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7월 13일 요 9:13-41 누가 맹인인가?
지난번 시간에는 예수님이 날 때부터 맹인인 사람을 고쳐주신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제자들은 이 사람이 소경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인지가 궁금했지만 예수님은 이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하실 일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온 빛으로서 맹인의 눈을 뜨게하셔서 보게 해 주셨습니다. 이 사건을 통하여 자신이 세상의 빛이시며 메시아 이심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그 뒷 이야기가 오늘 본문에서 계속 이어져 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앞부분(13-34절)은 바리새인들이 맹인이었던 사람을 심문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리고 뒷부분(35-41절)에서는 맹인이 쫓겨났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주님은 그에게 오셔서 그의 믿음을 확증해 주시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럼 먼저 앞부분의 내용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13-34).
주님께서 맹인의 눈을 뜨게 해주신 사건은 예루살렘에 큰 소동을 일으켰습니다. 어떻게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자의 눈이 뜨였는지 사람들은 의문을 품게 되었습니다(9, 15, 26). 그래서 바리새인이 그에게 네가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를 물었습니다. 이에 그 사람이 그분이 나에게 진흙을 이겨 눈에 발라주며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고 해서 가서 씻었더니 보게되었다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자 어떤 바리새인은 그 사람이 안식일을 범하였다고 말합니다. 바리새인들의 규정에는 물과 흙을 이기는 것은 안식일에 노동하는 것으로 취급하여 규정을 어겼다고 말한 것입니다. 자기들의 기준으로 사람들과 예수님을 옭아매려고 하고 말 같지도 않은 규정으로 예수님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전히 안식일의 주인으로서 사람을 고치고 살리는 것이 더 중요함을 가르치면서,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지 아니하고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음을, 안식일에 맹인을 낫게 하심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또 어떤 바리새인은 죄인으로서는 이런 표적을 행할 수 있겠느냐고 하면서 자기들끼리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습니다. 다시 맹인되었던 자에게 묻습니다. 이제는 좀 엉뚱한 질문을 한 것입니다. ‘너는 네 눈을 뜨게 한 사람이 어떤 사람이라’(17)고 생각하느냐? ‘선지자입니다.’ 종교지도자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범법자로 취급하고 잡아서 죽이려고 하지만 여기 이 사람, 실로암의 역사를 체험한 이 사람은 그래도 주님을 선지자라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예수를 선지자라고는 인정을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슬람교에서는 그리스도를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인정을 합니다. 소경된 사람도 이 정도의 선지자라고 이야기 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주님은 이 정도의 선지자가 아니라 ‘선지자들이 예언한 그리스도이시며 메이아’이십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아직 이런 정도의 신앙은 아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는 유대인들이 맹인이 눈 뜬 것을 믿지 못하고 그의 부모를 불렀습니다. 이 사람이 ‘네 아들이냐 그리고 아들의 눈이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19)를 물었습니다. 그 부모가 첫 번째 질문에는 분명히 ‘내 아들이 맞다’고 대답했지만 ‘내 아들의 눈을 뜨게 해 주신 분이 누구이고 어떻게 뜨게 되었는지는 아들에게 직접 물어보라’고 했습니다. 부모는 분명 자기 아들을 고쳐주신 분이 누구이고 어떻게 낫게 해 주셨는지를 다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이 두려워서 말을 못한 것입니다. 그 당시 공회에서는 이미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사람은 출교하기로 결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출교라는 것은 교회에서 내 쫓는다는 뜻으로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 기독교회에서 내릴 수 있는 가장 엄중한 벌입니다. 이것은 제명이나 면직보다 더 중한 벌로 한 교회에서 출교되면 다른 교회에도 출석할 수 없는 시벌입니다. 이런 벌을 당시 공회에서 결정을 해서 시행을 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메시아, 하나님의 아들)로 시인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벌을 내리기로 한 것입니다. 이것이 두려워서 맹인되었던 사람의 부모가 누가, 어떻게 내 아들을 고쳤는지는 말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이 두 번째 그 맹인되었던 자를 불러서 ‘너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그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24)고 했습니다. 이에 고침 받은 사람이 ‘그가 죄인인지 아닌지는 모르나 분명한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것이라’(25)고 했습니다. 분명한 사실을 고백한 것입니다. 주님은 선지자이시고 그리고 나를 고쳐주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또 다시 ‘그 사람이 너에게 어떻게 하였느냐’고 같은 내용으로 묻자 소경에서 고침을 받은 사람이 ‘내가 이미 일렀어도 듣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다시 듣고자 하나이까 당신들도 그의 제자가 되려 하나이까?’(27)라고 말합니다. 이 사람도 짜증이 나는 것이지요. 지금까지 몇 번이나 얘기했는데 듣지 않고 계속 같은 질문을 하니까 신경질이 난 것이지요. 그래서 비꼬아서 당신들도 그의 제자가 되려하느냐고 말한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고침 받은 사람에게 욕을 하면서 ‘너는 그의 제자인 줄 모르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고 말하면서 그 사람은 어디서 온 줄을 알지 못한다’(29-30)고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모세 오경의 율법을 중요시 하니까 당연히 모세를 민족의 지도자요 스승으로 생각할 겁니다. 그런데 그들의 스승인 모세가 ‘나와 같은 선지자’가 하나님의 보냄을 받아 이 세상에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신데 왜 모세의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알지 못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모세의 제자이고 예수라는 사람은 어디서 온 줄을 알지 못한다고 했을 때, 소경에서 고침을 받았던 이 사람은 의외로 그리스도에 대한 진술을 명확히 한다는 것입니다.
30-33절까지의 말씀입니다. “30 그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상하다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으되 당신들은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도다 31 하나님이 죄인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의 말은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32 창세 이후로 맹인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33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34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 하고 이에 쫓아내어 보내니라.”
소경에서 고침을 받은 사람이 여기에서 두 가지를 말하였습니다. 먼저는 하나님은 경건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의 말을 들어주시지 죄인의 말에 응답하시는 분이 아니심으로 그분이 나를 낫게 해주신 것을 보니까 그에게는 죄가 없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말하는 것처럼 이 사람이 정말 죄인이라면 나를 고쳐줄 수가 있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고쳐주신 그분은 죄가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음은 너희는 그분이 어디서 온 줄을 알지 못한다고 했는데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면 누구라도 날 때부터 맹인된 자를 고치지 못한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라는 그분은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았다고 얘기한 것입니다. 좀 더 확장해서 말하면 이분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자 곧 실로암이라는 뜻입니다.
이 두 가지를 하나로 묶으면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로서 죄가 없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어느 정도 구원에 가까운 그리스도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런 얘기를 들었던 바리새인들이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34)라고 하며 그를 쫓아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이 소경을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며 지옥의 형벌을 받은 자라고 욕하고 저주하면서, 그런 네놈이 율법의 선생인 우리를 가르치려고 하느냐고 욱박 질렀던 것입니다.
앞부분의 말씀을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소경되었던 사람과 그의 부모를 상대로 반복적으로 질문하면서 심문을 했는데 소경과 그 부모의 대답에서 이런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예수님은 선지자입니다. 2)예수님은 맹인이었던 나의 눈을 뜨게 해 주신 분이십니다. 3)예수님은 죄인이 아니라 경건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오신 분이십니다. 4)예수님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분이십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에 대한 나름대로의 멋진 신앙고백을 했던 것입니다.
뒷부분(35-41)의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부분은 예수님이 맹인이 쫓겨났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그에게 오셔서 그의 믿음을 확증해 주시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이 그를 만나서 ‘네가 인자를 믿느냐?’(35)고 물으셨습니다. 길거리에서 구걸하던 나를 찾아오신 주님이, 나를 고쳐주셔서 보게 하셨고, 이제 또 다시 나에게 찾아오셔서 당신의 얼굴을 보이시면서 이렇게 질문하신 것입니다. ‘네가 인자-메시아-하나님의 아들을 믿느냐?’
그 사람이 ‘주여 그가 누구십니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36)라고 답합니다. 주님이 ‘내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라고 자기 계시를 하시니까 곧장 ‘내가 믿나이다’하고 주님께 절을 하였습니다. 이 사람은 지금까지 예수님에 대하여 이런저런 말로 이야기를 했지만 주님 앞에서 직접적으로 내가 주님을 믿는다고 고백을 한 것입니다. 바로 주님께서 이 사람을 다시 찾아서 만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이 당신 자신을 그에게 분명히 알려주심으로 이 사람의 믿음을 확증해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주님의 자기 계시를 통하여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확실하게 주님을 나의 구세주로 고백하는 것이 필요하고 중요합니다. 주님도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눅 12: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구원을 받은 이 사람의 첫 번째 행동은 바로 주님께 절하는 것입니다. 여기의 ‘절하다’는 말은 여러 가지로 번역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시리아 역에서는 ‘그가 엎드려 경배하고 예배하였다’라고 표현하였고 페르시야 역에서는 ‘그가 엎드려 절하고 그리스도를 경배하였다’로 라틴 역에서는 ‘그리고 땅에 엎드려 그를 경배하였다’로 표현을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절하다’는 단순히 인사 정도를 했다는 말이 아니라 ‘그분 앞에 엎드려 경배하였다’(프로스쿠네오)는 표현인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께 엎드려 경배하였듯이, 24장로들과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님 앞에 꿇어 엎드려 경배하였던 것처럼 이 사람도 그렇게 주님 앞에 꿇어 엎드려 경배하였던 것입니다.
이 맹인은 육체적으로도 고침을 받았고 영적으로도 구원을 받아서 영육적으로 주님의 은혜와 복은 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건강한 몸으로 주님을 예배의 대상으로 여기고 경배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후로 주님이 한 가지 더 교훈을 주셨습니다.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하려 함이라’(39). ‘보지 못하는 자들을 보게한다’는 말은 죄로 눈이 멀고 무지해졌으며 마음이 어두워졌으나(소경처럼) 진리와 생명과 구원의 길을 분별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반면에 ‘본다고 하는 자들’ 즉, 교만하고 진리를 무시하고 스스로 본다고 말하는 자들은(바리새인들처럼) 점점 더 깊은 어두움과 정죄에 빠져들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와서 무지를 고백한다면 하나님은 용서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하늘나라의 길로 인도하실 것인데 바리새인들은 그러지를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맹인과 같은 사람은 눈을 뜨게하여 보게 하셨고 본다고 안다고 말하는 교만한 바리새인들은 여전히 영적 맹인으로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저들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인 줄을 알았던 몰랐던 간에 영적 교만함으로 그분을 거절하고 배척하였기 때문에 그 죄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결론
예수님이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고치셨을 때 그 예수님을 두고 사람들의 반응을 어떠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1. 먼저 바리새인들의 반응입니다.
1)예수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음으로 하나님의 보내신 자가 아니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2)안식일을 범한 죄인 취급하였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뒤에 가서 우리는 이 사람이 죄인인 줄 안다고 말했습니다.
3)이 사람은 어디서 왔는지를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결국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도 않았고 이적을 인정하지도 않고 이적의 의미를 받아들이지도 않았습니다.
2. 다음은 고침을 받은 소경과 그 부모의 반응입니다.
1)예수님은 맹인 된 나를 고쳐주신 분이시라고 인정을 하였습니다.
2)그의 부모는 내 아들이 맹인이었다가 보게 된 것은 분명하나 누가 어떻게 해서 낫게하였는지는 당사자에게 물어보라고 했습니다. 알면서도 유대인들의 출교가 두려워서 예수님에 대하여 분명히 진술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3)예수님은 선지자이시라고 고백합니다.
4)처음에는 예수님이 죄인인지 아닌지를 알지 못한다고 말하다가 나중에 가서는 분명 하나님이 죄인을 듣지 아니하신다고 말하면서 간접적으로 이 분은 죄가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5)이 분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고 말합니다.
6)예수님이 자기 계시를 하셨을 때 이 사람은 분명히 내가 주님을 믿는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이 사람의 진술을 종합해 보면 예수님이 자기에게 다가오셔서 자기를 고쳐주셨고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분으로 죄가 없으신 메시아라는 고백입니다. 이것을 통하여 그는 영육간의 구원과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육적인 소경에서 보게 되었고 영적인 소경에서 주님을 메시아로 알게 된 구걸하던 거지가 주님께 엎드려 절하며 경배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반응은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1)소경처럼 우리도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확실하게 붙들고 믿음으로 살아감으로 주님의 은혜와 회복과 치유와 능력을 경험했으면 좋겠습니다.
2)소경처럼 우리도 주님을 메시아, 구원자라 확실히 믿고 누구 앞에서라도 그분을 시인하며 그분 앞에 엎드려 경배하는 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3)영적 소경으로 살지 말고 소경처럼 이제 눈을 뜨서 성경도 보고 주님도 보고 교회도 보고 이웃도 보고 천국도 보면서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영적인 눈이 뜨여져서 볼 것을 보면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찬송/
기도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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