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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구할 것인가? (마6:31-34)
이정현 목사 2013-02-24 추천 0 댓글 0 조회 417
여러분, 오늘 본문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일평생 동안 무엇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 것인지 말씀을 통해 잘 배우시고, 말씀대로, 그 기도제목대로 기도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 되기를 바랍니다. 2월은 기도의 달입니다. 지금까지 세 주의 걸쳐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첫 주에는 다윗이라는 사람은 항상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응답받아서 실행에 옮겼다, 다윗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응답받아 실행에 옮겼다면, 오늘 저와 여러분도 다윗처럼 기도하고 응답받고 실행에 옮기길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사할 때도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이사를 가야 합니다. 자녀들이 시집 장가 갈 때에도 분명히 그 가운데에 기도가 많이 필요합니다. 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것이 뜻이라면 시집 장가를 가야하고, 앞으로 진로의 문제도 마찬가지고, 학생들의 대학선택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고 응답을 받고 난 뒤에 실행에 옮길 때 그 삶이 복되고 행복하고 형통한 삶인 줄 믿습니다.
둘째 주에는 이스라엘이 타락하고 부패한 모습이 되었을 때 저 높은 정치인들에서부터 낮은 백성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부패하고 타락하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살아갔을 때 하나님께서 저 민족을 심판하고자 하실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의 이 진노를 가로 막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자가 있다면 이 심판을 멈출 수도 있겠다 하는 그런 말씀을 했음을 우리가 기억합니다.
마치 모세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만 했을 때에 모세가 가운데 서서, 하나님, 이 백성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중보기도 함으로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 그 민족이 용서를 받고 편안하게 살아가게 된 것처럼, 에스겔 시대 때에 하나님의 심판을 가로 막을 중보기도자를 찾으시는 말씀을 우리가 들었습니다.
지난주에는 맹인이고 거지였던 바디매오가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문을 듣고 절규하며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이 사람은 조용히 기도한 것이 아니라 부르짖으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사람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잠잠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속에 한 섞인 기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부르짖을 때에 주님의 부름을 받고 가서 “네 소원이 뭐냐?” 할 때 “눈뜨길 원합니다.”
믿음으로 찾아 나온 바디매오의 그 소원을 예수님께서 들어주셔서 그 즉시로 눈을 뜨게 해주신 것을 우리가 보았습니다. 이처럼 바디매오처럼 이런 믿음을 가지고 간절히 주님 앞에 나오기만 한다면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 말씀에 따라서 바디매오도 그 무거운 짐을 풀어주셔서 자유와 기쁨과 해방을 주셨음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그 마지막 넷째 주일이어서 기도에 대한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이 본문은 마태복음 6장에 포함되어 있는데, 마태복음 6장에는 몇 가지 내용이 나옵니다. 제일 처음에는 우리가 구제를 할 때 “왼손이 하는 것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 이런 교훈의 말씀이 나옵니다. 이 말씀을 저는 이렇게 해석하고 싶습니다. 구제를 하고 나서 그 구제한 사실을 잊어 버려라. 그것 기억하지 말고 내가 저 사람에게 섬겼던 것을 크든 작든 잊어버려라, 잊어버려야 하나님께 상 받는 일이 된다 라고 말입니다.
다음에는 기도에 관한 말씀이 나옵니다. 바로 이방인처럼 기도하지 말라 라고 하셨습니다. 이방인들은 중언부언하는 기도를 한다. 여기서 중언부언이라는 말을 헬라어로 “파트파트”라고 하는데 이것은 아빠아빠라는 말입니다. 아이들이 ‘아버지’의 의미를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면서 ‘아빠아빠’하면서 쫓아다니는 것과 비슷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기도하면서 누구에게 기도하는 지도 모르고 무턱대고 아빠아빠하며 기도하지 말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어서는 형식적으로 위선적으로 기도해선 안된다 라고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거리에서 내가 기도하는 사람이고 기도를 많이 했음을 사람들에게 나타내 보였습니다. 예수님은 기도에 관해 가르치시면서, 이런 유대인들처럼 외식적이고 형식적인 기도를 하지 말 것을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골방에서 기도하라 너희가 골방에 들어가 은밀한 중에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갚아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기도할 때 절대로 이방인처럼 중언부언하는 기도나 유대인처럼 위선된 기도를 하면 안 된다. 너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 라고 하시며 주기도문을 통해서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가 기도해야 할 모범적이고 샘플적인 기도임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난 이후 예수님께서 재물사용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제일 처음엔 구제에 대해, 그 다음엔 기도, 그 다음엔 재물사용에 대해 말씀에 주셨는데, 너희의 재물을 이 땅에 쌓아 두지 말라, 이 땅의 재물은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늘나라에 너희에 재물을 쌓아 두라 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물질을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그 제물은 하늘나라에 쌓아두는 것이 된다는 것이 주님의 교훈인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재물을 이 땅에 쌓아 두지 말고 저 하늘나라에 쌓아 둘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후에 마태복음 6장 중 하반부에 가서 먹는 것, 입는 것, 마시는 것, 염려하지 말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다시 말해 의식주에 대해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 심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거두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 새들을 먹이시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들에 있는 백합화를 봐라. 길쌈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입히시는데 솔로몬의 영광보다 더 귀한 것으로 입었지 않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희들은 공중에 나는 새들보다도, 들판의 백합화보다도 귀한 존재다 라는 것입니다. 반드시 우리의 것을 채워 주시고 함께 해주시는 하나님이 주심을 성경은 분명히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염려라는 말은 라틴어로 ‘웨겐’이라는 말입니다. 이 ‘웨겐’이라는 말은 서서히 숨통을 조인다는 의미입니다. 마치 사나운 짐승이 사냥감을 숨통을 조이면서 생명을 끊는 것처럼 그런 순간을 가리켜서 ‘웨겐’이라 라틴어는 표현하고 있습니다. 서서히 숨통을 조이면서 생명을 죽이는 것, 이것을 ‘웨겐’이라고 하는데, 이 단어에서 영어의 worry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의미로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인가 하면, 우리가 먹을 것 입을 것, 여러 가지 것을 염려하면 그 염려 하는 것으로 인해 그것이 내 목을 서서히 조여 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내 목숨을 끊어 놓게 될 것이다 라는 그런 의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염려는 백해무익한 것입니다. 나에게 유익이 안 되는 것입니다. 염려해서 그 문제가 해결 되는 것은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주님께서 사랑하는 저와 여러분에게 말씀하시기를, 먹는 것 입는 것 마시는 것 이런 것들을 염려하지 말라고 권면하셨습니다.
어느 심리학자가 말하기를 염려는 느린 형태의 자살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느린 형태의 자살이라는 것입니다. 단순히 목숨을 끊는 순간적인 자살이 아니라 느린 형태의 자살이라는 것입니다. 염려가 서서히 염려하고 염려하고 염려하고 걱정하고 근심하면 내 목숨을 조여와서 결국에는 염려로 인하여서 자기 목숨이 끊어집니다. 염려라는 것은 느린 형태의 자살이라고 심리학자가 말합니다. 염려함으로 키가 한 자를 더 하겠습니까? 걱정하고 염려함으로 우리의 키가 한 자를 더 하지 못합니다. 성경은 더 말합니다.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입니다.
지난 금요일에 설교하신 목사님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젤리스키라는 사람이 “느리게 사는 즐거움”이란 책에서 이렇게 표현한 것을 소개했습니다. 젤리스키라는 사람이 염려 걱정의 40%는 현실에 일어나지 않는 일에 대한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지금 현실의 염려거리 100% 중에 40%가 현실에 일어나지 않는 일에 대한 것입니다. 일어나지 않는 미래의 일을 앞당겨서 염려하는 것입니다. 일어나지 않는 일입니다. 현재 일어나지 않는 일입니다. 미래의 일을 40%를 앞당겨서 염려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30%는 과거를 염려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중에 22%는 사소한 것입니다. 저녁에 빵을 먹을까 고기를 먹을까 하는 고민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중에 4%는 우리 힘으로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고, 나머지 4%는 자기 힘으로 일을 바꿀 수 없는 걱정을 하는 것입니다. 이 통계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을 너무 염려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너무 염려하지 않느냐고 합니다.
잠언 15장 13절에 보면,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잠언 17장 22절에는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근심걱정을 하게 되면 내 심령이 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근심 걱정을 하게 되면 뼈가 마르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라고 권면하셨습니다. 빌립보서 4장 6-7절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아무것도 라는 말 속에 우리가 염려하는 모든 염려거리가 다 포함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염려거리 대신에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시고 우리 마음속에서 염려하고 걱정하는 것을 모두 없애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염려거리를 하나님 앞에 내어 놓고 기도하심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아름다운 평강의 마음으로 채우시길 바랍니다.
오늘 성경에서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무엇을 기도해야 되는지 알려주고 계십니다. 현재 무엇을 놓고 기도하고 있습니까? 자기 자신을 위해서, 가정을 위해서, 자식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어떤 기도 제목을 놓고 기도합니까? 과거에는 어떤 기도를 했습니까? 현재 기도하는 기도 제목은 무엇입니까? 미래에 기도하는 기도 제목은 무엇입니까? 과거 현재 미래에서 어떤 사람에게든지 동일한 기도제목은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영원토록 바뀌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지 하나님에게 계시를 받았기 때문에 그것을 놓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다 공급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을 간구하고, 하나님의 간섭을 간구하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간구하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교회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생활합니다. 어떤 삶을 살든 간에 하나님의 간섭과 다스림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받기 위해 기도하는 것을 하나님의 나라에 기도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은 바른 생활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깨닫게 되면 말씀대로 바르게 사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매일 매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위해서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개를 하나로 묶어서 하나로 말하면 우리가 일평생 동안 잊지 말고 기도할 제목은 무엇이냐면, 하나님의 다스림과 인도를 받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의롭게 가르침을 받아서 의롭게 살기 위해서 기도해야 된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먹는 문제 놓고 기도해야 됩니다. 돈을 쓰는 것을 위해서, 공부하기 위해서, 직장을 구하는 것에 위해서, 시집 장가 가기 위해서, 전도하고 예배 생활하는 것도 하나님의 생활을 닮기 위해서 기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잘 되기 위해서 노력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왜 교회가 잘되기 위해서 기도를 해야 됩니까? 하나님 나라의 지부가 바로 교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가 잘 되기 위해서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과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기관과 구역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 부흥 발전을 위해서 기도해야 됩니다. 건강한 교회, 모범된 교회가 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더 많이 구제하고, 더 많이 섬기고, 더 많이 장학하고, 더 많이 선교하기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 안 믿는 사람은요 의식주에 집착해서 삽니다. 가져도 더 가지려고 하고, 먹어도 더 좋은 것을 먹으려고 합니다. 차도 더 좋은 것을 타려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말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의식주에 매여서 살아갑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것들을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염려하지 말라는 것을 왜 그렇게 성도들은 염려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것들을 염려하지 말고 기도해야 할 것을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기도를 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약속을 굳게 믿고 저와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시는 모든 것을 다 주실 것입니다. 이 약속을 믿고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사랑하는 소망교회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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