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로 인하여, 나라의 행정조직을 바꾸기로 하였습니다. 해양경찰청과 소방 방재청을 없애고, 국무총리 밑에, 국가 안전처와 인사 혁신처를 두었고, 행안부를 행정자치부로 바꾸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나라는, 17부 5처 16청의 행정 조직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지금 조직을 바꾸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사람을 잘 선택해서, 그 자리에 앉히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면서, 남은 임기동안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국정 운영을 잘 해 나가기를 바랍니다.
본문 1절에 나오는 다리오 왕은, 페르시아의 제3대 왕이었습니다. 이 왕이 나라의 행정조직을 개편하는데, 왕 밑에 국무총리 세 명을 두고, 그 밑에 도지사 120명을 두어서, 나라를 다스리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이 국무총리 가운데 한 사람인데, 그가 너무 지혜롭게 일을 잘 하니까, 국무총리들 가운데서 수석 국무총리로 세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다니엘은 유대에서 포로로 잡혀 온 한 소년에 불과했지만, 이제 당당히 대제국 페르시아의 제2인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왕의 뜻에 반대하여, 다니엘이 수석 국무총리가 되는 것을, 반대하는 대신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다니엘을 시기하여, 고발할 거리를 찾았습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행정적인 면에 허물을 찾아보았으나, 아무런 잘못이나 약점이 없었습니다. 인격적 면의 잘못을 찾아보았지만, 여기에도 아무런 그릇됨이 없었고, 오히려 충성되었음으로, 그 어떤 허물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지금 국무총리 자리가 비워있는데, 이 다니엘 총리처럼, 기능적으로도 행정 능력이 있는 사람이고, 인격적으로도 맡은 일에 충성스러우며, 모든 면에서 흠과 티가 없는 이런 인물이, 국무총리로 세워져서, 이 나라를 바로 이끌어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다가 이들 중 어떤 고관이, 다니엘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임으로, 하나님과 관계된, 어떤 허물과 약점을 찾아보자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다니엘이 매일 규칙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러면 그것을 근거로, 올무를 만들어 보자고 계략을 짰습니다.
참으로 얼토당토 않는, 황당한 한 법을 만든 것입니다. 앞으로 1달 동안은, 그 어떤 신이나 사람에게 기도하지 못하고, 오로지 다리오 왕에게만 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 법을 어기면 누구를 막론하고, 사자굴 속에 집어넣는다는 것입니다.
대신들은 왕의 이 금령에, 왕의 도장을 찍어서, 메대와 바사의 고치지 못하는 규례로 만든 것입니다. 당시 전 세계의 최강국이었던, 페르시아 제국의 이 같은 금령은, 정말 상식이하로, 한 사람을 규제하기 위해 만든 법률이었던 것입니다.
이 법률이, 민생에 무슨 도움을 주는 것입니까? 공공요금을 한전이나 도시가스에서, 자기 마음대로 올리지 못하도록 하는 법률이면, 민생에 큰 도움이 되는 법률입니다. 대기업에서 생필품을 사제기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률도, 국민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자동차 세금이, 다른 세금보다 상대적으로 비싸니까, 합리적이며 효율적으로, 세법을 만들어 적용을 시키면, 국민들의 생활에 큰 보탬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한 달 동안 기도를 못하게 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사자굴 속에 집어넣어 죽이겠다는, 이런 법이 어찌 민생을 위한 법률이겠습니까? 이것은 백해무익한 법이고, 단순히 다니엘의 진급을 막아보려는, 야비한 술책에 불과한 것입니다. 거기에다 이것을 고치지 못하도록, 왕의 어인을 찍어서, 페르시아의 120도에 공지했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정치인들이었습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기도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왕의 명령대로 1개월 동안은, 어떤 기도도 하지 않을 것입니까? 아니면 아무도 들리지도 보지도 못하게 해서, 조용히 기도하시겠습니까?
다니엘도 얼마든지 이런 저런 생각을 했겠지만, 그래도 그는 전에 하든대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6:10) 이 성경구절의 말씀을 볼 때 다니엘은, 왕의 도장이 찍힌 기도 금지 서류를 보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문을 열고 기도합니다. 이는 과거 솔로몬이 하나님께 기도한, ‘우리가 만약 하나님께 범죄 하여, 이방나라로 끌려가서, 그곳에서 이곳을 향하여 기도하면, 주께서 저들의 간구를 들으시고, 주께서 계신 곳 하늘에서 들어 달라.’(왕상8:46-51)는 내용에 근거하여, 기도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창문을 열면 감시자의 눈에 쉽게 발각될 것을 알면서도, 문을 열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또 다니엘은 전에 하던 대로 즉, 습관대로 기도했으며, 규칙적으로 하루 세 번씩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는 것은, 간절함으로 기도했다는 뜻이고, 기도의 대상은 분명히 하나님으로 정하였고, 범사에 감사하며 기도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이 한 문장이, 다니엘의 기도와 신앙에 대한 모든 면들을, 다 말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는 지금 에스더처럼, 죽으면 죽으리라는 일사각오로,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만이 믿음의 대상이요, 기도의 대상임을 확실히 보여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다니엘은 왕의 조서를 무서워하지 않았고, 고관들의 정치적 계략을 두려워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것 때문에 기도를 쉬지 않았고, 세상적인 생각으로 적당히 타협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니엘은 창문을 닫고 할 수도 있었으나, 하던 대로 창문도 열고 기도했고, 횟수도 줄이지 않고 하루에 세 번씩 기도했고, 왕에게가 아닌, 하나님 여호와께 감사함으로 아뢴 것입니다. 유일한 창조주이시며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우리 기도의 대상임을 인정하고,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다니엘이 기도하는 이 광경은, 쉽게 많은 대신들에게 발각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이 상황을 노칠리 없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발견한 그들은, 당장 왕에게 가서, 다니엘이 왕의 금령을 어긴 것을 고발합니다. 이 보고를 받자 왕은, 다니엘을 아끼므로, 하루 종일 다니엘을 구원해 낼 방도를 알아보았지만, 찾지를 못하였습니다.
왕이 머뭇거리고 있는 틈을 타서, 대신들이 또다시 왕을 압박하는 것입니다. 이 규례는, 왕께서 도장을 찍어 반포한 것이기 때문에, 절대로 바꿀 수 없다고 얘기합니다. 왕이 다니엘을 사랑하고 아끼지만, 하는 수 없이 그를 사자굴 속에 집어넣으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왕이 국무총리 다니엘에게, ‘네가 항상 섬기는 너의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고 위로의 말을 해 줍니다. 이 말을 볼 때, 왕이 얼마나 다니엘을 사랑했는지와, 또한 왕이 다니엘의 신앙을, 충분히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에 사람들은 신이 나서, 눈의 가시와도 같은 다니엘을, 굶주린 사자굴 속에 집어넣고, 굴 입구를 큰 돌로 막고서, 아무도 이 돌을 함부로 옮기지 못하도록 인봉을 해 버렸습니다. 쉽게 말해서, 도장을 찍어 입구를 봉했다는 것입니다.
이쯤 되면 다니엘이, 어떻게 될까는 뻔한 것 아니겠습니까? 다니엘이 삼손이 아닌 이상, 그는 벌써 사자 밥이 되었을 것입니다. 혹시 목숨은 부지했다할지라도, 인봉된 돌문을 옮기고 나올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니엘은 이제 어쩔 수 없이 죽는 것입니다. 삶의 희망이 전혀 없습니다.
왕도 걱정이 되었는지 금식하며, 그 밤을 홀딱 세는 것입니다. 그리고 육신적인 즐거움을 찾지도 않았습니다. 이튿날 새벽에, 왕이 급히 사자굴로 갔습니다. 다니엘이 들어갔던 사자굴 앞에서, 왕은 떨리는 목소리로 다니엘을 불렀습니다.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들에게서 능히 너를 구원하셨느냐?”(단6:20) 다리오 왕이 얼마나 떨리는 마음으로, 이렇게 말 했을까요? 조용하게 침묵이 흐르는 그 사자굴 속에서, 다니엘의 음성이 들렸을까요, 아니면 으러렁거리는 사자의 소리가 들렸을까요?
너무 반가운 다니엘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왕이여 만수무강 하옵소서.’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하지 못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에게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22) 왕의 소리를 들은 다니엘이, 먼저, ‘왕이여 나를 건져주세요. 무서워 죽겠습니다.’-이러지 않고, 이 와중에서도 왕의 안부를 먼저 묻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미 천사를 보내어서, 사자들의 입을 봉하심으로, 나를 해치지 못하게 하셨다고 고백합니다.
‘이미’라는 말은, 다니엘이 그 굴속에 들어가기도 전에, 벌써 천사를 통하여 사자들의 입을 봉해버렸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다니엘은 그 밤에, 여러 마리의 온순한 사자의 털을 배고, 잠을 편하게 잣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다니엘이 사자 앞에서 무서워 한 게 아니라, 사자들이 다니엘 앞에서, 온순한 양처럼 꼼짝 못했던 것 같습니다. 다니엘이 사자의 이빨에서 무사한 것은, 나의 무죄함과, 왕에게 해를 입히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바꾸어 말하면, 내가 만약 죄를 지었거나, 왕에게 해를 입혔다면, 하나님이 사자굴에서, 나를 보호해 주시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을 들은 왕이, 다니엘을 굴에서 올려서 그 몸을 살펴보니, 조금도 상한 곳이 없었습니다. 22절에 ‘상하지 아니했다’는 이 말은, ‘긁히지 아니했다’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고로 다니엘의 몸에, 사자의 발톱자국이 전혀 나지 아니했다는 의미입니다. 다니엘이 자기 힘으로 사자를 때려눕히고 살아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온전하게, 그를 보호하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다니엘의 선한 목자가 되셔서, 낮의 해가 상치 않토록, 밤의 달이 해치 못하도록, 사자의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이, 더 나아가서 악한 고관들의 꾀가, 그의 머리털 하나라도 해치 못하도록, 지키시고 안보해 주신 것입니다.
신학자들 중에는 다니엘의 역사성을 부인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비록 다니엘을 역사적 실존 인물로 인정하는 사람도, 그가 사자 굴에서 살아났다는 점에 대해서는, 그 사실성을 의심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점일획도 거짓이 없고 오류가 없는 이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이 그 천사를 보내서, 사자의 입을 봉하여, 해치지 못하도록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다니엘이 하나님의 보호를 받은, 이유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그들이 다니엘을 굴에서 올린즉, 그의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 다니엘이 자기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의 무엇을 믿었는지는 안 나와 있지만 하나님의 신실하심, 능력, 섭리, 경륜, 인도, 보호하심을 믿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신뢰했다는 얘기인데, 사실 믿음만 있으면 됩니다. 믿기만 하면 됩니다. 믿으면 할 수 있습니다. 믿으면 하나님의 보호를 받습니다. 믿으면 하나님의 뜻대로 인도해 주십니다. 믿으면 이루어집니다.
시편 125:1절에,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 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고 했습니다. 하나님만 의지하면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훔 1:7절에는,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는 말씀이 있는데, 이는 하나님이 자기를 의지하면, 그런 사람들에게 신실하사, 도우시고 돌보아 주신다는 뜻입니다. 예레미야 17장의 말씀에 보면,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사람은, 앞으로 좋은 일이 많이 온다고 하면서, 그런 사람은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사시사철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습니다. 다니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런 성경 말씀을 볼 때,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와 돌보심과 보호를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다리오 왕은 이제 다니엘을 참소한 사람들을 심판합니다. 이들은 왕이 다니엘로, 수석 국무총리로 삼으려는 계획을 가로막았고, 다니엘을 죽이려고 했고, 잘못된 법을 만들어 나라를 어지럽혔기 때문에, 이제 당연히 벌을 받는 것입니다. 왕이 그들을 끌고 오는데, 처자식들을 함께 끌고 와서, 다니엘이 들어갔던 사자굴 속에 던졌습니다. 그들이 굴 바닥에 닿기도 전에, 사자들이 그들을 뼈까지 부수고 말았습니다. 이는 사자가 가짜가 아니라는 것과, 굶어있는 맹수라는 것과, 이빨과 발톱이 여전히 건실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젊은 숫사자의 턱 힘은, 보통 230-300kg 정도라고 하는데, 이는 먹이를 무는 힘이, 300㎏의 물체로 누르는 힘과 같다는 뜻입니다. 이런 괴력을, 여전히 지니고 있는 사자들이라는 말입니다.
이제 짧은 일련의 사건들을,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한 다리오 왕은, 전국 120도에 흩어진 페르시아 백성들에게, 조서를 내립니다. “너희에게 큰 평강이 있을지어다.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오. 영원히 변하지 않으실 이시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의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이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라 하였더라”(단6:25-27). 다니엘 자신이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완악한 다리오 왕이 스스로 전 국민 앞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다리오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방인입니다. 자기가 곧 신입니다. 전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존재입니다. 당시 페르시아의 왕은, 그 권세와 부귀영화를,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자기가 인간이며 곧 신이고, 법입니다. 자기를 거스릴 자가 세상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국민들도 당연히,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각종 샤머니즘과 우상숭배에 빠져서, 자행자지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떤 삶의 기준도 없이, 자기들의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왕이, 이런 자기백성 페르시아인들에게 하는 말이,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 떨라고 하셨고, 그분은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며, 영원히 변치 않으시며, 그 나라는 멸망하지 않으며, 그 분의 권세는 무궁하며, 다니엘을 그 사자의 입에서 구원하여 주신 분이라고 소개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자가 하나님을 소개한 것인데, 정확하게 폭 넓게 여호와를 소개한 것입니다. 다니엘을 통하여,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고, 이렇게 고백한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다니엘의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하나님 없는 페르시아에 들어내 보인 것입니다. 이 거대한 나라도 살아계신 하나님이 통치하시며, 왕도 하나님의 손아래 있으며, 이 국민들의 생사화복도 다 하나님께 달려 있음이 들어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만 살아계시고 역사하시며 통치하시는 분이 아니라, 이방 땅인 페르시아에도 동일하게 역사하시고, 살아계시고 통치하신다는 사실을 보여 준 것입니다.
만약 다니엘이 믿음을 지키지 못하고, 어리석게 기도하는 것을 포기했다면,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들어내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다니엘의 믿음을 통하여, 페르시아의 왕궁과 그 땅에,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드러낸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한 그곳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확실하게 보여 준 것입니다.
이런 일이 있고 난 이후 다니엘은, 다리오 왕 시대뿐 아니라 고레스 왕 시대 때에도 형통하게 되었습니다(6:28). 다니엘이 먼 이국땅에서, 외롭지만은 굿굿 하게 믿음을 지켰더니, 그를 오랫동안 높이 세워 주신 것입니다. 대부분 정권이 바뀌면, 대신들의 인물도 바뀌기 마련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다니엘은, 왕위가 바뀌고 정권이 바뀌어도, 그대로 그 자리를 고수하고 있었고, 왕들로부터 신임을 받았고, 사람들로부터도 존경을 받게 되었습니다.
믿음을 지킨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기도한 결과로, 오랫동안 높은 자리에서, 형통한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결론
여러분에게 그림을 한 장 보여 드리겠습니다. 이 그림은 1615년경에 피테르 파울 루벤스라는 사람이 그린 것인데, 제목이 ‘사자굴 속의 다니엘’입니다. 지금 미국 워싱턴의 내셔널갤러리에 소장되어 있는 작품입니다.
루벤스는 여기서 사자를 굉장히 사실적으로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요, 또한 사자들이 다니엘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한 듯이 그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굴 속에 해골과 다른 뼈들이 널부러져 있는 것은, 매일 적당량의 음식을 주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니엘은 한 조각 천만 두른 채,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루벤스는 바위에 앉아 기도하는 다니엘을 비추는 빛을 부드럽고 투명한 아침 햇살로 그렸습니다. 이 빛은 사자 굴의 어둠과 대비되는 구원의 빛이기도 합니다.
이 그림이 주전 6세기에 당했던, 다니엘의 실제적인 사자굴 경험과, 어느 정도 닮게 그렸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당시의 위험한 상황을 어느 정도 표현한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본문에서 주요한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믿음을 지키면, 그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이 세상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을 들어내 보이신다는 메시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믿음으로 살면, 하나님이 그들을 보호하시고 귀하게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정에 있을 때나, 학교에 있을 때나, 직장에 있을 때나, 어디에 있든지 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것이 필요하고, 그 말씀대로 믿음으로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비록 가정이나 학교나 사회에서, 애매하게 고난과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겠으나, 거기에 신경 쓰지 말고, 하나님만 절대적으로 의지하여 기도한다면, 하나님이 친히 보호하시고 은혜 주시는 것입니다.
본인이 보호받고 은혜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사항은, 나의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여전히 역사하고 계시는 분임이 들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예배의 대상이시오, 하나님만이 기도의 대상이시며, 하나님만이 환란 중의 구원자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여러분이 시화지역이나 경기도 지역에서, 어디를 가서 무엇을 하든지 간에, 각자가 있는 그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믿음으로 살기만 하면, 안 믿는 자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들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기도하면 죽는다고 말하나 다니엘은 기도하여 살았습니다. 기도하여 이적을 체험하였습니다. 기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기도하여 자신의 명예가 높아졌습니다. 기도하여 오랫동안 형통하게 되었습니다.
시편에 보시면 다윗은,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요새시오, 나를 건지시는 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오,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오, 나의 방패시오, 나의 구원의 뿔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로다.”(시18:1-2)라고 고백했는데, 이처럼 우리들도 어느 곳에 있든지 간에, 하나님에 대한 이런 고백으로, 이런 믿음으로 살아감으로, 다니엘처럼 하나님을 드러내고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자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주시는, 여러분과 자손들의 명예도, 높아지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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