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도록 충성하라 (계2:8-11)
이정현 목사
2012-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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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밧모섬에 유배를 가 있는 사도요한에게, 계시를 한 것이 요한계시록입니다. 이 요한계시록을 우리는 흔히 묵시라고도 합니다. 이는 비전, 이상, 계시라는 뜻인데 원래는 ‘보는 일’, ‘응시하는 일’을 뜻하는 단어였습니다. 이 계시록을 ad 97년 경에 사도요한이 썼지만,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전달된 과정을 보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를 그리스도에게 주셨고, 그리스도가 그의 천사들에게 주셨으며, 천사들이 요한에게 보여 주셨고, 요한이 그것을 다 기록하여, 오늘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제 귀 있는 자는, 성령이 우리교회에 하시는 이 말씀을 듣고,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1장 1-2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이 구절은 분명히 하나님의 계시가 우리에게 전달된 과정을 밝히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게 되는 하나의 중요한 사실은, 오늘 우리가 들고 있는 이 계시록은, 인간에 의해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주어진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것입니다. 허무맹랑한 인간의 작품이나 잘 짜여진 한편의 미래 공상 영화가 아니라, 하나님이 역사의 미래를 어떻게 할 것인지,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앞으로 어떤 일을 하실 것인지를 상세히 밝히고 있는 책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미래, 우주의 종말, 천국에 대한 소망에 대해 알기 원하는 분들은, 이 책을 부지런히 읽고 들으면 됩니다. 그러면 그런 성도들은 분명히, 약속된 놀라운 은혜와 복을 받을 것입니다. 계시록 1장 3절에,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읽음으로, 들음으로, 더 나아가서 지킴으로 복 받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제가 계시록을 너무 좋아해서 청년 때에 하루에 한번 씩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대학 1학년 때에는, 요한 계시록 주석을 대학노트 4권에 쓴 적이 있습니다. 젊은 때의 이런 일들이, 오늘날 신앙생활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이런 것이 영적인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계시록 1장은 전체에 대한 서론격의 말씀이고, 2-3장은 소아시아에 흩어져 있는 당시의 7곱 교회에 주신 말씀입니다. 2장에는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교회를 향해 말씀하신 것이 나오고, 3장에는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 말씀하신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2장에는 4개 교회, 3장에는 3개 교회를 향해서, 칭찬의 말씀과 책망의 말씀을 하신 것이 나옵니다.
이 교회들은 당시 실제로 있었던 교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 당시 교회들의 모습을 보면서, 오늘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가 어떠해야하는지를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 전체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와, 우리 각자 각자가, 어떤 신앙의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당시의 교회는 지역에 흩어진 교회들이지만, 7이라는 완전 숫자를 볼 때에, 지금의 전 교회를 말한다고 해도,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메시지는, 당시 소아시아에 흩어진 7곱 교회를 향해 말씀하신 것이지만, 지금 온 세상에 흩어진 교회를 향해, 말씀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각 교회를 향해 말씀하시는 형태와 구조가, 비슷하게 되어 있습니다. 먼저는, 그 교회를 향해 말씀하시는 주님이, 어떤 분인지를 말합니다. 그리고 나서는, 그 교회의 장점을 열거합니다. 다음은 책망할 것들을 말씀하시고요, 이어서는 권고할 말씀을 하시고, 마지막으로는,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하시면서, 편지를 마감합니다. 모든 교회를 향해서, 대략 이런 형태와 단계로 말씀하고 있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2장에서 두 번째 나오는 교회 즉, 서머나 교회를 위하여 주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전개 방식도, 다른 것과 거의 차이가 없이, 주님의 자기 계시, 칭찬, 권면과 마지막 말로 되어 있습니다. 이 순서를 따라 말씀을 살펴봄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서머나 교회는, 에베소 북쪽 약 56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교회입니다. 이곳에 있던 유대인 개종자들에 의해서, 이 교회가 설립된 것 같습니다. 이 교회가 있었던 서머나는, 에베소와 버가모와 더불어, 아시아 제일의 도시 자리를 놓고 다투던 도시였습니다. 그만큼 번영했던 곳입니다. 이곳 사람들은, 로마에 대한 충성심이 아주 뛰어 났습니다. 주전 195년에, 로마의 여신을 위하여 신전을 지어 바쳤고, 주후 26년에는, 티베리우스 황제와 로마인들을 위하여, 또한 신전을 지어 바쳤습니다. 여러번 화제나 지진으로 인하여 도시가 파괴가 되었지만, 알렉산더가 이곳을 점령한 이후로, 재건되어 큰 도시로 발전하게 됩니다. 당시 약 30만 명의 인구가 살았다고 합니다.
헬라의 어느 철학자는 이 서머나를 가리켜, ‘아시아의 사랑, 아시아의 꽃, 아시아의 단장, 아시아의 면류관’이라고 표현을 하며 극찬하였습니다.
그러면 첫 번째로, 이 교회를 향해 말씀하시는 주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처음이요 나중이라’고 하셨습니다. 알파와 오메가라는 말입니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결국 이 말은 ‘영원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 말씀은 대단한 역설입니다. 왜냐하면 처음인 사람은, 나중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처음 사람이면 처음 사람이고, 나중 사람이면 나중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자신을, 처음이요 나중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것은 한마디로, 주님이 ‘역사의 주관자’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누구든지 수 천 년 전의 역사나 현재의 역사, 더 나아가서 미래의 역사를 동시에 다스리려면, ‘역사의 주관자’가 되어야 합니다. 처음인 사람은 역사의 주관자가 될 수 없고, 나중인 사람도 역사의 주관자가 될 수 없습니다. 오로지 처음과 나중이 되시는 분만이, 역사의 주관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만이, 영원하신 역사의 주관자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라고 표현을 하셨습니다. 그는 역사 중에 죽었고, 그리고 죽은 자 가운데서, 역사 중에 또 살아나셨다는 의미입니다. 이것도 역설적인 표현인데요, 죽은 자는 살아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가리키는 말로써, 구속의 완성을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죽음은 그리스도의 비하 사역의 중심이고, 부활은 그리스도의 승귀 사역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이 둘을 합하여 그리스도의 핵심 사역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울도 그리스도의 이 사역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는 부분이 성경에 나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의 죄악을 위함이고,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를 의롭다하시기 위함이다.’( )
오늘 서머나 교회를 향해 말씀하시는 예수님은, 처음이요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분이십니다. 영원한 세상 주관자이시며,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우리를 의롭다하시기 위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분이십니다. 구속을 완성하여, 우리로 하여금 구원을 받도록, 길을 열어 놓으신 분이십니다. 주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는 것입니다.
2. 서머나 교회를 향해 칭찬하시는 부분입니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9)
한마디로 ‘환난과 궁핍 가운데서도 부요한 자’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사용된 환난이라는 단어는, ‘무거운 짐에 의해 눌리는 것’을 뜻입니다. 믿음 때문에 이들은, 다른 것으로부터 심한 억눌림을 당하였습니다. 살 소망까지 끊어질 정도로, 심한 환난을 당한 것입니다.
이 환란은 유대인들로부터 온 것이고, 핍박의 센터는 회당이었는데, 그 모임의 실상은 사탄의 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유대인들이 사탄이 하는 일에 가담하고 있기 때문에, 그 모임을 사탄의 회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일에 가담하고 있는 사람을, 하나님의 회라고 말할 수 있으나, 여전히 원수 마귀의 일에 가담하고 있는 사람들은, 사탄의 회인 것입니다. 소망교회 성도들은 한 사람이라도 사탄의 회에 들어가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히브리서 10장의 말씀에 보면, 이들이 당시 얼마나 큰 어려움을 당했는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을 견디어 낸 것을 생각하라 혹은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은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과 사귀는 자가 되었으니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10:32-34)
초대교회 신자들은 예수를 믿고 난 이후, 고난의 큰 싸움을 견디어 냈다고 했고, 비방과 환난을 당하였고,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었으며, 옥에 갇히기도 했으며, 자기들의 소유를 빼앗기기도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말로는 한 두 문장으로 표현이 되었지만, 실제로 이것이 얼마나 큰 환난인지, 우리가 가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환난을, 그들은 단순히 예수 믿는 신앙 때문에, 당하였다는 것입니다.
원래 ‘서머나’라는 말은, ‘부서진 향품’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서졌다’는 것은 그처럼 환란과 핍박이 많았다는 것을 말하고, 향품은 그것이 깨졌음에도 불구하고 향품이니까 향기를 발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름 자체에서, 이미 그 교회가 얼마나 고난과 환란을 많이 받게 될 것인지가, 암시되어 있는 것입니다. 환란으로 인하여 깨지고 부서지지만, 그래도 그 가운데서 향기를 날린다는 것입니다.
꽃 중에 백합화가 꽃향기가 진합니다. 어제 결혼한 강길남 자매가 아름답게 강단 꽃꽂이를 해 주셨는데, 거의 다 백합화입니다. 이 강단 전체에 향기가 그윽합니다. 이런 곳에 둔 백합화도 향기가 좋지만, 이것이 만약 가시밭에 피어 있다면, 향기가 더 진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람이 불어, 이리 찔리고 저리 찔리면, 그 꽃잎에서 끈적끈적한 진액이 나오는데, 그것이 향기를 더욱더 증가 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곳에 피어있는 백합보다, 가시밭에 피어있는 백합화가, 향기는 더 난다는 것입니다. 환난 중에도 신앙을 지킴으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더 날리는 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작은 불은 바람이 불면 꺼지지만, 큰 불은 바람이 불면 불수록 더욱더 타오른다.’ 성냥불이나 촛불은,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금방 꺼집니다. 그러나 산불이나 많은 장작더미가 쌓인 불은, 바람이 불면 불수록 더 타오른다는 말입니다. 믿음이 큰 사람에게는 환난도 크게 올 수 있지만, 오히려 그것으로 인하여 더 견고해 지고 신앙이 더욱더 활활 타 오르는 것입니다.
지금의 신앙인들은 너무 유약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 믿는 것 때문에 당하는 작은 불이익도 참지를 못합니다. 신앙 때문에 당하는 작은 고난도 견디지를 못합니다. 교회에서 잘못하고 죄를 지어도 책망이나 징계도 못합니다. 그래서 요즘의 그리스도인은 약해도 너무 약하다는 것입니다. ‘약해도 너무 약해요.’ 환난과 핍박이 없어도, 넘어지고 포기하고 안 나오는데, 믿음 때문에 어려움이 오면, 교회 나오겠습니까?
그러나 서머나 교회의 성도들은 어떤 환난의 바람이 불어와도 넘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물이 넘쳐 흘러와도, 불꽃이 덥쳐와도, 맹수들이 덤벼들어도, 채찍과 고문이 있어도, 심지어 죽이겠다고 위협을 해도 그들은 끄떡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신앙을 지켰던 것입니다.
그리고 10절에 보면, 엎친데 덥친 격으로, 환난이 끝나지 않고 계속된다고 하셨습니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주님은 그들에게, 앞으로 환난이 끝날 것이니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시험과 환난이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입니까? 10일 동안이라고 했는데, 어떤 사람은 이 10일을, 앞으로 오게 될 10명의 로마 통치자들이라고 주장합니다. ‘네로, 도미티안, 트랴얀, 안토니우스, 세베루스, 멕시민, 데시우스, 아우렐리안, 발레리안, 디오클레티안을 말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이것보다는 10일은 상징적인 숫자로, ‘짧은 기간’을 말한다고 봅니다. 두려워 말라고 하시면서, 환란의 기간이 결코 길지 않을 것을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환난이 끝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그 환난도 머지않아 끝날 때가 있다는 것이며, 그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3. 서머나 교회를 향한 권면의 말씀이 나옵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
여기서의 충성은 보통, ‘성실’을 말합니다. 그래서 신구약 성경에 나타난, 충성에 해당하는 모든 단어들은, 다 성실을 말한다고 보면 됩니다. 그러나 몰간이라는 사람은 이 단어를 ‘확신’이라는 말로 이해를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을, ‘어떤 어려움과 죽음에 처할지라도, 천국에 대한 확신을 가지라.’는 말로 해석을 했습니다. 몰간이 충성을 확신으로 해석한 것도, 틀린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에는, 죽을힘을 다해 충성하라는 뜻과, 죽을 때까지 충성하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충성은 몇 %의 힘만 쏟는 것이 아니고, 100%의 힘을 쏟아서 그 일을 하는 것, 즉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에 온 힘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라고 하신 것처럼, 죽을 힘을 다해 충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 일을 했다가 안했다가, 안했다가 했다가 하지 않고, 시종일관 끝까지 하는 것입니다. 내 생명이 다할 때까지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집에 사환으로 끝까지 충성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들로서 죽을 때까지 하나님의 집에 충성을 다한 것과 같이, 우리도 끝까지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1월에 충성을 했다면, 12월도 충성을 다해야 하는 것이고, 총각 때 충성을 했다면, 장가가서 가정을 가져보고, 자녀들 키우면서도 충성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서머나 교회에는 위대한 순교자 폴리갑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처음에 이 교회는 사도요한이 담임을 했고, 이어서 요한의 제자인 폴리갑이 담임을 했습니다. 그는 죽도록 충성한 그리스도의 제자였습니다. 그는 당시 총독 앞에 끌려가서, ‘가이사는 주다’라는 고백을 강요당했습니다. 폴라갑은 이를 거부했습니다.
투기장에 끌어다 놓고, 많은 군중이 모인 가운데서 총독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그리스도를 비난하고 그를 모른다고 하라. 그러면 내가 맹세코 너를 놓아 주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폴리갑은 의연하게 대답하기를, ‘내가 86년간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고 믿어 왔는데, 그는 나에게 아무런 피해도 주시지 않으셨다. 하물며 나의 주인이시며 왕이요 구세주인신 그 분을, 어떻게 배반 할 수 있는가?’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한번 더 독촉하는 총독에게, ‘그대는 헛수고를 하고 있고, 가이사의 운명을 걸고 맹세하노니, 내가 누구이며, 무엇하는자인가를 그대가 모른척 하지 마시오. 내가 지금 하는 말을 똑똑히 들어두시오. 나는 그리스도인요.’ 그리고는 잠깐 침묵이 흘렀습니다. 총독은 당황과 분노를 누르고, 다시 한번 더 협박과 회유를 하였습니다. “그대의 운명은 내 손아귀에 있다. 그대가 그 결심을 돌이키지 않으면, 준비해둔 사나운 짐승을 풀어, 너를 찢게 할 줄을 알면서도 두려워하지 않음을 보았으니, 이제는 화형에 처하겠다.” 그러나 폴리갑은 이에 굴하지 않고 총독을 향하여 단호하게, “그대는 한 시간 정도면, 타다가 꺼져버릴 불로써 나를 위협하고 있으나, 악인을 위하여 예비 된 장차올 심판과, 형벌의 영원한 불은 모르고 있소. 뭘 주저하시오. 원하는 대로 곧 시행하시오.”라고 했습니다. 잠시 후 사람들이 장작더미를 쌓았는데, 으래 그래왔던 것처럼, 유대인들도 이를 도왔습니다. 이에 폴리갑은 화형을 당하였습니다.
죽어도 그리스도를 배반하지 않고, 신앙을 끝까지 지켰던 사람입니다. 어쩌면 폴리갑은, 주님의 이 계시의 말씀을 기억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폴리갑은 끝까지 신앙을 지킴으로, 약속된 생명의 면류관을 받은 줄 믿습니다. 성경에는 생명의 면류관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면류관을 말하고 있습니다. 의의 면류관, 기쁨의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 썩지 않는 면류관이 있는데, 환난 중에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이런 면류관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결과로,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성경은 두 가지 사망을 말씀하시는데, 첫째 사망은, 영혼과 육체가 분리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흔히 죽음이라고 말합니다. 죽음은 내 안에 있는 영혼이, 육체에서 빠져 나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 사망은, 지옥 가는 것 즉, 영원한 불 못에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곳은 사후에 심판을 받아 가는 곳으로, 한 번 가면 영원히 그곳에 있어야 합니다. 예수를 안 믿는 사람들이 가는, 영원한 고통의 장소입니다.
일반인(자연인)들은, 한 번 태어나서 두 번 죽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두 번 태어나서 한 번 죽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죽기 위해 살지만, 기독교인들은 살기 위해 죽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계10:6) 둘째 사망이 예수 믿는 자들을 다스리지 못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또 “사망과 음부도 불 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 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져지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혹자는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게 하겠다.’는 이 말씀을, ‘승리자에게는 사악한 자들을 기다리는, 파멸의 늪에서 벗어나는 축복이 있다.’는 말로 해석을 하였습니다.(메릴 테니) 여러분도 끝까지 충성하므로, 이기는 자들이 되셔서,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기를 바랍니다.
결론
1. 환난과 궁핍이 있어도, 끝까지 신앙을 지키고, 충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믿음 때문에 조롱을 받기도 하고, 핍박을 받기도 하며, 손해를 보기도 할 것이고, 빈정거림과, 미움을 받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초대교회 특별히 서머나 교회를 본받아서, 끝까지 인내하시고 신앙을 지키며 저 천성을 바라보며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마5:11-12)
'no cross no crown'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십자가 없이는 면류관도 없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고난과 어려움과 환난이 없으면, 영광과 면류관도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음을 믿으시고, 앞을 향해 전진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추운 겨울이 다가옵니다. 비가 오고, 여기에 눈까지 옵니다. 주일에 교회 나오기 싫겠지요? 아랫목이 그립겠지요?
어렵게, 힘들게, 잔소리 들어가며 월급을 받았습니다. 이 월급가지고 한 달 쓰기가 부족합니다. 생활비, 교육비, 이자, 양가 부모님 용돈, 레저 스포츠 비용에 쓰기도 모자랍니다. 여기에 11조를 내라고 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갈등과 어려움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소망교회 성도들은, 이런 것들이, 여러분의 신앙을 막을 길이 없음을, 보여 주시기 바랍니다.
2. 끝까지 충성하는 것입니다. 성실하게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앞에서 폴리갑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러분, 그 사람이 왜, 총독의 재판 자리로 끌려 나갔는지 아십니까?
그 당시 교회가 핍박을 받을 때, 로마인들이 10여세의 소년 챠만익을 잡아다가, 맹수의 굴에 던지게 됩니다. 그런데 맹수의 굴에서도 그 아이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히려 잡아먹으려고 달려드는 맹수 앞에서, 하나님께 찬송을 부르는 것입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로마 관리가, 이것은 분명 저 소년의 수령이 저를 유혹했기 때문이라고 판단을 합니다. 그래서 당시 서머나 교회의 초대 감독이었던, 폴리갑을 잡아 묻게 된 것입니다.
결국 폴리갑의 순교 이전에, 맹수 앞에서도 신앙을 버리지 않고, 하나님께 찬송하던 어린 소년이 있었던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환난과 핍박 중에도 신앙을 끝까지 지켰습니다. 죽을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께 충성을 다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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