력 행함을 병 고치는 은사와, 완전히 별개의 것으로 구별하기도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음에 나오는 은사는 예언함입니다. 이 은사는 주로 선지자직과 관련된 성령의 은사입니다. 헬라어의 이 단어(프로페테이아), ‘미리 경고하다’, ‘다른 사람을 위하여 말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이루어질 일에 대한, 하나님이 계시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은사를 말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예언함의 은사는, 단순히 미래를 예측하는 행위만을 뜻하지 않고, 하나님의 감추어진 계시의 내용과 뜻을, 명확하게 이해하여 선포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사람의 미래에 대한 것 뿐만아니라,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잘 깨달아,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분명히 담대히 선포하고 가르치는 것도 포함이 된다는 것입니다(고전 2:6-16). 바울이 다른 은사들보다, 예언의 은사를 더 사모하라고 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광의적인 의미로 이 예언함의 은사는,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의 은사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왜냐하면 말씀의 의미를 잘 이해하고 깨닫고 은혜를 받아야, 그것을 효과적으로 전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잘 알고, 그것을 통한 인간과 삼라만상을 이해하여 말씀을 전하게 되면, 그 메시지가 얼마나 폭넓고 깊이 있는 메시지가 되겠습니까? 그래서 예언함과 지혜와 지식의 말씀의 은사는 서로 연관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14:1에서는,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는 말씀도 나타납니다. 고린도교회는 방언의 은사가 많았었는데, 거기에 머추지 말고, 더 신령한 은사인 예언을 사모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은사의 목적은, 권면 위로의 말로 교회의 덕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고전 14:3). 이 은사를 통하여 덕을 세워야 하고 남들을 위로하고 권면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이 은사를 받은 사람이 조심해야 할 사항도 있습니다. 이 예언함의 은사를 성경과 동등하게 여기거나, 성경보다 더 높은 권위를 두어 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예언도 성경에 비추어 검증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범위를 넘어서는 예언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은사는 영 분별의 은사입니다. 여기서 분별하다는 말은 구별하다’, ‘가려내다’, ‘심판하다는 의미의 단어입니다. 따라서 영 분별의 은사는 어떤 현상이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온 것인지, 아니면 귀신으로부터 온 것인지를 분별하여 가려내는 능력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혹자는 성령의 능력을 따라 행하고 있는지 아니면 모조적인 능력에 따라서 행하는지를 분별할 수 있는 은사를 말한다고 합니다.

 

초대교회에서는 교회의 순결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이 은사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입니다. 요한일서 4: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영이 하나님께 속하였는지를 분별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8장 하반부의 말씀에 보면, 베드로가 안수할 때 성령이 임한 것을 보고, 시몬이라는 사람이 그것을 돈으로 살 줄로 생각하여 내가 돈을 줄터이니 나에게도 이런 권능을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악령이 그에게 역사한다는 사실을 알고,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고, 악독이 가득하여 불의 매인 바 되었다고 책망하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시몬의 영은 지금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를 잘 분별하여, 회개를 촉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사랑하셔서 이런 은사자를 주심으로 교회를 보호하시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과거에도 현재도 마찬가지이고, 미래에는 영적으로 더 혼란함으로 이런 은사가 반드시 있어야, 교란하는 악한 영들의 미혹에서부터 교회를 보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게 참 가르침인가 아니면 거짓 가르침인가? 이것이 주님의 활동인가 아니면 마귀의 활동인가? 교회를 미혹의 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현대에도 반드시 영 분별의 은사는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나타나는 은사는 방언방언 통역하는 은사입니다. 앞에서 말한 5가지 은사, 즉 믿음, 병 고치는 것, 능력 행함, 예언함, 영 분별하는 것은, 모두 능력과 관계된 은사 그룹이라고 말할 수 있는 반면에, 이제 마지막으로 언급된 두 가지 은사는, 모두 말(언어)과 관계된 은사입니다.

 

방언의 은사에 대하여는 논란이 많습니다. 그러나 간단히 정리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본문과 기타 다른 성경에 근거하여 본다면, 방언을 1)천사의 말로서의 방언, 2)외국어로서의 방언, 3)황홀경 속에서의 영적 언어로서의 방언이 있다고 봅니다. 혹자는 1번과 3, 즉 천사의 말과 영적 언어로서의 방언을 같은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성경의 방언은 둘로 나뉘어집니다. 외국어로서의 방언이냐, 아니면 신령한 언어로서의 방언이냐?

 

외국어로서의 방언은 성경에 한 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순절에 요엘 선지자의 예언의 성취로 이루어진 성령이 임재하셨을 때 나타났던 방언의 은사입니다. 사도행전 2:7-8에 이렇게 말합니다. “7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8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여기에 나타난 방언은 적어도 16개국의 난 곳 방언으로서, 외국어였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자기네 민족의 언어로 복음을 듣게 되었던 것입니다. 자기네 나라말로 복음을 들으니, 통역할 필요가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를 비롯한 다른 곳에서 나타나는 방언은, 전부 신령한 언어로서의 방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와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영적 언어로서, 방언을 하는자도 알 수 없는 활홀경 속에서 이루어지는 교제의 수단인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 입장에서 해석할 수 있는, 언어적 구조를 갖추지 못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혹자는 이를 무아지경의 언어’, 또는 천상의 언어라고도 표현합니다.

 

지금도 이 방언의 은사는 계속된다고 봅니다. 고전 14:39-40,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40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바울 자신도 남들보다 방언을 더 말한다고(고전 14:18) 하였습니다. 이 은사가 주어지면 하나님과 신령한 언어로 깊고 오랫동안 교제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방언 통역의 은사가 나옵니다. 여기의 통역(헤르메스)이라는 단어는 그리스의 신화 헤르메스 신에게서 나온 단어입니다. 이는 전령의 신인데, 여기서 통역, 번역, 해석이라는 단어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이 단어는 고린도전서에서만 딱 두 번 사용이 되었습니다(고전12:10, 14:26).

 

앞에서 잠깐 언급을 했지만, 사도행전 2장에 나온 방언은 난곳 방언으로 들렸기 때문에, 통역이 전혀 필요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통역이 필요했다는 것은, 난곳 방언과 다른 방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 2장을 제외한 다른 모든 방언은 결국 외국어 방언이 아닌 신령한 언어로서의 방언이며, 이런 방언에는 통역이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결론

 

번호 은사의 종류 의미

 

1 믿음 구원 얻는 믿음과 다른 하나님의 능력을 확실히 신뢰하는 것

2 병 고침 영육적으로 병든 자를 성령님의 능력으로 치유하는 은사

3 능력 행함 기적을 행하는 대단한 능력, 영적 존재를 제압할 수 있는 능력

4 예언함 장래를 미리 말하는 것+계시된 진리를 효과적으로 들어내 보이는 은사

5 영 분별함 하나님의 역사인가 귀신의 역사인가를 분별할 수 있는 은사

 

6 방언 외국어가 아닌 신령한 언어로서의 방언

7 방언 통역 신령한 언어이므로 공적인 일에는 통역이 필요하다.

 

 

받은 은사를 더 열심히 사용하여, 열매를 맺음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내가 주의 몸된 교회를 섬기는데 있어서 가장 필요한 은사가 이것인데, 이 은사를 사모하오니, 허락하여 주셔서, 이 은사를 따라 교회에 충성함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추천

댓글 0

자유게시판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2022 06 12 히스기야의 예배회복 운영자 2022.06.12 0 680
다음글 2022 05 29 성령님이 주시는 은사 운영자 2022.05.29 0 6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