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야곱을 속량하시니
이스라엘의 통일 왕국 시대는 120년입니다. 초대 왕 사울이 40년, 둘째 왕 다윗이 40년, 그리고 솔로몬이 40년을 통치하여, 도합 120년의 세월이 흘러갑니다.솔로몬 이후 나라가 둘로 갈라져서, 북 왕국을 이스라엘이라 불렀고, 남 왕국을 유다라고 불렀습니다. 북 왕국은 여로보암부터 시작을 해서, 호세아 왕까지, 20명의 왕이 이어서 다스리게 됩니다. 그러다가 BC 722년에, 앗수르에게 멸망당하고 맙니다.
남쪽 유다는,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부터 시작을 해서, 시드기야까지 20명의 왕이 번갈아 다스리게 됩니다. 북쪽보다는 조금 더 오래 유지되다가, BC 586년에, 바벨론 나라에 의해서 멸망당하고 맙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북쪽도 한 번의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고, 남쪽도 외세의 침략으로, 나라가 큰 어려움에 빠지는 경우를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왜 이들이 할례 없는 이방인들의 발에, 무참히 짓밟히는지 아십니까? 북쪽은 앗수르 나라에 의해서, 남쪽은 바벨론 나라에 의해서, 무참히 공격을 당하여 사람들이 죽고, 국토가 초토화가 되어 버렸는데,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원인과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특별히 남 유다는 이해 할 수가 없습니다. 분명히 북쪽 이스라엘이 먼저 멸망하였음으로, 그 역사를 보아서, 왜 저들이 망하게 되었는지를 알아보고, 자기들은 멸망하지 않기 위하여, 대책을 세워야 했을 것 아닙니까? 같은 민족이 멸망을 당했다면, 그 이유를 알아서, 자기들은 같은 이유 때문에 망하지 않도록, 대책을 세우고 노력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시간만 약간 다를뿐이지, 유다는 이스라엘과 똑같은 이유에서, 멸망한다는 것입니다.
그 동일한 원인이 바로, 그들의 범죄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멀리 떠나, 각종 죄를 행하였던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들은 예배를 멸시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른 민족과 다른 점은, 안식일에 하나님 여호와께 나와서, 겸손히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께 예배를 잘 드리지 못하였고, 형식적으로 위선적으로 제물을 드렸습니다. 좋은 것은 자기들이 먹고, 나쁜 것만 정성 없이 드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너희들이, 성전의 마당만 밟을 뿐이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그 예배를 멸시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가까이 잘 섬겨야 할 제사장들까지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예배를 멸시하기도 했습니다. 온 국민들이 마음에 없는 위선적인 예배를 드리다보니까, 이것이 우상숭배로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곳곳에 산당을 세우고, 각 종 우상을, 자기들의 신으로 섬기게 된 것입니다.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무지 목매한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전능하시며 우리 기도의 응답자이시며, 우리의 방패와 피할 바위가 되시고, 도움이 되시는 분이신데, 그 하나님은 버리고, 말도 못하고, 들어 응답하지도 못하고, 능력도 없고, 나무와 돌멩이를 깎아 만든 것들을 신으로 섬기고 있으니, 얼마나 한심한 백성들입니까?
또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주변국들과 화친조약을 함으로, 그들의 도움으로 살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래 전부터, 이방국가하고는 절대로, 화친 조약을 맺지 말라고 하셨고, 너희들을 도와주는 자는 그들이 아니라, 나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누차 말씀해 주셨습니다.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이웃과 화친 조약을 맺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자기들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여, 범죄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공의를 행하지 않았습니다. 재판관들이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였던 것입니다. 호주머니에 돈이 들어오면 좋게 판결하고, 그렇지 않으면 나쁘게 판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은, 결국 불이익과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공의를 행하지 않는 권력자들을 싫어하시고, 그들을 심판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도덕적인 불법을 행하여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돈 좀 있다고 여자들은 사치에 빠지고, 향락에 취하게 되었습니다, 거짓말을 일삼고, 상인들은 저울추를 속이고, 술을 즐기며 살았습니다. 이 같은 죄악들 때문에 그들은, 이방인들의 침략을 받아 멸망하고, 포로로 끌려가는 것입니다.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의 침략으로 멸망하는 원인도, 그들이 범한 죄악들 때문이고, 남 유다가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예루살렘이 다 불타버리고, 그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 간 것도, 결국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서, 각종 죄악을 행하였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남 유다의 므낫세 왕은, 남들보다 더 많은 악을 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유다를 향하여 내리신, 그 크게 타오르는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므낫세가 여호와를 격노하게 한, 그 모든 격노 때문이라”(왕하23:26). 그리고 그 이후의 4명의 왕들이, 22년 6개월 동안 유다를 통치하면서, 모두 므낫세처럼 하나 같이 악을 행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특별히 남쪽 유다는, 세 차례에 걸쳐서 바벨론의 침략을 받았습니다. 당시 세계 최강국이었던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은, 3차에 걸쳐 유다를 침략해 온 것입니다. 1차 침략(606년) 때에는, 다니엘과 그 3친구를 비롯하여, 왕족과 귀족들을 끌고 갔습니다. 2차 침략 때에는, 에스겔을 비롯한 용사 7천명과 기술자 1천명을 포함 한, 만 명(왕하24:14-16. 그러나 렘52:28과는 다름)을 끌고 갔다고 되어 있습니다.
3차 침략 때에는 예루살렘이 함락되었고, 솔로몬의 성전도 파괴되었고,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는, 눈알이 뽑혀서 질질 끌려 간 것으로 보입니다. 열왕기하 25장 7절에, “그들이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그의 눈앞에서 죽이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놋 사슬로 그를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갔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레미야 52장에서는,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놋사슬로 그를 결박하여, 바벨론 왕이 그를 바벨론으로 끌고 가서, 그가 죽는 날까지 옥에 가두었더라.”(11)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때, 본서의 기록자 예레미야 선지자도, 바벨론으로 잡혀 가게 된 것 같습니다.
이 같은 사실을 놓고 볼 때 느브갓네살 왕은, 유다를 완전히 멸망시키기 위하여, 왕족으로부터 시작하여 저 말단에 있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무자비하게 죽이고 또한 사로잡아 갔던 것입니다. 혹자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다 사로잡아갔기 때문에, 남은 사람은 겨우, 토지나 갈고 농사를 지을 사람, 2만 명 정도만 남았다고 말합니다. 성경은 ‘그 땅에 비천한 자만 남았고,’ 거의 모든 사람은, 다 사로 잡혀 갔다고 말씀합니다(왕하25:11-12, 21)
유다 백성들의 이 같은 심판과 멸망은, 하나님을 멀리 떠나 각종 악을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심각한 죄로 말미암아, 이런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선지자들을 통하여 수십, 수백차례,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경고했지만, 끝끝내 그 말씀을 듣지 않은 결과로, 모든 삶의 환경은 무너지고, 비참한 모습으로 이방 땅으로 끌려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아직 포로로 잡혀가지도 않은 상황에서, 그들이 바벨론으로 갔다가, 다시 포로지에서 해방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계시를 들은 그대로, ‘너희들은 바벨론에 항복해라,’ ‘너희들은 바벨론에서 70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할 것이다.’ ‘너희들이 70년을 채우면, 하나님이 너희들을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과거 오래 전에 너희 조상들이, 애굽의 종살이에서 출애굽을 한 것처럼, 이제 하나님의 은혜 중에, 제2차 출애굽이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어쩌면 예레미야는 지금으로부터 70년 이후, 하나님이 너희를 바벨론 땅에서, 이끌어 내실 것이라는 확신 중에 말하는 것입니다. 귀환 할 것을, 오늘 본문에서 예언을 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곳에서 일어나서, 시온으로 올라가자,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로 나아가자고 말합니다.”(6)
8절에도 보면, “보라 나는 그들을 북쪽 땅에서 인도하며, 땅 끝에서부터 모으리라. 그들 중에는 맹인과, 다리 저는 사람과, 잉태한 여인과 해산하는 여인이 함께 있으며, 큰 무리를 이루어 이 곳으로 돌아오리라.”고 말씀합니다. 그 날에 하나님이, 사방팔방으로부터 모든 유다 백성들을 모아서, 그들이 어떤 상황에 처했다할지라도, 내가 그들을 인솔하여, 고국 땅으로 돌아오겠다고 하십니다. 이 귀환 대열에 연약한자들이 언급된 것은 이들의 힘으로 바벨론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구절에서 ‘인도한다,’ ‘모은다,’ ‘돌아온다.’의 주체는, 나로써 하나님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모으고 하나님이 인도하셔서, 하나님이 친히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인 말씀입니다.
그리고 16절에서도, ‘그들이 그 대적의 땅에서 돌아오리라.’고 하셨고, 17절에서는, ‘너의 자녀가 자기들의 경내로 돌아오리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비록 너희들이 죄로 말미암아 이방의 객이 되지만, 그러나 돌아온다는 희망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심판 중에도 희망적인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돌아올 때에, 하나님 여호와께서 어떻게 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까? 저는 본문 9절과 10절의 말씀을 읽으면서, 가슴이 뜨거워 졌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자비와 긍휼과 사랑이 많으신 분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선 9절부터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울며 돌아오리니, 나의 인도함을 받고, 간구할 때에 내가 그들을 넘어지지 아니하고, 물 있는 계곡의 곧은길로 가게 하리라. 나는 이스라엘의 아버지요, 에브라임은 나의 장자니라.”(31:9)
유다 백성들이 70년 동안 포로 생활을 마치고, 고국 땅으로 돌아올 때에는, 너무 감격스러워서, 울면서 돌아온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갈 길을 인도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막막한 사막과 광야 길에, 길을 잃지 않도록 인도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걸음을, 넘어지지 않게 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실족하지 않도록, 내 발을 붙들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 있는 계곡의 길로, 똑바로 가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혹시나 물이 없어 기갈에 걸리지 않도록, 그 길을 안내 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왜 이렇게까지 해 주신다고요? 나는 너의 아버지이고, 너는 나의 아들이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들 중에도, 총애 받는 장자라고 하신 것입니다.
10절에도 거의 동일한 말씀이 나와 있습니다. “목자가 양무리에게 행함같이 할 것이다.” 목자가 양무리에게 어떻게 행합니까? 목자는 양무리를, 지키고, 인도하고, 먹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여호와께서 유다의 선한 목자가 되어 주셔서, 바벨론에서 나올 때에, 인도해 주시고 지켜주시고 먹여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지금 유다 백성들이, 고통과 슬픔과 억압 중에서 포로 생활을 마치면, 반드시 귀환하게 될 것을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곳에서 나올 때에, 하나님께서 아버지처럼, 때로는 목자처럼 인솔해 주실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예언대로 그들은 포로 생활을 마치고, 감격스러워 울면서, 그리고 소고치며 춤추며 나오는 것입니다.(4) 이사야 선지자도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온다.”(사35:10)고 하였습니다. 역사는 흘러서, 바벨론이 메대 파사하고의 전쟁에서 짐으로, 바벨론이 망하게 되었습니다. 파사 즉, 페르시아의 초대 왕 고레스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켜 줍니다. 자유를 주면서 너희들은 올라가서, 너희들이 그렇게도 원하는 성전을 지으라고 말합니다. 바벨론 나라가 빼앗아 온, 모든 성전 기구들을 돌려보낼터이니, 이것을 가지고 여호와의 성전을 지으라고 했습니다.
역대하 36장 22절 23절의 말씀입니다. “바사의 고레스 왕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여호와께서 바사의 고레스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바사 왕 고레스가 이같이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을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올라갈지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의 예언을 이루시려고,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사, 이 일을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에스라 1장에 보면(2-4), 유대인들을 포로에서 해방한다는 고레스의 칙령과 더불어, 성전 재건에 필요한 모든 것을, 내어주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과거 당신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 할 때, 430년의 역사를 끝맺고, 애굽인들의 금은보화를 가지고 출애굽하게 하셨던 하나님이, 이제는 고레스에게 은총을 입게 하여서, 많은 재물을 가지고 나오게 하셨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이 고레스를, ‘나의 목자라’고 하시면서, ‘그를 통하여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고 하셨습니다.(사44:28)
11절에, “여호와께서 야곱을 구원하시되, 그들보다 강한 자의 손에서 속량하셨으니.”(11, 사51:11참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 야곱을, 바벨론의 손에서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강한 바벨론의 손에서, 그들을 속량하여 주셨습니다. 강한 바벨론보다 더 강한 페르시아의 손길을 사용하셔서, 유다에게 자유를 주신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능하신 손길로, 당신의 백성들의 고통과 슬픔을 돌아 보사, 참 자유와 해방과 즐거움을 주신 것입니다.
그들이 고국으로 돌아와서, 어떤 삶을 사는 것입니까? 오늘 우리가 읽은 그 다음구절들을 보면, 그들의 귀환이후의 삶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먼저 12절에 보면, “그들이 와서 시온의 높은 곳에서 찬송하며, 여호와의 복 곧,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어린 양의 떼와, 소의 떼를 얻고 크게 기뻐하리라. 그 심령은 물 댄 동산 같겠고, 다시는 근심이 없으리로다 할지어다.” 귀환자들이 예루살렘에 모여서 하나님께 찬송을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복 주심으로 인하여, 많은 곡식과 포도주와, 양떼와 소떼를 얻어서 크게 기뻐합니다. 여기 여호와의 복을 여호와의 하사금으로 번역하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하사금으로 인하여 기뻐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들이 물 댄 동산 같아서, 아무런 근심걱정이 없게 되었습니다.
13절에도, “그 때에 처녀는 춤추며 즐거워하겠고, 청년과 노인은 함께 즐거워하리니, 내가 그들의 슬픔을 돌려서 즐겁게 하며, 그들을 위로하여, 그들의 근심으로부터 기쁨을 얻게 할 것임이라.”고 하셨습니다. 모두가 즐거워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슬픔을 변하여 즐거움을 주셨고, 근심을 변하여 기쁨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한 구절에, 즐거움과 기쁨이라는 단어를 무려 4번이나 사용하여서, 저들이, 고국에서 얼마나 기뻐하게 될 것인지를 말씀하셨습니다.
그 다음구절에도 보면, “내가 기름으로 제사장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며, 내 복으로 내 백성을 만족하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14) 제사장들이 많은 기름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하나님이 기름을 흡족히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아울러 하나님이 복을 주심으로, 백성들이 만족하게 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참고 사61:3) 한 마디로 말해서 유다 백성들이 고국으로 귀환하고 나서, 남녀노소 모두가, 하나님이 주신 풍족한 은혜로 말미암아, 근심걱정 없이, 늘 기뻐하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일을 누가 하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 하였을 때, 심판하시는 것도 하나님이 하실 것입니다. 포로지에서 자유와 해방을 주시는 것도, 하나님이 하실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야곱을 구원하시고, 강한 자의 손에서 속량하실 것입니다. 아울러 그들이 돌아와서 조국 땅에서, 평안히, 풍족히, 기뻐하며 살 수 있게 하는 것도, 하나님이 하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 예언대로 결국, 하나님이 이 모든 일을 하셨습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이루셨습니다. 속박과 억압을 바꾸어, 자유와 해방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들의 슬픔을 바꾸어, 즐거움이 되게 하셨습니다. 근심을 바꾸어 기쁨이 되게 하셨습니다. 불안을 바꾸어 평안하게 하셨습니다. 부족을 바꾸어 풍족하게 하셨습니다.
결론
요사이 사회에서나 교회에서, ‘회복’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합니다. 이 말은 ‘원래의 좋은 상태로 되돌리거나 원래의 상태를 되찾음’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을 사회에서는 주로, ‘경제회복’ ‘신용회복’ ‘건강회복’이라는 뜻으로, 많이 사용합니다. 반면에 교회에서는, ‘신앙회복’ ‘관계회복’이라는 뜻으로 많이 사용합니다. 참 좋은 말인데, 특히 현대 기독교인들이, 회복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회복 되어야 할 부분이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은 결국 회복에 관한 말씀입니다. 너희들이 죄로 말미암아 포로로 잡혀 가지만, 다시 회복한다. 해방과 자유를 얻어서, 다시 이 고국 땅으로 돌아온다. 그리하여 넉넉하고 평안하고, 기쁜 삶을 살게 될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1)하나님이 여러분의 영적 부분을, 회복 시켜 주시기 원합니다.
-하나님을 멀리 떠나고, 각 종 죄악과 우상숭배에 빠져 있던 그들을, 고난의 포로기를 통하여, 이제 하나님만 경배하며, 하나님만 의지하는 백성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것처럼 여러분이 잃었던 신앙을, 하나님이 회복 시켜 주시기를 원합니다. 예배를 잘 드리지 못하고, 형식적으로 앉아 있었던 것, 내 삶보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더 하찮게 여겼던 일들을, 이제 바꾸어 주셔서, 열열한 예배자, 진실한 예배자, 바른 예배자로 회복 시켜 주시기를 원합니다.
2)하나님이 여러분의 관계를, 회복 시켜 주시길 원합니다.
-유다 백성들은, 자기들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잊어 버렸고, 자기들이 누구의 자녀인지 조차도, 잊어버리고 살았습니다. 다시 말해 부자관계의 관계성을, 상실하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의 아버지이며 너는 나의 장자이다.’
-우리들의 죄로 인하여 이 관계가 흐려졌거나, 나의 세상적인 욕심과 이기심 때문에, 하나님과 나하고의 관계가 삐뚤어졌다면, 회복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리하여 아름다운 부자관계를 유지하여, 기뻐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3)하나님이 여러분의 경제를, 회복 시켜 주시길 원합니다.
-하나님이 포로에서 귀환한 그 유다백성들에게, 곡식도 주시고 포도주도 주시고 기름도 주시되, 풍성히 넉넉히 주시겠다고 하셨고, 평안하고 만족한 삶을 살게 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의 심령을 물댄 동산 같게 해 주시고, 다시는 근심걱정이 없게 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혹시나 여러분이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사업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이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사방팔방이 다 가로막혀 있는 듯 합니까? 살아가기가 막막하십니까? 죽고 싶을 정도로 경제가 어렵습니까? 미래가 불안해서 미칠 것 같습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의 어려운 사정과 형편을 다 보고 계십니다. 언젠가 반드시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넉넉히 풍성히 만족케 하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마음도, 물 댄 동산 같게 하시어, 돈 때문에 근심걱정 없도록 회복시키실 줄 믿습니다.
유다 백성들에게 그리하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영적 부분을 회복시켜 주실 것이고, 관계도 회복시켜 주실 것이고, 경제도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 하나님만 굳게 믿고, 믿음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다윗이 시편 30편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 말씀을 읽고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이는 잠잠하지 아니하고, 내 영광으로 주를 찬송하게 하심이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원히 감사하리이다.”(시30:11-12) 다윗은, 나의 슬픔을 바꾸어 춤이 되게 하시고, 나의 베옷을 벗겨서, 기쁨의 옷을 입혀 주신 그 하나님께, (나를 회복시켜 주신 그 아버지께), 영원히 감사한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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