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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4 21 박해속에서도 계속되는 복음 전파 이정현 목사 2024-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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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사도행전8:1-40절 개역개정

1.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2.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3.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5.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6.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7.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8.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9. 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

10.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따르며 이르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

11. 오랫동안 그 마술에 놀랐으므로 그들이 따르더니

12.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그들이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13.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14.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15. 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16.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더라

17.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18.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19. 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20.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21.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22.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23.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

24.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않게 하소서 하니라

25. 두 사도가 주의 말씀을 증언하여 말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갈새 사마리아인의 여러 마을에서 복음을 전하니라

26.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27.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28. 돌아가는데 수레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29.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30.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냐

31. 대답하되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 하고 빌립을 청하여 수레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32. 읽는 성경 구절은 이것이니 일렀으되 그가 도살자에게로 가는 양과 같이 끌려갔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이 조용함과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33. 그가 굴욕을 당했을 때 공정한 재판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그의 세대를 말하리요 그의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하였거늘

34. 그 내시가 빌립에게 말하되 청컨대 내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냐 자기를 가리킴이냐 타인을 가리킴이냐

35.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36.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그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

37. (없음)

38. 이에 명하여 수레를 멈추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베풀고

39. 둘이 물에서 올라올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지라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40.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4421일 사도행전 8:1-40 핍박 속에서도 계속되는 복음 전파

 

사도행전 7장의 내용은 굉장히 길지만 두 개의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스데반의 설교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순교하는 장면입니다. 초대교회의 일곱 집사 중 한 명이었던 스데반은 공회원들 앞에서 유명한 설교 한 편을 하고 죽게 됩니다.

 

그는 성령에 충만하고 은혜와 믿음이 충만했으며 많은 표적과 기사를 행하였던 인물입니다. 초대교회에서 아주 귀한 분이며 앞으로 더 많은 일을 해야 할 사람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그는 공회원들의 분노 앞에 순교의 제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교회는 평신도 그룹에서 가장 귀한 한 인물을 잃어버렸는지 모릅니다.

 

오늘 본문인 8장에서는 스데반의 순교 이후 교회는 더 심한 핍박을 받게 되지만 그 가운데서도 복음이 사마리아까지 전파가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환란과 핍박 중에도 복음이 인근 지역에 널리 널리 전파되는 모습을 중점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스데반의 순교는 외부적으로 볼 때, 교회 부흥이 아니라 오히려 나쁜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교회에 핍박이 일어나자 교인들이 흩어지기 시작합니다. 1절에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스데반의 순교와 맞물려 사울이라는 사람의 이름이 거론됩니다. 스데반이 순교하는 자리를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던 사울입니다. 6장에서도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그는 유대에 일어난 핍박의 주동자가 되는 것 같습니다. 교회 핍박에 특심한 자가 바울이었습니다. 이는 3절의 말씀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그가 교회를 잔멸하려고 했다는 말은 예수 믿는 사람들의 씨를 말려 버리겠다는 의미입니다. 이 말은 들 돼지들이 포도원을 파괴할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80:13). 다시는 포도밭을 사용할 수 없도록 짓밟아 버리는 것입니다. 그는 그 당시의 지성인이고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율법의 이론자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는 무식한 박해자가 아니라 논리적이며 이지적인 박해자입니다. 이런 사람이 훨씬 무서운 박해자인 것입니다. 조직적이고 이론적으로 무장된 사람들의 박해는 그렇지 못한 자의 박해보다 훨씬 무서운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사도행전에 나타난 지금까지의 박해를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은 비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들을 어떻게, 어느 정도 핍박하고 있는지를 알게 합니다. 먼저 사도행전 213절에는 오순절 날에 예루살렘에 찾아온 사람들 중에 사도들의 성령 충만한 사건을 술 취한 것으로 조롱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는 성령의 역사를 농담으로 여겼다는 말로 그리스도인들을 하대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4:1-22에서는 사도들을 옥에 가두어서 위협함으로 박해했습니다. 이 때의 박해는 유대 지도자들의 비공식적인 결정으로 교회를 박해한 것입니다. 사도들만 핍박하는 은밀한 박해였습니다. 그리고 박해하는 가해자들은 주로 유대 종교 지도자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4:1, 6). 다음은 사도행전 5:17-42에 기록된 것으로 여기서는 공적인 박해가 시작이 됩니다. 27절에 사두개인들의 시기심이 가득했다고 나오고 40절에 가서는 그들을 채찍질합니다. 공개적으로 채찍질을 하고 있었지만 그러나 이런 핍박이 아직 전 기독교인에게 확산되지는 않았습니다. 이 때에도 역시 교회 지도자들이 주로 고난을 받았음을 볼 수 있습니다. 네 번째는 사도행전 7장과 8장 초반부에 나타납니다. 스데반의 설교 이후에는 노골적인 핍박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종교적으로 핍박을 했습니다. 유대 평신도들이 기독교도들을 핍박했던 것입니다. 대중적으로 핍박하고자 하는 적의가 퍼져 나감과 동시에 산헤드린 공회에서 기독교를 공식적으로 이단으로 정죄하고 핍박하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본문 이후의 핍박은 사도행전 12:1-24에 나타나는 정치적인 핍박입니다. 노골적으로 체계적으로 정치적인 권력을 이용하여 사람을 죽이는 데까지 이르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앞뒤에 배치된 핍박과 환란도 마찬가지이지만 본문의 스데반의 죽음 이후에 당하게 되는 핍박도 결국 복음 때문에 당하는 고난입니다. 복음 때문에, 그리스도 때문에, 진리 때문에, 교회 때문에 당하는 핍박이었습니다. 그리고 핍박과 환란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잔인해지고 조직적이며 전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초대교회는 복음을 전하다가 이처럼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외치고 가르치다가 핍박을 받았습니다. 진리를 말하다가 수모를 당하였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다라는 신앙을 지키다가 매 맞고 재산을 빼앗기고 쫓겨나고 감옥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핍박으로 인하여 흩어지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 흩어지는 역사는 결국 복음의 확산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핍박을 받아 흩어지면서 가슴에 복음을 안고 가게 되었습니다. 핍박을 통하여 흩어짐의 역사가 나타남으로 오히려 복음이 더 힘차게 증거 되었습니다.

 

4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복음이 예루살렘을 넘어 이제 사마리아 지방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박해를 통해 오히려 복음의 생명력이 더 강하게 일어남을 볼 수 있고 또한 복음의 생명력이 점차 유대주의를 극복해 나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대에 국한되지 않고 이제는 그 울타리를 넘어 사마리아 지역까지 가게 됩니다.

 

빌립이 사마리아 지역으로 내려가서 그리스도를 백성들에게 전하였습니다. 빌립이 전파했던 내용의 주제는 그리스도입니다. 그 설교와 표적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음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적 문제뿐만 아니라 육적인 문제도 해결 받았다는 말입니다. 결국 빌립에 의해 사마리아에도 기쁨을 주는 것입니다. 마귀에게 사로잡혀 어두움과 시기와 분노와 다툼만 있었던 지역과 사회를 변화시켜 기쁨이 넘치는 성이 되게 하였습니다.

 

여기 사마리아에서의 전도 역사 속에는 성령의 역사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악령의 역사도 함께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마리아 교회의 설립은 복음의 확장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그러나 누가는 본문에서 새롭게 세워지는 사마리아 교회에도 역시 마귀의 역사가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 사건이 바로 마술사 시몬의 사건입니다. 마귀는 항상 하나님의 교회에 자기 사람들을 심어놓는 것 같습니다. , 하나님의 교회 안에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지 않는 불신자가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탄의 전략 가운데 가장 무서운 전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를 누가가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술사 시몬이라는 사람인데 누가는 이를 가리켜 예전부터 있었던 마술사이며 자화자찬하는 교만한 자이며 많은 사람이 그를 추종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빌립에 의해 세례를 받게 됩니다. 세례라는 것은 구원받았다는 외적인 표이기 때문에 반드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한 구원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에게 세례를 주는 것이지 이 세례를 통하여 구원을 받으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런데 여기에 나타난 시몬은 진정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세례를 받았다는 말입니다. 마술사 시몬이 세례를 받은 것은 그가 예수를 믿지 않으면서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의 신앙적인 오염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왜 누가가 사도행전을 기록할 때에 시몬이라는 별 중요하지 않는 사람의 사건을 기록했을까요? 누가가 이 사건을 기록한 의도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교회가 부흥하고 있는 곳에는 항상 적군들의 침투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함입니다. 교회 안에는 항상 이런 오염된 가짜 그리스도인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호사다마라고 했습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때 마귀가 틈탄다는 말입니다. 부흥하는 교회 안에 이같이 가라지가 역사한다는 말입니다.

 

빌립만 사마리아에 있을 때에는 시몬의 정체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사도들(베드로와 요한)이 내려와서 사마리아 교회의 영적인 상황을 살펴볼 때까지 사마리아 교회는 가면을 쓴 시몬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베드로가 시몬의 정체를 발견하고 회개를 외치는 것을 통해 사마리아 교회를 새롭게 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18-19절에 나오는 시몬의 행위에서 성직 매매’(simony)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베드로를 자기와 같은 마술사라고 착각한 나머지 충분한 돈만 주면 그의 술법을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돈으로 달랠 하나님이 아니고 또 달랠 수도 없으며 돈으로 직분을 살 수도 없고 은사를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베드로에 의해 시몬의 거짓은 탄로가 나고 말았습니다. ‘너는 악독이 가득하여 불의에 매인 바가 되었다고 말하며 회개할 것을 촉구하셨습니다. 빌립만 있었다면 드러나지도 않았을 사실이 사도 베드로에 의해 악한 것이 드러남으로 교회가 진리 가운데 바르게 세워져 감을 엿볼 수 있습니다. 위선적인 신자, 가라지가 뽑히게 된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여기까지가 세상을 향한 복음 행진의 두 번째 정거장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이 온 유대를 거쳐서 사마리아 지방까지 온 것입니다. 이제 다음 구절부터는 복음이 세상 끝까지 퍼져 나가는 세 번째 단계로 접어들게 됩니다. ‘너희가 성령을 받으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복음이 전파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마리아에서의 선교 이야기가 일단락되고 26절 말씀 이하에서는 새로운 선교 활동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이 됩니다. 빌립이 성령의 지시를 받아 광야에서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한 사실입니다. 이것은 초대교회 선교 활동의 새로운 국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국경을 넘는 전도 활동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초자연적 능력이 가시적으로 개입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도 삽입, LAB 주석 210p.

 

빌립은 누구의 지시를 받아서 전도 길을 떠납니까? 빌립은 주의 사자의 지시를 받았는데, 이때의 주의 사자는 성령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빌립에게 지시하는 자가 주의 사자에서(26) ‘성령으로(29) 바뀌어 언급이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26절은 빌립에게 가시적으로 천사가 나타났으나 본 절은 음성이나 영감을 통해 명령이 주어졌기에 누가가 성령이란 표현을 사용했을 것으로 봅니다. 다음은, 구약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현현(顯現)주의 사자가 나타난 것으로 표현을 했습니다. 이는 사람이 하나님을 대면하면 죽는다는 유대인들의 사상에 의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빌립에게 내려가라고 지시한 사자나 본문의 성령은 동일한 분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입니다. 빌립은 자기 마음대로 전도지를 결정한 것이 아니고 성령의 지시를 받아 전도하러 가는 것입니다.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26). 예루살렘에서 가사까지의 거리는 약 70km 정도이고 애굽으로 내려가는 도중의 중요한 길목이라고 합니다.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가는 길은 보통 두 개가 있었습니다. 북쪽 길은 해안을 타고 내려가는 길이고 서쪽 길은 헤브론을 통해 내려가는 사막 길인데 아마도 빌립이 이용한 길이라고 생각됩니다. 아무튼 지금 빌립은 사마리아에 있기 때문에 사마리아에서 가사까지가 더 험난하고 멀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이 멀고 험한 길을 성령의 명령과 인도를 받아 가는 것입니다.

 

그곳에 도착해 보니 에디오피아 여왕의 종이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에디오피아는 구스, 누비아로 알려진 나라인데 지금의 남부 이집트와 북부 수단에 해당하는 지역을 말합니다. 그리고 여기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27)라는 말에서 내시’(유노코스)는 문자적인 내시인지 아니면 궁중의 일을 맡은 고관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만약 문자적 의미의 내시라면 신명기 23:1에 거세된 자들은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올 수 없음으로 예배 참여에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문자적인 내시로 보기보다는 에디오피아의 재무를 담당했던 고관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합당할 것입니다.

 

그 내시가 읽고 있었던 성구는 이사야 53:7-8이었습니다. 빌립이 성령의 지시로 병거 가까이로 다가가서 읽는 것을 깨닫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내시가 중요한 말을 한마디 합니다.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라는 말입니다. 가르치는 자, 즉 성경 교사가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겠느냐는 말로, 성경 교사의 필요성을 제시하는 말입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빌립이 내시에게 전도를 하는 데 여기에서 잠시 이 두 사람 즉, 전도자와 전도를 받는 자를 비교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전도자 빌립은 인종적으로 헬라파 유대인인 반면 내시는 아프리카 에디오피아 인입니다. 전자는 종교적으로 유대교인이고 내시는 이방인입니다. 빌립은 직업적으로 전도인이지만 내시는 한 나라의 높은 관리였습니다. 전자는 경제적으로 가난한 자였으나 내시는 부자였습니다(병거와 마부, 두루마리 성경 보유). 빌립은 신체적으로 먼 길을 달려왔기 때문에 손발과 옷이 지저분하였을 것이나 내시는 병거 속에서 시원하게 지냈을 것입니다. 이런 엄청난 차이가 남에도 불구하고 전도자 빌립은 그에게 다가가서 복음을 담대히 전한다는 것입니다.

내시는 빌립을 마차 위로 청하고 자기가 읽고 있었던 성경을 제시하며(53:7-8의 자유로운 인용) ‘도대체 선지자가 이 말한 것은 누구를 가리키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이 질문에 빌립은 성경을 근거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게 됩니다. 중요한 말씀이 35절에 나타납니다.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그 말씀은 선지자 자신을 가리킨 것도 타인을 가리킨 것도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해석한 것입니다. 사실 이사야 53장뿐만 아니라 구약 성경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들어내는 것입니다(24:27, 44). 빌립은 이 사실을 분명히 알고 성경을 풀어 예수를 가르친 것입니다. 우리도 존 웨슬리(J. Wesley)가 말한 것처럼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주어야 합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가르치고 전파해야 합니다.

 

여기서 빌립은 집사이지만 당시 유대인으로서 성경을 잘 알고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내시에게 접근했을 때 내시가 읽고 있었던 성경을 이미 알고 있었고 그 성경을 해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기의 성경을 뒤적이며 저 본문이 어디 있지, 또는 주석을 찾아서 저게 무슨 뜻이지 이렇게 알고 해석해 주는 것이 아니라 어떤 본문이라고 할지라도 듣고 알 수 있는 능력과 그리고 그 본문을 근거로 말씀을 증거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씀이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언제 어디서든지 성경을 풀어헤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전도자는 적어도 빌립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정통해야 합니다. 빌립 집사가 이 정도였다면 우리도 그래야 하는 것입니다. 잘 준비된 말씀을 근거로 에수 그리스도를 전파해야 합니다.

 

37절은 초기의 중요한 사본에는 없음으로 되어 있으나 에라스무스(Erasmus)의 헬라어 신약성경 이후 37절은 번역 성경에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영어 성경 NASB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Philip said, ‘if you believe with all your heart, you may.’ The eunuch answered, ‘I believe that Jesus Christ is the Son of God”(그리고 빌립이 말했다. 네 마음에 믿으면 세례를 받아도 좋다. 그가 대답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 만약 복음전파와 세례 사이에 신앙고백이 분명히 있어야 한다면 이 구절이 들어가는 것이 독자들의 이해를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굳이 기록이 없다고 신앙고백 한 사실이 없었다고 볼 수는 없음으로 없음 구절을 통하여서도 다음 구절을 이해할 수 있다고 봅니다.

 

빌립의 이 같은 전도 결과로 내시는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는 고백(구원) 이후에 받는 것이므로 말씀을 듣고 예수를 개인의 구세주로 영접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의 부흥을 뒤로하고 이 광야까지 성령이 내 모신 목적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한 사람의 사모하는 영혼을 만나 구원하시기 위하여 성령께서 빌립 집사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8장 마지막 두 구절은 많은 것을 상상케 하는 말씀입니다. “39 둘이 물에서 올라올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지라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40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39-40). 내시는 기쁘게 자기 길을 갔지만 빌립은 주의 영이 이끌어 갔습니다. 그리고 아소도에 갔다 두었습니다. 가사에서 아소도(가사와 욥바의 중간위치)까지의 거리가 35km 정도인데 상당히 먼 거리를 성령님이 순간 이동시킨 것입니다. ’이끌어 간지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헤르파센)는 분명 초자연적인 일임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렇게 설명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빌립은 아소도에서도 복음을 전하였고 또한 여러 성을 다니며 전도하다가 가이사랴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빌립에 관한 기록은 성경에 나타나지 않다가 사도행전 21장에 가서야 그에 관한 마지막 기사가 나타납니다(21:8-14). 바울의 제3차 마지막 전도 여행 때에 가이사랴에 있는 빌립의 집을 방문하는 기사가 나옵니다. 그때까지도 빌립은 이곳에 머물면서 복음을 전하고 네 명의 딸을 영적으로 잘 키운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결론

 

스데반의 순교 이후 핍박으로 인하여 교인들은 사방으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핍박을 피하여 간 것이지만 이것으로 인하여 각 곳에 복음이 전파되게 되었습니다. 유대 윗 지역이며 갈릴리 아래 지역이었던 사마리아로 가서 복음을 전한 사람이 빌립입니다. 이곳에서 복음을 전했을 때 대단한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고 온 성안에 기쁨이 넘치게 되었습니다. 빌립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성령에 충만하여 이 배곧 지역에 복음을 전하여 배곧의 7만 명을 다 예수 믿게 하여 이 배곧 전역에 기쁨이 넘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것을 소망하고 이것을 위하여 기도하는 이 아침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빌립은 갑자기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서 사마리아를 뒤로하고 광야 길로 가게 됩니다. 영문도 모르고 갔지만 그곳에는 예비된 한 영혼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 정도로 사모함과 열정이 있었던 에디오피아의 높은 관원이었습니다. 그 사람을 만나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했을 때 그가 구원을 받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전설에는 그 내시가 본국으로 돌아가서 여왕에게 전도하여 여왕을 믿게 했고 여왕은 나라 전체를 기독교 국가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것을 위하여 한 사람 빌립을 하나님이 사용하신 것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잃어버린 세상에 다다르려면 평신도 전도자들이 확실히 그 열쇠이다.’ 평신도 지도자 빌립을 통하여 인종과 문화를 넘어 내시에게, 내시를 통하여 더 넓은 세상으로 복음이 확산될 수 있었습니다. 복음은 이제 예루살렘과 사마리아를 넘어 이방인지역인 아프리카 지역까지 퍼져 나가게 되었습니다.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은 사마리아 지역의 첫 선교사 빌립을 누가 인도하시고 사용하셨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주의 영이십니다. 그래서 빌립의 역사를 바라볼 때에는 항상 그와 함께 역사하셨던 성령님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명하였으며(8:26), 성령이 빌립에게 말씀하셨으며(8:29),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갔다(8:39)고 했습니다. 이 성구들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성령님은 전도자를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전도자로 부르시는 분, 전도의 강한 도전자, 전도의 인도자, 그 입에 말씀을 주시는 분이 바로 주의 사자, 즉 성령이십니다.

 

선교의 주체는 성령님이십니다. 성도는 그 분에게 겸손히 순종하며 쓰임을 받는 것뿐입니다. 이럴 때, 거기에 놀라운 구원의 결과가 있게 됩니다. 핍박 중에도 성령께서는 전도자를 통하여 복음의 역사를 계속 써 가시는 것입니다. 교회는 세상 끝까지 이 복음을 들고 나아가 전파하여야 합니다. 복음 전도는 박해를 자극하지만 박해는 복음 전도를 활성화 합니다. 박해 속에서도 복음은 사마리아 전역을 점령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천대받는 지역을 넘어 이제 문화를 넘어 복음은 아프리카까지 확장하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찬송/ 물이 바다 덮음같이

기도 제목/ 빌립처럼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복음 전파자가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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