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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큰 기쁨의 좋은 소식 (누가복음 2:8-14)
이정현 목사 2014-04-20 추천 0 댓글 0 조회 372

눅2:8-14/ 예수, 큰 기쁨의 좋은 소식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기독교의 절기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다시 살아나신 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구속하신 날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날을 가장 귀한 날로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온 세계가 부활절을 성대하게 지키며,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예수님의 부활에 관해 중점적으로 말하기 보다는, 예수님의 탄생을 말하는 본문을 잡아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부활절에, 탄생에 관해서 말해서 많이 당황하셨겠지만, 전혀 관계없는 말씀이 아니라, 탄생과 부활은 다 연결되어 있는, 귀한 진리임을 알고, 들으시면 되겠습니다. ‘홍순목 씨, 부활절에 성탄절 본문을 읽어서 많이 놀래셨지요, 저도 부활절에 계란 안주고, 싼타크로스 할아버지가 선물 주는 것 보고 많이 놀랬습니다.’

 

  주님의 탄생 없이, 부활이 없는 것이고, 부활은 탄생을 근거해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주님의 탄생이 있어야, 부활도 의미가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은 탄생과 죽음과 부활을 연결해서, ‘주님은 우리의 기쁨이다.’라는 전체적인 주제를 가지고,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만왕의 왕이시며,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이시지만, 그분은 사관에 있을 곳이 없어서, 어느 마굿간의 작은 말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겸손한 모습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주님은 높고 높은 분이지만, 낮고 천한 자리에 오셨습니다.  

 

마리아가 아이를 낳아, 말구유에 뉘었을 때에, 밖에서 자기의 양떼들을 지키는 목동들에게,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천사가 목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전해 주었습니다.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눅2:10-12) 

 

예수님에 관해 천사가 전해 준 이 소식은, 대단한 진리입니다. 주님의 탄생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는 것입니다. 단순히 베들레헴이나 유대 땅에만 미칠 소식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을 넘어 전 세계에 미칠 소식입니다. 아프리카, 아시아, 미주, 유럽 전역에 퍼져나갈 소식입니다. 그리고 과거와 현제와 미래의, 모든 사람들에게 미칠 소식이고, 남녀노소 빈부격차를 넘어,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미칠 소식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탄생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에서도 여러 가지 일로 인하여, 기쁘고 좋은 소식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사업이 대박나서 돈을 많이 벌어서, 기뻐할 수 있습니다. 집안에 건강한 아이가 태어남으로, 좋은 소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자녀들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기쁘고 좋은 소식이 될 수 있습니다. 요전에 어느 집사님의 딸이,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 시청에 발령 받았다고 기뻐하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수술을 해야하는지도 모르는데, 다행히 수술을 안 하고, 약물치료를 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하게 되어, 기뻐 좋아하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가족이 처음으로 교회에 나와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기뻐하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내 남편이 예수 믿기를 13년을 기도했는데, 이제 나왔다는 것입니다. 너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이웃집에 사는 사람을 이번에 전도하게 되어서, 너무 감사하고 좋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자훈련반을 통해서, 요사히 말씀에 은혜를 너무 많이 받는다고, 좋아하고 기뻐하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또한 어느 집사님은, 고삼 딸하고 사이가 조금 좋지 않았는데, 이번 대형 사고를 보면서, 네가 건강하게 내 옆에 있어준 것만도 감사하고, 엄마는 좋다고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이 같은 여러 가지 일들도, 우리에게 기쁨을 주고, 좋은 소식일 수 있지만, 이 정도가 아니라, 우리에게 참으로 기쁘고 좋은 소식은, 바로 우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탄생이, 나와 상관이 없는 탄생이라면, 나에게 기쁜 소식이 될 수가 없겠지요. 그러나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있는 탄생이기 때문에, 각자 각자에게, 기쁨과 좋은 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나의 죄를 위한 탄생이고, 내가 죽어야 하는데, 대신 죽기 위해서 오신 것이며, 나를 지옥에서 건져 주시기 위해서, 탄생하신 것이기 때문에, 나에게 기쁘고 좋은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기쁜 소식의 내용이,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는데, 그가 곧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지금 너희들이 가서, 당장 그 아기를 만날 수 있는데, 베들레헴에 태어난 아이들 중에서, 누가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인줄 아느냐, 그는 지금 강보에 쌓여, 구유에 누워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강보에 쌓여,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가 바로 그분이다, 메시야이다.  

 

천사가 전해주는, 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들은 목자들은, 곧장 베들레헴 전역을 뒤져서, 말구유에 누워계신 아기 예수를 발견하고는, 기뻐하며 경배합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목장으로 돌아오면서도, 기뻐하며 찬송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다시 말해, 온 세상에 미칠 큰 기쁨의 소식을, 가장 먼저 체험한 사람들이, 바로 베들레헴 근방에 사는 목동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이 좋은 소식 즉, 복음은, 전 세계로, 온 백성들에게 퍼져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목자들에게 알려졌던 이 소식은, 성전에 있는 한 노파에게도 전해지게 됩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아기예수가 태어 난지 8일 만에, 할례예식을 행하기 위하여,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이때 성전에 있던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성령의 감동으로, 아기 예수를 메시야로 알아보게 됩니다. 성령에 충만했던 시므온은, 아기 예수를 덥석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기 시작합니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눅2:30-32) 

 

시므온이 주를 뵈옵고 너무 기쁜 나머지, 벅찬 감격으로, 이런 예언적인 찬양을 드린 것입니다. 이도 분명히, 아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기쁨과 감격을 경험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가 태어났을 때, 목자들이나 성전의 시므온이, 메시야의 탄생을 보고, 이렇게 기뻐하고 찬송하며 감격해 했는데, 아기 예수가 태어나기도 전에, 그리스도를 보지도 않은 가운데, 그리스도로 인하여 기뻐했던 자가 있었습니다. 그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저는 이 성경을 읽으면서, 한 번 더 진리의 오묘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리아가 천사를 통하여 아이를 임신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요셉을 통하여 아이가 생긴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되었다고 일러 주었습니다. 이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마리아가, 산 속에 있는 자기 친족 엘리사벳을 찾아갑니다. 엘리사벳은 늙었지만, 이도 임신 중에 있었습니다. 서로 인사를 나누는데, 연장자인 엘리사벳이,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내 주의 어머니가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가,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눅1:43-44)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마리아가 손윗사람 엘리사벳을 찾아가서 문안을 했더니, 엘리사벳의 태중에 있는 아이가, 마리아의 태중에 있는 아이를 보고, 복중에서 기뻐 뒤놀았다는 것입니다. 이 아이는 훗날 태어나는 세례요한이고, 예수님보다 6개월 빠른 아이입니다. 6개월 먼저 잉태된 아이가, 이제 갓 복중에 자리 잡은 아이 예수를 보고, 기뻐하며 좋아했다는 표현입니다. 아직 그리스도가 태어나기도 전에, 아니 이제 갓 복중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도, 그 예수는, 세례요한과 그의 어머니의 기쁨이 되었던 것입니다.  

 

성령으로 잉태된 예수는, 태중에 있는 세례요한에게 기쁨이 되었고, 뿐만 아니라 태어나서 천사가 일러 준 대로, 목자들과 성전의 시므온에게 큰 기쁨이 되었고, 좋은 소식이 되었고, 찬송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성장하여 30살이 될 때까지, 가정을 돌보아 왔습니다. 아버지 요셉이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주님은 목수로서 일을 하면서, 어머니와 동생들의 생계를, 책임져야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30세부터, 하나님의 일을 전적으로 하시는데, 33살까지 3동안 동안, 공생애의 삶을 사시는 것입니다.  

 

갈릴리를 중심으로 3년 동안 사역하신, 주님의 모든 사역을, 한마디로 선포하시고 가르치시고, 고치신 사역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쉴 세 없이, 부지런히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고, 복음과 진리를 가르치셨고, 병약한 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에서 못 박혀 돌아가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침 뱉음을 당하시고, 따귀를 맞으시고, 홍포를 입히고 갈대를 들려줌으로 조롱을 당하셨습니다. 머리에 무서운 가시 면류관을 쓰셨습니다. 무거운 십자가를 지시고 가다가 쓰러지고, 군병들의 채찍에 피를 흘리며, 고통스러워 하셨습니다. 청중들의 조롱과 멸시와 천대를 한 몸에 다 받으시며, 그 언덕길을 오르셨습니다.  

 

양손 양발에 커다란 대못을 받으시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수치를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밑에서 군인들은, 주님의 옷을 나눠가지기 위해, 깔깔 웃으대며 제비뽑기를 합니다. 수많은 청중들은, 침을 뱉으며 저주하고 야유를 합니다. 오전 9시에 달리셔서 오후 3시까지, 피 한방울 한방울을 흘리며, 모진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마지막에 ‘엘리엘리 라마사박다니, 다 이루었다’라고 하시고 운명하셨습니다.  

 

죄가 없는 분이, 이처럼 흉악한 죄인처럼 되신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왜 흠과 티가 없는 메시야가, 이처럼, 흉악무도한 자가 져야할 십자가 위에서, 비참하게 운명하셔야만 했습니까? 도대체 왜 그리하셨습니까? 그것은 곧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한 대속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5-6) 주님이 찔리고 상함은, 분명히 우리의 허물과 죄악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 무리의 죄악을, 십자가 위의 예수님께, 담당시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도 로마서에서, 우리가 연약하고 죄인이었고,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분명한 사실에 근거하여 한 찬송가 작사자는, ‘웬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가셨나,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큰 해 받으셨나. 내 지은 죄 다 지시고 못 박히셨으니, 웬일인가 웬은혠가 그 사랑 크셔라.’(143장 1-2절)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또한 145장에는 이런 고백이 있습니다. ‘주 당하신 그 고난, 죄인 위함이라. 내 지은 죄로 인해, 주 형벌 받았네, 내 주여 비옵나니, 이 악한 죄인을, 은혜와 사랑으로 늘 지켜 주소서.’ 이 외에도 수많은 찬송가에서, 예수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려 몸 버려 죽으셨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십자가가 아버지와 주님에게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과 모멸이었겠지만, 우리에게는 은혜와 사랑과 기쁨과 희망이 되는 것입니다. 이거 없이는, 내 죄를 씻을 길이 없습니다.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십자가가, 나에게 얼마나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까? 천사가 목자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온 세상에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한다고 하신 것에는, 십자가의 기쁨도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만 생각하면 감사하지 않습니까? 기쁘지 않습니까? 감격스럽지 않습니까? 나를 향한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생애가 이렇게 죽음으로만 끝나셨다면, 얼마나 절망적이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죽음의 절망을 이기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희망을 주셨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는 소식보다, 더 큰 기쁨의 소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주님의 부활은, 죽음과 지옥의 문제를 해결한 사건입니다. 부활이 아니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부활이 아니면, 지옥의 아가리에서 건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부활이 아니면, 절대로 영생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희망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부활의 근거요 보증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영생의 출발이 됩니다. 부활은 죽어도 산다는 것이며, 살아서 영생한다는 뜻입니다. 이것보다 더 즐겁고 신나고 기쁘고 좋은 소식이 어디 있습니까?  

 

마태복음 28장에 보면, 예수님이 무덤에 계셨을 때,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갑자기 천사들이 여자들에게 나타나서, ‘너희가 예수를 찾는 줄 알지만, 그는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다. 그분이 누우셨던 곳을 봐라. 너희는 빨리 제자들에게 가서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고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때 성경에 보니까,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 했다.”고 했습니다.(마28:8) 사랑하는 주님이 살아나셨다는 소식을 듣고, 이 여인들은 크게 기뻐합니다.  

 

그 날 저녁 때 즈음에, 제자들과 많은 성도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었습니다. 물론 화두는 주님의 부활이었습니다. 부활을 목격한 자들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주님이, 그 가운데 스르르 나타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주님의 영으로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이때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눅24:38-39) 주님이 친히 못자국난 손과 발을 보이니, 그것을 본 사람들이, 크게 기뻐했다고 말씀했습니다. 너무 기쁜 나머지, 자기들의 눈을 믿을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눅24:41) 근심과 좌절과 절망 중에 있었던 자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은, 평안과 희망과 기쁨을 주셨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부활에 대하여 얘기를 합니다. 거기서 바울은,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다.’ 신화가 아니라, 역사적 놀라운 사건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부활이 없으면, 우리가 어리석은 자이며, 우리의 믿음이 헛것이고, 여전히 죄 가운데 있어 다 망하고 말 것이다. 이어서 그는, 부활에는 두 가지 부활이 있는데, 사망의 부활과 생명의 부활이 있다고 했습니다. 사망의 부활은, 마지막 날에 살아나기는 하지만, 영원한 지옥에 들어가기 위해서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생명의 부활은,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기 위하여,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부활에 관해 이런 말씀을 하신 후, 마지막 부분에서 ‘이 부활을 확실히 믿는 사람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말고,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부활 신앙을 가진 우리들은, 어떤 어려움이 와도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부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주의 일에 항상 힘써야 합니다. 그것도 기뻐하며 일해야 하는 것입니다. 부활은 우리에게, 큰 기쁨을 주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죽음을 해결하는 약을 개발했다고 합시다. 이 약 한 알만 먹으면,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는 겁니다. 아니 영원히 사는 것 말고, 한 500년 정도만, 살 수 있다고 생각합시다. 작은 신약 1알만 먹으면, 죽을 사람이 죽지 않고 500년을 산다면, 여러분은 그 약을 사겠습니까, 안 사겠습니까? 얼마냐고요? 1알에 5억원입니다. 500년을 살 수 있는 약이라면, 5억이 아니라 그 이상을 한다 해도, 아마도 다 살 것입니다.  

 

그런데 영원히 사는 약이 있다면, 여러분은 그 약을 안사시겠습니까? 다 사실 것입니다. 돈이 없으면 달러 빚을 내서라도 살 것입니다. 왜지요? 그 한 알만 먹으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고, 영원히 살 수 있으니까.  

 

그런데 여러분은, 아무 것도 안 줘도 그것을 얻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님을 지적으로 알고, 정적으로 공감하고, 의지적으로 동의하여 믿는다면, 죄와 지옥과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개인의 구세주로 믿기만 하면, 죄 용서를 받습니다. 예수를 영접하고 거듭나기만 하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으면, 죽음의 문을 통과하여, 영원한 죽음인 지옥에 이르지 않고, 천국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주와 함께 영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창세 이후로, 주 안에서 이것을 믿고 죽은 사람은, 다시 살아납니다. 영원한 생명의 부활로 나타날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영원한 천국에서 살게 됩니다. 다시는 죽음과 애통함과 곡하는 것이나, 슬픔이나 아픔이 없는 그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될 것입니다.  

 

그 하나님 앞에서, 우리 다 같이 경배하며 영광을 돌리며, 12과일을 먹으며 극락을 누리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다시는 끔직한 사건 사고가 없을 것입니다. 평안함과 기쁨과, 감사와 찬송만 넘치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예수 때문에 얻게 되는 기쁨이요, 평안이요 은혜입니다.  

 

이것을 안 천사들이, 주님이 이 세상에 태어나실 때, 목자들에게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예수님의 탄생은 우리의 기쁨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도 우리의 기쁨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예수님의 부활도 우리 모두의 큰 기쁨입니다. 오늘도 여전히 예수는, 우리의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십니다. 이것은 5억원을 주고, 500년을 살 수 있는 알약을 샀을 때보다, 더 큰 기쁨입니다.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우리의 영원한 기쁨이 되시는, 그 주님을 잘 섬기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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