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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본 받자(행 1:1-2)
이정현 목사 2013-09-29 추천 0 댓글 0 조회 495
성경에 누가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누가의 직업은 의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누가가 신약성경 27권 가운데 두 권의 성경을 기록했습니다. 하나는 누가복음이고, 다른 하나는 사도행전입니다. 누가복음 전체가 24장으로 되어 있고, 사도행전은 28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다 합하면 52장이 되는데 상당히 많은 분량의 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혹자는 이 두 권은 두 권이 아니라, 상하편으로 된 한 권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많은 분량의 성경을, 당시 오직 한 사람의 구원과, 그 사람의 신앙성장을 위하여 썼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이 글을 통하여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도록 기술한 것이고, 더 나아가서 후편은, 어떻게 그 복음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나갔는지를 설명하므로, 그의 믿음을 더욱더 견고히 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수신자는, 한 사람 데오빌로였습니다. 
이 데오빌로가 누구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실제적인 인물이라는 것과, 황제와 같은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는 누가로부터 누가복음을 받고 그 말씀을 통하여, 예수를 구주로 알고 믿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어디에서 알 수 있는가 하며는, 누가복음 처음 부분에서 누가가 데오빌로를 부를 때, ‘데오빌로 각하’라는 말을 쓰지만, 사도행전을 쓸 때는 ‘데오빌로여’라고 하며, 마치 형제를 부르듯 쓰고 있다는 데서 알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이니까, 처음에는 그 사회적 직함을 붙여서 부르지만, 이제는 예수를 믿어 한 형제자매가 되었으니, 궂이 그 직함을 붙일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는 데오빌로 각하를 이제, 형제 데오빌로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튼 여기서 깨달을 수 있는 한 가지 교훈은, 누가라는 사람은 한 사람을 전도하기 위하여, 그 사람의 신앙성숙을 위하여, 장장 52장이나 되는 엄청난 편지를 썼다는 것입니다. 한 영혼을 소중하고 가치 있게 여겼기 때문에, 이렇게 할 수가 있었다고 봅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길 때, 그 사람의 구원을 위하여, 이처럼 애쓰고 노력하고 수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어떤 사람은 이 말씀을 근거로, 한 사람의 이웃을 구원하고, 한 사람의 형제자매, 한 사람의 친구, 한 사람의 가족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처럼 기도하며 애쓰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가처럼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누가는 오늘 본문을 통하여 먼저 쓴 글, 즉 누가복음에는 예수님에 대하여 어떤 내용을 기술했는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본문을 제가 다시 한 번 더 읽어 드리겠습니다.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이 문장에서 예수께서 행하셨다고, 예수께서 가르치셨다고, 예수께서 명하셨다고, 예수께서 승천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문장의 주어가 ‘예수께서’라고 나오기 때문에, 누가복음 전체의 주제는 예수님이십니다.  
누가복음뿐만 아니라 성경전체의 중심주제가,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구약은 오실 그리스도, 신약은 오신 그리스도와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결국 공통분모는 그리스도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도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구약의 율법과 선지서와 시가서의 기록이, 곧 나에 대한 기록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말씀들을 근거하여 우리는, 분명히 성경의 중심 주제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성경, 어느 부분을 읽더라고 그곳을 통하여 예수님을 발견해야 하며, 그 예수님으로 인하여 은혜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아무리 많이 읽고, 부지런히 공부하고 암송해도, 성경을 통하여 예수님을 발견하지 못하면, 그것은 잘못 된 것입니다. 내가 읽고 싶은 부분만 읽지 말고, 내가 듣고 싶은 말씀만 듣지 말고, 모든 부분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을 말씀하고 있는 것으로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누가복음에는, 그 예수님의 생애 중, 언제부터 언제까지의 일을 기록했다고 했습니까? 예,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했다고 했습니다. 물론 누가복음의 말씀을 직접 읽어보면, 오늘 본문인 사도행전 초반부의 말씀과, 약간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은 그리스도의 탄생부터 시작을 해서, 예수의 승천까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에서는 그리스도의 탄생부터 시작해서, 고난과 죽음, 부활과 승천까지를 다 기록하고 있지만, 사도행전의 초반부에서는, 그분의 공생애만 간단히 취급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초반부에서 누가는, 먼저 쓴 글에는 그리스도의 행하시며 가르치심부터, 승천까지를 다루고 있다고 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근거로, 예수님을 본 받아야 할, 두 가지 사항에 관하여 알아봄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주님의 어떤 모습을 본 받아야 할까요? 
1. 주님은 가르치시기 이전에 행하셨음을 본 받아야 합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사회로부터 칭찬을 듣지 못하고, 지탄을 받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제가 생각할 때 가장 큰 이유는, 말만하고 실천이 없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말은 많이 하고 잘합니다. 더 나아가서 가르치기는 열심히 합니다. 그러나 말하는 대로 실천하지는 않고, 가르치는 대로 살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마치 예수님의 저주를 받은, 잎은 무성한데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처럼, 말은 무성한데 실천의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회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비난과 비판은, 어느 한 사람의 문제나 한 교회의 문제가아니라, 한국교회 전체와 일천만 기독교인 우리 모두의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실천이 따르지 않는 말로 인하여, 불신자들로부터 비난과 손가락질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우리는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서, 주님으로부터 삶을 본 받아야 하겠습니다. 주님은 무엇이든 말씀하시기 전에 행하셨고, 가르치시기 전에 먼저 행하셨던 분이십니다.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1)  
예수님은 기도를 가르치시기 전에, 먼저 기도하심으로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먼저 40일간 금식기도 하셨습니다. 주옥같은 수많은 말씀을 하시기 전에 그분은 먼저 기도하신 것입니다. 기도를 말하거나 기도를 가르치기 이전에, 실제로 엎드려 금식기도하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11장에 보시면, 주님이 기도에 관하여 많은 교훈을 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대로,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인 예가기도가 나옵니다.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마태복음보다 더 간단한 주기도문이, 여기에 실려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이 또 기도에 대한 교훈을 하십니다. 비유로 말씀하셨는데, 어느 친구가 밤중에, 다른 친구 집에 찾아가서, 떡 세 덩이를 꾸어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갑자기 밤에 친구가 찾아왔는데, 먹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제발 떡 좀 빌려 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떡집을 하는 그 친구가 거절하기를, 밤이 깊어서 이미 문을 닫았고, 일하는 사람들이 다 자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거절을 받았음에도 그 친구는, 밤중에 찾아온 친구를 먹이기 위하여 간청하는 것입니다. 그랬을 때, 떡 집하는 친구가, 비록 벗됨을 인하여서는, 일어나 주지 아니할지라도, 간청함을 인하여 네 요구대로 주리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간청하는 기도를 주님이 들어주신다는 교훈인 것입니다.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또 이어서 예수님이, 기도에 관하여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9-13).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반드시 좋은 것을 주신다는 사실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이처럼 누가복음 11장에서 주님이 기도에 대한 많은 가르침을 주셨는데, 중요한 것은 이 가르침이 있기 이전에, 이미 주님은 기도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11장 1절에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나와서 주여 우리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주옵소서.”라고 요청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그 요청에 따라, 주기도문과 간청하는 기도와 구하는 자에게 반드시 좋은 것을 주신다는 것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주님은 기도를 가르치시기 전에 이미,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고 계신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전도하라고 명령하시거나, 전도에 대하여 가르치시기 전에, 먼저 사람들에게 나아가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마태복음 4장의 말씀에서,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고 선포하셨고, 또한 안드레, 베드로, 야고보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당신의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회당에서 가르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각색 환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만민에게 나아가서 복음을 전하라,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이것을 보더라도, 예수님은 먼저 전도하시고, 나중에 전도할 것을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예수님은 말로만 사랑사랑 하시지 않으셨고, 말로만 사랑하라고 가르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실제로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먼저 그들을 위로하시고 안아주시고, 먹여주시고 고쳐주시고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이 목자 없이 유리하는 양들처럼, 불쌍히 여겨 사랑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남을 섬기라고 하시기 전에, 먼저 제자들의 발을 닦아주며 섬기셨습니다. 요한복음 13장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일일이 닦아 주셨습니다. 처음엔 거부했던 베드로의 발까지 손수 닦아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주님이 저들에게, 내가 주와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먼저 섬기라고 교훈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섬김의 본을 보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나서 요한복음 13장 15절에,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소망교회 성도여러분, 우리 모두 주님의 이 모습을, 본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도 주님처럼 기도를 말하기 전에, 기도하는 사람이 되고, 전도하라고 말하기 전에, 실제로 나아가서 전도하고, 사랑하라고 가르치기 전에 먼저 나아가서 사랑하고, 섬기라고 가르치기 전에, 먼저 섬기는 우리가 되도록 합시다. 
특히 9월의 주제가 섬김인데, 섬김에 관한 여러 가지 말씀을 드리지 않더라도, 이시간 이 말씀만이라도 꼭 기억을 하셔서, 주님의 섬기는 모습을 본받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목사도 섬기고 장로님도 섬기고 안수집사님도 섬기고 권사님도 섬기고 구역인도자도 섬기고, 선교회회장도 섬기고, 국장도 섬기고, 교사도 섬기고, 어른도 섬기고, 교회 나온지 오래 된 사람도 섬긴다면, 분명히 지금보다 더 좋은 교회가 될 것입니다. 
2. 주님이 성령에 의해 사셨던 것처럼, 우리도 주님을 본 받아 성령으로 살아야 합니다. 
2절에서,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셨다.”는 말씀은, 주님이 당신 스스로 명하셨다는 말씀이아니라, 성령을 통하여, 성령에 의하여, 성령으로 말미암아 말씀하셨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의 주인이 되시고, 만물의 주가 되시기 때문에, 얼마든지 당신 스스로도 명령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명령하셨습니다.  
주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셨고,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으로 충만하셨고, 시험을 받으실 때에도 성령에게 이끌림을 받으셨고, 귀신을 쫓아내실 때에도 성령으로 귀신을 쫓아내셨고, 고난 후에도,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정 되었다’(롬1:4)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성령에 의해 사셨던 주님이, 제자들에게 복음전파를 명령하시고, 그들을 향해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한마디로 주님의 일생은, 성령에 의한 삶이었습니다. 성령에 충만하시어 성령에 의해 사셨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사셨던 분이십니다. 전능자이시며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주님이, 이처럼 성령으로 말미암아 사셨다면, 우리는 당연히 성령 충만하여, 성령으로 말미암아 살아야하지 않겠습니까?
성령에 의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도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되고, 전도할 때도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담대하게 복음을 전해야 되고, 설교할 때도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일상생활 중에도, 특히 우리의 하루하루 삶이 영적 전쟁인줄 알고, 성령의 능력으로 승리해야 하고, 여러 가지 일들을 앞에 두고도,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몇 달 전에, 배곧 신도시 종교부지 분양에 응찰하자고 당회와 공동의회를 통해 결의를 하였습니다. 교회가 결의를 하였다고 해서 다 낙찰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적당한 가격으로 응찰을 했을 때 우리교회에 낙찰이 되면 그것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교회에 은혜를 베풀어 주시면 우리교회에 주실 것이고 다른 교회에 뜻이 계시면 다른 교회에 주실 것입니다. 그 뜻이 분명하게 들어났을 때는 그 때에 순종하고, 그 뜻을 잘 받들어 한마음 한 뜻으로 수종 들면 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일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하고,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예배당을 옮기는 문제와 예배당을 짓는 문제는 성령님이 함께하시고 도와주시지 않으면 절대로 안 되는 일입니다. 사람이 그 일을 계획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돈이 있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모든 조건을 다 갖추었어도 성령님의 도움이 없이는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능으로도 되지 아니하며, 오로지 나의 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일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므로, 우리는 지금 성령의 도움을 요청해야 할 때인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나 불만을 표현할 필요가 없고, 더더구나 시험에 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직 밝혀지지도 않았고, 만약 우리교회에 하나님이 땅을 허락하시면, 우리의 부정적인 말은, 하나님의 뜻에 정면 도전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은 성령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아는데 있습니다.  
주님은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셨습니다. 무엇을 명하셨습니까?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받아, 복음을 전파하라는 명령을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을 본 받아, 내 생각도 성령에 의해 지배를 받아야 하겠습니다. 내 말도 성령의 다스림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내 행동도, 내 귀가 듣는 것도, 내 눈이 보는 것도 성령의 통치를 받아야 하겠습니다. 가정에서의 생활, 교회에서의 생활, 사회의 생활 전체에 걸쳐서 성령의 통치와 다스림을 받으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바울은 ‘술 취하지 말라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술에 취하면 술 기운에 따라서 살듯이, 성령에 충만하면 성령에 따라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술 취하면 걱정 근심이 없어지듯이, 성령에 취하면 근심걱정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술 취하면 두려움이 없어지듯이, 성령에 취하면 두려움이 없이 담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술 취하면 기분이 좋아지듯이, 성령에 충만하면 기쁨이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소망교회의 모든 성도들은 성령에 충만하여, 주님처럼 성령에 의하여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결론
우리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을 본 받아 사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 교인들에게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본 받아 살기 원한다’고 하셨습니다(롬15:5). 또한 고린도전서 11장에서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하셨고, 데살로니가교인들을 향하여, 너희가 우리와 주를 본 받은 자가 되었다고 칭찬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우리도 주님을 본 받아, 평생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근거로, 주님으로부터 두 가지 본 받아야 할 사항에 관하여, 말씀을 드렸습니다.
1)말하고 가르치기 전에 먼저 행하라는 것입니다.
2)성령에 의하여 살라는 것입니다. 
주님을 본 받아 살므로, 주님을 닮아가는 자들이 되시고, 작은 그리스도로, 이 어두운 세상을 밝히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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