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주제는 소망입니다. 그래서 첫째 주에는 ‘여호와께 소망을 두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사람에게는 소망이 없습니다. 다른 데에도 소망이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더더욱 이 세상과 세상에 것들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자는, 영, 육간에 큰 복이 있는 것입니다.
둘째 주에는, ‘마른 뼈가 여호와의 군대가 되는 소망’에 관해, 말씀을 들었습니다. 마른 뼈는 이스라엘 민족이요, 오늘날 심령이 매말라 있는 우리들이라고 했습니다. 도저히 살아날 수 없는 뼈들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살아나서, 여호와의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말라 비틀어져 있는 영혼들이, 말씀과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회복되는 것을 소망하자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여호와의 군사로 쓰임 받는 생애가 되자고 했습니다.
셋째 주에는, 메시야가 오기를 그렇게 기다리던 사람들이, 메시야를 만나서, 그에게 경배하고 그에 관해 사람들에게, 이분이 메시야이며, 이방의 빛이요 이스라엘의 영광이라고 선포하신 것을 보았습니다. 이 말씀에 근거하여 우리들도, 다시 오실 메시야를 경건함으로 대망하며, 맡은 바 소임을 다하자고 했습니다.
오늘도 희망에 대한 메시지입니다. 특별히 주일학교 졸업식이 있는데, 졸업하여 상급기관에 진학하는 아이들 뿐만아니라, 우리 교회에 속한 모든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우리교회의 소망이며, 더 나아가서 우리 민족과 이 세계의 희망이라는 메시지입니다.
디모데가 바울의 희망이었고,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희망이었고, 초대교회의 희망이었고, 오늘날 모든 신자들의 희망이었던 것처럼, 예수님의 마음을 가진 우리 아이들이, 우리의 희망이라는 것입니다.
디모데가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일을 했는지를 살펴봄으로, 우리와 우리교회의 희망들인 아이들도, 디모데처럼 성장해서, 디모데처럼 훌륭하게 쓰임 받는, 일꾼들이 되어지기를 소망합니다.
1. 디모데의 성장 과정을 살펴 보겠습니다.
디모데가 어디에서 출생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더베가 고향인지, 아니면 루스드라인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대부분 루스드라라고 얘기합니다. 분명한 것은 부친은 헬라인이고, 모친은 유대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비록 아버지는 헬라인으로 기독교인은 아니었지만, 대신 어머니와 외할머니는 아주 경건한 유대인이었습니다.
외조모 로이스는, 어머니 유니게와 같은 집에 동거하였던 같고(행16:1, 20:4, 딤후1:5), 그래서 태어난 아들 이름을, 유대교식으로 지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디모데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을 공경함’, 또는 ‘하나님의 영예’라는 의미입니다. 아들이 앞으로 이렇게 성장해서, 이런 삶을 살기를 원했던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이, 이름 속에 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들의 이름을, 유대식으로 지을 수 있도록 허락한 아버지는, 이성적이며 상당히 온화하고, 아내에게 많은 부분 결정권을 넘겨 준 사람인 것 같습니다. 이 같은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이, 디모데입니다.
이 디모데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크게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은, 외조모와 어머니였습니다. 그분들의 단순한 생각이나, 사상에 영향을 받았다는 말이 아니고, 그분들이 가르쳐 준 성경 말씀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디모데는 어릴 때부터 성경을 배웠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외할머니와 어머니는, 디모데가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그에게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가르쳐야 할 것이 성경뿐이 아니었겠으나, 그녀는 성경을 최우선적으로, 가장 귀하게 여기며 가르쳤습니다. 디모데가 언제부터 성경공부를 하였을 것 같습니까? 바꾸어서 어머니는 아들 디모데에게 언제부터 기독교교육을 시켰을까요?
디모데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다’(딤후3:15)는 말씀에서, ‘어려서부터’는 어느 정도 성장한 때부터를 말하겠습니까? 유치원 때부터 성경을 배웠다는 말입니까? 어느 정도 말기를 알아들을 수 있을 때부터, 성경을 배운 것입니까? 아닙니다. 원문 성경에는 ‘브레포스 때부터’(from infancy)라고 했는데, 이 말은 ‘갓 태어난 아기 때부터’라는 말입니다.
대단한 할머니, 대단한 어머니이지 않습니까? 이런 생각을 하는 자체가, 신앙적인 인물들 아닙니까? 이들은 처음부터 이런 생각을 가진 것입니다. 이 아이를 믿음으로 양육해야 하겠다, 말씀으로 양육해야 하겠다. 말 배울 때하면 늦는다. 뭔가 자기 생각을 할 수 있을 때 하면 늦는다. 유치원 때 하면 늦는다. 초등학교 다닐 때 하면, 더 늦는다. 갓 태어난 아이에게도 영혼이 있음으로, 그때부터 교육했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배웠는가? 성경을 배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와, 그 내용을 배운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14절 이하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성경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 성경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책이다. 성경은 성도를 온전하게 하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한다.’ 성경의 기원과, 성경의 대단한 능력에 관하여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성경을 어릴 때부터 차근차근히 배워왔던 사람이, 바로 디모데입니다.
그의 어머니는, 다음에 나오는 구약성경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신6:4-9).
-온 몸과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할 것을, 자녀들에게 가르치라는 것인데, 어디에 있든지, 어떤 방법을 쓰든지 간에, 부지런히 이 말씀을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아마도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는, 이 말씀에 근거해서 디모데를 부지런히 가르쳤을 것입니다.
신약 성경에 나오는 ‘아볼로’가 부러운 이유는, 그가 성경에 능통한 사람이라는 점 때문입니다. 말씀에 능통하고 거기에 은혜가 있으니까, 주어진 일을 잘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튼 디모데는, 아주 훌륭한 어머니와 외할머니 밑에서 자라났던 사람입니다.
여기계신 외할머니들, 어머니들, 부모들, 교사들은, 자식과 아이들에게, 성경을 잘 가르치시기 바랍니다.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겠다고 마음에 작정하십시오. 국영수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지식을 주는 말씀이 아니라 생명의 말씀입니다. 구원을 주는 지혜의 말씀이고, 우리의 앞길을 인도하는 등불과 같은 말씀이고 영생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가르치기만 한다면, 그러면 늙어도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지 않습니다.
나중에 여러분들의 자녀들이 육신적으로, 세상적으로는 잘 되었어요, 성공했다고 합시다, 하지만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 살면, 그것이 진정한 복이겠습니까? 성공과 부귀영화가 하나님과 멀어지게 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축복이 아닙니다.
세상의 것들만 가르쳐 놓으면, 그것대로 평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돈 버는 기계로, 평생을 살아갈 수 있고요, 남들과 경쟁해서 이기는 수단과 방법만 배워서, 한평생 그렇게 살아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시계추처럼 무의미한 반복된 생활로, 인생을 불행하게 마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가르쳐 놓으면, 그것대로 평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말씀의 지도와 인도를 받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무슨 어려운 문제가 있어도, 말씀을 펼쳐놓고 거기서 답을 찾으려고 할 것입니다. 무엇을 결정해야 하는 중요한 순간에도, 그들은 말씀 안에서 해답을 찾아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인생의 이런저런 문제로 고민하고 갈등하고 근심걱정 하게 될 때에도, 이 말씀 안에서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게 될 것입니다. 결국 어릴 때부터 말씀을 잘 배우게 되면, 말씀 위에 자기의 인생을 건설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라나서, 하나님의 일에 귀하게 아름답게 쓰임이 될 것입니다.
이처럼 외할머니와 어머니는, 디모데가 아기 때부터 성경을 가르쳐 놓았더니, 어떻게 자랐을 것 같습니까? 사도행전 16장 2절의 말씀을 보면, 청소년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받는 자가 되었다.’고 했습니다(행16:2). 벌써 이렇게 인품적으로, 신앙적으로, 모범된 사람이 되었습니다. 루스드라와 이고니온 지역은 상당히 넓은 지역입니다. 여기에는 사람들도 많이 살고 있습니다. 유대인들도 많이 분포되어 있는 지역입니다. 그런데 이들로부터 디모데가, 인정과 칭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의 성품이 어떠한지를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의 신앙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만약 여러분의 자녀들이, 학교 전체에서만 인정과 칭찬을 받아도 대단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의 넓은 지역의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칭찬 받는 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디모데는 한마디로, 말씀에 의해 다듬어진 아름다운 성도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신앙으로 잘 성장한 디모데를, 바울이 전도하다가 만나는 것입니다.
2. 바울은 2차 전도여행 때, 루스드라에서 이 디모데를 만납니다.
그러면 디모데는, 언제 누구를 통하여 회심하여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 혹자는 디모데의 회심은, 제1차 전도 여행 때, 바울을 만남으로 이루어졌다고 봅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으로 인하여,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증거가 없습니다.
다른 어떤 사람은, 사도행전 16장 1절을 근거로, 역시 어머니의 영향으로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거기에 보면 이미 디모데를 ‘제자’라고 했고, 더 나아가서 어머니를 ‘믿는 유대 여자’라는 말로 표현을 했습니다. 이로 보아 어머니의 영향으로 아들 디모데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서, 바울의 제2차 전도 여행 때인 사도행전 16:3절에, 디모데가 직접 전도 사업에 동참하여 일할 때, 유대인의 반감을 살 것을 염려하여, 할례를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제 기독교인으로서 할례를 받은 것입니다. 이는 유대인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도를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미 디모데는, 특별한 봉사를 위해 택함을 받았다는 예언이 있었습니다(딤전1:18, 4:14). 그리하여 바울은, 전도여행을 출발하기에 앞서, 장로들과 더불어 안수하고, 그를 성별했던 것입니다(딤전4:14, 딤후1:6).
바울에 의해 많은 신앙 훈련과 교육을 받게 되었고, 또한 안수까지 받게 되었기 때문에, 바울은 이를 ‘믿음의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영적으로 낳은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역으로 하면, 디모데는 바울을 통하여 예수를 더욱 깊이 배웠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일꾼으로 성장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때부터 디모데는, 바울과 함께하는 바울의 동역자가 됩니다.
3. 디모데는 빌립보, 데살로니가, 고린도, 에베소 등지에서 언제나 바울과 함께합니다.
바울이 다섯 개의 편지(살전후, 고전후, 빌)를 쓸 때에도, 바울과 같이 있었던 사람이 디모데였습니다. 각 서신 서두에서 바울이 디모데와 함께 있음을, 여러 말로 표현하고 있음을 보아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골로새서 1:1절과, 빌립보서의 말씀에 보면, 디모데는 로마에 갇혀있는 바울과도 함께 있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위해 감옥에 갇혀서, 고통과 시련을 당하고 있었을 때에도, 역시 디모데는 바울과 함께하였습니다. 좋을 때만 아니라, 나쁠 때도 함께 했던 것입니다. 슬픔과 고통과 아픔도 서로 나누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의 일생동안, 바울 곁에서 바울의 동역자로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4. 바울의 심부름꾼이었습니다. 여기서의 심부름은, 복음전도와 관련된 일이고, 교회의 유익을 주는 것이며, 곧 하나님의 일을 말합니다.
데살로니가에 어려움이 있었을 때, 바울이 디모데를 그쪽으로 보냈는데, 디모데가 가서 그 일을 해결합니다(살전3:6).
고린도 교회에 문제가 있었을 때에도, 여러 번 바울의 심부름을 하게 됩니다(고전4:17, 16:10-11). 교회의 문제들을 바울의 의대대로, 원만하게 잘 해결하게 됩니다.
빌립보교회를 다니면서도, 바울의 심부름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교회의 사정을 잘 알고, 너희들을 진실로 생각할 자는, 디모데 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디모데전서를 보면, 디모데는 에베소에 있는 교회의 책임을 맡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젊은 나이에 에베소 교회를 목회하게 된 것입니다. 큰 교회, 중요한 교회를 목회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무튼, 디모데는 아무리 멀고, 또 어려운 일이라도, 사도가 시키는 일에 성실히 순종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모든 일들을 성실히 완수하여, 바울의 마음을 흐뭇하게 해 드렸던 인물이고, 뿐만아니라 주님을 기쁘시게 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했던 귀한 일꾼이었습니다.
결론
디모데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외할머니와 어머니로부터, 성경 말씀을 잘 배우며 자랐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칭찬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후 디모데는 바울을 만나 일평생 바울 곁에서, 바울의 동역자로, 바울의 심부름꾼으로 성실하게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본문 20절에 바울은 디모데를 가리켜,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 밖에 없다.
21절=타인들은 자기의 일을 구했으나, 디모데는 자기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고 예수의 일을 구했다.
22절=나와 함께 복음을 위해 수고한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한마디로 바울은 디모데를 가리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가진 자” 곧 겸손과 순종의 사람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부루스/디모데=“예수의 마음(자기 비움)을 실제로 보여준 살아있는 실 예의 사람이다.”
바클레이/디모데=“그는 섬기는 일에 있어서, 보조자의 위치로 흔쾌히 만족했던 사람이다.”
한 마디로 그는 정말 가치 있는 사람, 소중한 사람, 낮은 자리에서 끝까지 섬긴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고전4:17)이라고 불렀고, 또 ‘믿음 안에서 참 아들’(딤전1:2)이라고 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에게 있어서, 실로 좋은 동역자였으며 위로자였고, 심부름꾼이었습니다.
부모들이, 교사들이, 먼저 믿은 우리들이, 자라나는 어린 아이들과 청소년들을, 말씀으로 잘 양육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성경적인 성품을 가지게 하고, 성경의 지도와 인도를 받는 아이들이 되게 하며, 성경적인 일꾼이 되게 해야 합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디모데처럼 말씀으로 잘 양육 받아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자만 되면, 평생 동안, 각계각층에서 귀하게 쓰임 받는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 가운데서 훌륭한 신앙 정치인도 나고, 신앙 경제인도 나고, 신앙 교육가도 나고, 신앙이 좋은 판검사도 나고, 신앙적인 명의도 나고, 신앙 군인도 나고, 신앙 음악가, 신앙 체육인도 나고, 세계적인 신앙 기능 보유자도 나서, 하나님의 영광을 창일하게 드러내는 자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아이들이, 예수님의 마음을 가진 디모데처럼 되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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