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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10 12 <성령의 역할과 평안을 주심>
이정현 목사 2025-10-12 추천 0 댓글 0 조회 21
[성경본문] 요한복음14:25-31 개역개정

25.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28.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라면 내가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

29. 이제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30. 이후에는 내가 너희와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하리니 이 세상의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그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

31.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 함이로라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 하시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51012일 요 14:25-31 성령의 역할과 평안을 주심

 

앞에서도 주님이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보혜사 성령은 진리의 영이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가 오시면 주의 백성 안에 거하며 영원히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내주하시는 성령은 우리를 떠나지 않고 영원히 함께 있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앞부분에서는 성령님에 대하여 본질적인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이 누구로부터 오시게 되는지, 그리고 진리의 영이시며 한번 내주하시는 성령님은 영원히 떠나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어떤 역할을 하실 것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26).

 

2 보혜사는 아버지에 의해 보내지는데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보내진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와 아들에 의하여 영원전부터 보내심을 받은 제3위 성령님이십니다.

성자가 이 땅에 보냄을 받은 것처럼 성령은 이 땅의 믿는 자 안으로 보냄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아들이 아버지의 일을 하시고 아버지에게 영광을 돌리시는 것처럼 성령께서는 예수님의 일을 하시고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주님이 그의 백성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신 것처럼 이제부터는 보혜사께서 그들의 필요를 완전하게 채워 주실 것입니다.

 

또한 아들이 아버지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신 것처럼 성령님도 주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라고 하셨는데, 여기의 모든 것은 뒤에 나오는 모든 것보다 더 범위가 넓은 것으로 모든 성경 말씀을 가리킨다고 봅니다. 그래서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신자들에게 모든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가르쳐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6장에서도 그가 모든 것을 진리 가운데로 너희를 인도하리라’(13-14)고 하셨습니다. 성경의 원 저자가 되시는 성령님이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진리를 가장 잘 가르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이어서 주님이 내가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26)고 하셨습니다. 여기의 모든 것내가 말한이라는 말이 제한을 시켜주니까, 앞의 모든 것이라는 말보다는 더욱더 좁은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말한 모든 것은 문자적으로 말하면 사복음서에 기록된 주님의 말씀을 의미하고 그것을 생각나게 해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앞의 모든 것과 뒤의 모든 것 사이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앞의 모든 것이나 뒤의 모든 것을 구별하지 않고 그냥 모든 말씀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이 오셔서 모든 말씀을 가르쳐주시고 생각나게 해 주신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시고 생각나게 해 주신다는 말씀이 미래의 비밀이나 자연의 불가사의한 일들을 그들에게 가르쳐 주시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제자들이 알아야 할 영적 행복에 대한 것을 가르쳐 주시겠다는 것이고 주님이 말씀하신 것인데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 것들에 관하여 그들에게 밝히 알려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요한복음 2:21-22“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22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성전된 자기 육체에 관하여 말씀하실 당시에는 제자들이 이것이 무슨 말씀인지를 깨닫지 못했다가 성령을 받고 나서야 이 말씀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2:15-16“15 이는 기록된 바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 16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임이 생각났더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이,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는 말씀을 이해 하지 못하다가 이것 역시 성령을 받고 난 이후에 성령이 가르쳐 주시고 생각나게 해 주셔서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진리의 성령님이 우리 안에 내주 하시면서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님의 주 사역이십니다. 성령님의 이 사역으로 말미암아 여러분들이 더욱더 진리를 알고 진리 가운데 머물고 진리로 자유함을 얻고 진리를 전파하며 진리와 함께 동행하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어떤 역할을 하실 것인지 말씀하시고 나서 이제는 제자들에게 평안을 주셨습니다. “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성경에 인사의 의미로 샬롬, 평강, 평안을 말할 때가 많습니다. 인사말로 평안하셨습니까?’, 헤어질 때도 평안히 가십시오라고 인사를 합니다. 저는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낼 때나 PC로 메일을 보낼 때 대부분 끝부분에 샬롬이라는 단어를 붙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아침 인사가 샬롬입니다. 지금은 전쟁 중이라 더더욱 이런 인사가 의미가 더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기서 인사의 의미로 사용하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준다고 하셨습니다. 이 평안은 주님의 것이라는 말입니다. 다른 데서는 찾을 수 없는 주님만이 가질 수 있고, 주님만이 주실 수 있는 참 평안이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로마서 5:1에 언급된 화평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누리게 될 화평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단순한 인사 차원의 샬롬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평안은 주님의 속죄의 결과이고 또한 내재하시는 예수의 영으로 말미암아 누릴 수 있는 평안입니다. 예수님이 이 평안을 너희에게 준다고 하셨습니다. 이 평안은 환경에 의해 동요를 일으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만군이 나를 에워쌀지라도 두려워 하지 않는 평안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라는 평안을 말합니다. 나의 부모가 나를 버릴지라도 여호와는 나를 버리지 않는다는 평안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평안을 말합니다. 이사야 26:3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다라고 하셨습니다. 끝까지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켜주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주시는 이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 같지 않습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은 천박하고 불안정하고 불만스럽고 제한되며 거짓된 것입니다. 세상에서 평안에 대하여 많은 말을 하지만 사실은 그 평안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고 떠들고 있는 것입니다. 평화 협의회도 많고 평화를 주장하는 단체들과 엠오유도 많이 맺고요, 평화 연맹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들 단체들마다 다 평화를 주장합니다. 심지어 전쟁으로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고도 말합니다. 얼마나 모순된지 모르겠습니다. 소련과 중국의 공산주의가 붕괴되자 이제 세계의 평화주의자들이 이 세상에는 더 이상 갈등과 반목가 전쟁과 테러가 사라지고 살기좋은 평화로운 세계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세계가 그렇게 되었습니까?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평화롭다 안전하다고 할 그 때에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라’(살전 5:3). 세상이 말하는 평화는 괴물입니다. 세상은 세상에 세상의 평안을 주려고 했지만 그것은 실패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주는 평안은 다릅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는 것이며 어떤 환경 속에서도 누릴 수 있는 평안이고 영원한 평안입니다. 이것만이 참된 평안인데 이것을 주님은 나의 평안이라고 하셨고 그것을 불안과 염려 가운데 있는 너희에게 준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27)고 하셨습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평안을 너희에게 주는 것이니 너희는 더 이상 근심하거나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근심과 두려움은 마음에 채워져야 할 기쁨과 감사와 평안이 없거나 약화 되었기 때문에 일어나는 불안입니다. 또는 주님과 주의 말씀에 대한 확신과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근심이 생기거나 두려움이 발생하게 되면 무엇으로 그 마음을 채워야 하는가 하며는 주의 평강으로 주의 기쁨으로 주의 은혜로 채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근심 걱정과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28절 말씀은 주님의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하여 오해를 불러오기도 하였고 많은 논쟁이 되었던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더욱 주의하여 이 말씀을 잘 들어야 할 줄 압니다. “28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라면 내가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 우선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는 말씀은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시고 다시 이 세상에 영적으로 임재하실 것에 대한 말씀입니다. 여기에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사건과 성령 임재가 다 포함되어 있기에 사실은 엄청나게 중요한 내용들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을 포함하여 내가 하나님께로 갔다가 너희에게로 다시 오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에 먼 미래의 재림은 포함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시면서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더라면 내가 아버지께로 가는 것을 기뻐하였으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라면 그분이 아버지께로 가는 것에 대해 반응이 기뻐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그러지 못한 것에 대한 예수님의 안타까움을 나타낸 구절입니다.

당시 제자들이 주님을 사랑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나 예수님에 대한 그들의 사랑이 아직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지금 사랑의 미숙함, 영적 지식에 대한 미숙함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슬픔과 근심 속에 빠져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 가는 것은 승귀이고, 아버지의 영광으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제자들로서는 마땅히 기뻐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미성숙으로 말미암아 그러지를 못하고 오히려 불안과 근심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떠나심은 비참함 만이 아니라 창세 전에 함께 하셨던 아버지의 영광으로 들어가시는 것입니다. 마땅히 기뻐하며 축하해야 할 일인 것입니다. 또한 승천과 더불어 성령이 주어지는 계기가 됨으로 제자들이 경험하게 될 영적인 복을 바라보고 기뻐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아버지께로 간다는 얘기를 듣고 너희들이 당연히 기뻐해야 할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그 아버지는 나보다 크시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기뻐해야 할 이유로 아버지는 나보다 크시기 때문이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이 무슨 뜻인가요?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28)는 말씀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고 합니다. 1)직무적 신분(중보자로서의 신분)에 있어서 아버지가 나보다 크시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7장에, 예수님이 자기를 아버지의 종이라고 표현이 있습니다. 종이라는 것은 주인으로부터 일을 맡아서 그 일을 성실히 감당하고 좋은 결과를 주인에게 보고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마찬가지로 주님도 아버지께로부터 직무를 위임 받으셨고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 일하셨고 아버지의 권능으로 말씀하셨고 아버지의 뜻대로 죽기까지 복종하셨고 그 결과를 아버지께 보고해야 할 분으로서 자기를 아버지의 종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다시 말해 직무적 신분에 있어서 아버지는 나보다 크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2)예수님이 인간 본성을 취하셨다는 점에서 아버지는 자기보다 크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는 성육신 하셔서 인간들 사이에 거하셨기 때문에 자기를 낮추어 이렇게 표현하신 것입니다. 자기는 십자가의 수치와 수난을 택하심으로 지극히 크게 겸손을 취하셨습니다. 그는 머리 둘 곳조차도 없으셨다고 했고 그는 부요하나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다고 했습니다. 그는 질고를 아는 자였고 슬픔과 고통을 익히 아시는 분이였습니다. 지금 하늘의 지성소에 계신 아버지의 상태와 육신을 입은 자기의 상태와 비교하여 볼 때 아버지는 가장 높은 하늘 보좌에 앉아계신 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천군 천사들과 구속받은 만물로부터 끊임없이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우시며 존귀하신 분으로 경배와 찬양과 영광을 받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지금의 나와 그 하나님과 비교하여 볼 때 아버지는 나보다 크시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는 그가 아버지께로 가리라는 소식을 듣고 기뻐했어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아들보다 더 크시기 때문입니다. 즉 그의 직무적인 신분이나 주변 환경에 있어서 더 크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자기의 신분을 종이라고 자인하시며 자기를 보내신 아버지를 크게 높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의미에서 주님이 아버지가 자기보다 더 크신 분임을 이해하면 되는데 그렇지 못하고 이것을 오해하여 이단이 된 사람이 있습니다.

 

아리우스’(250-336)라는 사람과 후대의 그 파의 주장입니다. 그들은 이 구절을 근거로 예수가 성부와 유사본질적인 존재로 피조물 중에서 최고이며 가장 완전한 자라고 하여 그의 신성을 부인하였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피조물 가운데 가장 완전한 자이나 그가 하나님은 아니다라는 주장입니다. 지금의 여호와의 증인들도 똑같이 주장하고 있습니다. 325년에 이단으로 정죄되었습니다. 그리고 유니테리안과 그 파는, 이 구절을 근거로 삼위일체 교리를 거부하였던 것입니다. 아들은 아버지보다 더 열등한 존재로 보고 결국 유일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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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본문 마지막 부분입니다. 여기에서 주님은 말씀을 미리하신 이유와 수난의 의미를 설명하셨습니다. “29 이제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여기에서 말하는 일이 일어나기 전일이 일어난 때는 무엇을 말하는가요? 내가 아버지께로 갔다가 다시 오는 것을 말합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아버지에게로의 승천과 성령으로의 임재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늘로 가심과 성령으로 오심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이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이런 말씀을 하신 이유가 무엇인지를 밝히신 것입니다. 그것은 너희로 하여금 믿게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13:19). 그러면 무엇을 믿게하려 하심이라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주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친 모든 진리를 의심 없이 믿게 하여 하심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메시아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며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인 줄 믿게 하려 하심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너희의 죄를 사하고 부활하심으로 너희를 의롭다고 하고, 승천하심으로 하늘나라를 준비하시고 다시 나의 영으로 너희에게로 다시 와서 너희와 함께 영원토록 함께 있겠다는 말씀을 믿게하려 하심입니다. 이것은 제자들이 의심 없이 확실히 믿을 사항이라는 것입니다. 아직도 제자들이 이 부분에 대한 믿음은 가졌지만 연약한 믿음이었기 때문에 이번 기회를 통하여 확실하게 믿게하려 하심이라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30절에서는 주님이 떠나갈 시간이 아주 가까이 왔다는 사실을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후에는 내가 너희와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하리니 이 세상의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그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30).

 

여기서는 내가 너희를 곧 떠날 것이기 때문에 이후로는 말을 많이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 때에 세상 임금이 온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뱀이 여자의 후손에게 해를 가할 때가 왔다는 뜻입니다. 사탄이 구주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때가 왔다, 사탄이 나를 공격하여 마침내 십자가에 나를 던지고 죽일 것이다, 나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고 최후 발악을 할 것이다라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4장에서는 예수님이 사탄의 시험에 말씀으로 물리치시고 쫓아내셨는데 여기서는 세상 임금이 그의 일을 이루기 위하여 달려드는데 물리치지 않으시고 오히려 올테면 오라는 식으로 사탄을 대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사탄이 악한 날에 악한 일을 하라고 하나님이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나와 관계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이 사탄에 의해 전혀 영향을 받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특히 십자가를 지시는 것에 있어서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흠 없는 어린 양으로서 타인의 죄를 짊어지시고 자발적으로 십자가를 지시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그리스도를 죽임으로 성공하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실패로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큰 뜻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되었을 뿐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사탄과 그의 뜻은 파괴되었으나 하나님과 그의 뜻은 아름답게 이루어 졌습니다.

 

예수님은 지금까지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이제 곧 죽기까지 복종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수 많은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구속의 역사를 완수하실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위해 십자가에서 자기의 몸을 버릴 것입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백성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을 당신의 이름 아래로 모으실 것입니다.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시고 행하시는 목적이 무엇이지요? ‘세상이 알게 하려 함이로라.’ 세상으로 하여금 이 구속의 목적을 알게하시려고 그리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하나님을 사랑하신 것과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신 모든 것들의 목적은 이 구속의 역사를 사람들로 하여금 알게하려 하심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마지막으로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 하셨습니다.’ 주님의 마지막 유월절 잔치에서 일어나자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잔치 자리를 떠나자고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마가의 다락방에서 나와서 곧장 감람산으로 기도하러 가시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15장과 16장의 강화가 남아 있고 또 17장의 기도도 남아 있기 대문입니다. 만약 본 구절에서 곧 떠나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셨다면 그 길에서 두 장의 강화의 말씀과 한 장의 기도를 하셨다는 결론이 되는데, 그렇게 보기에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또한 요한복음 18:1에 가서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건너편으로 나가시니 그곳에 동산이 있으매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니시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마도 주님이 일어나자, 여기를 떠나자고 하셨지만 당신이 좀 더 그곳에 머물면서 마지막 강화와 기도를 하신 것으로 보여집니다.

결론

 

죽음을 목전에 둔 예수님은 장차 승천하신 후에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성령은 진리의 영이시고 우리를 도와주기 위하여 우리 옆에 와 계신 위로자이십니다. 그 성령님은 우리 안에 계시면서 우리를 영원히 떠나지 아니하시고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또한 그 성령님은 모든 진리를 가르쳐 주시고 생각나게 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성령이 우리 가운데 오셔서 하시는 일 중에 가장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자기의 것을 가지고 사역하지 않으시고 오직 예수님의 말씀을 근거로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지하여 진리의 말씀을 알지 못할 때 성령님께서 조명하여 밝히 비추어 주시는 것입니다. 깨닫게 해 주시고 알고 믿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잘 알지 못할 때 진리의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셔서 이해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사탄의 유혹이나 시험이 있을 때 주의 말씀을 생각나게 해 주셔서 적절한 말씀으로 사탄을 대항할 수 있게 해 주시기도 합니다. 앞길이 캄캄하여 방황할 때 어디로 가야할지 성령께서 말씀으로 인도해 주시기도 합니다. 성경 말씀에 확신이 없었는데 진리의 성령께서 감동을 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신할 수 있게 해 주십니다. 성경의 진리를 오해했을 때가 있는데 어느날 성령께서 내 안에서 역사하심으로 깨닫게 해 주셔서 이해하고 믿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르치는 목사와 교사로서 잘 몰랐던 말씀을 성령의 도우심으로 밝히 알게 되어 성도들과 학생들에게 좀 더 정확하고 확신있게 가르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전도할 때 잘 몰랐던 말씀까지 성령께서 생각나게 해 주셔서 담대하게 전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항상 성령의 도우심으로 말씀을 잘 깨닫고 은혜받아서, 풍성한 삶을 누리고, 바른 진리를 외치며 사는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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