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목사설교

  • 예배 · 설교 >
  • 이정현목사설교
2025 10 26 <세상의 핍박 속에서 증인의 삶을 살라>
이정현 목사 2025-10-26 추천 0 댓글 0 조회 46
[성경본문] 요한복음15:18-27 개역개정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20.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

21.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를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라

22. 내가 와서 그들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23. 나를 미워하는 자는 또 내 아버지를 미워하느니라

24. 내가 아무도 못한 일을 그들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그들에게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들이 나와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

25. 그러나 이는 그들의 율법에 기록된 바 그들이 이유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 한 말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27.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언하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51026일 요 15:18-27 세상의 핍박 속에서 증인의 삶을 살라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으로부터 어려움과 시련을 당하면, 그 시련이 왜 오는지, 어떻게 그것을 견디어 내야 하는지, 그런 시련 속에서도 우리가 꾸준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늘도 말씀에 주의 집중함으로 은혜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주님은 앞으로 너희에게 세상의 핍박이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18-21).

 

본문에서 주님은 세상이 너희를 미워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의 세상은 유대 교권주의자들을 말하고 더 나아가서 로마의 공권력까지를 말합니다. 이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미워할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미워하다는 단어가 본문에 7번이나 나타나는데 이 말은 단순한 미움뿐만 아니라 배척하다’, ‘원수로 여기다’, ‘박해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미워하여 박해하고 배척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앞으로 제자들이 유대교권주의자들과 로마로부터 미움과 박해를 받을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울러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먼저 나를 미워한 줄 알라’(18)고 하셨는데, 이는 내가 세상으로부터 먼저 미움과 핍박을 받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너희보다 먼저 내가 유대인들로부터 미움과 핍박을 받았음을 알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우리보다 먼저 고난과 멸시와 미움과 핍박을 받으셨습니다. 주님이 어렸을 때, 헤롯 왕으로부터 죽임을 당할 뻔 하였습니다. 그 이후로 유대인들로부터 미움을 받아 여러번 죽임을 당할 뻔 하였습니다. 결국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미워하여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것입니다.

주님이 먼저 이같은 미움과 핍박을 받았음으로, 너희들도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을 때, 나를 기억하고 인내하라는 의도가 들어있는 것 같습니다. 너희가 미움을 받을 때 내가 받은 미움을 생각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이,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이유에 관하여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여 나에게 속한 자가 되게 하였기 때문이라’(19)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만약 세상에 속하여 있다면 미움을 당할 이유가 없겠지요. 세상 사람들처럼 똑같이 말하고 행동하고 똑같이 생각한다면 그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을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세상에 순응하는 사람, 세상 정치에 참여하는 사람, 세상의 쾌락을 공유하는 사람, 세상의 원리를 따라 살아가는 사람, 세상의 유행을 따라가고, 세상의 사교모임을 즐기는 그런 사람은 결코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주님의 선택을 받아, 세상 밖으로 부름을 받아 나와서 구별된 사람이 되었습니다. 구별된 하나님의 자녀는 세상의 규칙과 원리와 방식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처럼 살아가야 할 그리스도인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사는 것이고 때때로 그리스도인이 세상 사람들의 잘못된 삶을 책망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은,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려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미워하고 핍박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딤후 3:12)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 세상과 벗 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냐’(4:4)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을 반대로 바꾸면 하나님과 벗된 사람은 세상의 미움을 받는다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과 벗된 사람이 아니라, 비록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아도, 우리는 하나님과 벗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과 벗된 사람은 다음의 성경을 기억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5:10-12).

 

세상의 미움과 박해는 앞에서도 말씀을 드린 것처럼 주님도 받으셨음으로 그의 제자들도 당연히 받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20절에 보면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20)고 했습니다. 세상이 주인되시는 예수님도 핍박을 했다면 종된 그의 제자들을 핍박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주인인 내 말을 지킨다면 종된 너희들의 말을 지키는 것도 당연하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여기의 지킨다는 말은 트집 잡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내 말에도 트집잡는데 너희 말도 당연히 트집잡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결국 이 구절은 제자들이 핍박받는 것은 필연적이며 피할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사람은 세상으로부터 환영받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포도나무인 주님이 핍박을 받는다면 가지인 우리가 포도나무에 붙어있기 때문에 당연히 핍박을 받는 것입니다.

 

주님은 나의 제자들은 이 세상에서 마땅히 미움과 핍박을 받을 것인데 그 이유는 내가 택하여 구별하였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다른 이유 하나를 더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또 다른 이유라고 해도 좋고 아니면 종합적인 이유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고 봅니다. ‘사람들이 내 이름을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한다’(21)고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제자들과 신자들을 미워하고 멸시하고 박해하는 것은 주의 이름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제자들이 세상으로부터 핍박을 받는 것은 주님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이 제자들을 미워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니까 사람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 문단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신자들이 세상으로부터 미움과 배척을 받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여 세상과 구별시켜 주셨기 때문이고 우리가 주의 이름을 믿고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들이 우리를 이유 없이 이렇게 핍박하는 것은 결국 저들이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2. 주님이 세상의 근본적인 죄를 지적해 주셨습니다(22-25).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거부한 자의 죄는 결코 핑계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22절과 24절에 나오는 죄는 일반적인 죄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를 거절하는 완고한 불신앙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핑계하다는 말은 거짓으로 꾸미다는 뜻이므로. 결코 거짓말로 꾸며델 수 없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이전의 모든 사람들은 알지 못하던 시대에 있었음으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허물치 아니하셨으나 이제는 다릅니다. 때가 차서 주님이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여 복음을 믿으라고 이미 선포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그분께 오기를 거부한다면 이것은 큰 죄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본질적인 죄가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 메시아가 와서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데 그것을 듣지 않고 거부한다면 그는 분명히 예수를 거절하는 완고한 불신앙적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와서 그들에게 이미 말씀하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을 배척하고 불신한다면 이제 너희들의 죄는 핑계할 수가 없고, 거짓으로 꾸며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이 예수님을 거부하고 미워할뿐만 아니라 내 아버지도 미워한다고 했습니다. 주님을 미워하는 자는 그의 제자도 미워하는 자이고 또한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입니다. 그러니까 주님과 그의 제자들 그리고 하나님은 서로서로 긴밀하게 얽혀 있습니다. 서로 동격인 것처럼 말을 합니다. 그래서 주님을 미워하면 그것은 곧 아버지를 미워하는 것이고 동시에 그를 믿는 사람들을 미워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미워하다는 말은 단순히 미워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를 미워하며 죽이려는 것까지를 말하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이 미움은 하나의 미움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말씀에 근거한다면 참으로 이상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존경하고 순종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열심히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가 보내신 주님을 인정하지 않고 그가 한 말을 거부하고 순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사랑한다면 그가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순된 유대인들을 보면서 나를 미워하는 자는 곧 내 아버지를 미워한다’(23)고 하신 것입니다. 혹자는 이 구절을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은 신앙을 동반하고 미움과 증오는 불신앙과 동반한다고 했습니다.

 

24절은 22절과 비슷한 말씀인데 여기서는 예수님은 아무도 행할 수 없는 일을 행하셨다고 했는데 그것은 주님이 행하신 여러 가지 이적들을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주님의 그 놀라운 이적들을 보았고 이적들이 주는 메시지도 들었습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든 이적,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쳐주신 것, 베데스다 연못의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것, 오병이어의 이적, 물 위를 걸으신 것,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고쳐주신 것,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것을 통하여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이신 것을 드러내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이것을 보고도 안 믿고 거부한다는 것입니다, 이 정도에 그치지 않고 오히려 나와 아버지를 미워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배은망덕한 죄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면치 못할 죄입니다.

 

저들의 거부와 배반과 믿지 못함과 불신과 미워함은 성경을 응하게 하려하심이라고 했습니다(25). 그들은 이유 없이 예수님과 하나님을 미워했습니다. 시편에 부당하게 나의 원수된 자가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못하게 하시며 까닭 없이 나를 미워하는 자들이 서로 눈짓하지 못하게 하소서’(35:19)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시편 69:4 “까닭 없이 나를 미워하는 자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고 부당하게 나의 원수가 되어 나를 끊으려 하는 자가 강하였으니 내가 빼앗지 아니한 것도 물어 주게 되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까닭없이 자신을 미워하는 대적들을 하나님께 고발하며 하나님께서 저들을 막아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고난을 자기의 고난을 예표하는 것으로 이해하신 것입니다. 세상이 예수님을 미워함으로 율법의 말씀이 성취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고난이 메시아의 자기 고난으로 이루어졌다는 말씀입니다. 분명한 것은 대적자들은 이유 없이 예수님과 하나님을 미워했다는 것입니다.

 

이 문단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놀라운 이적들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믿지 아니하고 오히려 미워했던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면치 못한다는 것입니다.

 

3. 핍박 속에서 증언하는 삶을 살라고 하셨습니다(26-27).

 

주님은 다시 한번 더 여기서 보혜사 성령님이 오시면 그 역할에 대하여 말씀해 주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26). 먼저 보혜사 성령님은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본문에서는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성경은 성령님은 제1위 되시는 성부 하나님과 제2위가 되시는 성자 예수님에 의하여 보냄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니케아 신조는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영원부터 반출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는 주님이 아버지께 기도하여 성령을 보내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성령 보혜사가 오시면 예수님을 증언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의 오실 때에라는 말은 오시면 즉시로’ ‘오시자마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오시자마자 곧장 시작하시는 사역은 예수님을 증언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라는 말은 나를 위해 계속하여 증언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은 오시자마자 주님을 증언하게 되고 주님을 위하여 증언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을 받았거나 성령 충만하거나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고 한다면 그런 사람은 반드시 곧, 지속적으로 예수를 증거해야 합니다. 항상 주님을 증거하는 것을 보아야 그 사람이 받았다는 성령충만과 은사를 인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말로는 성령 충만 하다고 얘기하면서 지속적으로 그리스도를 증거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가짜일 수 있습니다.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일차적으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을 증거하지 않는 성령의 은사는 모두 거짓일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성령이 오셔서 나를 증거할 것이라고 하셨고, 이제 이어서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언하느니라”(27)고 말씀합니다. 이는 성령님이 예수를 증거하실뿐만 아니라 제자들도 예수님의 증거자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사실 이 두 가지 사항은 하나로 합하여 말해야 할 것입니다. , 성령에 충만한 사람이 예수님을 증언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성령님이 내 안에서 나를 통하여 예수를 세상에 증언하는 것입니다.

 

여기 증언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 말은 대단히 준엄하고 무게도 있고, 부담도 되는 단어입니다. ‘어떤 사실을 증명하는 말이 증언이지만 헬라어에서는 이 단어가 순교자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증인으로 나서면 사실 죽음을 각오하고 그 앞에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른 말, 정직한 말을 하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심정으로 증언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알고 경험한 것을 죽음 앞에서도 당당하게 진술하는 것을 증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를 믿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증언하였습니다. 우물가의 여인의 증언입니다. “여자의 말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4:39). 세례요한도 예수님을 증언하였습니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더 크신 분이며,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세상 죄를 짊어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증언하였습니다. 사도 요한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고, 메시아라고 증언하였는데, 그리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이 말을 믿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목적으로 이렇게 한 것입니다. 이들은 미움을 받고 핍박을 받으면서도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같은 증언자들처럼 오늘 우리도 성령으로 충만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증거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말과 행동으로서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비록 나의 삶 속에 어려움과 핍박이 있어도 주님을 증거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결론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사는 사람들은 핍박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는 예수님도 세상으로부터 미움과 핍박을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제자들도 당연히 세상에서 어려움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세상에 속한자가 아니라 주님에게 속한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속하여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은 당연히 핍박을 받기 때문에 이것을 이상히 여길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어려움과 고난과 핍박을 받으셨지만 지속적으로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셨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을 증언하는 길이, 곧 세상을 구원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예수님의 제자들은 비록 세상에서 믿음 때문에, 주의 이름 때문에 고난과 핍박을 받아도 계속 예수님을 증언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환란의 상황 속에서도 예수님을 전하여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도록 해야 합니다. 그 길만이 사람들을 구원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를 핍박하는 것은 곧 예수님과 하나님을 핍박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핍박하는 세상이나 세상의 악한 세력들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절대로 핑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죄악을 따라 반드시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들인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어떤 상황속에서라도 하나님이 맡기신 이 사명, 그리스도의 증인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핍박 중에도 인내하며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증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어떤 내용을 누구에게 증언해야 합니까? 증언해야 할 내용은 주님이 에고 ...에이미형식으로 자신을 계시하셨던 것처럼 같은 내용으로 증언하면 됩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떡입니다.’-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먹어야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십니다.’-예수님을 믿고 바라보아야 어둠에 다니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양의 문이십니다.’-주님을 통해서만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이십니다.’-예수님은 우리를 인도해 주시고 돌보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십니다.’-예수님을 믿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만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참 포도나무이십니다.’-예수님께 꼭 붙어있어야 살 수 있습니다. 이런식으로 우리의 가족들과 친구들과 이웃들에게, 그들이 믿는 사람이든 안 믿는 사람이든, 하루에 한 번씩이라도 예수님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전한다고 그것 때문에 우리가 어려움과 미움을 당하거나 핍박을 당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혹시 불이익을 당하고 어려움과 미움을 당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주의 이름 때문에 핍박을 당할 때 이런 말씀들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벧전 4:14). 또한 하나님이, 핍박자들-세상의 군왕들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그의 앞에는 모든 열방이 아무것도 아니라 그는 그들을 없는 것 같이, 빈 것 같이 여기시느니라”(40:17). 이런 말씀들을 그대로 믿고 어려움과 핍박 속에서도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찬송/ 505(1,2)

기도 제목/

 

자유게시판 목록
구분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다음글 2025 10 19 <나의 기쁨이 충만하기를 원하노라> 운영자 2025.10.19 0 85

15010 경기 시흥시 배곧4로 42 (정왕동, 소망교회) 소망교회 TEL : 031-431-4817 지도보기

Copyright © 소망교회. All Rights reserved. MADE BY ONMAM.COM

  • Today14
  • Total379,848
  • rss
  • 모바일웹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