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레위기19:1-2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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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 [성경본문] 베드로전서1:15-16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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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16.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부흥, 삶의 회복
레위기 19:1~2; 베드로전서 1:15~16
김 대진 교수
우리는 하박국 3:1의 말씀을 통해 “부흥의 의미”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부흥은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그러진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느헤미야 8:1~12의 말씀을 통해 “참된 부흥은 무엇으로부터 시작되는가?”를 질문하고, 참된 부흥은 하나님의 말씀(신학)에 대한 회복으로부터 시작된다는 답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레위기 19:1~2과 베드로전서 1:15~16의 말씀을 통해 참된 부흥의 결과(열매)에 대해 살펴보려 합니다. 이미 말씀드렸던 것처럼 “부흥의 방향성”은 교회 밖이 아니라 교회 안을 향하고 있습니다. 즉 부흥은 교회 밖의 불신자들을 향한 전도가 목적이 아니라, 이미 신앙의 공동체 안에 들어와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교회 내의 영적 회복은 반드시 다시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회복은 자신들이 살아가는 삶의 구체적인 현장에서 고백되고 실천되며 드러나야 하는 것입니다.
제게는 한 가지 고민이 있습니다. 그것은 “목사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뼈 속까지 목사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가? 저는 우리 소망교회 성도들이 이와 같은 고민을 한번쯤은 하나님 앞에서 깊이 가져보았으면 합니다. “하나님 저는 그리스도인입니까?”, “하나님은 제가 어떠한 삶을 살아내기를 원하십니까?”
한국교회의 성장은 멈췄습니다. 일부 교회들이 여전히 성장하고 있지만, 그 역시 수평이동이 대부분입니다. 한국의 대부분의 교회는 성장이 둔화되었거나 멈췄습니다. 오히려 한국 기독교인의 수가 감소했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에 “부흥”이라는 주제와 단어는 더욱 절실하게 느껴집니다. 지금의 상황에 대한 다양한 분석과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한국교회 신자들의 삶의 문제입니다. 다시 말하면 신자들의 도덕적-윤리적 삶의 모습이 한국 사회에서 비난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의 목회자들과 교단들, 그리고 신자 개개인의 상식을 벗어나고, 사회적 이해를 벗어나고, 무엇보다 기독교 신앙의 본질에서도 벗어난 행동으로 인해 엄청난 비난을 받고 있고, 이러한 비난은 결국 교회 성장의 중요한 저해 요인으로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의 본문에 집중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상당수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얻게 된 “자유와 해방”에만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의 자유”만을 말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 만큼이나 중요한 아니 어떤 면에서는 더 중요한 “책임과 의무”에 대해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함께 찾은 본문의 내용입니다. 본문이 말하고 있는 “책임과 의무”는 “우리의 삶”에 대한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물론 이 삶은 “값없이 주어진 하나님의 의”를 근거로 한 “삶”입니다. 즉, 성경은 은혜와 삶의 문제를 함께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와 신자들이 가진 가장 큰 문제 중 대표적인 것이 “은혜로 주어진 의 즉 칭의에 대한 지식”에는 관심을 갖고 있지만, 의롭게 된 자로서의 삶에 대해서는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저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믿음과 삶”이라는 주제에 대해 깊이 고민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1. 레위기는 우리에게 “거룩함”을 말합니다.
구약성경의 세 번째 책인 레위기는 유대인 어린이들이 공부하는 첫 번째 책입니다. 더욱이 신약성경을 읽다보면 예수님과 신약성경의 저자들이 40번이나 레위기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신약성경 시대를 살았던 그리스도인들도 아주 중요하게 레위기의 말씀을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신약성경 역사의 연장선 속에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레위기의 말씀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구약성경 특별히 레위기를 재미없는 책으로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레위기의 내용들이 구약의 제사와 제물, 그리고 제사장들에 대한 정결 규례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구약의 제사와 제사장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 있는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레위기의 내용은 별천지의 이야기처럼 생각될 수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레위기의 지극히 일면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핵심을 간과한 결과입니다. 레위기는 단순한 제사의 종류, 제사의 방법, 그리고 제사장의 역할 등을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물론 그러한 내용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레위기의 내용들에는 이스라엘 백성들, 그리고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으로 편입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기대와 비전이 담겨져 있고, 바로 그것을 우리에게 레위기는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레위기가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기대와 비전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방 민족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레위기의 핵심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행할 이스라엘(그리스도인)의 예배와 삶”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전체 27장으로 구성된 레위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1장~16장까지로서 이 부분에서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드려지는 예배”에 대해, 그리고 나머지 17장~27장까지에는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야 하는 매일의 거룩한 삶”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레위기는 “거룩함”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레위기 전체에서 “거룩함”이라고 하는 말은 적어도 60회 이상 반복되고 있습니다. 즉, 적어도 한 장에서 3회 이상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레위기의 주제가 “거룩함”에 대한 것이고,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중요한 주제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레위기의 말씀을 통해 단순한 제사법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세상 속에서 온전히 거룩한 삶을 살아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2. “거룩함”이란 무엇입니까?
레위기에는 구약의 제사의 종류로부터 시작하여, 제사를 드리는 방법, 그리고 제사를 맡은 제사장들, 그리고 다양한 내용의 정결규례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다양한 작은 주제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중심역할을 하는 것이 “거룩함”입니다. 그렇다면, “거룩함”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히브리어로 “거룩함”을 의미하는 “카도쉬”라는 단어는 그 정확한 어원을 알 순 없지만 당시 고대 근동 지역의 다른 언어들을 통해 그 의미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우가리트 말에서는 “분리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고, 아카디아 말에서는 “빛나다 혹은 깨끗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종합해서 볼 때 본문이 말하는 “거룩함”이란 말은 “특정한 목적과 이유를 가지고 무엇인가로부터 구별시키고, 그리고 구별된 것은 누구도 함부로 가까이 할 수 없을 정도로 정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적용해 본다면, 이런 의미가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이방민족들과 근본적인 면에서 구별되어야 하며, 그러한 구별을 외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레위기에 기록된 정결예식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의미는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적용될 것입니다. 비록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여전히 세상 속에 살아가고 있지만, 세상과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존재이며, 그러한 구별이 구체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의 현장에서 드러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로서의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마태복음 5:13~16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레위기가 강조하고 있는 “거룩함”이라는 주제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의 문제”와 직결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정체성은 우리의 구체적인 삶이 어떻게 세상 속에서 표현되고 구현되어야 하는가를 결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3. 왜 우리는 거룩해야 합니까?
이제 우리는 “왜 우리가 거룩해야만 하는가?”에 대해 나눠야 할 것 같습니다. 몇 가지로 정리를 하면 이렇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거룩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속성입니다. “거룩함”은 하나님의 본질입니다. 그리고 온 우주에서 거룩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룩하지 못한 삶을 사는 것은 곧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거룩함”이란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이 삶의 이유이며 목적입니다. 모든 면에서 하나님을 닮아야 하며 구별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언어와 생각, 그리고 구체적인 삶의 행동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구별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의 거룩함의 가치는 교회 안이 아닌 교회 밖에서 드러나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이 거룩하라고 명령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 자신이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우리를 구원하신 구원자시라는 진리입니다. 하나님이 창조주시라고 말할 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 그리고 인간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피조물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구원자라고 말할 때 그것은 오늘 우리가 얻은 죄로부터의 자유, 그리고 그 책임으로부터의 해방은 우리의 공로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독교 신학의 본질입니다. 그러므로 바른 기독교 신학을 받아드리고 믿는 우리는 모든 면에서 하나님께 순종해야만 하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거룩하지 못한 삶을 사는 것은 곧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과 구원자 되심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반응”인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출애굽기 15:5~6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동일한 말씀이 베드로전서 2:9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글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급으로부터 구원하신 것처럼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창조와 선택, 부르심의 목적인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잃어버린 형상을 회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레위기 11:45에서도 말씀합니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급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니라.”
셋째, 그러므로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거룩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언약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레위기에 기록된 구체적인 주제들이 별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한 유사한 내용들이 당시 고대 근동 지방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위기의 말씀들이 특별한 이유는 그리고 우리가 거룩해야 하는 이유는 그렇게 정결예식을 준수하고, 우리가 세상과 구별되어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아감으로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세상에 선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고 하는 사실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교회와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은 세상과 구별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구별되지 않기 위해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유일함과 특별함을 포기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예배의 순서뿐만 아니라, 음악적인 요소, 문화적인 요소, 교회를 운영하는 모습들 거의 대부분은 세상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인간 중심적인 세계관과 방법들이 자연스럽게 적용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거룩함”과 그 반대적 의미로서의 “세속적인 것”은 우리의 삶이 누구에게 집중되어 있고, 누가 우리의 삶을 지배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4. 우리는 어떻게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까?
마지막으로 우리는 우리가 살아야 할 구체적인 거룩한 삶이 무엇인가에 대해 나누려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바울이 기록한 로마서 12:1~2의 말씀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적어도 세 가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째,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는 세상의 유행에 민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대다수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너무나도 쉽게 이 유행에 거룩함의 본질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둘째,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사실, 거룩함은 우리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의 힘으로 행하거나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거룩함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합니다. 즉, 분명 우리의 마음이 날마다 새롭고 그 변화의 증거들이 나타나야 하는데 여전히 죄의 본질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들로서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고 채우셔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하나님과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말씀을 묵상하고 공부하며 기도하는 규칙적인 삶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은 읽고, 연구하고, 묵상하고, 기도함으로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깨닫는데서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분별”이란 단순히 깨닫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기준이 되어 버릴 것을 버리고 취할 것을 취하는 구체적으로 적극적인 삶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부흥을 고민하면서 “삶의 회복”이 부흥의 중요한 내용임을 알 수 있는 구체적인 사례가 있을까요? 19세기 미국 부흥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찰스 피니와 그의 부흥운동을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피니에 대한 한국의 보수적 교단의 목회자들의 평가는 상당히 부정적입니다. 왜냐하면, 피니는 부흥에 대한 자신의 설교에서 “부흥은 인간의 것이다”라고 정의하였고,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한다”는 식의 의지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18세기 조나단 에드워즈의 부흥운동에 대해서는 상당히 긍정적입니다. 왜냐하면, 에드워즈는 하나님의 전적 주권과 인간의 전적 타락을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과 그들에 의해 진행된 부흥운동을 절대적으로 비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각기 일어났던 부흥운동의 역사적 상황과 대상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에드워즈는 인간에 대한 절대적 긍정을 가지고 정통 신앙과 신학에 대항했던 인본주의적 사상에 대한 부정으로부터 부흥이 시작되었다면, 피니는 정통신앙과 신학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들이 믿고 고백하는 것처럼 살아내지 못하던 당시 교회의 화석화된 신앙과 신학에 대한 부정으로부터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왜곡되고 변질된 예정 신학으로 말미암아 숙명론적 신앙과 신학을 가지고, 현실에 안주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사회의 부조리와 불의에 대해서도 침묵하고 있던 당시의 교회와 신자들을 향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로 의롭게 된 하나님의 사람과 교회가 마땅히 그 책임과 의무를 다 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입니다. 이것이 부흥운동의 시간 동안 피니의 설교의 핵심입니다. 물론 제가 지나치게 그를 긍정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메시지와 부흥운동의 내용은 오늘 우리 한국교회와 신자들이 깊이 고민해야 할 주제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결론적으로 저와 여러분들이 이 시대에 “연어와 같은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합니다. 연어는 물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하지만 물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물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비늘이 찢겨나가기도 합니다. 그래서 피가 나기도 합니다. 또한 자신의 몸보다 몇 배나 높은 보나 둑을 뛰어 올라야 합니다.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 부어야 합니다. 그렇게 힘겹게 물을 거슬러 자신이 태어났던 작은 물가에 도달하면 모든 에너지를 쏟아 내고 죽습니다. 연어들이 그렇게 해서 얻는 것이 무엇입니까? “산란”입니다. 알을 낳는 것입니다. 새로운 생명을 존재하게 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 목적 때문에 그 이유 때문에 연어들은 자신의 몸에 상처가 나도, 모든 에너지를 다 쏟고 죽을 줄 알면서도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입니다.
저는 연어의 모습 속에서 이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 자신도 하나님 앞에 “연어와 같은 목회자로, 연어와 같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그 피곤함과 상처 때문에 연어처럼 물을 거슬러 올라가려 하지 않습니다. 결국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만이 그리고 그리스도인들만이 가질 수 있는 유일성과 독특성을 상실한 채 세상과 동일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종종 정신이 중요하지 방법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방법은 언제나 정신에 의해 지배와 통제를 받습니다. 결코 분리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들이 세상과 동일하게 여전히 자기중심적이고 세속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살도록 선택하고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이제 이 시대에 거룩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위해 고민하는 거룩한 세대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살아내야만 하는 거룩한 삶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과 의무의 문제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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