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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한 고넬료의 가정 (행10:1-8)
이정현목사 2014-05-11 추천 0 댓글 0 조회 482

예수님 당시 전 세계의 강대국은, 로마였습니다. 로마가 주로 지중해 연안의 세계들을 지배하면서, 먼저 그 지역을 효과적으로 점령하기 위해서, 도로와 항구들을 개발하였습니다. 군인들과 보급선들이 빨리 왕래할 수 있는, 길과 항구를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전 세계가 로마로 길이 통하도록 만들었고, 로마가 지배하는 곳이면 항상, 튼튼한 항만 하나쯤은 있게 되었습니다.

 

로마가 유대 땅을 지배하면서도, 마찬가지로 항구를 하나 건설하게 되는데, 가이사랴라는 곳에 만들게 됩니다. 그런데 사실 갈릴리 서쪽 해변부터, 남쪽 유대까지의 지중해 해변은, 경사가 완만하기 때문에, 항구를 세울 수가 없습니다. 입지적인 조건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당시 예루살렘을 수도로 하고 있었던, 이스라엘을 통치하려면, 가장 근거리 해변이 바로 가이사랴이고, 그곳에 항구를 세울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고민하다가 육지에서 바다로 몇 백미터 길을 만들어가서, 바다 가운데서 배가 접안할 수 있도록, 항구를 만든 것입니다. 군인들이나 많은 곡물을 실은 배가 들어오려면, 일단 수심이 깊어야 하는데, 완만한 해안지대라 수심이 안 나오니까, 로마 사람들은 이런 방법을 쓰서, 가이사랴 항구를 만든 것입니다.

 

이곳에 로마 군대를 주둔시키고, 그들에 의해서 이스라엘의 치안을 유지해 나가며, 속국을 지배하였던 것입니다.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예수님 당시 가이사랴에 주둔한 로마군대는, 6천 명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을 보아 가이사랴에, 그 규모가 대단히 큰 항구를, 만들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의 유적지를 가 보더라도, 가이사랴 항구의 규모는, 엄청나게 크고 넓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여기에 파병된, 로마의 장교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고넬료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이 고넬료는, 참으로 매력적인 사람입니다. 한 가정의 아버지로서, 한 사람의 신앙인으로서, 참으로 모범 된 사람으로 보여 집니다. 그래서 오늘은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경건한 고넬료의 가정을 살펴봄으로, 은혜 받고자 합니다. 우리도 이 사람처럼 신앙생활 하고, 우리의 가정도 이 사람의 가정처럼, 경건하고 행복한 가정이 되었으면 합니다.

 

고넬료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그의 사회적 신분에 관하여, 본문 1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고넬료는 로마황제의 파송을 받아서, 가이사랴의 이달리야 부대의 백부장으로 부임을 한 것입니다. 이달리야 대는, 당시 가이사랴에 주둔해 있던 한 부대의 이름이고, 고넬료는 그 부대의 중대장급 되는 장교인 것입니다. 당시 사회적 신분으로 볼 때, 이 직위는 대단히 높은 것이고, 권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로마의 지배를 받던 이스라엘 입장에서 볼 때는, 이달이야 부대나 고넬료는,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며, 멸시받는 한 이방인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이 멸시하던 사람들 중에는, 순서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세리를 미워했고요, 세리보다 더 미워했던 사람이 창녀들이고, 창녀들보다 더 안 좋게 본 사람이 군인들이고, 군인들보다 더 나쁘게 본 사람들이, 사마리아 사람들이고, 사마리아 사람들보다 더 나쁜 놈으로 본 것이, 이방인들 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넬료는 사회적 신분은 있었으나, 유대인들 입장에서 볼 때에는, 군인이면서 이방인이었으므로, 유대인들의 경멸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군인이며 이방인이어서 외부적으로 볼 때, 유대인들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보면, 유대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회적 신분 때문에 존경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의 인품과 신앙 때문에, 유대인들의 존경을 받은 것입니다.(22)

 

다음으로, 고넬료의 영적 위치, 또는 신앙생활면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고,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2) 그는 군대의 장교로서, 또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경건하게 살았습니다. 여러분, 경건이 무엇입니까? 성경에서 정말 중요하게 취급하고 있는, 그 경건이 무엇입니까? 야고보 선생이, 참된 경건에 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약1:27)

 

넥타이를 점잖케 매고, 걸음을 천천히 걷고, 성경책을 옆에 끼고, 기도할 때 온갖 미사여구를 쓰서 장엄하게 하고, 어떤 직분이 있다고 해서 경건한 것이 아닙니다. 참 경건은,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는 것입니다. 비록 고아와 과부는 아니라할지라도, 사회적 약자나 어려움과 고통 중에 있는 불쌍한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돌아보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경건은 추상명사가 아니라, 능동적인 동사인 것 같습니다. 행동하는 것이며, 불우한 이웃을 돌보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세월호 참사로 인하여 슬픔 중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여러분이 기도해 주시고, 또한 정성스럽게 헌금을 해 주셔서, 그것을 교회이름으로 전달할 수 있게 되어서, 너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환란 중에 있는 사회적 약자들을 돌아보는 것이, 경건인 것입니다.

 

또한 그러면서 동시에, 경건은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세속적인 가치관, 물질 지상주의, 세상을 사랑하는 것, 거짓되고 속이는 것, 세상적인 욕심,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물들지 않도록, 자기 자신을 부단히 지켜 나가는 것입니다. 무엇으로 이것들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말씀과 기도뿐일 것입니다. 그래서 경건생활의 밑바탕에는, 항상 이 두 가지 요소가 깔려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빼 놓고는, 경건을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마디로 말하면, 경건은 어려운 이웃들을 돌보면서, 세속에 물들지 않도록, 자기 자신을 지켜 나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고넬료는 경건했다는 것입니다.

 

 

고넬료에게도 야고보가 말했던, 참 경건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었습니다. 보시면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했습니다. 경건하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잘 경외함이 없다면, 그것은 거짓입니다. 모든 일에 하나님 경외가 우선입니다. 마찬가지로 경건생활에도 우선이, 하나님을 잘 경외하는 것입니다. 고넬료는 자기만, 하나님을 섬기며 경외하지 않았습니다.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했는데,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짝 가정이 아니었습니다. 남편만 믿었다든지, 아니면 아내만 하나님을 섬긴다든지, 부모만 나오고 아이들은 예배를 드리지 않는다든지-그러지를 않았습니다. 모든 가족이 하나님을 예배하며 살았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백성을 많이 구제했다.’고 했습니다. 지금 고넬료는 점령군의 장교입니다. 이스라엘을 지배하며, 이들의 치안을 유지하는 일만 하면 되었습니다. 이들을 통치하며 적당히 지내다가, 다시 로마로 돌아가서, 그곳에서 잘 살고 진급해서, 성공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넬료 중대장은, 그런 것에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단지 어려운 이스라엘 사람들을 도와주며, 그들을 구제하며, 그들에게 사랑을 베풀며 살아갈 뿐입니다.

 

구제는 자기의 호주머니를,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꺼이 여는 것입니다. 자기희생이 없이는, 진정한 구제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고넬료는 자기의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서, 얼마든지 백성들을 억압하고, 두려움을 주어 급박해서, 돈을 떧어 내어 착복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단순한 점령군의 장교로 살지 않았고, 오히려 못 먹고 못살고, 배고파 굶주림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열심히 구제하며 살았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는,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며 살았습니다.’ 기도하는 것은, 경건생활의 중요한 일면입니다. 기도를 빼 놓고, 경건을 말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더더욱 고넬료는, 항상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어쩌다가 한 두 시간 기도한 것 아니고, 어쩌다 며칠 새벽 정기기도회에 나온 것 아니고, 어쩌다가 한 두 달 기도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는 바쁜 일과 중에도, 항상 기도하며 살았습니다. 이것은 대단한 경건생활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고넬료는, 무슨 제목으로 기도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 추측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고넬료는, 자기의 출세를 위하여, 돈 벌기 위하여, 기도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다음과 같은 기도를 했을 것으로 봅니다. “하나님, 내가 지금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모르는 게 너무 많습니다. 아무쪼록 잘 가르치는, 좋은 지도자를 보내주시옵소서. 하나님이여, 하나님의 말씀을, 좀 더 밝히 깨달아 알 수 있게 하여주시옵소서. 그리고 하나님, 나의 기도를 쉬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 아마도 이런 기도였을 것이라 상상합니다. 내가 지금 경건하게 살고자 애쓰고 있으니, 좀 더 경건하게,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게 해 달라는 것이, 그의 기도 제목이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지속적인 기도를 통하여, 그 사람의 인격이 바뀌고, 인생이 변하고, 막힌 담이 무너지고, 문제가 해결되고,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고, 신앙의 깊이가 있어지고, 맡은 사명을 감당하게 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게 되고, 성령 충만과 각종 은사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루는 천사가 나타나서,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4) 하나님이 아시고 보시고 기억하실 정도로, 고넬료는 경건하게 살았습니다. 얼마나 경건했든지 자기뿐만 아니라, 자기 부하까지도 경건했다고 했습니다. 본문 7절에 보면, 그의 부하 가운데, 경건한 사람이 있었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이것은 자기의 경건생활이 자기 부하에게 미쳐서, 부하도 중대장을 모범삼아, 경건하게 산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고넬료의 구제는, 야고보의 고아와 과부를 그 환란 가운데 돌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고, 고넬료의 하나님 경외와 기도는,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가 언제부터 하나님을 알고 믿고, 이처럼 아름답게 경건생활을 했을까요? 그가 로마에 있었을 때부터 하나님을 알았는가? 아니면 유대 땅에 파송된 이후에, 하나님을 알고 섬기게 되었는가? 확실한 것은 없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가 점령지 팔레스틴 땅에 와서부터, 하나님을 알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누구로부터, 하나님에 관하여 배우게 되었을까요? 많은 사람들은, 고넬료가 유대 땅에 와서, 한 유대 여인과 결혼하였을 것으로 보고, 그녀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고 믿게 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아무튼 어떤 경로와 누구를 통해 하나님을 믿었든지 간에, 고넬료는 점령군의 장교가, 훌륭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고, 경건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고넬료는, 말씀을 사모했던 사람이고, 또한 말씀전하는 사람을, 지극히 공경했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고넬료는, 욥바에 머물고 있는 베드로를 청하게 됩니다. 이때 베드로는 욥바 항구, 바닷가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무두장이는 죽은 짐승의 가죽을 벗겨서, 가죽을 만들어 파는, 당시에 아주 천한 직업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한동네에 어울려 살지 못하고, 적어도 23m 이상(50규빗) 떨어져 외톨이로 살았고, 짐승을 다루다 보니까, 자연히 바닷가에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탈무드에 보면, 이런 남편이 무두장이 업을 시작하면, 그 아내는 남편에게 이혼을 청구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런 집에, 그리스도의 사도인 베드로가 머물고 있었습니다. 천사의 지시로, 이 집에 기거하고 있는 베드로를 초청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고넬료는 자기 종들과 부하를 보내서, 베드로를 모셔오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명령을 받은 종들이, 베드로를 찾아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우리 주인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고, 유대 온 족속에게 칭찬 받는 분으로, 그가 천사의 지시를 받아, 너를 그 집으로 청하여, 말을 들으려 하느니라.’(22) 이 말로만 보면, 종들은 베드로를 공경하지 않은 것 같고, 어쩌면 무두장이의 집에 함께 거하고 있었으므로, 천시했던 것 같고, 오히려 자기 주인을 한 껏 높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도 기도하는 중에, 성령의 지시를 받았던 터라, 의심 없이 이들을 따라 가이사랴로 가게 되었습니다(50km).

 

이들 일행은 이틀 만에 가이사랴에 도착하게 되고, 기다리고 있던 고넬료의 집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이때 고넬료는 누구를 모아 놓고, 어떤 마음과 태도로 베드로를 대하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그의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24-25)

 

고넬료는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자기 혼자만 말씀을 들으려하지 않았습니다. 혈족들과 친구들까지 다 불렀습니다. 그들도 말씀을 듣고, 은혜 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그에게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사도의 말씀을 듣고, 모두가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번 페밀리 데이 때에도, 이런 마음과 태도로, 여러분의 가족들과 친척들과, 친구들과 이웃들을 모시고 오시기 바랍니다.

 

고넬료는 이 정도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가 베드로 사도를 뵈었을 때, 그의 발 앞에 엎드리어 절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대단한 존경을 표하는 행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로마의 장교로서, 황제에게나 할 수 있는 행동입니다. 점령군 장교가, 점령지의 하찮은 한 시민에게, 어찌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입니까? 그는 베드로를 단순한 한 시민으로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말씀을 전해 주시는 사자로 보았던 것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고넬료는, 로마의 육군사관학교 출신이지만, 거기에 비해 베드로는, 초등학교 출신의 한 어부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넬료가, 그 베드로 앞에 꿇어 엎드려 절을 했다는 것은, 대단한 존경심을 표현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가 목사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여러분이 말씀을 통하여 은혜를 받으려면, 목사와의 관계가 좋아야 하고, 목사를 하찮게 대하지 말고, 말씀을 맡은 하나님의 종으로, 존경하는 마음으로 대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말씀을 가르치는 자를, 배나 존경할 자로 여기라고 했듯이, 설교자를 존경하지 않으면, 절대로 은혜 받을 수 없음을 기억하고, 존경함으로 말씀을 경청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같은 고넬료의 마음과 태도는, 그의 종들이 베드로를 대하는 태도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습니다. 고넬료의 종들은 베드로를 사무적으로, 점령지의 하찮은 한 사람의 시민으로 대하였으나, 고넬료는 베드로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마치 신에게 경배하는 태도를 보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고넬료가 가진, 말씀을 듣는 태도와 마음가짐이었습니다.

 

욥바에서 가이사랴에 도착한 베드로는, 모여 있는 사람들 앞에서, 이제 설교를 합니다. 사도행전 10장 34절에서 43절까지가 베드로의 설교인데, 설교의 핵심 된 내용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였습니다. 다른 성경에 나타난 베드로의 설교와 동일하게, 여기서도 십자와 부활, 그리고 회개에 대한 분명한 메시지를 전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어떤 결과가 일어났습니까? 참으로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충격적인 은혜로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44절 말씀에,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베드로의 설교와 동시에, 성령이 임하였다는 것이고, 또한 말씀을 듣는 사람들에게만, 성령이 임하셨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오늘날도 성령은, 말씀을 통하여 오시고 역사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말씀을 통하지 않은 성령의 역사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 항상 성령의 역사는, 말씀을 따라 오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말씀을 잘 듣지 않으면, 절대로 성령의 강림과 역사를 체험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모함으로 설교를 듣지 않는데, 말씀에 은혜가 되겠습니까? 딴 생각하고 졸고 있고, 관심도 없이 체면 상 억지로 앉아있는데, 그들 가운데 성령님이 은혜 주실 수 있겠습니까? 성령님은 말씀을 사모하며, 말씀을 귀담아 듣는 사람에게 임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이 임하시니까, 베드로를 비롯한 많은 유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게’ 됩니다. 오순절 강림 이후, 이방인들에게 성령 부어주심의 역사는, 처음 있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할례 받은 사람들이,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자기들이 오순절 날에, 성령 받을 때와 똑 같은 현상이, 이방인들에게 일어났으니 얼마나 놀랬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 민족에게만, 성령을 약속하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부어주심을 보았으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성령을 받은 이들은, 이제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을 높이게 되었습니다.’ 동일한 은사가, 저들에게도 주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다 같이 하나님을 높이게 됩니다. 이에 베드로가,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하고(47),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합니다(48). 이들은 말씀을 들음으로 성령세례를 받고, 성령 세례가 참이라는 증거로, 물세례를 받게 된 것입니다. 이제 이들은 교회의 일원이 되어서, 하나님과 교회를 더 잘 섬기는 자들이 된 것입니다.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가정의 달에, 부부관계에 대하여 설교할 수도 있습니다. 부모와 자녀간의 관계에 대하여도, 설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올해는 사도행전 10장의 말씀을 근거로, 경건한 고넬료의 가정에 대해서만 살펴보았습니다.

 

우리의 가정이, 이런 가정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고넬료가 사회적 신분이 높았듯이, 여러분도 사회적 신분이 높아지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비록 사회적 신분은 높지 않다하더라도, 영적으로 경건한 가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버지, 어머니, 아들과 딸들이, 다 같이 말씀보고 기도하며, 찬송하고 예배하는, 온 집안이 하나님을 잘 경외하는 가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어려운 이웃들을 돌보며, 기도에 항상 힘쓰는 그런 가정이 되시기 바랍니다.

 

혹자는 고넬료가 ‘경건했다’는 이 말을, ‘지킬 것은 지키고, 끊을 것은 끊고,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리는 것을 말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일리 있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생활을 하고 교회에서 직분을 가지고 있음에도, 아직도 못된 옛날 버릇들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술, 담배, 도박, 마약, 오락, 야동 보는 것, 구타, 기타 못된 습관들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그런 거 붙들고, 신앙생활에 지장을 받으실랍니까? 과감하게 잘라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고넬료의 집안처럼 경건한 가정으로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이번 페밀리 데이 때부터는, 모든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사모함으로 말씀을 듣고, 말씀을 전하는 주의 종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으로 들음으로, 은혜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들음으로 성령 충만하시기를 바라고,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을 높이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뿐만 아니라 성령 충만하면, 늘 행복하고 기뻐하며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세상이 부럽지 않은, 평안과 감격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의 청지기로써, 보람되게 인생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혹시, ‘상계동의 슈바이처’라는 사람을 아십니까? 이 사람은 오래 전에, 세브란스 의전을 졸업하고, 일본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1984년도에 서울 상계동에 은명내과를 개원하며, 그때부터 의료봉사를 시작하였습니다. 이때부터 병원 문을 닫을 때까지 20년 동안, 모든 진료에 천원만 받는 ‘천원진료’를 실시했다고 합니다. 또 85년에는 은명장학회라는 장학재단을 설립하여, 지금까지 2천 여명에게 장학금을 주었고요, 86년 설립한 ‘은명 심장 수술 후원회’를 통해, 지금까지 40여명의 심장병 어린이에게 수술비를 보태왔고, 90년부터는 ‘은명 무료 독서실’을 설치하여, 상계동지역 영세민 자녀의 공부방 고민을 해결해줬고, ‘은명 봉사의 전화’를 통해, 먹고살기 바쁜 영세민들의 민원을 해결해 주는, 심부름센터의 역할을 해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96년에는, 자신의 부동산 6만 5천여 평(감정평가액 53억 원)의 토지를, 자신의 모교인 연세대에 기증하였습니다. 그가 이렇게 산 것은, 그가 당뇨병, 협심증 등을 앓아, 몸이 몹시 허약해졌을 때, ‘하나님께, 한 달만 더 살게 해 주신다면, 많은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기도하여, 응답받고, 당시 논밭이던, 상계동 지역으로 이주해서 봉사했다고 합니다. 몸이 안 좋아, 진료도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하루에 4시간 밖에 못했을 정도였으나, 모든 예배를 드리며, 기도하기를 힘썼다고 합니다. 그는 연세대에 53억을 기증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젠 내 삶을, 정리해 가야 할 때가 됐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는 관리자일 뿐, 소유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진 달란트와 재산도 전부 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청지기로 생각하고, 한 평생 경건하고 구제하며 산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김경희 박사인데요, 이 사람을 가리켜 ‘상계동의 슈바이쳐’, 또는 ‘상계동의 페스탈로찌’라고도 한답니다. 고넬료처럼 산 사람이, 김경희 박사인 것 같습니다.

 

이제 고넬료 사건을 통하여, 복음이 유대인의 담을 넘어, 이방인들에게 효과적으로 전파되게 되었습니다. 이 복음이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서, 오늘 우리에게도 전해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고넬료처럼 경건한 가정생활을 하고, 성령에 충만한 삶을 살아갈 때, 우리와 우리 가정을 통하여,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될 줄 믿습니다. 이런 행복하고 멋지고,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가정을 만들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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