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목사설교

  • 예배 · 설교 >
  • 이정현목사설교
가상칠언2 (마27:45-46, 요19:28-30, 눅23:44-46)
이정현 목사 2013-03-24 추천 0 댓글 0 조회 404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달리셔서 오후 3시까지, 장장 6섯 시간 동안 십자가 위에 계셨습니다. 그 위에서 갖은 고통과 멸시와 천대를 받으셨습니다. 그러시면서도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의미 있는 7곱 마디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지난주 살펴본 세 마디 말씀은, 첫째가 ‘아버지 저들의 죄를 사하여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둘째는, 한편에 있는 강도에게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셋째는, 마리아에게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요한에게는 ‘보라 네 어머니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이 세 마디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죄 용서를 받고, 천국을 허락 받으며, 영원한 하나님의 가족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오늘은 여기에 이어서 네 번째에서, 마지막 7 번째까지의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가상칠언 중 나머지 네 개를, 순서적으로 살펴봄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4.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마27:45-46, 막19:33-34),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재판 절차도 제대로 밟지 않고, 십자가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모진 채찍을 당하셨습니다.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채찍으로 수없이 맞았습니다. 그리고 가시관을 쓰셨습니다. 억샌 가시채로 엮은 관을 뒤집어 쓰심으로, 가시가 머리의 뼈 속까지 파고드는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드디어 손과 발에 커다란 대못을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이러실 때에도 주님은, 한마디 말씀도 안하시고 침묵하셨습니다.
 
이제 십자가 위에서 3시간의 시간이 흐른 후 주님은, 고통의 절정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주님이 절규하시며 말씀하신 것입니다.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
 
-사람들은 고통이 절정일 때 비명/ ‘악, 사람살려, 차라리 죽고 싶다.’
-말기 암 환자의 고통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뼈를 깎는 고통이고, 땅 바닥을 때굴때굴 굴러는 고통입니다.
-임 산부의 고통은 또 어떻습니까?/ 생살이 찢어지는 고통입니다. 뼈마디가 늘어나는 고통입니다. 이것을 몇 시간 동안 당하여야 합니다.
-류마치스 관절념 환자들의 고통도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고통들은 다, 창조주의 손 길 안에서 겪는 고통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보호아래서 당하는 고통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당하신 이 고통은, 하나님으로부터 거절당하고, 버림 받은 고통입니다. 창조주의 손으로부터 외면당하는 고통이었습니다. 창조주의 관심이나 보호로부터 거절당한 고통이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주님의 고통은, 인간이 당하는 그 모든 고통과는 비교할 수 없다고 봅니다.
 
시22/ 다윗...“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하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1) 이것은 다윗이 당했던 처절한 고통을, 다윗이 하나님께 탄원했던 시입니다. 여기에도 보면 다윗은,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 멀리하셨다, 돌아보지 아니하셨다, 내 신음소리를 듣지 아니하셨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를 돌보지 아니했다는 말씀이 아니라, 그만큼 돌보지 아니하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정도로, 고통을 크게 당하였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다윗의 실제적인 마음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입니다. 다윗의 이 말을 받아서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이렇게 절규하시는 것입니다.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주님은 지금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고통의 절정을 겪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님이 당하시는 이 고통을, 아는 채 하실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고 피를 흘리시는 것은, 곧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달리고 계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대신 십자가 위에서 형벌을 받으시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는 채 하시거나 거기서 내려 보내시면, 결코 우리의 죄가 사하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십자가 위에 예수를 버리시는 것이며, 예수는 버림 받은 고통을 겪어야만 하셨던 것입니다.
 
결국 이 모든 고통은, 바로 나를 위한 고통이었습니다. 내가 거기에서 고통과 수모와 멸시를 받아야 하는데, 주님이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하나님께 버림을 받음으로, 우리는 하나님께 안기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저주를 받음으로,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찔리고 상함으로, 우리는 나음을 입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려주심으로, 우리는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5. 내가 목마르다(요19:28-29).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장장 6섯 시간 동안 있으면서 피를 쏟았습니다. 태양 빛에 현기증이 납니다. 심한 갈증을 느낍니다. 이때의 목마름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목마르다’는 말씀 앞에, ‘성경을 응하게 하려하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의 성취를 위하여,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목마르다 하시니, 성경이 응하였다’가 아닙니다. 성경을 응하게 하려하여 목마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항상 말씀에 준하여 살아가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예)노아/ 120년 동안 방주를 짓는데..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짓는 것입니다...주위로부터 무슨 말을 들어도...방해가 있어도...정신 나갔다고 해도...어떤 핀잔을 들어도...봄 여름 가을 겨울이 수십 번 바뀌어도 시종일관, 말씀에 순종하여 하루하루 방주를 지은 것입니다. 결국 말씀대로 방주를 지어, 심판 날에 구원을 받게 됩니다.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조롱과 멸시와 천대를 받으시면서도, 말씀대로 사셨습니다. 말씀을 그대로 지키셨습니다. 말씀을 이루셨습니다.
 
-주님은 말씀대로 사셨고 말씀대로 죽으셨습니다. 언생언사..말씀대로 살고 말씀대로 죽는다는 것입니다.
 
예)고전 4-바울이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이런 말을 합니다. ‘너희는 우리를 본 받아,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예)옛날 1500-1600년의 종교개혁자들/ 말씀이 가라는 데까지 가고 말씀이 멈추라는 데서 멈춘다.
-예수님은 말씀대로 낮고 천한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우리와 같이 목마른 인생이 되셨다가, 마침내 말씀대로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에 대한 온전한 순종이, 우리의 구원을 이루신 것입니다.
 
6. 다 이루었다(요19:30).
 
이 말씀은 예언을 다 이루었다는 뜻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다, 구원을 다 이루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고로 예수의 십자가는 완전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다. 완전한 구속의 역사를 이룬 것입니다.
 
-누가 감히 이런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말씀을 다 이루었다. 내가 구원을 이루었다. ...그리스도만 할 수 있는 말입니다. 구원의 역사를 마침내 이루신 것입니다. 죄와 죽음과 지옥의 문제를 말끔이 해결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승전보 중의 승전보이며 복음 중의 복음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
 
그리하여 주님의 이 말씀 안에서, 구원과 참 평안과 안식을 누리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다 이루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이런 일로 걱정, 근심, 불안이 없게 하셨습니다.
 
시13:1-2/“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나의 영혼이 번민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치며 자랑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 시편 기자는 근심과 걱정이 많았습니다. 외부로부터 핍박을 받았습니다...시편 기자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내 기도를 들어달라고 기도합니다...하나님이 나를 건지사 기쁨을 주셨다...근심 걱정, 불안을 없애 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불안해 하니까, 예수님이 그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구원을 다 이루셨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지옥에서 건지시고 영생을 이루셨습니다. 미래에 대하여 염려하지 마십시오. 이 사실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7.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44-45).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6시간 동안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지금 하늘의 해가 빛을 잃었습니다. 온 세상이 캄캄해져 갔습니다. 그리고 성전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져 둘이 되었습니다. 이때 주님이 마지막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마지막 말씀, 일곱 번째 말씀이 바로, 자기의 영혼을 하나님께 의탁하는 기도였습니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주님이 가상 칠언 중 첫 번째 말씀이,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는 기도였는데, 마지막도 자기의 영혼을 아버지께 맡기는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때 성소의 휘장이 찢어졌다고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소의 휘장은 지성소와 성소를 구분하는 두꺼운 천입니다.
 
일 년에 한 차례만 피를 가지고, 대제사장이 이 지성소로 들어갈 때, 이 휘장을 젖히고 들어갔던 것입니다. 대제사장 외에 아무도 이 휘장을 젖히고 안쪽으로 들어갈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바로 이 휘장이 찢어져서 둘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휘장은 한마디로 주님의 몸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휘장이 찢어짐은, 주님의 몸이 찢어짐을 말하는 것입니다. “때가 제 육시 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며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눅23:44-)
 
히브리서에서는 이 사건을, 이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9:7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 년에 한 번 들어가되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9:8 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는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 9:9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9:11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9:13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9: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히9:1-14)
 
이어서 히브리서 기자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10: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10:21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10: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10:19-22)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당신의 몸을 찢으심으로, 우리를 위하여 ‘새롭고 산길을 열어 놓으시고’, 그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운명하셨습니다.
 
결론
 
우리는 두 주간에 걸쳐서, 가상칠언을 살펴보았습니다.
 
1.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하나님께 기도한 것임
2.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강도에게 한 말
3. 마리아에게,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라./양자를 소개한 것임
4.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주님의 절규입니다.
5. 내가 목마르다./
6. 다 이루었다/...독백
7.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부탁하나이다./하나님께 의탁하심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으시고, 고통과 멸시와 천대를 받으신 것은, 바로 우리를 위함입니다. 바로 나를 위함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오래 전에 이 사실을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53: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53: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53:8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사53:3-8) 분명히, 그분의 찔림과 채찍과 슬픔과 상함은, 우리를 위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라는 영화가 상영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서의 고통스러운 장면을, 리얼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았습니다. 음란물도 아니고, 폭력물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런 판정을 받은 것입니다. 주님이 매를 맞고 십자가를 지고, 못 박히고 허리에 창을 받는 것이, 너무 리얼하고 잔인하다고, 청소년 관람불가로 정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 사건을 보지 않으신 분이 계십니다. 하나님이 관람을 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버렸음으로 그 장면을 보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외면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지요? 그분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고자 하심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과, 일찍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 주님께, 영원토록 영광과, 존귀와,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예)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
자유게시판 목록
구분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한 부활, 두 소식(마28:11-20) 운영자 2017.02.14 0 462
다음글 앞날에 좋은 일이 많기를.... 유기성 2017.02.10 1 1830

15010 경기 시흥시 배곧4로 42 (정왕동, 소망교회) 소망교회 TEL : 031-431-4817 지도보기

Copyright © 소망교회. All Rights reserved. MADE BY ONMAM.COM

  • Today96
  • Total358,149
  • rss
  • 모바일웹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