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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누구를 역사의 주인공으로 쓰시는가?(삿1:1-7)
이정현 목사 2013-09-22 추천 0 댓글 0 조회 684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배워야 합니다. 지나간 역사를 통하여 분명한 교훈을 얻지 못하면, 미래에 발전이 없는 것입니다. 잘못된 역사를 통해서는, 다시는 이러지 말아야 하겠다는 교훈을 받아야 합니다. 잘한 역사에 대해서는, 현대에 맞게 더 잘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긍정적인 교훈을 받아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역사는 귀한 선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윈스턴 처칠은, "역사는 영원히 반복되며, 역사를 망각한 민족에게는 미래도 없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좁게는 개인과 가정의 역사를 통해서 배울 점도 있고, 넓게는 나라와 세계사를 통해서, 배울 점이 많은 것입니다. 더더구나 우리 기독교인들은, 교회의 역사와 성경의 역사를 통해서, 교훈을 받아야 할 점이 많은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사와 성경은, 우리에게 귀한 선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지금으로부터 3500년 전, 히브리인들의 역사 한 면을 다루고 있습니다. 사사기 역사의 한 부분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대로, 사사기는 여호수아가 죽고 난 이후에, 약 350년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책입니다. 이 시기를 일컬어 12지파 동맹시대라고 하기도하고, 또한 영적 암흑기라고도 부릅니다.  
사사시대는 특별히, 네 가지 내용으로 돌고 도는 역사를 취급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지으면, 거기에 따른 하나님의 심판이 있고, 그러면 괴로움과 고통 속에서, 그 백성이 회개하게 되고, 그러면 하나님이 그들을 회복시켜 주시고, 태평한 세월을 보내게 하십니다. 한참 안전하고 평화로운 세상이 되다가, 또 그 백성들이 죄를 짓고 타락하게 되면, 그들의 삶은 같은 싸이클로 반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사기는 네 개의 단어 즉, 죄-심판-회개-회복의 반복 시대라고 말합니다.  
사사기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많은 교훈을 줍니다. 그러면 먼저 오늘 본문을 통하여, 어떤 교훈을 하고 계시는지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1절에 보시면, 이스라엘의 지도자 여호수아가 죽었습니다. 민족의 지도자가 죽었다는 것은, 시대의 흐름과 변화를 의미하는 말씀입니다. 창세기는 요셉의 죽음으로 끝이 나고, 출애굽기는 모세의 출생으로부터 시작을 합니다. 그 모세는 민수기 끝부분에서 죽고, 여호수아서는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으로부터 시작을 합니다. 그 여호수아가 죽고, 이제 사사시대라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한 민족의 훌륭한 지도자가 죽고, 특별한 지도자가 없는 상태에서, 낯선 땅에서, 외세의 침략을 항상 받을 수 있는 상황 속에서 산다는 것은, 여간 불안한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 전체는 대략 점령을 해 놓았지만, 아직 각 지파에 할애된 구체적인 땅들은, 정복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백성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 백성들이, 하나님께 기도한 것입니다.  
이 말씀이 현대 우리교회에 주는 교훈은 이런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죽고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아직도 상황은 불안합니다. 각 지파가 정복해야 할 땅이 남아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해야할지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은 바뀌고 시대가 바뀌어도, 하나님은 변치 않으시고, 여전히 살아계시며, 그 백성들과 함께 하시며,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시며, 그들 가운데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옛날의 대한민국은 농경사회였습니다. 농경사회가 산업사회가 되었고, 산업사회는 최근 정보사회가 되었습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산업사회에 이어, 정보화 사회로 접어들었습니다. 옛날에 비해 너무나 갑작스럽게 사회가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시대마다 이 역사를 이끌어갔던, 민족의 지도자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조선의 500년 역사동안 수많은 왕들이 지나갔고, 그 이후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하여, 박정희, 전두환, 김영삼, 김대중, 이명박에 이어 박근혜 님이 이 나라의 대통령입니다. 이 중에는 살아계신 분들보다, 돌아가신 분들이 더 많습니다. 그리고 살아계신 분들도 언젠가는 죽을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지도자라 할지라도, 그 지도자도 죽는다는 것입니다. 
시대가 변하고, 지도자는 죽지만, 하나님은 변치 않으시며, 세상만물에 대해 여전히 주관하시고 다스리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초반부에서는, 이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다스리실 때, 그 시대마다 꼭 필요한 사람을 들어서 쓰시는데, 어떤 사람이 이 시대의 주역으로 쓰임을 받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쓰실까요? 기왕이면 하나님 앞에 귀하게, 크게 쓰임 받기를 원하는데,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그렇게 쓰실까요? 
1. 여호와께 부르짖는 사람을 쓰십니다.
1절에 보시면,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리이까.”라고 합니다. 
민족의 지도자가 죽고, 더 이상의 뚜렷한 지도자가 없으니까, 이제 이스라엘 사람들이 물어볼 때가 없었습니다. 이제 각 지파별로 가나안의 각 부족들과 싸워서, 분배받은 땅을 차지해야 하는데, 어느 지파부터 나아가서 싸워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하나님께 여쭈어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 누가 먼저 올라가서 싸우리이까?’ 
본문에서는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었다’고 되어 있으므로, 민족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민족을 열방의 주인공으로, 사용하시는 것입니까? 기도하는 민족입니다. 기도하는 민족을 들어서, 세계만방의 빛과 소금으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나라를 통하여,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과 하나님의 영광을, 세계 가운데 들어내시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기도하는 개인을, 하나님이 들어 크게 사용하십니다. 특히 개인이 어려움을 당하고, 가정에 우환질고가 있고, 교회에 시험이 있고, 나라와 민족이 위태한 일이 있을 때, 가슴을 쥐어짜면서 울며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들이 있을 때, 하나님은 바로 그런자들을 들어서, 빛으로 쓰신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어려움, 가정의 우환질고, 교회의 시험, 나라와 민족의 위기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무감각한 그런 사람들, 또 이런 일에 관심조차도 없는 그런 사람들을 하나님은 쓰시지 않습니다. 늘 하나님 앞에 깨어 경성하는 그런 사람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중요한 것은, 바른 동기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바르지 못한 동기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도 있다는 뜻입니다. 자기의 욕심을 채우고자 하거나, 자기의 명예를 높이고자 하거나, 부정한 마음으로 기도하거나, 자기의 의를 들어내면서 기도하는 것은, 바른 동기에서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르지 못한 동기로 기도하는 것은, 아무리 그 기도가 길고 애절하다할지라도, 하나님이 응답하실 수가 없으면, 또한 그런 자를 사용하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마음 태도로 기도하는 것이, 바른 동기로 기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바른 동기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려면. 먼저 나는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게 인생인데, 이것을 겸허하게 인정해야, 바른 동기에서 기도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데 자기 욕심이나 채우고 자기 명예나 높이려는 기도를 하겠습니까? 
그리고 나는 인생사 무엇이든,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돈 가지고 내 아이들의 건강과 안전을 지킬 수 있다면, 기도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능력으로, 군대 간 아이를 매일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면, 겸손하게 하나님께 의지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힘으로 머리카락 하나라도, 희게 하거나 검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할 때, 바른 동기로 하나님 의지하여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른 동기로 기도하려면, 나에게는 의가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나에게는 하나의 의와 선이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바른 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에게는 의가 없습니다. 선한 게 없어요. 다 부패하고 타락했습니다. 이런 마음이 되어야, 바른 동기로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엎드려, 마음을 떧으며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민족과, 기도하는 사람을 들어서 크게 사용하시는데, 바른 동기에서 기도하는 사람을 쓰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바른 동기에서 기도하려면, 나는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 나는 무엇을 해결할 능력이 없다, 나는 의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잠3: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바른 동기에서 기도하려는 사람은, 나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존재임을 인정해야 되고, 나는 무엇을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며, 나에게는 의가 없다는 것도 인정해야 함과 동시에,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어주셔서, 그를 선하게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입니다.  
기도하는 아브라함, 기도하는 사무엘, 무엇이든 묻고 행한 다윗, 기도하는 선지자들, 기도하든 사도들, 기도하는 의사 누가, 기도하는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 기도하는 허드슨 테일러, 기도하는 뮬러, 기도하는 이엠 바운즈, 기도하는 손양원 목사, 기도하는 주기철 목사 등등, 기도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사용하신 것입니다.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들을, 민족의 지도자로, 교회 부흥의 주역으로, 교회의 리더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무릎 꿇고 마음을 토해 놓고, 간절히 부르짖는 사람을, 하나님이 이 시대의 주역으로 사용하십니다.

 
2.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그 시대의 주인공으로 쓰시는가? 선봉에 서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리이까?’라고 하나님께 여쭈어 보았더니, 유다가 먼저 올라가라고 하셨습니다. 기도에 하나님이 즉각적으로 대답을 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시면서 하나님이, 그 땅을 너의 손에 넘겨주었다고 하셨습니다.
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유다가 올라갈지니라. 보라 내가 이 땅을 그의 손에 넘겨주었노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이 전쟁의 선봉에 유다가 서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12지파가 애굽에서 나와서 광야생활을 할 때, 성막을 중심으로 진행할 때, 앞쪽에 3지파, 양 옆쪽에 각각 3지파씩, 뒤쪽에 3지파가 따라 갔던 것입니다. 이 중에서 어떤 의미로, 제일 앞에 서 있던 지파가 유다지파였습니다. 그리고 전체 지파 중에서, 인구가 제일 많은 지파였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갈 때, 제일 앞장 선 지파가 유다였는데. 바로 그 지파보고 하나님이, 네가 앞장서서 올라가 싸우라고 하신 것입니다. 마지막에 선 지파나 사람보고, 앞장서서 나가서 싸우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 잘 보시기 바랍니다. 무슨 일을 하는데, 뒤 따라가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사람도 그 일에 나름대로 필요한 사람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런 사람을, 주도적으로 쓰시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뒤쳐진 사람들은, 대부분 남들이 하는 것을 보고, 뒤 따라가는 사람에 불과합니다. 어떤 사람이 맨 뒤에 서는지 아십니까? 우리 편이 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뒤에섭니다. 여차여차하면 도망가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기회주의적인 사람들이, 주로 뒤에 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선봉에 선 사람을 하나님이 사용하시고, 그런 사람에게 약속을 주시는 것입니다. 
먼 거리를 날아다니는, 기러기를 보시기 바랍니다. 항상 앞장서서 날아가는 기러기가 있습니다. 그 놈은 바람의 저항을 가장 많이 받습니다. 그래서 힘듭니다. 방향을 바로 정해야 하는 사명도 있습니다. 늘 신경을 써야합니다. 그러나 그 앞장 선 기러기 때문에, 기러기 떼가 무사히 먼 거리를 비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앞장서는 유다에게 하나님이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이 땅을, 그의 손에 넘겨주었노라 하시니라.’ 중요한 사실은, 이 문장의 동사가 현제완료형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미 ‘넘겨주었다’는 말입니다. 상황이 종료되었다는 말이고, 전쟁에 이길뿐만 아니라, 땅도 이미 주어졌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선한 일에, 특별히 교회 일에 앞장서는 사람을 사용하시고요, 그런 사람에게 은혜를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소망교회 성도여러분들은 교회 일을 할 때, 뒤처지지 마시고, 앞장서셔서, 그 일을 잘 감당함으로, 하나님의 약속의 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사람은, 혼자 일하지 않고 동역자를 구합니다. 그리하여 동역자와 함께 그 일을 해 나갑니다.
3절에, “유다가 그의 형제 시므온에게 이르되, 내가 제비 뽑아 얻은 땅에 나와 함께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자. 그리하면 나도 네가 제비 뽑아 얻은 땅에 함께 가리라 하니, 이에 시므온이 그와 함께 가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유다지파는 당시 74,600명이었기 때문에, 충분히 자기들만 올라가서 싸울 수도 있었을 것이지만, 혼자가지 아니하고 시므온과 협력을 합니다. 당시 시므온 지파의 인구가, 59,300명이었기 때문에, 합하면 엄청난 연합군이 되는 것입니다. 이 두 지파가 합하여 가나안 족속을 치러 올라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선한 일을 할 때, 형제자매가 서로 연합하는 것이 좋습니까? 나쁩니까? 좋은 것입니다. 한글의 좋다는 말은 ‘조화롭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일에 협력하는 것은, 서로 조화로운 일입니다. 다시 말해 좋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쁘다라는 말은, 나뿐이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일에 서로 협력하지 못하고, 혼자 구경만 하는 것은 나쁜 것입니다.  
그러면 유다가 기도하여, 하나님의 지목으로 자기가 앞장서고, 시므온과 협력하여 전쟁에 나아갔을 때, 어떤 결과가 있었습니까?  
오늘 본문 4절부터 7절까지 그 이야기가 나옵니다. 유다와 시므온의 연합군이, 가나안과 브리스 족속을 쳐서 10,000명을 죽입니다. 그리고 그 지역의 유명한 장수 아도니 베섹과 싸워서, 그를 사로잡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을 잘라서,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여러분, 아도니 베섹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이 사람은 옛날에 주위의 70개국을 점령하여, 70명의 왕들의 엄지발가락과 엄지손가락을 자르고, 자기 상 밑에서 개들처럼 부스러기를 먹게 했던 사람이, 아도니 베섹입니다. 대단한 전공을 세웠던 사람이고, 주위 나라에서 이 사람의 이름만 들어도, 부들부들 떨게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유다가 이 아도니 베섹도 죽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 땅을 유다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유다가 차지한 땅은, 12지파가 분배 받은 땅들 중에, 가장 넓은 땅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결론 
사랑하는 소망교회 성도 여러분, 저는 이 말씀을 근거로 우리 모두와, 여러분들의 자녀들이, 하나님 앞에서 귀하게, 크게 쓰임 받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 귀하게 사용하시는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이고요, 선봉에 서는 사람이고, 또한 남들과 협력하는 사람입니다.
 
선한 동기를 가지고 열정적으로 기도하는 우리가 되고, 거룩한 하나님의 일에는 뒷쳐지지 말고, 비록 힘들기는 하지만 앞장서서 일하시기 바라고, 무엇보다 서로 협력하여 일함으로, 평생 동안, 하나님께 위대하게 쓰임 받는 종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되게 하시는 복을 누르시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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