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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땅이 되어야 열매를 맺는다.(마13:1-9)
이정현 목사 2014-03-23 추천 0 댓글 0 조회 459

마태복음 13장에는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이 있습니다. 적어도 7개의 비유가 있는데, 전부 다 천국에 대한 비유입니다. 비유를 헬라어로 ‘파라볼레’라고 하는데, 이는 ‘곁에 두다’는 뜻입니다. 비슷한 것을 곁에 두고 설명함으로 본질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비슷한 것을 설명함으로 하늘의 것을 밝히고자 하는 방법입니다.

 

예수님은 비유로 많은 진리를 가르치셨습니다. 왜 이렇게 비유로 많은 말씀을 하셨는가? 그분이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않으셨다’고 하실 정도로 비유로 가르치신 것은, 듣는 자는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듣지 않는 자는 더 듣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오늘의 이 말씀은 씨 뿌리는 비유입니다. 18절에, 주님이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고 하셨습니다. 이 비유를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또 친히 해석해 주셨습니다. 이 비유를 살펴봄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 비유는 인간의 네 가지 마음 상태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즉 씨가 뿌려지는 밭에 따라서 싹이 날 수도 있고, 안 날 수도 있습니다. 잘 자랄 수도 있고, 안 자랄 수도 있습니다. 열매를 맺을 수도 있고, 안 맺을 수도 있습니다. 수확을 많이 할 수도 있고, 적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밭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우선 주님이 말씀을 전하시는 환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어느 배에 올라가고, 무리들은 육지에서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 사람에게 집중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또한 대부분 바다 쪽에서 육지 쪽으로 바람이 불기 때문에, 말씀이 청중들에게 잘 전달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배를 강단삼아 천국에 대한 비유를 아주 효과적인 방법으로 전파하신 것입니다.

 

3절에, ‘씨를 뿌리러 나간 사람’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의 농사법에는 씨를 뿌리는 몇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사람이 밭에 이리저리 다니면서 씨를 흩뿌리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방법으로 씨를 많이 뿌립니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짐승 위에 포대 밑을 촘촘하게 구멍을 뚫어 놓은 씨앗 포대를 얹어놓고, 짐승을 이리저리 몰고 다니면서 씨를 떨어뜨려 뿌리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렇게 씨를 뿌리다 보면, 씨가 이곳저곳에 떨어지게 되고, 어느 곳에는 많이, 어느 곳에는 적게 떨어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비유 가운데서 제일 처음에 나오는 밭이 있는데, 길가 밭입니다. 이곳은 딱딱하고 굳어있는 땅입니다. 이곳에 씨앗이 떨어졌으니 싹이 나고 꽃을 피울 수 있겠습니까?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습니다. “뿌릴 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4) 이 부분을 주님이 19절에서 이렇게 해석을 하셨습니다.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이 구절을 통하여 우리는 씨는 천국 말씀이요, 밭은 마음이요, 씨앗을 빼앗아 가는 놈은 악한 자임을 알게 됩니다.

 

여기서 ‘악한 자가… 빼앗는다.’는 말은, 마치 전쟁 중에 적군이 아군의 것을 즉시, 모르게, 재빨리 탈취해 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들으나 그 말씀에 대해 마음을 완악하게 하여 전혀 반응하지 않는다면, 즉시로 재빨리 사단이 그 말씀을 가로채 간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완악하고 완고한 사람, 마음이 꽉 닫혀있는 사람의 마음에 말씀이 심길 리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길가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복음을 완고히 거부하는 자는 결국 사탄의 먹이가 되고 말 것입니다.

 

두 번째, 뿌려진 어떤 씨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졌습니다. 싹이 나옵니다. 그런데 흙이 깊지 않아 해가 돋은 후에 뿌리가 말라버립니다. 팔레스틴은 대부분 암석으로 된 고지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밭을 일굴 경우, 흙 밑의 바위가 표면 가까이 나와 흙의 두께가 얇은 지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곳에 씨앗이 떨어지면, 바위의 온기로 인하여 빨리 싹이 나지만, 뿌리가 성장할 수가 없습니다. 해가 나면 곧 시들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5-6) 해는 식물의 성장에 꼭 필요한 에너지를 주지만, 그러나 뿌리를 내리지 못한 식물에게는 오히려 해로운 결과를 초래하고 맙니다. 태양의 열기가 식물의 뿌리를 말려, 결국은 식물을 죽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 구절을 주님이 또한 설명을 하셨습니다.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20-21) 말씀을 즉시 기쁨으로 받습니다. 냄비 끓듯 금방 달아오릅니다. 조금은 신앙생활을 합니다. 하지만 말씀 때문에, 신앙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를 받으면, 곧 넘어진다고 하셨습니다. 환난이나 핍박을 견딜만한, 신앙의 뿌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말씀으로 말미암아 오는 환난과 핍박은 신앙의 뿌리가 깊어야 견디어 낼 수 있는데, 믿음의 뿌리가 깊지 않기 때문에 환란 앞에 흔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뿌리가 깊지 않은 나무는 태풍이 불어오면 넘어집니다. 기초가 튼튼하지 않은 건물은 창수가 나면 무너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말씀 위에 든든히 서 있지 않으면, 말세의 환란 앞에 쓰러지고 마는 것입니다. 거짓신앙과 위선된 자들은 환란 앞에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데마는, 처음에 바울과 함께 열심히 일했으나, 후에 세상이 좋아서,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골4:14, 딤후4:10, 몬1:24). 주님이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고 나를 쫓으라고 했을 때,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돌아간 부자 청년이 바로 이 분류에 속하는 것입니다(마19:16-22).

 

세 번째 것은 가시 떨기 위에 떨어졌습니다. 씨앗의 일부가, 가시가 무성한 밭에 떨어졌습니다. 가시 떨기는 잡초를 말합니다.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22) 이 사람도 말씀은 들었습니다. 하지만 세상 염려가 가득 차 있고, 재물의 유혹에 사로잡혀서 결실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앞에서는 환란과 핍박이 결실하지 못하게 하더니, 이제는 염려와 유혹이 열매 맺지 못하게 합니다. 앞에서는 환란과 핍박이 결실하지 못하도록 넘어지게 하지만, 여기서는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다고 했는데, 이 말은, 숨을 틀어막아 질식시켜 죽임으로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기우(杞憂)라는 말이 있습니다.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는 말입니다. ‘열자’의 “천서편”(天瑞篇)에 나오는 말로, 중국 기(杞)나라에 어떤 사람이 있었는데, 하늘이 무너지면 어떡하나하고 걱정이 되어서, 밤에 잠을 못 잤다는데서 유래된 말입니다. 이 사람은, 쓸데없는 염려와 걱정에 사로잡혀 있었던 사람입니다. 혹시 여러분도 쓸데없는 걱정에, 붙들려 있지 않습니까? 걱정해봤자 아무 해답도 없는 것을 붙들고, 한숨 쉬고 있지는 않습니까? 가정문제, 자식문제, 돈 문제, 사업문제, 건강문제에 꽉 사로잡혀서, 염려의 늪에 빠져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면 그런 염려와 걱정이, 여러분들의 삶의 숨통을 조여 와서,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이,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결국 세 번째 씨앗까지 실패를 했습니다. 씨가 나빠서 그런 것은 아니고, 밭이 좋지 않아서 그랬습니다.

 

드디어 씨앗의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졌습니다. ‘씨앗이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사람은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한다고 하셨습니다. 세 개는 실패하고 하나만 겨우 성공했는데, 그 열매는 수십 배가 된다는 것입니다. 네 사람 가운데 나 한사람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깨닫고 그 말씀대로 실천한다면, 나 한사람이, 최소 30배, 최고 100배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을 근거로 하여 여러분들에게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이 본문에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은, 씨 뿌리는 자에게 문제가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씨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까? 그것도 아니면 밭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까? 예,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은 씨 뿌리는 자에게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씨앗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라, 단지 씨를 받는 밭이 잘못되어서,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좋은 밭이 되어야 열매를 맺는 것 아닙니까? 어떻게 하면, 우리의 마음 밭이 좋은 밭이 될까요? 본문을 근거로 두 가지만 말씀을 드립니다.

 

1. 좋은 마음 밭이 되려면, 듣기를 잘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비유를 해석할 때, 19절에 ‘천국 말씀을 듣고,’ 20절에 ‘말씀을 듣고’, 22절에는 ‘말씀을 들으나’ 또 23절에도 ‘말씀을 듣고’라는 말을 사용하셨습니다. 이는 씨앗이 어디에 떨어지든지 간에, 일단 그들은 말씀을 듣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듣기는 듣는데, 잘 듣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듣되 잘 듣는 것이 필요합니다. 주의 깊게 경청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듣지 말고, 말씀의 핵심을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이 본문을 통하여,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시는가?

 

잘 들어야 믿음이 생깁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 듣는 것이 둔한 시대입니다. 귀가 가려져 있습니다.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듣지를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너희 속에 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희 아비 마귀의 자식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이 말이 수십 번 나옵니다. 왜 이렇게 여러 번 말씀하실까요? 안 들으니까, 듣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니까, 그런 말씀을 하셨을 것입니다.

 

복을 받으려면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신명기 28장에, ‘이 율법의 말씀을 삼가 듣고(주의 집중해서 듣고, 반복해서 들으라는 말) 지켜 행하면, 세계 민족 위에, 뛰어나게 되는 복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계시록 1장에서도,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들을 것을 듣는 자가, 복이 있는 것입니다.

 

 

 

이래야 여러분의 마음 밭이, 완악해지지 않고, 돌도 없고, 가시채도 없는, 좋은 밭이 되는 것입니다.

 

2. 말씀을 깨닫고 실천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옥토를 설명하실 때,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누구든지 들으면서도, 깨닫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요사이 학생들이 선생님의 말을 듣기는 듣는데, 깨닫지를 못하는 것 같습니다. 아예 안 듣는 학생들도 많이 있다고 들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듣기는 들으나 깨닫지 못하는 학생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역시 자식들이, 부모들의 말을 듣기는 들으나, 깨닫지를 못하는 것 같습니다. ‘알겠다고는 합니다.’ 그러나 깨닫고 알았다고 하는 것은 아닌 것 같고, 그 자리와 위기를 빨리 넘어가고자, 그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 또는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을, 우리가 듣고 깨닫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래야 깨달은 그 말씀대로, 실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듣고, ‘내가 죄를 지었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회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주일을 빠졌구나, 이것은 하나님 앞에 큰 죄이구나,’-깨달아야 다음부터 주일을 잘 지킬 것 아닙니까? ‘내가 소득의 십일조를 안 함으로,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하였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철저하게 온전한 십일조를 할 수 있을 것 아닙니까? 세상의 여러 가지 일로 근심걱정하지 말라고 했을 때, 이 말씀을 듣고 깨닫는 바가 있어야, 근심하지 않고 다만 하나님께 기도할 것 아닙니까?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낫게 한다.’-이 말씀을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는 바가 있어야, 엎드려 눈물로 기도하는 실천이 있을 것 아닙니까?

 

듣고-깨닫고-실천하는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을 근거로, 무엇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겠습니까? 혹시 우리의 마음 밭이 길가처럼 딱딱하게 굳어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면, 마음 밭을 갈아엎어야 합니다. 묵은 땅을 기경해야 합니다. 성령의 쟁기를, 내 마음 밭 깊숙이 드리워서, 완악한 길가 밭을 갈아엎어야 합니다. 다른 것으로는 될 수가 없습니다. 성령의 쟁기로, 말씀의 쟁기로, 완고한 마음을 갈아엎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돌멩이를 골라내야 합니다, 바위를 케 내야 합니다. 그리고 가시덤불, 쓴 뿌리들을 뽑아내고, 막힌 담들을 헐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마음 밭을 기경하여, 회개할 바는 회개하고, 여러 가지 근심걱정거리들은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좋은 땅입니다. 옥토는 저절로 되는 게 아닙니다. 시간이 지난다고, 사모함도 없이 앉아만 있는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주일날 나와서 설교에는 신경 안 쓰고, 밥 먹는 데만 신경 쓰고 있으면, 직분이 있다고 저절로 옥토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말씀을 듣고 깨닫고, 은혜 받고 순종하려는 열심히 있어야 합니다.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사모함이 있어야 합니다. 간절함과 수고와 애씀이 있어야 합니다. 농부가 쟁기질도 안하고, 김을 매지도 않고, 돌과 가시덤불을 골라내지도 않는데, 그 땅이 저절로 좋은 땅이 됩니까?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 밭도, 말씀을 주의집중해서 듣고, 말씀에 깨달음과 은혜를 받고, 그것대로 실천해야 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천국의 씨인 말씀이, 여러분의 마음 밭에 뿌려지고 있습니다. 동일한 말씀이,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시간대에, 동일한 대상에게 뿌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씨는, 길가와 같은 마음에 뿌려지고 있습니다. 돌밭과 같은 마음에 뿌려지는 씨도 있을 것입니다. 가시덤불과 같은 마음에 뿌려지기도 합니다. 물론 좋은 땅과 같은 마음에 뿌려지기도 할 겁니다.

 

땅이 넓고 아무리 좋은 위치에 있어도, 길가 밭, 돌밭, 가시덤불이 우거진 곳에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이라야,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하는 것입니다.

 

말씀에 주위해서 여러 번 사모함으로 잘 듣고, 그 말씀을 깨닫고. 말씀대로 실천해서 옥토가 됨으로, 열매 맺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 한 사람 한 사람이, 말씀을 듣고 깨닫고 실천해야. 천국이(교회가) 확장되고, 번창하고, 부흥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톨스토이입니다. 그는 “나의 회심”이란 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5년 전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받아들였다. 그러자 나의 전 생애가 변했다. 이전에 원했던 것을 원하지 않게 되고, 오히려 이전에 구하지 않던 것들을 갈구하게 되었다. 이전에 좋게 보이던 것들이 좋지 않게 보이고, 이전에 재미있던 것들이, 별로 재미있게 여겨지지 않았다. 이전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들이, 나에게 중요해지고, 소위 행운의 무지개를 좇는 삶이, 허무하게 생각되어졌다. 나의 인생관과 가치관이 뒤바뀌는 것이,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임을, 나는 알게 되었다.” 그는 후세대에, 많은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좋은 땅과 같은 마음에, 말씀의 씨가 떨어지면, 오늘도 톨스토이와 같은 변화가 일어납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열매 맺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깨닫고 은혜 받아, 그 말씀대로 삶으로, 100배의 열매 맺는 삶이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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