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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6 1 <죄를 용서하시는 예수님>
이정현 목사 2025-06-01 추천 0 댓글 0 조회 49
[성경본문] 요한복음8:1-11 개역개정

1. 예수는 감람 산으로 가시니라

2.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그들을 가르치시더니

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4.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6.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7.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8.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9.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561일 요 8:1-11 죄를 용서하시는 예수님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의 칭찬을 많이 하는 편입니까 아니면 흉을 많이 보는 편입니까? 상대편의 좋은 점을 말하는 편입니까 아니면 나쁜 점을 더 말하는 편입니까? 흔히 말하기를 남이 하는 사랑은 스캔들(추문)이라고 하고 자기가 하는 사랑은 로맨스이며 소설같은 사랑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운전을 할 때도 남이 끼어들면 무례하고 운전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저렇게 돌아다닌다고 욕을 합니다. 그런데 자기가 끼어들 때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당당해 합니다. 이것이 우리네 삶의 모습이고 태도일 때가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 자기의 허물과 자기의 실수, 자기의 잘못은 정당화시키고 다른 사람의 허물과 죄를 드러내는 사람들이 예수님 시대 때에도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7장 마지막 절과 8장 첫 구절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다 각각 집으로 돌아가고 예수는 감람산으로 가시니라.’ 다 각각 집으로 돌아간 사람은 예수님을 대적하던 사람들과 성전에 모여서 말씀을 들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기도하기 위하여 평상 시 즐겨 찾던 감람산으로 가셨습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위하여 산 기도 가셨던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자기들의 쉴만한 집이 있었지만 주님은 머리 둘 곳조차 없어서 기도의 동산을 벗 삼아 산에 올라가셔서 기도하신 것입니다. 한 무리는 안식을 취하러 갔지만 주님은 하나님과 교통하는 장소로 가셨습니다.

 

이 짧은 한 구절의 말씀만 보더라도 주님은 보통 사람들과 다르게 사셨음을 알게됩니다. 아무리 바쁘게 힘들게 하루를 살았어도 그분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새벽 미명에도 기도하셨지만 이처럼 밤에도 산에서 홀로 기도하셨습니다. 다른 성경에 보면 주님은 습관을 따라 이곳에 가셨다고 했음으로(22:39) 주님은 자연스럽게 감람산이 기도의 동산이 되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기도하지 않아도 되시고 기도할 필요가 없는 분이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이렇게 늘 기도하셨습니다. 항상 기도하기를 즐겨하셨던 주님의 이 모습은 오늘 우리에게 충분한 본이 되십니다. 예수님의 이 아름다운 모습을 본받아 항상 기도에 힘쓰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이 감람산에서 밤을 지내시고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오셨습니다. 많은 백성들이 나아오자 그들을 가르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성경에는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2)고 되어 있는데 예루살렘 사람들이 다 나왔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모든 신분의 사람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 다양한 지파 사람들이 나왔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이 많이 나왔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이 그런 사람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주님의 가르침의 내용은 다양했으나 아마도 이때에도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주 사역이 바로 가르침이었고 이 날도 아침 일찍부터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심으로 그 사역을 감당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1절은 그가 감람산으로 가신 것은 기도하시기 위함이었고 2절에서 일찌기 성전으로 들어오신 것은 진리를 가르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주님의 기도하심과 가르치심은 그의 주요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이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웠습니다’(3). 서기관은 직함을 나타내는 말이고 바리새인은 출신을 의미한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서기관은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문서 작성, 기록, 해석하는 일을 했던 사람입니다. 성경과 관련해서는 성경을 필사하고 연구하여 가르쳐 주는 역할을 한 사람들입니다. 신약시대에는 서기관을 율법사라 부르기도 했습니다(22:34, 7:30). 바리새파의 지도자들 중에 상당수가 서기관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기에 기록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거의 동류급의 종교 지도자였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들은 결국 앞에서 예수를 잡아 죽이려고 했던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의 무리에 포함되어 있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 한 패거리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예수님께 선생이여 이 여자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4)라고 말합니다. 간음이라는 것은 혼자 행하는 죄가 아니기 때문에 현장 검거라면 반드시 두 사람을 데리고 와야 하는데 한 여자만 데리고 왔습니다. 남자는 보내주었는지 모르지만 가련한 여자만 붙들고 예수께로 온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사회에서 간음죄는 아주 중한 죄에 속합니다. 이스라엘의 랍비들이 가르친 교훈 중에 3가지 큰 죄가 있습니다. 첫 번째가 우상숭배이고 다음은 살인죄이고 세 번째가 간음죄입니다. 이 세 가지 죄는 증거가 분명하고 증인 몇 명만 있으면 율법에 명한 대로 단호하게 처리했습니다. 그러므로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들린 여자라면 모세의 율법대로 돌로 때려 죽여야 마땅했던 것입니다. 이런 여자를 데리고 왔는데 정중하게 모시고 왔겠습니까? 옷이라도 제대로 입혔겠습니까? 아마 머리채를 붙잡고 질질 끌고 왔을 것입니다.

 

고소자들이 예수님께 이렇게 고소하며 질문하는 것입니다. “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6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결국 종교 지도자들이 이 여인을 끌고 온 것은 이 여자의 죄를 이용하여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이 여자의 죄를 미끼로 이용하는 것입니다.

 

시험 문제로,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20:10, 22:22)고 했는데 여기에 대하여 선생님은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였습니다. 그들은 아주 교활한 질문을 한 것입니다. 만약 이 질문에 돌로 치라고 하면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고 하더니 이제는 죽이라고 하니 일관성이 없는 사람이라고 비난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함부로 사람을 죽이라고 한다고 로마법에 고소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로마 정권은 유대인들에게 사형 집행권을 허락하지 않았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이 여자를 돌로 치지 말고 보내 주라고 하면 모세의 율법을 어겼다고 종교 재판에 고발을 할 것입니다.

 

또 달리 설명하면 이 여자를 심판하라고 하면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려 오셨다는 주님의 주장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또한 이 여자를 용서해 주라고 했다면 주님이 죄와 타협했다고 비난을 받게 될 것입니다. 결국 율법대로 하라고 하면 로마법에 걸리고 로마법대로 하라고 하면 유대법에 걸리게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유대인들은 교묘하게 예수님을 딜레마에 빠뜨리려고 시험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딜레마 가운데 주님은 아주 현명하게 행동하시고 대답하십니다. “6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어떤 질문을 받으시고 최초로 행동으로 답을 주시는 장면입니다. 말로 하지 않으시고 행동으로 무엇인가 답을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때 무슨 말을 땅에 손가락으로 쓰셨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말로 추측을 하지만 저는 한 가지 가능성만 제시하겠습니다. 가장 유력한 가능성은 그 율법을 쓴 것은 바로 내 손가락이다라는 말입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며는 과거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실 때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시내 산 위에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마치신 때에 증거판 둘을 모세에게 주시니 이는 돌판이요 하나님이 친히 쓰신 것이더라”(31:18).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실 때 돌판에 당신이 친히 쓰신 것이라고 하신 것처럼 제2위 성자 하나님이 지금 직접 땅에 이 말을 쓰심으로 십계명을 비롯한 율법을 준 자가 바로 자신임을 밝히셨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준 자가 모세가 아닌 하나님이신데 그분과 자신이 동등하신 분이라는 얘기입니다. 이렇게 주님이 땅바닥에 손가락으로 친히 써 보이셨는데도 그들은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마치 과거에 바벨론의 벨사살 왕 앞에 하나님의 손이 나타나서 벽에 친히 글씨를 쓰셨지만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처럼 그들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 수군거리며 이런저런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질문에 답하도록 계속 촉구한 것입니다.

 

이에 주님께서 일어나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7)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 앉아서 가르치시다가 이제 일어나서 말씀하신 것은 단호한 말씀을 주시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그 여자보다 먼저 각기 자기 자신을 심판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너희 중에 죄가 없는 자하나님 앞에서 무죄한 자라는 의미와 결코 죄를 짓지 않은 자만’(LB)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코 죄가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지라는 말씀입니다.

 

신명기 17장에 보면 범죄자를 처형하기 위해서는 증인이 먼저 그에게 손을 댄 후에 뭇 백성이 손을 댈지니라’(7)고 되어 있습니다. 증인이 먼저 손을 대면 그다음 사람들이 손을 댈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말씀에는 증인 된 당신들이 죄가 없다면 먼저 돌을 던지시오라고 한 것입니다. 죄가 없는 사람, 죄에 대한 욕망조차도 없는 사람 그런 사람이 먼저 돌을 던지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복음서에서 뭐라고 가르치셨습니까? ‘여인을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이미 간음하였느니라’(5:28)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죄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게 따지면 우리 가운데 죄인 아닌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 사람이 있다면 먼저 돌을 던지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신의 죄에 대해서는 관용하면서 남의 죄에 대해서는 함부로 정죄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사실을 지적하기 위하여 이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들도 죄가 있음으로 이 여인을 정죄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너희들도 돌에 맞아 죽을 죄가 있는데 왜 이 여자를 돌로 쳐서 죽이려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너희 중에 죄가 없는 사람이 있다면 이 여자에게 돌을 던질 수 있지만 죄가 있다면 돌을 던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7:5)고 한 말씀과 같습니다.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으므로 저희의 올무에 걸리지 않으시고 도리어 그들의 양심을 찌르셨던 것입니다.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예수님이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를 쓰셨습니다(8). 예수님이 두 번씩이나 반복된 행동을 하셨는데 이는 스스로 재판관이 되려는 자들에게 자신을 돌아보고 돌이키라는 의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주님은 말씀과 행동으로 아무쪼록 그들을 깨우치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혹자는 두 번째 주님이 땅에 쓰신 글귀는 종교 지도자들의 이름과 그들이 행한 죄악들을 나열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글을 읽고 다음과 같은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신성 앞에 자기들의 죄가 들어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전지성 앞에 더이상 물을 말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9). 그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꼈습니다. 지난날의 자기 행동들을 살펴보니까 자기 양심이 너도 죄인이라고 고발을 했던 것이지요. 결국 자기 양심의 고발로 돌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어른들로부터 젊은이까지 한 사람 한 사람씩 그 현장을 슬그머니 빠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어른들이 젊은이들보다 더 자기들의 죄를 인식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돌을 쥐고 있을 수가 없었고 그것을 그 여인을 향하여 던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하나씩 하나씩 마지못하여 그 자리를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고 중요한 일은 자기들이 죄인임을 깨닫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다면 주님 앞을 떠나서 은근설적 도망갈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님 앞에 무릎 꿇고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며 주께로 돌아와야 하는 것 아닙니까? 주님을 피하여 이곳을 떠날 것이 아니라 차라리 주님 앞에 무릎꿇는 자가 되었다면 주님으로부터 많은 은혜와 긍휼과 자비와 사랑을 받는 자들이 되었을 것인데 그들은 그러지를 못하였습니다.

 

오직 예수와 그 여자만 남았습니다. 주님이 그 죄지은 여인과 아름다운 대화를 나눕니다. 주님이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10)라고 하시니 그 여자는 주여 없나이다라고 대답을 합니다. 주님은 지금 죽을 위험에 처해 있고 불안에 떨고 있고 챙피함과 심적 고통 중에 있는 여인을 다정하고 정감이 넘치는 어조로 여자여라고 부르시며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자여, 너를 정죄하는 자가 없느냐? 주여 없나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을 정죄하고 돌로 쳐서 죽이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는데 지금은 한 사람도 없다고 했습니다. 이 여인이 율법적으로 정죄를 받으려면 적어도 2-3사람의 증인은 있어야 이 여자의 죄가 성립이 되어 율법대로 처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한 사람도 없으니 이제 율법이 그 여자에게 손댈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아직 여기 남아 있으면 율법대로 너를 죽이려고 하겠지만 그들이 다 가버렸으니 이제 너는 은혜로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율법대로라면 죽을 수 밖에 없지만 은혜 때문에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이 여자에게 남아 있는 것은 예수님의 긍휼과 은혜와 용서뿐입니다. 예수님께서 현장에서 죄를 지은 이 여인을 율법에 따라 처벌되지 않도록 은혜와 긍휼의 자리로 인도해 주신 것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11)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간음죄로 고소당한 그 여인을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자를 바리새인들의 손에서 자유케 해 주셨을 뿐만아니라 그녀의 죄에서부터 자유를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이 정죄 하지 않으셨을까요? 요한복음 3:17에는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하셨으며 누가복음 19:10에는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마가복음 2:17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주님께서 이런 입장에서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한다고 하셨음으로 이 얼마나 은혜로운 말씀입니까?

 

그러나 주님은 그녀의 나쁜 행동을 모른채 하거나 두둔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따끔한 권고를 주셨습니다.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 구절을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죄인은 사랑하시나 죄는 미워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이 여인은 죄용서를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주님의 이 말씀을 통하여 이 여인은 이제 생명을 연장 받았습니다. 주님의 이 말씀을 통하여 이 여인이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주님의 이 말씀을 통하여 이 여인은 육체와 영혼이 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결론

 

예수님은 돌에 맞아 죽을 이 여인을 보호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을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을 긍휼히 여겨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권면해 주셨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모두 죄인입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죄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죄의 삭은 사망이라고 했음으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사망하여 지옥의 불구덩이 속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죄 용서를 받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믿는 순간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하여지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대속 제물로 돌아가신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가 믿는 순간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우리를 의롭다고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으면 죄용서를 받고 의롭다 함을 받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는 사람에게는 다시는 정죄함이 없습니다.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8:1). 믿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죄와 지옥에서 해방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고 난 이후에도 우리는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은 사람은 그것 때문에 지옥 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생활 가운데 잘못하는 것이 있으면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 회개하면 됩니다. 죄악들을 낱낱이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거짓말하고 술먹고 음란한 것, 불화하며 불순종한 것, 십일조 떼어 먹은 것, 주일성수 하지 않은 것, 이웃을 미워한 것 등등 하루에도 여러 가지 죄를 짓게됩니다, 이런 죄들을 우리는 지정의로 회개해야 합니다. 죄를 죄로 알아야 하고 죄지은 것을 슬퍼하며 죄에서 돌이키겠다는 마음으로 회개하는 것입니다. 다시는 죄를 반복해서 짓지 않겠다고 결심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지정의로 회개하는 것을 조금 다르게 표현을 할 수도 있습니다. 회개는 먼저 머리로 해야 합니다. 지적으로 내가 죄를 지었구나라고 깨달아야 합니다. 다음은 가슴으로 해야 합니다. 죄지은 것에 대하여 애통하며 부끄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다음은 의지적으로, 손 발로 해야 합니다. 죄를 거부하며 내가 다시는 이런 일을 행치 않으리라고 결심하고 그대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회개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9). 예수님이 죄악 된 이 여인을 은혜의 자리, 용서의 자리로 이끌어 주신 것처럼 오늘 우리들도 그런 자리로 인도해 주십니다.

 

주님은 지금도 어떤 모습으로 오든지, 예수님에게로 오기만 하면 주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며 죄를 용서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성경은 하나님만이 죄를 용서하신다고 했는데 오늘 본문을 통해서 예수님이 죄를 용서해 주셨음으로 그분이 곧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성자 하나님은 지금도 진실로 회개하는 자의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에게 진실로 권면하십니다.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죄를 용서해 주시는 예수님을 믿으시고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는 주님의 이 권면을 마음에 새기며 항상 깨끗하게 살아가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찬송/ 예수 안에 있는 나에게 결코 정죄함 없네.

기도 제목/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을 죄의 자리에서 은혜의 자리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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